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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미 Jan 03. 2022

11-1. 다시 태어나다, 카코포니(Cacophony)

슬픔을 통해 아름답고 건강한 삶으로 나아가는 길


카코포니는 1집 정규앨범 [和]로 2018년 데뷔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 작품은 곧 그녀가 어머니를 기리는 앨범이자, 인간 '김민경'이 '카코포니'로 거듭났음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했다. 1년 후 발매한 2집 [愛]는 한국대중음악상 팝 음반에 노미네이트 됐다. 2021년 11월엔 [Reborn] EP 앨범 발매와 함께, 그녀가 직접 감독, 연출, 각본 그리고 연기를 맡은 영화 [Reborn]을 공개하며 그녀의 엄청난 예술적 역량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매해 '진화'를 거듭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고, 그녀는 나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해주어 그녀의 거처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2021년 12월 서울에 함박눈이 내렸던 날, 3시간에 걸쳐 그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혜미(이하 '송'): 자기소개 부탁한다.

카코포니(이하 '카'):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일단 싱어송라이터다. 음악을 하는 이유는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영상에 비치기도 하고 연출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단순히 뮤지션이라고만 말씀드리긴 어렵다. 친구 중 한 명은 나를 이야기꾼, 스토리텔러라고 이야기해줬다. 나로서도 그게 조금 더 부합하지 않나 생각한다.


송: 카코포니 이외의 정체성이 있는지.

카: 이번에 처음으로 배우로서 음악 영화 [볼레로 닷컴]에 출연했다. EP 앨범 전곡을 수록한 영화 [Reborn]의 감독, 연출, 시나리오, 그리고 배우를 맡기도 했다. 올해 정체성이 다양해졌다. 그래서 돈을 버는 구석도 다양해져서 내년에는 더욱 잘 풀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송: 2019년 유튜브 채널 ‘당민리뷰’를 통해 불어 과외도 한다고 들었는데, 여전히 하는지. 

카: 그렇다. 여전히 똘똘한 학생 한 명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내년에 잘 풀린다면, 그보단 미디(컴퓨터 음악) 레슨도 해볼까 한다. 음악을 하며, 나는 운이 좋게 여러 해결이 잘 됐다. 그래서 많은 걸 알게 되었지만, 주변 뮤지션이나 뮤지션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고 느꼈다.


송: 특별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카: 갑자기 뮤지션이자 친구인 '김도마'가 죽었다. 가까운 사람이 이유도 없이 떠나버렸는데, 그때 내가 더 도와줄 수 있었다는 생각, 하지만 도와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음악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 중의 하나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레슨을 통해 피드백을 주고 동반자가 되어주면서, 누군가에게는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송: ‘김도마’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지.

카: 김도마는 2인 밴드 ‘도마’에서 어쿠스틱 기반의 작업을 하는 뮤지션이었다. 그런데 죽기 얼마 전, 막 컴퓨터 음악 작업을 깨우쳐가기 시작했다. 김도마가 고집이 있고, 거누(‘도마’ 멤버이자 기타리스트)와도 부딪히다 보니, 나도 피곤하게 참견하지 말고 지켜만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김도마가 죽고, 그녀의 유작인 도마 2집 앨범을 거누와 함께 공동 프로듀싱하게 되었다. 도마의 음악 파일을 처음으로 제대로 들여다봤는데, 어떤 걸 하고 싶어 했는지 너무 잘 보였다. 살아생전에 내가 '너 이거 진짜 잘했어.'라고 말해주었다면, 그리고 '너 하고 싶었던 거 이거지?'라고 제시해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물론 거누가 그녀와 함께 했지만, 때로는 그녀가 많이 외로웠겠다 싶었다.


Reborn


송: 영화 [Reborn]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그저 대단할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를 높게 평가받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결에서 많이 벗어났지만, 연극을 영화 내에 녹여 기존에 없던 형식을 보여주었고,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감독을 했으며, 시나리도, 연기 또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이끌었다. 심지어 저예산이다. 한편으론 대학교 전공 교과서에서 언급할 만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나 새로운 도전인 만큼, 용기가 많이 필요했을 것 같다.

