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률과 스트레스의 관계
준비 과정조차
국제무역사 자격증 취득에 이은 무역영어 1급은 보기 좋게 탈락했다.
왜 불합격했는가?
무역영어 1급에 대한 자격증 공부는 스트레스가 덜했다.
스트레스가 없다고 한들, 공부는 설렁설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가 불합격.
뭐가 문제였을까?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공부하는 게 체질인 건가, 생각했다.
긴장하고 조급함이 있어야 올바른 공부인가, 생각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나로서는
스트레스 관리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안 받아가며 시험 공부를 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남는다.
약간의 스트레스는 공부에 있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으면서도
스트레스 없이 공부해본 기억은 꽤 소중하다.
이번 글에서는 무역영어 1급 자격증 취득에 실패했을 때 작성했던 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무역영어 실패 이야기]
무역영어 자격증에 실패한 이야기를 꼭 써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쓰기 싫어서 계속 미뤘습니다. 글을 쓴다면 어떻게 써야할지도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누구처럼 재치있게 써볼까, 했습니다. 중점은 내가 왜 이 글을 꼭 남기고 싶을까입니다.
훕스라이프아카데미에서 라이포그래피를 하며 좋았던 것은, 제 진로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공식적으로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보면, 결국 결론은 '나'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고민해야합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냐면, 멘탈이 아주 약한 사람입니다. 멘탈이 약하기 때문에 멘탈이 강한 척합니다. 알멩이가 되게 약하기에, 알멩이 주위로 두꺼운 벽을 쌓아놓은 모습입니다. 문제는, 이 두꺼운 벽이 종종 뚫립니다. 특히 시험 때 그렇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시험기간 전후로 가끔 아팠습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옵니다. 먹은 것도 다 토합니다. 이 때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아스피린 한 알 먹고 푹 자는 수밖에 없습니다. 잘 쉬고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완쾌합니다. 하루 정도는 몸한테 하고싶은대로 놔두어야합니다. 이 증상이 처음 보인 것은 중학교 2-3학년 쯤입니다. 학창시절에는 학교 가기 전에 매일 성경 몇 장을 읽고 나가곤 했습니다. 하루는 글을 읽는데, 갑자기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한국어인데 해석을 해야만 읽힙니다. 활자가 직관적으로 머릿속에 안 들어오고 한 글자 한 글자 뜯어서 이해해야했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아파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인상 깊었던 기억은, 중학교 3학년때입니다. 허창현 선생님의 역사 수업을 듣던 중이었습니다. 듣던 중이라기보다, 엎어져 자다가 눈을 뜬 후의 상황입니다. 칠판을 쳐다보는데 빛번짐이 무지 심했습니다. 그래서 글씨가 잘 안 보이고 무언가를 보려면 엄청 집중해야했습니다. 큰 일이구나 싶어, 그날 어머니와 병원엘 다녀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편안한 목소리로 시험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했습니다. 나는 극구 부인했습니다. 아닌데, 나 별로 스트레스 안 받는데. 의사선생님은 진정제 몇 알 처방해주셨고, 난 이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그후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둥이를 데려오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멘탈이 쉽게 약해지기에 뇌가 의도적으로 스트레스 안 받는 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참다참다 못 참을 때 뻥 터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녹초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멘탈이 약한 사람임을 정말 최근 들어 알았습니다. 하지만 알고 나서도 스트레스 관리법은 쉽지 않았습니다. 저번에 국제무역사 준비했을 때를 돌이켜봅니다. 부담이 컸습니다. 1년에 2번밖에 시험이 없기에 부담이 컸습니다. 여러가지 것들을 포기해가면서 매일 독서실을 다녔는데 떨어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부담이 컸습니다. 합격장학금반이어서 붙으면 인강 수업료를 환급해주기에 부담이 컸습니다. 사귀던 여자친구와 같이 준비했었는데 나만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고 부담이 컸습니다. 최근 들어 머리 아프고 토한 적은 없습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긴장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이젠 배가 아파옵니다. 건강한 습관 들이는 이유도 과민성대장증후군 때문입니다. 국제무역사 때 어김없이 배가 아파왔습니다. 올 게 왔구나 싶어 편안하게 약을 처방받고 약 먹어가며 시험에 응했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시험엔 붙었지만 언제까지 이래야하나 싶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걱정하셨습니다. 나중엔 더 큰 일을 하게 될 때가 많을텐데.
