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디와 소울메이트
*스포 주의(결말 포함)*
내 인생 가장 완벽한 드라마 굿플레이스를 소개해드립니다
드라마 '굿플레이스'의 이야기는 엘레나가 죽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현생에서 꽤나 말썽쟁이로 살았던 엘레나는 베드 플레이스가 아닌 굿 플레이스(천국)로 잘 못 오게 되는데, 그녀가 오고부터 굿플레이스에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자신때문에 굿플레이스가 망가지느 걸 보며 그녀는 자신이 진짜 굿플레이스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과연 그녀는 지옥으로 쫓겨나지 않고 무사히 버틸 수 있을 것인가하는 소재가 이 드라마의 시작이다. 그러나 '굿 플레이스' 전체 에피소드 중 이 줄거리는 10%도 안 되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사실 ‘배드 플레이스’ Bad Placce. 즉 지옥이었기 때문이다.
이 반전을 시작으로 굿플레이스는 빠른 속도로 전개되며 내가 본 드라마 중 가장 복잡한 서사를 지녔다.
극 중 엘레너는 죽어 (굿플레이스 인척 하는) 배드 플레이스에 가게 되고, 미드 플레이스에 갔다가 수백 번의 리부팅 끝에 다시 인간 세계로 부활하고, 다시 죽고, 무한의 공간에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와 굿플레이스에 갔다가, 시험을 치렀다가 다시 굿 플레이스를 가는 등 블록버스터 저리 가라 할 만큼의 대서사시가 펼쳐진다. 그 어떤 모험 어드벤처보다 강도 높은 시험과 선택의 순간들을 넘어, 드디어 엘레나와 그녀의 동료들은 진정한 마지막을 맞이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측할 수 없었던 ‘굿 플레이스’의 시즌4 마지막화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단순히 '배드 플레이스에 있던 4인방이 굿플레이스로 가게 되었다'가 아닌 우리 4명의 친구들이 용서와 화해 자기 혐오 등을 버리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마주하여 편안한 안식을 맞이하게 되는 결말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베드 플레이스의 악마인 마이클이, 어떻게 하면 인간들을 더 효과적이게 괴롭힐 수 있을까 고민하던 바로 그 마이클이 인간이 되어 늙어가는 길을 기꺼이 택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저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엘레너, 치디, 타하니, 제이슨]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을 꼽자면 상극의 조화이다. 극과 극이 만나 그야말로 골 때리는 시너지를 낸다. 마이클이 일부러 붙여놓은 가장 안 맞는 4인이었는데, 이들은 제러미 베러미(억겁의 시간) 동안 환상의 팀워크를 발휘하며 온 우주를 휘집어 놓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엘레너와 치디가 있었다.
엘레너는 매사 즉흥적인 행동파이고, 치디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결국 생각만 하고 마는 신중파이다. 치디는 한마디로 블루베리 컵케이크 하나 고르는데도 30분을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 치디에게 지구 상 가장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엘레너가 등장했다. 그녀는 노인들에게 효과도 없는 약을 파는 영업사원(거의 사기꾼)이었으며 끈기라고는 없고, 도덕적인 결함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엘레너와 윤리학 교수 치디의 만남은 서로 지옥을 경험하라는 마이클의 속셈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답답해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싸우고 갈라서는 그림을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엘레나와 치디는 깊은 우정과 신뢰를 쌓아가며 진정한 소울메이트가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상극인 것 같은 둘이지만 둘은 만나기만 하면 언제나 긍정적인 시너지를 냈고 강하게 이끌렸다. 치디는 매번 확신에 차 있고, 인생에 망설임이라곤 없어보이는 엘레너에게 끌렸고, 반대로 엘레너는 신중하고 성실하고 자신이 굿플레이스 사람임 아님을 알아도 도와주는 따뜻한 치디에게 끌렸다.
수 백번 리부팅이 되어도 둘은 서로를 사랑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바로 그 해답은 치디가 알려준다.
굿플레이스 중 가장 뭉클했던 순간.
"There is no answer. But Eleanor is the answer."
정답이란 건 없다. 그러나 답은 엘레너다.
치디는 평생을 '정답'을 찾기 위해 살았다. 매 순간,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치디는 '완벽한 이상적인 답'을 찾기 위해 애썼다. 심지어 사랑도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모든 질문엔 모든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옳다고 확신하기 전까진, 정답이라고 확신하기 전까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일종의 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2번을 죽고 3번의 새로운 삶을 살게된 치디는 마침내 진리 하나를 깨닫게 된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는 것.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골라 행동하는 것이 아닌 생각하기도 전에 저절로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혹시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하면 된다는 것을. 남을 위한 선택이 아닌 나를 위한 선택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겁 많고 자신감 없는 치디에게 그의 친구들이 알려준 인생의 진리이다.
치디는 매번 선택을 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심해 복통을 앓을 정도였다. 정말 병적으로 선택을 못하던 치디는 (심지어 길거리에서 빨리 선택 안 하고 고민하다가 죽었다) "Eleanor is the answer"이라는 정답을 찾았다.
그는 세상에서 본인이 제일 잘한 일은 엘러너를 만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한 번도 이렇게 자신만만한 대답이 없었다. 치디는 마침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니라 엘레나와 사랑에 빠진 후, 그녀가 정답임을 깨달았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지만 엘레나는 정답이다라는 로맨틱한 말을 남기면서.
이 세상엔 정답이란 건 없으니 어쩌면 소울메이트란 것도 없다. 누군가 자신에게 꼭 맞는 '소울메이트'를 정해 주지 않는다. 그저 서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깨달을 뿐인다. 수백 번의 인생에서 치디와 엘레너는 누구보다 서로를 도와주는 관계가 되었고, 마이클의 훼방 속에서도 둘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사랑에 빠졌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싶다. 세상이 점지해 준 나의 운명의 상대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없다.
크고 작은 우리 인생을 살면서 우리 인생에 정해진 '정답'을 마주한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지 않은가. 항상 예상치 못하고 실패하고 부딪힌다. 그러니 우리도 누군가를 만날 때에는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소울메이트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