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아직 나를 활동명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어떤 이름이라도 좋다. 하지만 라디오939라고 불러주면 더 뿌듯할 것 같다.
송: ‘라디오939’ 이외의 정체성이 있다면.
라: 맥도날드에서 버거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일 한지는 7개월 정도 됐다. 코로나가 터진 후 손님이 많아져서 힘들다. 딱 1년만 채우고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한다.
또 다른 정체성이 있다면, 대구에 사는 멋진 어머니와 멋진 동생의 아들이자 형이다. 내게 가족이 갖는 의미가 상당하다.
송: 서울로 상경하게 된 스토리가 있다면.
라: 서울로 올라온 지 3년이 조금 넘었다. 대구에서 평생을 살다 보니 답답했다. 왠지 대구에만 머무르면 고립된 인생을 살 것 같았다. 서울에서는 대구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자극을 받고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울로 오게 되었다.
송: 대구에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
라: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몇 년 전엔 이번 앨범의 모티브인 분양대행업을 했다. 편의점에서 바지사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생닭이나 택배도 포장했다. 마지막으로 떡볶이 집에서 일하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송: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는지.
라: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올라왔다. 하지만 집을 구하기엔 부족했다. 처음엔 1-2평짜리 작업실에서 지냈다. 그렇게 작업실에서 생활하던 여름 즈음, 옷 정리를 하다가 한동안 안 입은 반바지를 발견했다. 그때 바지에 곰팡이가 핀 것을 발견하고 충격받았다. 돈을 바짝 모아서 지금 사는 옥탑방으로 이사했다.
정규 1집 앨범 ‘힘을 내요 권과장’
라디오939 [출처: 멜론]
송: 얼마 전 정규 1집 앨범을 발매했다. 라디오939의 캐릭터(분양업자)가 실제 경험을 모티브로 한다니 놀랍다.
라: 대구에 있을 때 실제로 분양대행사에서 근무했다.
건물주가 공실 매물을 분양대행사에 의뢰하면 나는 그 매물로 고객을 영업을 하는 일이었다. MV처럼 허허벌판이 매물은 아니었다. 신도시의 상가 공실이 주요 영업 매물이었다.
10개월 정도 일하면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다. 당시 월급으로 따지면 120 만원 정도의 성과급을 받고 나왔다.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이다. 그 일이 나의 짧은 인생에서 큰 변곡점이 되었다. 그때를 계기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 그때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송: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라: 분양대행업 자체가 내 삶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나는 편모가정에서 자랐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그때 어머니께서 많이 힘들어하셨다. 몸도 좋지 않으셨다.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서러웠다.
미성년자인 내가 힘을 보탤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내 안에 화가 많이 쌓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인생의 1순위는 늘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건강과 안위가 나에게 가장 중요했다.
나에게도 꿈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재능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일에 전념하기가 어려웠다. 음악활동은 생계에 있어서 늘 리스크가 존재하니 마냥 빠져들 수 없었다.
그렇게 분양업을 시작했다. 주변에서 인정할 만큼 일을 열심히 했지만 성과급 제도였기 때문에 10개월 동안 이렇다 할 벌이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뒤돌아보니 벌이가 없던 10개월 동안 어머니께서 편찮으신 적이 없었다. 그때 내가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고민이 모두 허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소중한 청춘을 허비하며 괴로워하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면서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덜 힘들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부터 서울로 올라갈 생각을 했다.
나는 항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춰서 살아왔다. 하지만 분양업을 계기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을 따라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
송: 당시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을 때 어머님과 동생의 반응은 어땠는지.
라: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어머니께서는 늘 집과 가족만을 생각을 했으니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라고 하셨다. 동생도 응원을 많이 해주었다.
송: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는지.
라: 후회는 아예 없다. 잘한 일이었다.
다큐 앨범, 그 작업의 과정에서
'힘을 내요 권과장' 수록곡 '모닝'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출처: 유튜브 채널 '라디오 구삼구 Radio939']
송: 유튜브에서 확인해보니 2017년에 믹스테입 ‘기억어이 습작’을 발매했고 2018년에 믹스테입 ‘숫총각’을 발매했다. 믹스테입 발매로부터 따지면 이번 앨범은 발매까지 2년 정도 걸린 셈이다.
오랜 시간과 공을 쏟은 작품인데 작업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라: 모든 것이 힘들었다. 그동안 믹스테입만 발매했으니 이번 앨범이 나의 첫 오리지널 작업물이다.