무역영어는 떨어졌습니다. 물론 붙었으면 좋았겠습니다만, 저에겐 값진 실패입니다. 1년에 3번밖에 없긴 합니다. 책 읽는 시간 줄여가며 공부했긴 했습니다. 이번에도 합격장학금반으로 인강을 수강했습니다. 저번이랑 다른 점은 마음가짐입니다. 공부할 때 참 여유로웠습니다. 이때 불교철학의 무위무불위를 마음속에 새겼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글귀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하지 않은 게 없다. 무언갈 하게 되면 기필코 잘해내리라 말 것이다, 하는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구절입니다.
일부러 기간도 길게 잡고 천천히, 스트레스 안 받아가며 공부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니 자격증 준비도 참 재밌었습니다. 문제 푸는 맛도 있었고 인강 듣는 맛도 있었습니다. 즐겁게 시험 준비하고 즐겁게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시험지를 딱 보니 문제가 어렵기도 했지만, 평소 기출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집중해야 간당간당하게 붙겠다, 하며 풀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가채점해보니 합격하려면 3문제를 더 맞혀야했습니다. 3문제면 크지, 하며 아쉬운 마음도 안 들었습니다. 뭔가 담담했습니다. 사실 많이 아쉽고 슬프지만 담담한 척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괜찮은 '척' 하는 것을 잘하니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꽤 잘 넘긴 것 같습니다. 준비하면서 아프지도 않았고, 결과에 담담히 승복했습니다. 감정이 정리가 되니 되돌아보게 됩니다. 스트레스 안 받아가며 준비해서 떨어졌나? 이 질문 하나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나는 천성상, 힘들게 준비하지 않으면 마음가짐이 해이해져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걸까? 어려운 문제입니다.
시험 보러 갈 때 아버지가 시험장까지 데려다주셨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잘 시간 줄여야한다고 어딜 가나 데려다주고 데릴러오던 부모님이셨습니다. 대학생이 되니 아버지 어머니 차를 타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 정도로 픽업 픽드랍을 안 해주시는 분인데 정말 오랜만에 데려다주셨습니다. 마음가짐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아빠 차 안에서도 제가 틀린 기출 문제를 보았습니다. 틀린 기출 문제의 보기 하나를 공부하다가 너무 안정적으로 준비하나? 싶었습니다. 정말 사소한 것들조차 넘어가려하지 않았습니다. 시험 준비가 꽤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시험문제는 평소 기출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 멘붕에 빠져서 무역 커뮤니티를 살펴보았습니다. 무역영어가 내년부터는 상시 시험으로 바뀐다는 찌라시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응시료를 더 따내기위해 일부러 2020 3회차를 어렵게 내었다는 주장입니다. 참 말도 안 된다 싶었지만, 그 찌라시가 합리적으로 들릴 정도로 시험은 어려웠습니다. 결론적으로 상시 접수로 바뀌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싫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스트레스 안 받아가며 준비해서 떨어졌나?에 대한 질문의 답은 결국 변명을 동반합니다. 스트레스를 안 받아가며 준비한 것 - 자격증 떨어진 것, 이 둘이 직접적으로 인과관계가 있는지 결론 내기 어렵습니다. 자격증에 떨어진 이유는, 준비를 덜 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곤란해집니다. 준비를 덜 하게 된 계기는 스트레스를 안 받아가며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자연스레 도출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결과에 하나의 이유만 있겠냐만은요. 어쨌든 둘을 인과관계로 잡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격증에 떨어지게 된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다보면 한 두개의 변명들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과도기일지 모릅니다. 너무 스트레스 받아가며 준비해왔기에 이제는 너무 극으로 여유롭게 준비했을지도 모릅니다. 시험이 어렵게 나왔어도 더 열심히 준비했다면 붙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값진 실패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한번 스트레스 안 받아가며 공부해보았기 때문입니다.
무역영어 실패 이야기는 제게 귀합니다. 제 내면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써보고 싶었고, 그렇기에 더욱 쓰기 싫었습니다. 시험은 11월달에 치뤘고 결과는 12월달에 나왔습니다. 글 작성을 하염없이 미루고 미루다 마음속에 탁 걸린 느낌이 들어, 용기를 냅니다.
by J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