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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미 Jul 08. 2020

08. 두 번째 삶이 움트다, 이봉주

롯데건설에 재직하던 그는 어떻게 목수가 되었을까


송혜미(이하 ‘송’):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봉주(이하 ‘이’): ‘우드스튜디오 움’을 운영하며 목수, 목공 강사로서 지내고 있다. 나를 공방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가구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아이 둘의 아빠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사는 사람이다.


송: ‘우드스튜디오 움’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이: ‘움’은 ‘움트다’의 움이다. 목공을 통해서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많고 사전적인 의미가 좋기도 해서 ‘움’이라는 이름으로 공방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작품 활동과 목공 교육이 진행된다. 일부 회원(일명 열쇠 회원)에게는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이기도 하다. 즐거운 모임도 많다.  


목수로 향하는 길목
그의 작품 ‘바람’ [출처: blog.naver.com/woodstudiowoom]


송: 목수 이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이: 건축설계를 전공하고 롯데건설에 입사해서 6년 정도 재직했다.


건축설계를 전공하면 보통 건축사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나는 졸업하기 전에 결혼을 했고 아내는 이미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다. 그래서 바로 건설사에 취직했다. 당시 견적팀에서 근무했다. 늘 설계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송: 어떤 계기로 목공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이: 롯데건설 재직 당시 육아휴직을 했다. ‘남성 임직원 최초’라는 이례적인 타이틀을 달고 1년 동안 아이를 케어했다.


그때 아내의 권유로 목공을 시작했다. 사실 그전에 10년 정도 DIY에 취미가 있었다. 육아휴직 후 아내가 가구를 본격적으로 배워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제안했다. 그리곤 학교를 두 군데나 알아봐 주었다. 아내가 알아봐 준 곳 중 ‘가람가구학교’에서 가구를 시작했다.


송: 육아휴직을 마치고도 학업이 가능했는지.

이: 3학기, 1년 반 과정이었기 때문에 육아휴직 1년을 마치고 직장을 다니면서 학업을 이어나갔다. 일반적인 학부생처럼 학업에 올인해야 하는 과정은 아니었다. 일과 병행이 가능했기 때문에 직장인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육아휴직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동기들보다 목공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송: 졸업 직후엔 목공 작업을 어떻게 이어나갔는지.

이: 가구학교에서 모든 과정을 마치면 졸업전시를 한다. 그때 나의 작품이 판매되면서 작가로 등단했다. 운이 좋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주문제작을 시작했다.


송: 졸업 직후 등단할 정도면 목공에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쑥스럽지만 그런 편이었다.


여전히 디자인은 어렵지만 제작은 오래 하면 익숙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시작했다. 그런 생각 덕분인지 손으로 하는 일은 익숙했다. 아마도 DIY를 오랫동안 하다가 가구를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손재주가 있는 편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가구학교를 갔기 때문에 동기들의 작업을 많이 도와주는 편이었다. 선생님께서 ‘자네 손을 거치지 않은 동기들 작품은 없지 않느냐.’ 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송: 아내의 결단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공방장님의 손재주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더욱 멋지게 느껴진다.

이: 처음엔 사람들이 나에게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냐.’라고 묻곤 한다. 하지만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훌륭한 아내를 만났다.’며 결론이 난다.


사실 가구를 시작한 초반에는 일정한 수입이 없었다. 직업도 없었다. 2년 정도는 아내가 잘 기다려준 것 같다. 그런 훌륭한 아내 덕분에 가구를 할 수 있었다.


송: ‘가람가구학교’ 수료 이후 목수로서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길이 있었을 텐데, 바로 ‘우드스튜디오 움’을 창업한 것인지.

이: 가구학교를 졸업 후 바로 개업하지는 않았다.


실기교수 선생님의 공방에서 2년 정도 주문제작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리고 과천에 있는 동기의 공방에서 강의도 했다.


그러다가 일이 커지면서 개인 공방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공방을 정리하시고 ‘움’으로 들어오셨다. 가구학교 동기 한 분도 ‘움’을 창업할 때 함께 들어오셨다. 두 분이 창업을 많이 도와주셨다. 졸업 후 ‘움’ 창업까지는 2년 정도 걸린 셈이다.


송: 공방 창업 직후 시행착오는 없었는지.

이: 특별히 큰 어려움이 없었다.


과천 지역에서 강의를 하다가 창업 했기 때문에 수강생을 모으는 일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또한 지인들의 소개로, 혹은 SNS를 통해서 작품 의뢰를 꾸준히 받았다.


힘들다면 지금이 더 힘들다. 관리할 것들이 정말 많다. 지금 해야 할 일을 리스트업 하면 아마 천 가지는 넘을 것이다. 치워야 할 것, 새로 사야 할 것 등 사소하게 관리할 것이 많다. 사람도 만나야 하고 개인 작품도 해야 한다. 다양하게 할 일이 많아서 어렵지만 그렇기에 또 재미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


송: 직업 전향 이후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없었는지.

