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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an 08. 2018

우리동네 양씨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는 돈자랑 좀 하는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친구들이 초등학교만 거의 나와 손톱 자랄 틈도 없이 농사일을 하는 동안

그는 시내에서 하숙을 하며 편하게 중고등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고등학교 다니던 어느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담배를 피다가 걸린다.

그 일로 선생에게 빠따 맞은게 분해 학교를 안 나간다.

부모에게 돌아가지 않고 몇 달을 놀러다니던 중 만난 여자애를 임신시킨다.

부모가 급히 불러들여 소문날 새도 없이 그녀와 혼례를 올려버린다.


열아홉에 애 아빠가 된다.

도시에서 학교다니던 기억 때문일까, 시골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자연히 농사일 보다 술타령에 더 관심을 많이 둔다.

부모의 만류에도 이 사람 저 사람 주막으로 데려가 술을 사 준다.

그의 철없는 행동을 걱정하던 부모가 홧병으로 돌아가신다.

부모에게 죄지은 걸 후회하며 농사일에 전념하려 애써보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그가 바깥으로 돌자 아내의 잔소리가 늘어간다.

그게 싫어 집을 나가 딴살림을 차린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야금야금 땅을 팔아 치운다.

그가 없는 집에서 혼자 애들 키우며 농사 짓던 아내가 김을 매던 중 뱀에 물려 죽는다.

그제야 정신차리고 가정으로 돌아오지만 자식들이 반기지 않는다.

자기를 홀대하는 자식들이 괘씸해서 자주 야단을 친다.

아비로 한 일도 없는 주제에 훈계질이냐 대드는 아들을 지게작대기로 두드려 팬다.

아들이 집을 나간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 낳고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온다.

아들이 돌아오자 그의 표정이 살아난다.

그런데 이번엔 며느리가 시골 생활을 어려워한다.

며느리와 아들의 불화가 심해지는 걸 걱정하던 그가 결단을 내린다.

며느리를 위해 땅을 팔아 도시의 아파트를 사서 이사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시내로 나간 지 몇 년쯤 지나 그가 칠십 되던 해 가을이었다.

버스를 타고 딸네 집에 가다 길을 잃었다.

곡절 끝에 겨우 파출소를 찾아 집에 오기는 했는데 다음날 며느리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가 보니 치매 진단이 나왔다.

사지 멀쩡한데 치매라는 말을 들으니 믿어지지 않는다.

자기를 쫓아내려고 며느리가 의사와 짜고 일을 꾸민 것 같아 화가 나서 며느리에게 욕을 한다.

그 일로 아들에게 옛날 버릇 아직 못 고치느냐는 지청구를 듣는다.

그게 분해 홧김에 다시 아파트를 나와 딸네 집에 가다가 또 길을 잃는다.

더 큰 병원에 가보니 역시 치매였다.


일 년 뒤, 그와 며느리의 불화에 지친 아들이 고향마을로 아버지를 모셔 올거라는 소문이 돈다.

사람은 자기 살던 마을에 살아야 하는데 보란듯이 떠나더니 고작 치매에 걸려 기어들오나보네,

부모한테 받은 재산 덕분에 떵떵거리며 없이 사는 사람 아래로 보더니 꼴좋네, 비아냥도 돈다.

그가 살던 고향집을 새로 수리해 데려오던 날, 아들과 며느리는 동네 사람들에게 막국수를 낸다.

매일 아침, 아들 며느리가 출근을 하면 그는 슬슬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알아보았지만, 그는 동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얼마 뒤, 동네에는 또다른 소문이 돈다.

집안에 있던 삽이며 괭이며 쇠스랑이 하나둘 사라진다는데

그의 집에 가 보니 창고 가득 사라진 농기구들이 쟁여 있다는 것이다.

치매 걸린 그에게 따져봐야 돌아오는 건 욕지거리뿐이다.

간병인도 며칠 못 견디고 도망간다.

동네 사람들이 아들을 불러 따진다.

아들이 그에게 제발 나가지 마시고 집안에 가만히 계시라고 화를 낸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막국수를 내며 사과한다.