이번 앨범도 원래는 믹스테입 형식으로 발매하려 했다. 그런데 프로듀서로 함께 작업한 ‘조셉(Josep rheydt)’이 EP 형식을 제안했고 작업을 하다 보니 정규앨범까지 오게 되었다. 조셉과 함께 앨범을 구상하고 이야기하면서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이야기는 앨범에서 배제시키고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는 노래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조셉이 곡을 만들기 위해선 내가 원하는 느낌을 잘 전달해야 했다. 그래서 스케치 수준의 초안이나 비트도 어느 하나 대충 할 수가 없었다. 느낌을 내고 싶은 부분에 있어서 나 또한 힘을 많이 쏟아야 했다. 그래서 가녹음을 할 때부터 힘이 많이 빠졌다.
사실 처음엔 가녹음을 한 상태에서 비트만 바꾸면 앨범이 완성될 줄 알았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어떤 곡은 1절 벌스를 완성시키는데 몇 백 번씩 녹음을 해야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힘에 부쳤다.
송: 많은 난관을 해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라: 해결보단 극복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작업 중간중간 친구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그때 친구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줬다. 그 반응 덕분에 참고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송: ‘기억어이 습작’에는 유머 코드가 있고 ‘숫총각’에는 연애 감정이 묻어있다. 반면 이번 정규 앨범은 웃음기와 연애 감정을 모두 뺀 다큐멘터리 같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라: 앞서 믹스테입들은 그런 포인트들을 염두하고 만든 건 아니었다. 원래 생생한 삶에 대해 노래하길 좋아한다. ‘기억어이 습작’이나 ‘숫총각’도 작업 당시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서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번 앨범 같은 경우는 더 딥하고 다큐스럽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양업을 할 당시 나는 질투, 부정, 염세, 열등감의 유기체였다. 그때 감정들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래서 딥한 느낌이 많이 묻어난 것 같다.
송: 실제 시간적인 순서로 그간의 앨범을 나열한다면.
라: ‘힘을 내요 권과장’ – ‘기억어이 습작’ – ‘숫총각’ 순이다.
그래서 ‘힘을 내요 권과장’은 넓게 보면 4년 정도 걸린 셈이다. 분양업을 소재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다. 그때의 일을 심도 있고 완성도 있게 다루고 싶었다. 사실은 분양업을 그만두자마자 앨범을 구상했었다. 만족하는 수준까지 앨범을 만들다 보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돈을 노래하다
'힘을 내요 권과장' 수록곡 '모닝'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출처: 유튜브 채널 '라디오 구삼구 Radio939']
송: 라디오939의 모든 앨범에서 생계, 가난에 대한 이야기가 기저에 깔려 있다. 그런데 ‘힘을 내요 권과장’에서는 그 고뇌의 정도가 가장 깊다.
어떤 경험과 관련이 있는지.
라: 분양업을 할 당시, 성과급 제도였기 때문에 월급이 따로 없었다. ‘일비’라고 해서 하루에 만 원씩만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10번 트랙 ‘숙취’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 하루는 만원 정도의 베팅을 받아왔어’
당시 하루에 만 원으로 교통비와 끼니를 전부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삼각김밥을 하나 사 먹더라도 같은 값이라면 그램 수가 더 높은 것을 골라 먹었다.
회사 쉬는 시간엔 쉬지도 않고 ‘급매’ 전단지를 만들었고 퇴근하면 전단지를 붙이러 다녔다. 집에 잘 가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다. 사무실이나 자동차에서 먹고 잤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가장 피폐한 시기였다.
'기억어이 습작' 수록곡 '세븐일레븐 러브'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출처: 유튜브 채널 '라디오 구삼구 Radio939']
송: ‘라디오939’에게 라면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 앞에 큰돈이 굴러 갈수록 허영심은 부풀어 몇 달을 굶어 뱃속엔 라면만 불어도 한 방을 노려’ - 모닝 中
‘컵라면이 내 메인디쉬 양치를 한 뒤 얼음 같은 물을 입속에서 뎁히는게 내 여유지’ - 숙취 中
라: 나와 라면은 애증의 관계에 있다. 돈을 한창 아낄 때는 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작업실 생활을 할 때가 생각난다. 당시 돈이 없어서 카레가루 1kg을 5000원에 샀다. 뜨거운 물에 카레가루 두 스푼 정도를 풀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 카레처럼 먹었다. 여기서 더 가난할 땐 라면사리를 카레가루와 조리해서 먹을 정도였다.
