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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an 08. 2018

우리동네 임씨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초등학교 때, 그의 아이는 해마다 우등상을 받았다.

수영 대회에 출전해 트로피도 받았다.

점심시간마다 축구를 해서 늘 땀에 젖었다.

피아노를 잘 쳐 음악시간에 반주를 도맡았다.

허여멀건 얼굴에 훤칠한 키로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전교회장이 되었을 때, 그는 동네잔치를잔치를 열었다.


아이가 중학교에 갔을 때, 한 여자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여자 아이를 쫓아다니느라 부모 몰래 학원을 빠지는 일이 잦았다.

아이를 불러 앉혀 놓고 좋은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연애를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참으라고 했다.

아이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아이돌 브로마이드를 훔치다 파출소에 잡혀갔을 때만 해도,

동네 뒷골목에서 아이들 용돈을 빼앗아 부모가 집에 찾아오게 만들 때만 해도 그저 그러다 말겠거니했는데

몇 년 못 가 학교에서 담배 피워 정학 당하고 친구를 때려 징계를 받고, 그것도 모자라 학교까지 그만 둘 줄은 몰랐다.

그는 엄하게 야단을 쳤고 화가 난 아이는 여자 친구를 데리고 가출했다.

가출한 아이를 찾아와 집에 감금하기도 하고 여자 친구의 부모도 만나 읍소도 했지만 아이의 가출과 귀가는 반복되었다.


아이가 갓 스물이 되었을 때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

그뒤 몇 달 지나지 않아 아이의 여자 친구가 갓난 아이를 데려왔다.

그와 아내는 갑작스레 얻은 손자를 지극 정성으로 길렀다.

죽은 아들을 빼닮은 손주 녀석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날마다 기쁨을 주었다.

지금 아이는 맑고 바르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얼마 전, 그 부부가 포구에 식당을 열었다.

난 가끔 그 집에 가서 전어 구이에 막걸리를 마시며 죽은 아이를 담임하던 얘기를 한다.

내가, 그 녀석이 오래 살아 지가 낳아 놓은 애가 저렇게 잘 크는 걸 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면,

그는, 그래도 그놈이 죽기 전에 저런 복댕이를 낳아 줬으니 고맙쥬, 한다.

요즘은 전어 철, 단골인 나는 몇 마리 더 얻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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