카: 사실 원래는 이렇게 까지 스케일을 키울 생각이 없었다. 영화 제작을 결심하고 마침 서울문화재단 지원 사업에 통과했다. 간단하게 촬영할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그리고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 '김도이'에게 피드백받을 겸 보여주었는데, 함께 이야기하다 보니 발전된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도이와 함께 공동감독과 연출을 맡게 되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1500만 원을 지원받았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 엄청나게 생겨 개인적으로 돈을 훨씬 많이 썼다. 하지만 퀄리티나 스케일에 비해서는 짧은 제작 기간과 적은 비용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누군가 이걸 찍으려 했다면 훨씬 더 많이 들었을 거다. 하지만 내가 배우를 하고, 감독도 하고, 시나리오도 맡고, 음악 감독, 컷 편집, VFX 보조까지 하니 길이 보였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도 대부분 2인분의 역할을 해줘서 실현 가능했다. 덕분에 저예산으로 퀄리티가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 평생 은혜를 갚을 예정이다.  


송: 이런 대사가 있다. 어떤 의미인지.


“다시 태어나기 위해 달려 나간다. 내가 평생을 지켜온 세계를 버리기 위해 달려 나간다. 저 구멍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세계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또 저기 이 세계를 파괴하러 달려온 자가 보인다. 우리는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아도 서로 느낄 수 있다. 서로 알 수 있다. 서로 사랑할 수 있다.”


카: 나는 나 자신을 깨고 나왔지만, 사실 기존의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이 태어나도 문제다. 사회화를 포기하고 이 사회가 요구하는 그대로 살지 않을 때 얼마나 외롭겠는가. 하지만 실은 그렇게 알을 깨고 밖으로 뛰어나온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껍데기를 뚫고 나오면, 비슷한 선택을 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또한 그 사람들과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자기를 깨는 과정은 힘들다. 나 또한 쉽게 깨지 못했던 이유는 사람들과 멀어지고 외로워질까 봐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막상 깨고 나오니 그 안에 있을 때 더욱 외로웠던 것 같다. 그래서 자기를 깨고 나온 세상에서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송: 공감한다. 카코포니는 엄마와의 이별을 통해 자신을 깨고 나왔다. 한편, 사람은 가장 소중한 걸 잃었을 때 가장 중요한 걸 깨닫는 것 같다. 인생이 참 지독하다고 느껴진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카: 맞는 말이다. 엄마랑 그렇게 친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엄마를 떠나보내니 엄마가 나한테 중요한 존재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엄마와 헤어짐으로써 그토록 원했던 음악을 하고, 음악을 통해서 엄마를 기리고, 카코포니 1집을 내게 된 것이다. 엄마 외에 떠나보냈던 연인들, 사람들, 수많은 이별을 경험해보니 이제는 무언가를 떠나보내지 않고 잃지 않아도 소중하다는 것을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이 소중하고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지금은 남자친구나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송: [Reborn]은 자아를 고민하는 청소년기의 많은 학생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카코포니만의 서사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카: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어린아이들한테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면 너무 좋겠는데, 요즘 10대 문화랑 나의 표현 방식이 맞지 않다. 영화라는 영상매체, 앨범 단위의 음악 등이 요즘의 문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타협을 할 순 없다. 그런 부분이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권위 있는 곳에서 인정을 받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는 작품 자체보다는 타이틀이 있어야 대중에게 전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송: 영화 제작 과정에서 궁금한 점이 있다. 연출이나 스토리보드, 콘티가 완전하게 완성된 상태에서 촬영에 돌입했는지.

카: 보통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는 촘촘히 계획하지 않고 돌입하는 편이다. 스토리보드를 짜고 가긴 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현장에서 느낌 가는 대로 하는 편이고 좋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산이 적다 보니, 3 - 4일 안에 모든 촬영을 마쳐야 했다. 그래서 촬영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고 갔다.


송: 배우는 감정을 소비하는 사람이고 감독은 이성을 소비하는 사람이라면, 이번에 이 두 역할을 한 번에 같이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스스로를 어떻게 컨트롤했는지.

카: 도이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카메라가 돌면 바로 연기를 해야 했기에, 도이가 현장 지휘를 해주지 않았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이번에 ‘나는 감독을 하기 싫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카메라 앞에서의 퍼포밍이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독을 맡았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앞으로는 웬만하면 감독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송: 체력적으로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카: 운동을 한다. 이번에 영화 촬영을 하면서 안무를 처음 배웠는데, 몸을 쓰는 게 좋은 경험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아침, 밤마다 요가를 한다. 폴댄스도 한다.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됐다. 일이 많고 버겁다면 운동 하기를 추천한다.


