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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an 08. 2018

우리동네 장씨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는 전라도 어느 바닷가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열 살에 어미를 병으로 잃고 어느 집 논머슴으로 들어갔다.

덩치가 커지고 일 머리를 알아갈 무렵 주인 집 어린 아들과 시비가 벌어진다.

주인이 자기 말은 안 들어주고 대가리 피도 안 마른 아들놈 편만 드는게 억울해 대들다 매만 맞고 쫓겨난다.

매를 맞은 것도 억울한데 쫓겨나기까지 한 게 너무 분해서 주인 집 아들이 지나다니는 산길에 꼬박 이틀을 숨어 기다려 흠씬 패주고 전주로 도망 가 난전에 취직해 장사를 배운다.



두 해동안 죽어라 일 해 장사 밑천이 돈이 조금 모여 난전을 얻으려는 찰나, 어떤 사기꾼이 그의 돈을 들고 달아나버린다.

겨우 돈을 모아 다시 난전을 차릴 무렵, 이번엔 전쟁이 나 군대에 간다.

춘천에서 전투를 하던 중 그가 속한 소대원들이 적군을 포로로 잡았는데 무공을 기록하는 서류에 자기 이름만 빠진 걸 발견한다.

알고 보니 다른 부대 소대장이 자기 이름을 바꿔치기 한 것이었다.

그걸 따지러 갔다가 또 매 맞고 전방부대로 강제 전출을 당한다.

그날 밤 적의 기습 폭격에 한쪽 귀 청력을 잃는다.


휴전이 되어 고향으로 내려가 보니 아버지의 비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 나간 아들 찾아 병든 몸으로 춘천에 가셨다는 것이다.

겨우 노자를 구해 춘천을 다 뒤져 아버지를 찾아낸다.

하지만 몇 달 뒤 결국 돌아가신다.

묫 자리 얻을 돈이 없어 남의 산에 도둑장례를 치르고 다시 장사를 시작한다.

아무리 장사를 해도 점포 마련할 돈은 커녕 먹고 살 돈도 못 벌고 오일장을 떠도는 장돌뱅이가 된다.

그러다 같은 고향 출신이 운영하는 양조장에 취직이 되어 막걸리 배달을 시작한다.

마침 배달하던 막걸리집 작부 중 고향 여자가 있어 좋아하는 마음을 품는다.

장사 밑천으로 모은 돈을 모두 들여 그녀의 몸 값으로 물어주고 살림을 차린다.

사내새끼가 오죽 못났으면 술집 작부년한테 장가 드냐고 양조장 사장의 놀림을 듣는다.

다 자기 죄니까 제발 참으라며 말리는 아내의 눈물을 뿌리치고 술 먹고 양조장을 때려 부순다.

순경에게 잡혀 가 징역을 살고 나온다. 마침 소양댐 공사 인부를 구하던 때였다.



그는 소양댐 노가다판에, 아내는 함바집에서 이를 악물고 일 한다.

그러는 동안 그의 남은 한쪽 귀의 청력도 사라진다. 결국 그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다.

나라 지키다 다친 것만도 서러운데 귀머거리라고 쫓겨난 게 서러워 다시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하면 어릴 때 자기를 때린 주인집 아들놈이 떠오른다. 난전 얻을 돈 들고 도망간 사기꾼도 떠오른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 같아 보여 아무에게나 주먹을 휘두른다.

그가 지서에 잡혀 갈 때마다 아내가 돈을 싸들고 합의를 보고 꺼내온다.

그게 부끄러워 잊으려고 또 술을 마신다. 말리는 아내와 빽빽대는 아이들, 비루한 살림살이도 속이상해 모두 때리고 부순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신도 못 신긴 아이를 업고 이웃집으로 피한다. 그래도 그의 주취폭력은 멈추지 않는다.

참다못한 그의 아내가 함바집 젊은 손님과 바람이 나 집을 나간다.


없는 집에 태어나 부모 덕 본 것도 없이 설움 당하다 작부한테 장가 드나 했는데 그마저도 빼앗긴 자신을 생각하니 딱 죽을 팔자 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강물에 빠져죽자 마음 먹고 한밤중에 술을 먹고 소양댐에 올라간다.

그러나 막상 가 보니 어디서 뛰어들어야 할지 몰라 서성거린다.

그 수상한 거동이 신고되어 간첩으로 체포 된다.

어딘지도 모를 깜깜한 지하방으로 끌려가 몽둥이로 맞는다.

바로 다음 날, 밥풀떼기 두개 단 군인이 그를 조사하러 온다. 그 사람도 상이군인이었데 전쟁터에서 귀 먹은 사연에 잘 봐줘서 풀려난다.


일이 잘 풀리려는지 그 밥풀때기 소개로 소양댐 경비초소에 취직까지 된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집 나갔던 아내가 다시 돌아온다.

아내의 두 손을 꼭 잡고 다시는 도망가지 말라고 빈다.

하지만 그의 의심병이 도진다.