지금 내게 라면은 한 번쯤 먹고 싶을 때만 먹는 친구다. 지금도 자주 먹긴 하지만 돈이 없다기보다는 밥하기 귀찮아서 먹는다.
송: ‘라디오939’에게 돈은 어떤 의미인지.
라: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아닐 때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돈이 없으면 절대 안 된다. 돈이 있어야 내가 뭐라도 할 수 있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 필수 불가결하다.
송: 음악가로서 돈이 중요하면 그만큼 힘든 부분이 있지 않은가.
라: 많이 힘들다. 어느 정도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를 꼭 해야 한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하면 너무 힘들다. 늘 딜레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하기까지는 버티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부분은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가정환경이 풍요롭지 않다면 모두가 하는 고민이 아닐까. 그래서 다 같이 파이팅했으면 좋겠다.
권과장의 내면으로, ‘꿈’
'힘을 내요 권과장' 수록곡 '모닝'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출처: 유튜브 채널 '라디오 구삼구 Radio939']
송: 9번 트랙 ‘꿈’의 전개가 인상적이다. 내면의 가장 깊은 곳으로 안내하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고뇌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라: 우선 이 부분을 캐치해주신 분들과 캐치해주실 분들에게 미리 감사드린다. 나에게 있어서 음악은 말하기 힘든 응어리, 고달픈 감정을 해소하는 매개체다. 내가 하는 음악의 가사는 나의 힘든 마음을 좀 알아봐 달라는 의도로 풀어낸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캐치해주는 분들에게 고맙다.
질문으로 돌아와 ‘꿈’에 대해서 말하자면, 권과장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곡이 맞다.
나는 잘 때 가위에 많이 눌린다. 그러한 경험에 착안해서 곡을 만들었다. 가위에 눌리면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답답하고 머리는 왕왕거린다. 어떤 때는 이상한 것도 보인다. 현실이 아닌 상황을 현실이라고 인식하고 괴로워하다가 가위에서 풀려나면 홀가분해진다. 꿈속에서는 홀로 싸우며 괴로워하지만 깨고 보면 현실은 아무 일도 없이 고요하다.
분양업을 하며 극심한 갈등을 겪다가 해소하는 순간을 곡에 담고 싶었다. ‘주정’ 트랙에서 술을 먹고 잠에 든 권과장이 미뤄두었던 꿈과 대면하는 곡이다.
송: 9번 트랙에서 의도한 메시지가 있다면.
라: 가위눌릴 때 나를 괴롭히는 허상은 막상 그 상황에서 깨어났을 때 아무것도 아니다. 삶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며 우리를 막고 한계선을 긋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지 않을까. 환경적인 요인, 사회적인 요인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을 제외한 대부분의 걸림돌은 우리가 만들어낸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두려움을 해소하는 순간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 메시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앨범 자켓에서도 이러한 메시지를 암시한다. 검정 우산은 나의 걱정을 의미한다. 현실은 맑은데 나는 언제 비가 올지 모르니 계속 우산을 들고 있다. 그게 음악에서는 어머니의 건강, 집에 대한 걱정으로 표현이 되었다.
송: 멜로디가 없이 추상적인 느낌으로 전개된 곡이다.
라: 맞다. 추상적인 느낌을 이렇게 잘 표현해준 조셉에게 무한한 감사함을 느낀다.
이 곡을 만들 때 조셉이 고생을 많이 했다. 이런 형식의 음악이 많지 않다. 그리고 내가 가위눌릴 때의 느낌과 조셉이 가위눌릴 때의 느낌이 다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겪어본 느낌과도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작업하기 까다로운 곡이었다.
앞으로도 음악을 만들 때 이런 장치를 많이 넣고 싶다. 물론 음악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배경과도 같은, 혹은 그보다도 못한, 흘러가는 소리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 앨범을 들을 때 사람들이 내가 의도한 순간들을 함께 느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러한 장치를 일부러 넣었다. 어차피 대중은 음악을 선택적으로 소비하니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음악을 만들고 싶다.
도약을 위한 믹스테입, ‘기억어이 습작’ 그리고 ‘숫총각’
'기억어이 습작'과 '숫총각'의 앨범커버 [출처: 유튜브 채널 '라디오 구삼구 Radio939']
송: 과거의 믹스테입이 흥미롭다. ‘기억어이 습작’ 앨범명은 경상도식 사투리인지.