송: 운동을 하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건 머리로 아는데,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기 까지가 힘든 것 같다.

카: 그래서 자기랑 맞는 운동을 찾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도이 같은 경우는 폴댄스를 시작했다가 자신과 맞지 않다는 걸 깨닫고 주짓수를 시작했다. 도이는 주짓수 할 생각에 날마다 설레어한다. 운동을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재미있는 걸 한다는 느낌이 중요하다. ‘이 운동을 해서 몸이 좋아져야지, 날씬해져야지, 살을 빼야지’가 아니라 ‘폴댄스를 잘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운동을 하게끔 만든다.


나는 순수주의자다. 예뻐지기 위해 폴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면 한 달도 못했을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돈 벌려고 시작했으면 오래 못했을 거다. 그저 재미있어서 하다 보니 주변에서 날씬해지고 예뻐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내 음악 실력이 점점 디테일해지고 늘었다. 물론 [Reborn] 촬영 때문에 살을 많이 빼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외적으로 많이 변화한 한 해였다. 하지만 외적 변화만큼 올해 힘들기도 했다. 인생에 있어서 올해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송: 올해 어떤 부분이 힘들었는지.

카: 지금은 만나지 않는 소꿉친구의 소식을 우연히 들었는데, 좀 버거웠다. 비록 지금은 연락하지 않지만, 오랜 기간 동안 나의 모든 세계를 나눌 만큼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 친구 덕에 음악을 했다고도 할 수 있다. 나와 헤어졌음에도, 속으론 늘 빛나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너무 망가졌더라. 나의 음악까지도 껍데기뿐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걸 보고 많이 속상했다.


그리고 친구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김도마가 돌연 세상을 떠났고 고모도 돌아가셨다. 어떻게 이렇게 힘들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수 있는지 싶었다. 이로 인해 파생한 안 좋은 일들도 너무 많았다.  


또 카코포니 [Reborn]과 도마 2집 프로듀싱을 비롯해 무거운 작업을 많이 한 것 같다. 둘이 작업시기도 겹쳐서 정말 힘들었다. 다 끝내고 대상포진과 난소물혹이 터지는 등 여전히 괴로운 일들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를 잘 지켜냈다고 생각한다. 운동이 큰 영향을 주었다. 아침, 저녁으로 요가를 하면서, 몸도 풀고 생각도 정리하면서, 깨끗한 상태로 언제나 돌아와 잠도 잘 잔다.


예술에 관하여


송: 영상, 음악뿐만 아니라, 지금은 브런치에 작업기까지 연재하고 있다. 영상과 음악, 글쓰기, 모두 예술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이지만, 분명히 결이 다른 작업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각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는지.

카: 솔직히 말하면 타고난 분야는 음악인 것 같다. 음악 할 때 가장 창의적이다. 속에 있는 것들 것 분출하면서 재미있게 한다. 머리를 쓰지 않고 끌어 나오는 대로 하는 편이다. 마지막에 정리할 때는 물론 머리를 쓰기는 하지만.


다른 분야는 논리적으로 행한다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영상을 만들 땐 ‘내가 이런 음악을 만들었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이런 장면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식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영상에 대해선 상상력이 크게 발동하진 않는다. 그래서 도이나 많은 작업자들이 창의적인 부분들을 도와줬고, 나는 그들이 낸 아이디어를 갖고 이성적으로 임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엄청나게 창의적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영상 작업에 있어선 엑셀 파일로 내용을 정리하고 시간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체계적인 작업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글이나 영상은 적당히 하는데, 엄청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송: SNS를 보니 글을 쓸 때 감정소비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카: 힘들다. 끄집어내야 한다. 음악을 할 때에 나의 이야기는 무의식에서 튀어나온다. 의식을 거치지 않는다. 가사도 정말 빨리 쓴다. 글과 가사는 같은 언어인데도, 가사 같은 경우는 모호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내뱉고 토하고 끝, 이런 느낌이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내가 토해낸 표현들에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 평소에도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엔,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생각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청취자는 음악을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서 받아들이곤 한다. 자신의 경험을 상상하면서 '맞아, 이건 내 이야기야.' 하며 울곤 하지 않던가. 그런데 글쓰기라 함은 벌거벗듯이 '이건 제 이야기입니다.' 하고 모든 걸 보여주는 일이라 부끄럽다.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록을 하는 이유는 단지 '기록해야 할 것 같아서.'이다.