얼마 뒤, 이번에는 집집마다 마당에 심어 놓은 꽃들이 뽑혀 나간다는 소문이 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꽃들은 그의 집 마당에 고스란히 심겨 있었다.

흙이 하도 단단해서 호미도 안 들어갈 그 마당을 망령 든 칠십 노인이 무슨 기운으로 파고 심었는지 모르겠다는 비아냥이 돈다.

아들은 또 아비를 닦달했고 동네 사람들에게 막국수를 낸다.


가을이 온다.

이번에는 집집마다 호박이며 옥수수, 고추가 없어지기 시작한다.

누구네는 개가 없어지고 누구네는 대문의 빗장이 없어지고 또 누구네 집 마당에는 똥이 뉘어져 있다.

치매 걸린 그가 한 일이었다.

누구네 집 복숭아 과수원에 도둑이 들어 쫓아가보니 그가 있었다고도 했다.

아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또 막국수를 낸다.


두어 해쯤 지난 어느 여름, 이번에는 노인이 아무 집에나 바지를 벗어놓고 다니기 시작한다.

동네 여자들이 기함하는 일이 잦아진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을 다시 부른다.

또 막국수를 내는 자리에서 아들이 말한다.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다고.

더이상 마을 사람들 신경쓰이게 하지 않겠다고.


그러자 이번에는 동네 노인들 사이에 아들을 성토하는 소문이 돈다.

부친이 비록 치매에 걸렸다고 하나, 자식이 되어 사지 육신 멀쩡한 아비를 요양원에 보내면 되겠느냐는 거였다.

젊었을 적 돈자랑 하던 일이 눈꼴시긴 했지만, 이 동네에서 저 노인의 공짜 술 안 얻어먹은 사람 없는데

그런 사람을 벌써 요양원에 쫓아보내면 되겠느냐는 말도 돈다.


노인과 같이 자란 어르신들이 먼저 나선다.

아침이면 노인을 오도바이 뒤에 태워 노인정에 데려다 놓고 대소변과 끼니를 챙긴다.

노인이 동네 꽃이며 곡식을 몰래 가져가면 아, 그 노인네 치매라 그런다고. 꼴에 꽃 이쁜 건 아는 모양이니 너그럽게 봐주자고 사람들을 달랜다.

노인이 딸네 집 간 다고 버스를 타고 나가려 하면 동네 사람 아무나 먼저 본 사람이 얼른 집에다 모셔놓는다.

노인이 바지를 벗고 다니면 바지를 찾아 입혀주고, 욕을 하면 허허 웃으면서 받아주기로 한다.

아들은 요양원을 취소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막국수를 낸다.



노인은 지금도 매일 동네를 돌아다닌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어느 집에 있었을 삽이며 꽃이며 호박이 들려 있고 어딘가에서 딴 복숭아가 주머니 불룩하게 들어있다.

이제 동네 사람들은 더 이상 아들에게 노인 흉을 보지 않는다.

자기 집 물건이 없어져도 아들을 불러세우지 않는다. 다만 그 집에 가서 슬쩍 찾아온다.

그러면서 자기들도 치매가 걸리면 도시의 자식 집에 갇혀 살다 요양원 가 죽느니 창피스럽더라도 저 노인처럼 좋은 동네에서 이웃들 덕 좀 보다 죽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출근길에 가끔 노인을 만난다.

내가 꾸벅 인사를 할 때마다 어김없이 그는 '너는 맨날 어딜 끼댕겨. 이노무새꺄, 집에 끼가서 잠이나 자빠져 자'라는 욕을 먹는다.

그러면 나는 허리를 굽신거리면 연신 예예, 집에 빨리 가께유, 대답을 한다.

올해, 나도 그 노인에게 백합 몇 송이와 살구 몇 알, 호미를 두어 번 잃었다. 나 또한 그 집에 가서 슬쩍 찾아왔다.

그가 이 동네에 계시는 동안에는 뭔가를 더 잃을 것이다.

그래도 이 동네에 늙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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