라: 맞다. ‘기억어이 습작’은 경상도의 어른식 사투리이다. 의사를 으사 혹은 어이사, 볶음을 보껌, 이런 식으로 발음하는 어른들이 있다. 무언가 하나라도 비꼬아서 내놓는 게 재미있다.
송: ‘숫총각’ 믹스테입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특히 왜 앨범명이 숫총각인지.
라: 큰 의미는 없다. 당시 처음 서울로 상경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숫총각이라는 키워드가 맴돌았다.
당시 나는 인생에 있어서 첫 도전을 하러 서울에 왔었다. 혼자서 생활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것들이 나에겐 어색했다. 모든 일에 있어서 더딜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과 ‘숫총각’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잘 맞물린다고 생각했다.
당시 성인이 된 이후로 여자친구가 없기도 했다. 마침 서울에서 좋아하게 된 여자가 있었다. 그 이야기가 마지막 트랙에 실려있다. 많은 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언행일치가 된다고 생각했다. 완전 힙합이지 않은가.
대구, 그리고 사투리
송: 모든 앨범에 걸쳐서 ‘사투리’를 재치 있게 사용하고 있다. ‘라디오939’에게 사투리는 어떤 의미인지.
라: 음악에서 의도적으로 사투리를 쓰는 건 아니다.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쓰면 괜찮겠다 싶은 부분이 있다.
사투리는 음악에서 보다는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 사투리는 나의 잃고 싶지 않은 정체성이다. 어차피 서울말 알레르기가 있어서 쓰지도 못하겠지만 사투리는 살면서 끝까지 가져가고 싶은 나의 모습 중의 하나이다.
사투리를 쓰면 개그 칠 때도 편하다. 서울말로 웃기려 할 때 재치가 80이 필요하다면 사투리로 웃길 땐 재치가 40만 있어도 억양으로 개그가 가능하다.
송: 대구는 어떤 의미인지.
라: 대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수능 걱정, 대학 걱정, 취업 걱정을 차례로 하며 살아갔다. 나는 그보단 꿈에 도전하고 꿈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대구라는 도시를 나의 단편적인 경험에 기반해서 편협적으로 판단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대구에 있을 땐 꿈에 대해 깊이 이야기할 기회도,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지루함을 느꼈다. 꿈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지금의 내게 대구는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안식처다. 하루빨리 가서 쉬고 싶다. 대구는 내 마음속의 휴양지이다.
음악의 의미
라디오939 - 모닝(감각의 제국 live) [출처: 유튜브 채널 '라디오 구삼구 Radio939']
송: 이번 앨범을 통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세상에 내어놓는 느낌이 어떠한지.
라: 나는 이 앨범을 발매할 때 나의 일기장을 내어 놓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이 앨범을 절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셉의 의견도 동일했다. 그냥 이건 우리가 무언가를 털어놓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도 평소에 이런 음악을 듣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앨범을 발매하고 주변의 반응을 보니, 개인적인 내용을 세상에 내놓은 게 나쁜 선택을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용기를 얻었다.
송: 이번 앨범 발매를 전후로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라: 전후의 삶이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전히 방향에 대해서 고민한다. 잘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조급해하고 힘들어한다. 이전과 같이 그렇게 살고 있다.
하지만 ‘라디오939’의 삶은 조금 변했다. 누군가에게 노출될 기회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또한 개인적인 의미가 크다. 내가 주체가 되어 도전한 일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기억어이 습작’이나 ‘숫총각’이 연습이라고 한다면 이번 앨범은 나라는 사람을 온전하게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이력서 같은 느낌이다.
송: ‘라디오939’가 음악을 하는 이유.
라: 즐거워서 하는 것 같다. 음악은 내게 없어선 안될 해소제이다. 살면서 느낀 감정과 감상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해소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음악을 안 했다면 다른 어떤 일을 했을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힙합이 없었다면 뭐하고 살았을지 막막하다.
라디오939 (RADIO 939) - 요즘 [출처: 유튜브 채널'HALF']
송: 음악을 통해 ‘라디오939’가 청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지.
라: 각자 원하는 삶을 위해서 최대한 노력하고 최대한 후회 없이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멋지다. 예쁘다. 아름답다’라는 감상을 의도하기가 싫다. 극단적으로는 사람을 위로하는 류의 노래 가사를 혐오할 때가 있다. ‘내가 언제나 네 편이 되어줄게.’ ‘괜찮아.’ 이런 상투적인 말로 사람들을 그 자리에 안주하게 끔 하는 가사가 싫다.
