[100일 100 글]35일, 서른다섯 번째 썰
필요한 물건이 있어 자주(JAJU) 매장에 들렸다. 으레 그렇듯이, 사려는 물건을 손에 쥔 채 매장 곳곳을 구경했다. 리빙, 패션, 주방 등등 생활용품 전반에 걸쳐 많은 물품을 취급하는 곳이다 보니 구경할 것이 언제나 산더미이다. 한번 봤던 제품도 다시 보고, 살까 말까 고민을 수천 번. 그러던 와중에 언제나 등한시했던 패션 섹션에서 나의 발걸음이 멈췄다.
원래 패션과 유행에 대해서 엄청난 문외한이고 관심도 없다 보니 나에게 옷을 사는 일은 월례행사 수준이다. 그냥 지저분해 보이지만 않으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살기 때문에 옷 구매에 대해 딱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섹션에 있는 제품들과는 달리 초면인 것들이 제법 많았다. 특히 잠옷이 걸려있는 곳에서는 한동안 대치상태까지 일어났다.
나는 저렇게 귀엽고, 금액이 5 자리인 잠옷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사람이다. 여름에 입던 반팔 중 오래되어 늘어났거나 해진 것들은 자동으로 잠옷이 되었다. 잠옷바지의 경우 역시 시장에서 파는 5 천 원짜리 바지를 사서 몇 년째 애용하고 있다. JAJU 패션 섹션에서 잠옷 파트에 서있는 나는 마치 세렝게티 위에 서있는 북극곰이 된 것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상하의 합쳐서 43,800원짜리 잠옷을 계산하고 있었다. 다 합쳐서 1 만원도 되지 않는 잠옷을 입고 생활하는 내가 저런 거금을 들여 잠옷을 사다니. 솔직히 아직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나저러나 계산은 끝이 났고 환불하러 다시 매장에 들리는 것은 귀찮으니 일단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집에서 깨끗하게 씻고 나온 나는 잠옷과의 2차 대치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일단 샀으니 입어나 보자며 주춤거리며 몸을 움직였고, 43,800원 잠옷을 입은 나는 한동안 거울 앞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렇게 상하의 세트로 된 귀여운 잠옷을 입은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400만 원짜리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것처럼 어색한 웃음이 입가에 새겨졌다. 그러면서 뭔가 알 듯 모를 듯한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43,800원짜리 잠옷을 산 것은 어쩌면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려는 마음의 첫걸음이 아닐까. 그동안 등한시 했지만 집에서만 입는 옷일지라도 예쁘게 챙겨주고 싶은 그럼 마음. 엄마아들을 챙기는 것처럼 어색하고 몸이 배배 꼬이지만 그래도 잘 챙겨주고 싶은, 그런 마음 말이다. 그런 마음이라면 43,800원?! 이 아니라 고작 43,800원일 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