이: 의심은 없었다. 후회한 적도 없었다.


‘롯데건설에 있을 때가 더 좋지 않았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사실 수익 측면에 있어서 힘들 수도 있었는데, 이 또한 아내 덕분인지 특별히 힘든 적은 없었다. 가구학교 졸업 이후 꾸준히 크고 작은 가구 의뢰가 있기도 했다.


강의 또한 가구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1년 정도 후에 지인의 제안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하다 보니 재미도 있었다.


나는 수강생에게 ‘목공’이라는 낯선 매개로 다가가지만 반대로 나를 찾아오는 분들도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 일이 재미있다. 이런 매력이 모여 목공과 강의의 길로 나를 점점 빠져들게 한 것 같다.


우드스튜디오 ‘움’


송: ‘움’의 특징이 있다면.

이: ‘움’은 한마디로 하드우드 공방이다. 또한 DIY와 차별되어 짜맞춤을 기본으로 하고 철물로 조립하는 방식은 지양하고 있다. (목재끼리 직접 끼워 맞추는 결구 방식을 짜맞춤이라고 한다.)


송: ‘움’에서 어떤 클래스가 진행되고 있는지.

이: ‘움’에서의 목공 수업에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


먼저 ‘스툴’을 만들며 수공구 다루는 법과 기계 작업을 일부 배운다. 그 후, ‘1인 책상’, ‘서랍이 달린 협탁’, ‘문 판을 포함하는 수납장’ 순서로 클래스를 거친다. 마지막으로는 자유주제로 수업을 한다. 자유주제까지 가기 위해서는 10개월 정도 걸린다. 그렇게 자유주제를 마치고 나면 1년 정도가 걸린다. 그때가 되면 목공을 계속해서 취미로 이어나갈지 말지 결정한다.


송: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부담이 되어 애초에 목공을 시작하기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이: 맞다. 큰돈을 들여서 수공구를 직접 장만하고 목공을 시작했는데 몇 달 후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면 그 공구들은 모두 버려져야 한다. 또한 일반적인 목공 과정이라면 초반 몇 달 동안에는 공구 연마하는 법만 배운다. 나는 그 점이 싫어서 클래스 동안은 공구를 모두 제공하고 관리해준다.


송: 공구 관리가 보통 일은 아닐 것 같다.

이: 끌 하나만 연마하는데 30분 정도가 걸린다. 그런 끌만 수 십 자루가 된다. 그럼에도 수강생들의 즐거움과 편의를 위해서 이렇게 까지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강 후 1년 정도가 지났을 때 취미로 해도 되겠다고 판단이 되면, 그때 가서 마음에 드는 공구를 사면 된다. ‘움’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움’은 처음에 목공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송: 수강생 중에서 공방장님과 같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지.

이: 있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그런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라고 쉽게 마음먹지는 못하시는 것 같다. 힘들어 보일 수 있다. 늘 근육통을 달고 살아야 한다. 챙길 것도 많다. 쉬운 직업은 아니다.


킨더 라이어 [출처: Instagram@bongjoo_lee]


송: ‘킨더 라이어 만들기’ 클래스 또한 핫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아이가 1학년이었을 때 라이어를 처음 접했다.


‘라이어’는 아이가 학교에서 사용했던 악기이다. 당시 학급의 아이 아빠들과 아이가 사용할 라이어를 만들었다. 직업이 목수이다 보니 재료부터 만들기까지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그 후 라이어 만들기 클래스를 열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시작하게 되었다.


이 클래스는 어느새 13기를 맞이했다. 클래스를 고정적으로 오픈하는 것은 아니고 요청이 있을 때만 한다.


송: 라이어 소리가 정말 아름답다.

이: 라이어는 5 음계 악기이다. 5 음계는 서로 부딪히는 화음이 없다. 즉, 불협이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어린이를 위한 음악 치료 악기로도 사용된다. 편안한 음색을 지니고 있어서 아이들을 재우기에도 좋다.


송: 형태 또한 다양한 것 같다.

이: 바이올린이나 첼로처럼 형태가 규격화된 악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구는 도면대로 정확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라이어는 조형작업에 가깝다. 즉, 깎아 나가는 작업이다. 직접 작업해보면 가구 작업과 라이어 작업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이 라이어 만들기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송: ‘우드스튜디오 움’이라는 공간에 대한 방향성이 있다면.

이: 규모에 대한 욕심보다는 이 공간 안에서 더 다양한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사실 이 공방 안에서 라이어 연주 모임을 하기도 했다. 전시회도 열었었다. 많은 손님들이 불쑥 찾아와 대화를 하고 가기도 한다. 공방을 편안하게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이렇듯 이 공간 안에 다양함이 공존했으면 좋겠다. 나중엔 카페도 겸하고 싶다.

 

목수의 생각


송: 목수로서 어떠한 직업의식을 갖고 있는지.

이: 카피만큼은 하지 않는다.