‘당신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자리에 안주하면 바뀌는 것은 없다.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지만 안주하면 그 가치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힘들겠지만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한다. 성취하고 발전하고 나아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를 느끼고 살아야 한다. 인생은 행복으로만 채워질 수 없다. 지금도 힘들고 앞으로도 힘들겠지만 열심히 살아야 한다.’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다.
나는 사람들이 최대한 서로를 배려하고 안 싸우면서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고 후회 없이 살다가 자연스럽게 생의 마지막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슬퍼하거나 억울한 사람도 없었으면 좋겠다.
고민과 꿈
송: 최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고민.
라: 다음 앨범은 직접 작업하고 있다. 나의 능력에 대해서 부족함을 인지하고 있어서 이 부족함을 어떻게 타파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그리고 이제는 금전적으로 기반을 마련해놔야 할 텐데 앞으로 많이 힘들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버텨내야 할 일들이 걱정된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겨내야 한다.
송: 다음 앨범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라: 세 곡은 거의 완성됐다. 다섯 트랙 정도의 미니 앨범으로 발매하고 싶다. 올 겨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제는 ‘싹’이다. 나는 서울로 상경하면서 땅에 처음 씨앗을 심었다고 생각한다. 방 안에서 혼자 지내며 세상은 어떨 것이며 나는 어떤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과연 나의 결과물이 세상에서 어떻게 먹힐 것인가 상상했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끙끙 앓던 시간은 어느 정도 지나갔고 이제 필드에서의 삶이 시작이 되었다. 이번 정규앨범을 통해서 싹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다음 앨범은 감정 기복 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앨범이 될 것 같다.
송: 막연하게나마 꿈이 있다면.
라: 나의 음악으로 세상을 선하게 바꾸고 싶다. 불가능하겠지만 그런 세상으로 변화하는 데에 어느 정도 일조하고 싶다. 사람들이 짜증 나다가도 ‘오늘 임마 노래 듣고 힘든데 집 가서 쉬어야겠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집에서 내 노래를 듣고 쉬면서 낼 뻔했던 짜증 한번 덜 내고 그러한 영향이 모여서 더 나쁘게 될 세상이 덜 나쁘게 되었으면 좋겠다.
또 다른 꿈이 있다면 어머니께서 일을 안 하셔도 될 만큼 생활비를 지원해드리고 싶다. 동생한테 용돈도 주고 싶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마음껏 고기 사줄 수 있는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송: 2021년의 ‘라디오939’에게 한마디.
라: “와 벌써 집을 샀다고?”
작가의 음악적 시선
라디오939의 1집 정규앨범 '힘을 내요 권과장' 앨범커버 [출처: 멜론]
인터뷰어로서 인터뷰이를 충분히 이해하는 일은 인터뷰어의 의무이자 인터뷰이에 대한 예의다. 나는 그 마땅한 일을 위해서 라디오939의 정규앨범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해서 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한 명의 청자로서 그의 음악을 탐구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음악이 지닌 힘이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의 앨범은 마치 한 편의 단편소설 같다. 실제로 겪은 일들을 음악으로 풀어낸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생생한 상상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꾼인지. 청자가 뮤지션의 음악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에 나는 그와의 인터뷰를 손꼽아 기다렸다.
서로가 처음 대면한 순간 그는 이 상황을 조금 낯설어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시작하니 음악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에너지를 발산했다. 듣는 이를 이야기 속으로 힘껏 끌어당겨 자신의 인생을 낱낱이 보여주었다. 조리 있는 말솜씨,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리고 조금은 낯선 경상도 사투리는 이야기에 매력을 더했다. 그의 이야기는 마치 쓰디쓴 동화 한 편과 같았다.
이야기 속 권과장은 맑은 날에도 내려 놓을 수 없었던 우산(걱정)을 드디어 내려 놓으며 이야기의 막을 내렸고, 그런 자신은 척박한 땅에서 핀 싹과 같다는 말로 다음 편을 예고했다. 그러니 그의 음악은 그가 겪은 삶을 발자취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아픔이자 극복이고 절망이자 희망이다.
'힘을 내요 권과장'. 무책임한 응원이면서도 할 수 있는 말이 이것 밖에 없음을 우리 모두가 안다. 그럼에도 힘을 내자. 힘들어도 힘을 내면 싹을 피울 수 있다. 그것이 삶의 유일한 희망이자 순리이다. 라디오939는 그것을 안다. 그런 그가 오래도록 음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라디오939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전하며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 '모닝'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