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 보자!
에어 비앤비(Airbnb)에서 지내면서 좋은 점은 다른 방에서 머무는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대학생 때 배낭여행 다니면서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만나게 된 친구 중 한 명인 발렌티나(Valentina)는 칠레의 산티아고 출신이다. 칠레의 '파타고니아'라는 지역에서 미국인이 운영하는 작은 리조트에서 근무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손님이 줄면서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다행히 미국인 상사가 멕시코에서 다른 사업을 시작하게돼 함께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파타고니아'는 브랜드명으로 먼저 접하게 되었고 남미 여행에 관심을 가지면서 칠레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이어지는 한 지역임을 알게 되었다. 파타고니아가 어떤 곳인지 물어보니, 본인이 일했던 리조트의 풍경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자연경관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순간 나도 기회가 된다면 이 리조트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자연친화적인 곳이었다. 코로나가 얼른 종식되어 남미 여행을 할 수 있다면 ‘파타고니아를 꼭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발렌티나와는 퇴근 시간이 비슷해 종종 저녁 먹는 시간에 마주치곤 했다. 항상 샐러드와 콩, 치즈류를 먹길래 채식주의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병아리콩과 리코타 치즈, 드레싱은 올리브 오일만 살짝 두른 샐러드를 나에게 권했다. 바깥 음식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맛이 다소 밋밋하긴 했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고, 식사 후에는 속이 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가끔씩 발렌티나의 채식을 맛보았고 자연스럽게 저녁 식사 대화는 채식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Vegan은 고기는 물론이고 우유, 치즈, 달걀, 생선까지 먹지 않는,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채식 주의자들이다. 발렌티나는 고기를 먹지 않을 뿐 자신은 Vegan은 아니라고 했다. 어떤 채식주의자들은 가축을 키울 때 뿜어내는 탄소배출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그리고 좁은 우리에서 식용을 위해 길러진 동물들이 무자비하게 도축되는 행태 때문에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발렌티나에게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은 아니고 "단지 고기 맛이 싫어서"라고 했다.
한 달 정도 휴가를 얻어 칠레로 돌아가는 발렌티나가 떠나기 전에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다. 어느 식당이 좋을까 고민하던 중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외식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발렌티나에게 괜찮은 채식 식당에 가고 싶다고 하니 본인이 가본 곳 중 손에 꼽히는 곳이 있다며 데려가 주었다. 첫 번째로 주문한 메뉴는 직접 만든 옥수수 또르띠야에 양파, 토마토, 고수 그리고 아보카도로 만든 과카몰레를 두껍게 바르고 오븐에 구운 콜리 플라워를 얹은 채식 타코였다. 옥수수의 고소한 맛과 채소들의 신선한 맛이 어우러지면서 연신 맛있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콜리 플라워에 비법 양념이 된 덕분에 밋밋하지 않게 풍미를 더해줬다. 두 번째 메뉴는 버섯으로 만든 타코였다. 원래 버전이라면 케밥처럼 큰 꼬챙이에 익힌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옥수수 또르띠야에 올리고 그 위에 작은 파인애플 조각을 하나 얹은 '타코스 알 파스토르(Tacos al Pastor)'인데 버섯이 고기를 대체했다. 마지막 음식은 네모나게 잘라 볶은 버섯과 과카몰레였다. 오리지널 버전은 버섯 대신에 튀긴 돼지고기인 '치차론(Chicharon)'이라는 음식인데, 그것의 채식 버전인 것이다. 세 가지 메뉴가 모두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호기심이었고 채식이 얼마나 맛있겠냐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맛은 물론이고 많은 양의 식사였지만 처음 느꼈던 것처럼 소화가 잘 돼서 속이 거북하지 않았다. 이때껏 채식은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채소 위주의 식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채식을 하나의 요리 장르로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요리 세계를 소개해준 발렌티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까지 몰랐던 세계를 경험할수록 주변에 다양한 친구들을 두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다. 내가 못해본 경험을 먼저 시도해 본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루틴이 되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는 것들이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이 못해본 경험을 혹은 전혀 몰랐던 이야기를 내가 주체가 되어 공유한다면 주변 사람들도 익숙한 일상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그렇게 서로에게 영감이 되는 사이를 통해 건강하게 발전하고 싶다.
이 글을 쓰면서 깨달은 점은 자발적 채식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캐나다 여행에서 수녀원을 개조한 숙소에서도 머무는 동안 채식을 했고, 에어비앤비(Airbnb) 체험을 통해 ‘인도 채식 쿠킹 클래스(Indian Vegeterian Cooking Class)’ 수강도 했다. 멕시코 산 미겔 여행에서 구운 채소 샌드위치를 먹고 진심으로 감명받아 기록을 해둔 기억도 있다. 앞으로도 종종 채식을 즐기고 싶다. 채식 관련 레시피북도 한 권 사서 직접 요리를 해볼 계획이다. 내가 채식을 원하는 이유는 식사 후 느껴지는 가벼움 때문이다. 멕시코는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고기 가격이 저렴하다. 식당에서 먹는 스테이크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이라 평생 먹을 소고기를 몇 년 동안 다 먹은 것 같다. 사실 모든 종류의 고기를 좋아해서 100%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무리일 테지만, 간헐적 단식이 있듯이 의식적으로 간헐적 채식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