종종 다른 작가의 작품과 똑같이 만들어줄 수 있냐는 의뢰를 받는다. 그때는 당연히 만들 수 있지만 만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작가의 자존심을 떠나 도덕적으로도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꼭 그러한 의뢰가 아니더라도 카피는 하지 않는다. 카피에 대한 점은 작가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얼마든지 카피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아직 해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의 작품이 다른 누군가의 것과 닮아있다고. 당연히 닮아있다. 왜냐하면 나 또한 시각적으로 계속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피에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히 들어가 있지 않은가. 그것만큼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송: 작업에 있어서는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

이: 목공 작업에 있어서는 늘 타협이 존재한다.


손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100퍼센트 완벽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이 매 순간 존재한다. ‘이 정도면 됐는가.’ 이게 고민의 지점이다.


이 고민에 대한 타협의 수준이 높은 지점에 있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능하면 타협하지 않기 위해 괴로워하고 있다. 만들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만든 적도 많다.


송: 워커홀릭인지.

이: 그런 편인 것 같다. 종종 퇴근을 해도 영혼은 아직 공방에 남아있기도 하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다시 공방으로 출근해 새벽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꿈에서도 작업을 많이 한다. 작업을 할 때는 항상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데, 자면서도 그렇게 긴장을 하는 것이다. 피곤한 일이다. 그렇게 작업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가 있다.

 

진로에 고민이 많은 청년들에게


송: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은 청년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이: 나 또한 본업을 뒤집고 다른 직업을 선택한 입장에서 당장 꿈을 이루고자 하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직업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단순히 돈을 위해서라도 직업을 갖는 것은 찬성한다. 상황에 맞게 직업을 갖고 다시 꿈을 꾸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아르바이트를 하건 직업을 갖건, 그 이후에도 꿈을 접지 않는 것이다. 나도 마흔이 다 되어 제2의 직업을 찾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정할 때 그 시기가 너무 많이는 늦어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찾아보고 준비하기를 권장한다.

 

고민과 꿈


송: 해결하지 못한 고민이 있다면.

이: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오래도록, 건강하게 할 수 있을까. 그게 나의 유일한 고민이다.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몸이 아파서 괴롭다. 어떤 작업에는 영혼이 아닌 생명을 갈아 넣었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일적으로는 만족도가 높기 때문에 이 즐거움을 오래도록 누리려면 일의 양을 조절하고 건강 관리도 해야 할 것 같다.


송: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이: 오랫동안 목공을 하는 것이다. 직업적으로 다른 꿈은 더 꾸지 않는다.


많은 돈을 벌면 좋겠지만 돈을 목표로 했다면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하시는 분들의 수입을 조사한 적이 없기 때문에 목수의 수입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앞으로 수입이 얼마나 탄탄할지 얼마나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나도 궁금하다.


아내 회사의 상사가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난 직원들에게 돈 벌어오라고 하지 않았다. 서비스에 대한 고민을 해라. 수익창출은 부가적인 일이다. 그러니 일에 집중해라.’


나도 마찬가지이다. 돈벌이 때문에 타협의 지점이 낮아지면 그 일은 하면 안 되지 않을까. 나로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목공을 한다.


작가의 음악적 시선
Bon Iver 1집 'Bon Iver' 앨범 커버 [출처: 멜론]


청춘의 중간 지점 즈음에서 지난 청춘을 바라본다. 돌이켜보면 나는 무언가에 늘 몰입하고 있었다. 그것이 공부이기도 했고, 음악이기도 했고, 글이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는지도 모른 채 뼈 시린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그간 참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왔다고, 어찌할 도리 없이 통감할 뿐이다. 청춘에 존재하는 이별의 아픔은 사람에게서 오기도 하지만 '몰입했던 일'에게서 오기도 한다. 나는 왜 어느 하나를 기어이 쥐고 있지 못했을까.


인터뷰 중, 이봉주 공방장님께 '목공'의 의미를 여쭈었다. 그는 나무와 대면하는 일이라고 했다.


"싸우기도 하며 나무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아요."


 '싸운다.' 그가 스쳐 지나가듯 던진 한마디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했다. 그래.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고비가 찾아올 때 나는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지.


'나는 이 일을 하며 행복한가, 그리고 앞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행복이라는 판타지 뒤에 나의 자격지심, 나약함, 두려움을 숨겨왔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걸까. '행복'의 속성을 잘 아는 프로페셔널들은 그 허상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은 '만족스럽다', '즐겁다' 그리고 '이 일을 오래도록 하고 싶다'는 말로 일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희로애락의 균형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참 젊다. 동시에 청춘의 절반을 지나왔다. 오래도록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싸울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지만 이제라도 알았다.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부지런해야겠다. 오늘도, 내일도, 오래도록.


오늘은 차분한 곡을 추천한다. 'Bon Iver'의 1집 앨범 'Bon Iver' 수록곡 'Beth/Rest'를 들으며 공방장님과의 대화를 곱씹는다. 그 시간의 차분함이 오늘의 나를 생각하게 했다. 소중한 대화를 선물해주신 공방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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