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늙어갈까
1학년인 우리 반에 여자아이 두 명이 있다.
글씨를 어느 정도 뗀 요즘, 읽을거리만 있으면 읽으려고 덤비는 두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 주고 나서 물었다.
"이 책을 쓴 아줌마는 아버지가 구십 살 이래.
아버지가 심심하실까 봐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대. 아버지 기분이 어땠을까?"
"좋았겠다요."
"왜?"
"90살이면 쫌 있다 죽잖아요. 그런데 그림을 그려도 된다 그러니깐 안 죽고 싶잖아요. 그러니 좋죠."
내친김에 너희들은 어떤 딸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니
한 아이는 건축가가 되어 아빠에게 성을 지어 주겠다 하고, 한 아이는 아끼는 햄스터를 주겠다고 했다.
뭔가 삐딱하면서도 반항기가 있는 남자아이들과 달리 여자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생각이 각별하다.
책 읽어라, 씻어라, 정리해라,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 들으면서도 말끝마다 부모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저 애들 부모, 아이 잘 키우고 있네.
이 책의 작가(유현미, 유춘하의 딸)는 그림 그리는 사람인가 본데
아버지가 구십이 되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한다. 그렇게 노년의 아버지에게 말을 건다.
아버지는 자기 나이가 구십이라니, 어마어마하다고 한탄하면서도 딸이 시키는 말을 또 순순히 듣는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그린 그림. 1학년인 우리 반 아이들의 그림과 닮았다.
짐작건대, 아버지는 처음에 토끼와 새만 달랑 그리고는 크레용을 집어 내던졌을 것 같다.
하기 싫어, 힘들어.. 내 나이 구십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딴 걸 그리겠냐.. 투정했을 것 같다.
그림 그릴 때마다 이렇게 칠 해봐라, 저렇게 채워봐라, 내 잔소리를 짜증스러워하면서도 못 이기는 척 들어주는 우리 반 아이 같았겠다.
딸은 그런 아버지를 이리 칭찬하고 저리 달래서 기어이 저런 작품을 완성시켰을 것이다.
그러고는 아버지 생애 첫 작품에 '엄마 마음'이라는 멋진 제목을 붙여 주었겠지.
아버지는 그런 딸이 성가시다면서도 막상 해 보니 재미있네, 하며 계속 그려나갔을 것이다.
그러면서 딸과의 시간을 채워왔을 것이다. 저런 딸을 가진 아버지는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가.
걷기도 힘든 노구의 몸으로 그림을 그려낸 아버지보다 제목을 붙여주며 추켜올려주는 딸이 대견해 보이는 건 나도 늙어서일 거야.
저런 호사를 하려고 저 양반은 90살까지 거뜬히 살아냈을 거야. 뒷방 늙은이 대접이 아니라 저런 호강을 받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