사실 나는 음악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이제 나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저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긴 했습니다.' 하고 알려주면 청취자가 재미있어할 것 같아서 작업기를 쓰고 있다. 1집과 2집을 들은 사람이라면 나의 인생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서.


또한 창작자들의 입장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의식적으로 편곡한 부분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글을 쓰다 보면, 사실은 그 안에 나의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이런 과정이 다른 창작자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소재일 수 있겠다 싶어서 기록한다. 힘든 건 사실이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두드러기가 올라올 때도 있다.


  ‘카코포니’ 와 ‘김민경’


송: 카코포니에게는 엄청나게 다양한 모습이 있다. 비단 하는 일뿐만이 아니다. 외적으로도 평소엔 수수한 편이다. 하지만 무대 위에선 의상, 헤어, 무대 연출이 화려하다. [Reborn] EP 2번 트랙인 '에일리언'을 부를 땐 구태여 꺼내고 싶지 않았던 감정을 끄집어내서 울부짖으며 노래를 불러 녹음을 마쳤다고 들었다. 그게 인간 '김민경'과 정확히 일치하진 않을 것 같다.

카: 맞다. ‘카코포니’와 ‘김민경’은 완전히 다르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할 만큼 공부를 잘했지만 별명이 바보였다. 그만큼 귀엽기도 하고 찐따 같기도 한 성격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엄청나게 밝다. 그래서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밝으시냐 물어보곤 한다. 외적으로도 카코포니 이미지와의 괴리감 때문에 나를 못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카코포니’와 ‘김민경’의 자아는 완전히 다르다. 김민경은 겉으로 해피하고 밝지만 무의식엔 카코포니도 있는 것이다. 그간 특별한 나의 자아를 억누르고 사회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다 보니, 사회화가 되어 이런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평소의 모습이 나로서도 자연스럽긴 하다.


나는 김민경도 좋고 카코포니도 좋다. 김민경이 이렇게 밝게 유지될 수 있는 건 카코포니가 무의식의 깊은 감정을 분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하고 나서 밝아졌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그래서 한편으론 이렇게 자아가 분리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하면서 이전보다 더 잘 살게 된 것 같다. 어느 한쪽의 자아가 편한 것도 없이, 평소엔 김민경이 좋고 또 무대 위에선 카코포니로 바뀔 수 있어서 재미있다.


송: 이런 맥락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대사가 떠오른다. 뇌리에 깊이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문득 잘 가꾸어진 이 무대가 끔찍하게 변해버리는 순간, 난 그들의 바램이 저주처럼 느껴진다. 진짜 나를 보여주면 싫어했던 주제에 어딜 감히 나를 좋아한다고. 나를 위한다고 했던 말들, 내 옷차림이, 내 취향이, 내 미래가!"


카: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항상 그래 왔다. 내가 외모나 학벌을 보면 일반적인 여성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가끔 이상한 옷을 입으면 되게 싫어하고 당황스러워하더라. 그리고 당시에 밴드부 보컬을 하기도 했는데, 노래를 좀 다른 방식으로 부르면 안 되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여러 명이 있었다. 내가 일반적으로 입고 행동하면 정말 일반적으로 보인다. 그들은 내가 그러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송: 그런 걸 받아들이는 사람을 만나보았는지.

카: 그런 사람은 또 그런 사람들 나름대로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해서 힘들었다. 결국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에 나를 가두려고 했다. 그들의 이상에 맞춰주지 않으면 우울하다고 했다. 다른 종류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연애를 절대 이런 방식으로 하지 않는다. 나를 전부 다 보여준다. 지금의 애인은 어떤 모습이든 좋아해 줘서 좋다.


송: 카코포니가 타인의 시선에 갇힌 면도 있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바라는 이상에 스스로를 가두어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런 점에서, 카코포니는 1집부터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음을 느낀 적이 있는지.

카: 태도가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진짜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과 더 이상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나를 받아들이는 친구들만 남아있다. 그리고 옛날에는 남의 시선을 엄청나게 신경 쓰는 편이었기 때문에 내가 나를 가둔 것도 분명히 맞다. 그래서 [Reborn]의 대사와 연출에서 '내가 만든 무대'를 표현하고 그 무대를 뚫고 나오는 서사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사실 마음 맞는 사람만 옆에 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텐데, 어린 시절엔 그렇게 생각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멀쩡한 척하고 다녔기 때문에, 주변에서 내가 이런 고민으로 힘들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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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코포니의 인터뷰는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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