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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an 05. 2018

우리동네 오씨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는 해방될 무렵에 충청도 어느 산골에서 다섯 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고 한다.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그의 아버지는 그를 부산의 구두공장에 보낸다.

그곳에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구두공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을 따라 그도 낮에는 구두 밑창을 붙이고 밤엔 술을 마신다.


어느 날, 그 공장 사장이 직원들 몰래 공장을 팔아먹고 도망을 간다.

그와 몇몇 동료들이 밀린 월급이라도 받아 보려고 남은 구두를 시장에 내다 팔려다 횡령죄로 잡힌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구하려고 땅을 판다.

그가 아버지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돕는데 사사건건 아버지와 부딪힌다.

친구도 만나고 연애하도 하고 싶어하는 그와 달리 매사 급하고 몰아치는 아버지에게 지칠 무렵 군대 영장이 나온다.

이왕 군대에 간 감에 베트남전쟁에 자원한다.

동생들을 가르칠 돈을 벌 생각이었다.
 
월남에서 돌아올 때 일제 카세트라디오를 사온다. 
그의 재산 목록 1호였다.

농사 일 틈틈이 아버지 눈 피해 고무줄에 건전지 묶은 라디오를 들으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 뒤 아버지가 시켜 이웃마을 처녀와 결혼을 한다.
 
시간이 흘러 아이 셋 낳고 채 이십년을 못 살았는데 아내가 세상을 먼저 떠난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을 한 뼘도 안 놀리고 뼈가 닳도록 일을 해서 자식들을 테 안나게 키운다.
자식들이 모두 출가 했을 때, 그는 이제 더 이상 힘든 농사는 안 해도 되길 바랐는데 생각보다 일찍 이루어진다. 

직장에서 조기 퇴직한 아들에게 땅을 잡혀 빚을 내준게 사단이 난 것이다.

자기 손으로 평생 일궈 온 땅이 서류 몇 장에 의해 남의 손으로 넘어가던 날, 혼자 꺽꺽 울었다.
  
오막살이 같던 집도, 키우던 소도 땅도 모두 남에게 넘기고도 갈 곳 없어진 그는
아들 내외 사는 서울의 작은 집 방 한 칸으로 이사를 한다.
하지만 평생 농사짓고 살 던 그에게 서울의 아파트 살이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몇 년 만에 딸아이에게 옮겨 갔지만 사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마침 나라에서는 월남 참전 군인에게 고엽제 피해 관련 보상금을 준다고 했다.
두말 않고 그 돈을 들고 죽을 때까지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곳으로 들어간다.
 
 
그는 지금 사는 곳을 양로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곳의 다른 사람들은 실버타운이라고 부른다.
그곳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던 모임에 나도 속해있었다.

그는 나를 볼 때마다 늙어도 자식에게 의지하지 말고 속편히 양로원으로 가라고,
이왕이면 돈 많이 벌어서 여기보다 좋은 양로원으로 가라고 한다.
자식들도 먹고 사느라 다 힘든데 노인네까지 얹히면 어쩌겠냐고, 내가 묻지도 않는 말을 매번 반복한다.

사람이 죽는 게 뭐 별 거 아니라고, 

그냥 자다가 못 깨어나면 죽는 건데 양로원에서 죽으면 어떻고 부잣집 안방에서 죽으면 어떠냐고, 

나이가 들수록 그의 말에는 기대와 희망대신 체념과 우울이 짙어져 간다.


 
그가 양로원이라 부르는 그곳에, 난 가끔 CD몇 장과 조그만 앰프, 스피커를 싣고 찾아 간다.
내가 양로원 식당에 스피커를 내려놓고 연결하는 사이, 그는 그곳 노인들을 데려다 의자에 앉힌다.
그가 노인들에게 나를 소개할 땐 항상 대학교수라고 소개한다.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갖다 붙이는 그의 허풍에 민망해하면 나를 향해 눈을 찡긋한다.
두어 시간 정도 음악감상시간이 지나면 그가 역시 대학교수님이라 다르지유?하고 부추긴다.

그들에게 배호나 김정구같은 예전 가수들의 노래를 들려주면 가수들 보다 더한 표정으로 따라 부른다.
요즘 내가 그분들에게 자주 소개하게 되는 음악가는 슈베르트다.
키 작고 못 생기고 붙임성까지 없는데다 빽도 없고 가난했던, 그래서 제대로 연애도 못 해보고
어쩌다 뒷골목 여자들과 사귀었는데 거기서 매독이 옮아 요ㅇ절한 슈베르트.
외로움과 자괴감을 고스란히 담긴 슈베르트 음악을 역시 험난한 인생을 살다 간 휘자 오토 클렘퍼러와 묶으면 저절로 인간 드라마 분위기가 된다.

내가 슈씨 총각(슈베르트) 이야기를 하면 노인들은 혀를 쯧쯧 차며 장단을 맞춰주신다.
인생의 굽이굽이 많은 곡절을 지나 온 그들이어서일까, 슈베르트나 클렘퍼러 이야기가 쉽게 이해되는지 모른다.
음악을 듣는 내내 그들은 슈베르트의 삶만큼이나 신산했단 자신들의 삶을 옆에 앉은 노인들과 나눈다.

그러면서 훈장같은 눈물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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