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집 아이는 여섯 살이 되기도 전에 한글은 물론, 어지간한 한자와 영어를 읽고 썼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공부가 너무 쉬워 배울 것이 없었다.
아이가 영재임을 직감한 그와 아내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도미(渡美)를 결정한다.
하지만 미국 생활 두 해 만에 혼자 귀국을 한다. 돈벌이 때문이었다.
미국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를 위해 그는 열심히 일했다.
애초 계획은 몇 년 만 미국 생활을 시킬 예정이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 한국으로 데려와야 할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 사이 아이는 사춘기를 맞았고 미국 아이들을 닮아가나 싶더니
공부만 하라고 하는 엄마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급기야 자기는 아빠 없이는 살아도 앞으로 한국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그러다 마누라 자식 다 잃어먹어뿔고 니만 빙신 된다고, 후딱 건너가 마누래고 애들이고 끌고 와뿌라고 난리였다.
큰 맘먹고 미국을 갔지만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아이도 자기는 곧 독립할 거니까 그때 엄마 아빠만 가라는 말에 차마 같이 가자 못하고 혼자 돌아왔다.
시간이 흘러 아이 독립을 시키고 그때 다시 의논하기로 했지만
이번에는 대학 마칠 때까지 아이를 돌봐주고 싶어 하는 아내를 설득하지 못했다.
막상 미국에 가서 아내를 만난다고 해도 그동안 떨어져 산 아내와의 어색함을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망설이기를 여러 번,
그래도 더 서먹해지기 전에 그가 미국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고 작년 가을, 단풍이 채 지기 전에 미국으로 떠났다.
낳아 놓았기는 했지만 미국식으로 자란 아이를 막상 마주 대하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떨어져 사는 동안 아내는 젊어진 것 같은데 자기만 늙어보이는 것도 속상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 보자 마음 먹고 평소 한국에서는 꿈도 안 꾸던 머리 염색도 하고 출발하기 며칠 전,
난 그의 낡은 오피스텔에서 마일즈 데이비스 Miles Davis를 틀어놓고 소주에 산낙지를 먹었다.
"동상, 문어 한 마리 낚았는디 먹으러 올쳐?"
"머리 나쁜 문어구먼. 어쩌다 행님한테 잡혔대? 난 미제 문어 안 먹어유. 산낙지라문 몰라두."
"마일즈 데이비쓰가 워낙에 흐느적거리잖여. 그거 틀어주문 문어가 낙지 돼야."
여전히 그는 미국에서 낙지 먹으러 오라고 농담을 보내고 난 까칠하게 파토를 낸다.
그는 요즘 한국에서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다.
노구의 노동이 힘겨울 텐데도 자식 생각을 하면 힘이 펄펄 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 있을 때보다 혼자 있는 시간도 늘었다고 한다.
덕분에 좋아하는 음악은 실컷 듣고 있지만, 예전만큼 흥이 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자기가 고생했다는 걸 언젠가 자식이 알아줄 날이 올 거라고 말할 때 그의 목소리는 달관한 것도 같고 쓸쓸한 것도 같다.
싼타모니카의 젠틀맨 M형님, 부디 건승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