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내 손을 놓았을 때.

“아들이 두 발 자전거에 도전한 날, 나는 오래된 기억을 하나 꺼냈다."

by 르네

아이가 여덟 살이 되던 해,

두 발 자전거에 도전할 시간이 찾아왔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마주하는 그 순간,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슬슬 두 발 자전거 타보는 건 어때?”

겁이 많은 아이에게 슬쩍 물었다.

아이의 대답은 의외로 단호했다.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자신 있어!”

마치 동네 형처럼 멋지게 달리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 자신감에 기대며 우리는 아파트 단지 테니스장으로 향했다.

남편은 펜치를 들고, 보조 바퀴를 떼었고, 나는 어린 시절 아빠처럼 자전거 뒤를 잡아주며 말했다.

“엄마가 잡아줄게. 걱정 말고 페달 밟아봐~”

“엄마, 손… 놓지 마! 진짜 놓지 말라고!”

아이의 목소리에 묻은 불안. 나는 조심스레 손을 놓았다.

곧이어 아이는 옆으로 쓰러졌다.

몇 번의 넘어짐 끝에 결국 자전거를 바닥에 던지며 울먹였다.

“나 안 해! 다시는 안 탈 거야!”

처음의 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금세 풀이 죽은 아이를 보며 답답함이 밀려왔다.

실패 앞에서 쉽게 주저앉는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자전거는 넘어지며 배우는 것처럼, 삶도 마찬가지라는 걸. 하지만 그걸 아이는 아직 모른다.

다정하게 다독일 수도 있었지만, 결국 나는 큰소리를 냈다.

“100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야 자전거 탈 수 있어. 앞으로도 넘어질 일 많아. 그때마다 포기할 거야? 다시 일어나!”

울먹이던 아이는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보며,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아빠가 사준 네 발 자전거가 있었다. 색깔이나 디자인은 가물가물하지만, 남동생을 태울 수 있는 뒷좌석이 달려 있었고, 보조 바퀴는 자주 균형을 잃곤 했다. 나는 그 자전거를 타고, 엄마 아빠가 운영하던 금은방 안을 뱅글뱅글 돌았다. 그 장면은 바닷속 오래된 조각처럼,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다.

어느 날,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보조 바퀴를 떼었다. 그리고 자전거 뒤를 잡아주며 말했다.

“이제 두 발로 타야지.”

그날 나는 수없이 넘어졌다. (아니, 넘어졌을 것이다.)

나는 몰랐다. 아빠의 손이 놓였던 그 짧은 시간 안에, 스스로 균형을 찾고 있었다는 걸.

그건 내 삶의 작은 전환점이었다.

포기하려는 아이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그 시절,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빠도 나처럼 답답했을까? 조급했을까?

이제는 희미한 기억 속에서만 떠오를 뿐이지만, 그때의 아빠는 묵묵하고 인내심이 깊었다.

나처럼 소리치고 다그치던 모습은 기억에 없다. 어쩌면 아빠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막내딸에게 소리치고 다그치기에는 주어진 삶이 너무 짧다는 걸...

그래서일까? 더 다정하게, 나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겼던 것 같다.

내가 두 발 자전거를 자유롭게 타게 되었을 무렵, 아빠는 이미 내 곁을 떠나 있었다.


이제 나는 자전거를 잘 탄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완주하는 꿈을 꾼다.

아빠와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아이와 함께 나누고 싶다. 아빠처럼, 다정하게.

실패도 추억이 되도록.

오늘의 이 기억도 언젠가 아이의 마음 속에서 따뜻한 한 조각이 되길 바란다.

눈물을 머금고 자전거 위에 앉은 아이의 어깨를 살며시 토닥인다.


“다시 해보자. 괜찮아. 안 되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다시 하면 돼.

자전거 타고, 우리 세상 밖으로 나가보자.”


나는 다시 아이의 자전거 뒤를 잡는다.

이번엔, 조금 더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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