아내가 일터에서 늦게 오는 날이면 또 언놈이 꿰차고 도망갔나 싶은 마음이 든다.

특히 그가 야간 경비를 서는 날이면 아내가 야반도주를 할 것 같아 괴롭다.

괴로움을 이기려고 술을 마신다. 창문을 깨고 유리로 손목을 긋는다. 그러다 경비 자리에서 쫓겨난다.

그래도 아내는 그의 난봉질을 감당하며 다섯 자식을 키운다.


큰 딸아이가 시집가던 날, 아비로서 못해준 것이 미안하고 창피해서 또 술을 마신다.

누군가가 그의 술 버릇을 나무란다. 바로 잔칫상이 엎어지고 난리가 난다.

그 꼴을 본 아들이 그의 멱살을 잡고 떠민다.

아들이 그길로 집을 나가버린다.

그 아들을 그리워하며 또 술을 마신다.

사흘을 연속 마시고 한 일주일 앓아누웠다 털고 일어나면 또 사흘을 마신다. 그리고 또 앓아 눕는다.

보다 못한 자식들이 그를 정신병원으로 끌고 간다. 알콜중독 진단을 받는다.

동네 구멍 가게에서 훔쳐 마시고 숨겨 놓고 몰래 마시고 행패를 부린다.

그래도 아내는 그가 벌여 놓은 일들을 수습하며 과수원 농사를 착실히 짓는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알아서 자라 시집 장가간다.


칠십 번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 변소 가던 길에 봉당에서 굴러떨어진다.

오줌똥이 자기도 모르게 나오고 입이 돌아간다. 풍이 온 것이다.

죽을까 봐 술을 끊는다. 집 나갔던 아들이 돌아와 그 대신 과수원을 돌본다.

그의 아내가 온 나라 병원을 수소문 한 덕에 겨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고

드디어 그가 혼자의 힘으로 지팡이 짚어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의 아내는 동네 잔치를 연다.

동네 사람들이 아내더러 그렇게 술 먹고 마누라 뚜드려 팼는데 안 밉냐고 묻는다.

아내는, 그래도 저 사람이 상이군인잉게, 하며 편을 든다.



*

내가 이 동네로 이사 오던 그 해, 그는 구십 노인이었다.

인사차 경로당에 들러 최고령인 그에게 먼저 술을 올리는데 그가 깜짝 놀란 듯 잔을 감추며 아내 눈치를 봤다.

사람들이 웃으며 말했다. 저 할아버이 술 안 잡순대유. 아주 백 살까정 사실라 그래유.

옆에 있던 그의 아내가 말했다. 아녀, 한 잔 딸쿼 디리소. 그냥 먹구 칵 디져불게잉.

아내의 허락이 떨어지면 그는 반쯤 돌아간 입으로 헤벌쭉 웃으며 잔을 내민다.

사람들은 그가 한때 술 먹고 처자식을 때린 일과 그의 아내가 도망갔었다는 이야기는 내게 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나라 위해 싸운 상이군인이라는 것, 우리 동네에 이리 장한 할아버이가 계신 걸 학교 가서 가르치라 시킨다.



그는 동네 식사가 있을 때마다 제일 상석에 앉았다.

그런 날이면 아내의 자비심 덕분에다 딱 한 잔의 술이 허락되었다.

그에게 술을 따르는 사람은 '상이군인 할아버이 마이 잡수세유'하며 덕담을 올린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안 들리는 귀를 듣는 척하며 잔을 쭉 내민다.

그에게 술 따르는 은덕을 입은 사람은 복받는다는 계시라도 있었는지 동네 사람들이 서로 따라 드리려 한다.

그가 꼴깍꼴깍, 맛있는 소리를 내며 술을 마시면 아내가 제일 부드럽고 맛있는 안주를 골라 얼른 입에 넣어 준다.

치아 없는 그가 오물오물 먹고 나면 아내가 손등으로 그의 입가를 잽싸게 닦아준다.

그에게 술 한 잔 올리고 은덕을 입을 차례가 돌고 돌아 나에게도 오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오지 않았다.

지난 정월, 자다가 갑자기 응급차에 실려간 뒤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과 대보름 오곡밥 드시고 존경의 술 한 잔 받으신 지 나흘째 되던 날이었다.


나가 쪼께만 아퍼불믄 보훈병원에 갈 거시고, 거그선 돈 한 푼 안 든다등만. 나가 상이군인잉게. 자랑하던 그였다.

그의 아내는 그가 보훈병원 못 간 걸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는 국군묘지 대신 술 마시고 앉아 놀던 과수원 구석에 묻혔다.


지난 추석 전, 그의 산소에 벌초를 하던 아들이 막걸리를 여러 통 붓길래 내가 물었다.

아이고, 형님. 막걸리를 그래 마이 부으시면 아저씨 산소 떼 다 죽겠어유

그랬더니, 야, 니 뭘 몰른대니. 울 아부진 땅속에서도 기차게 알구 막걸리만 골라 쪽쪽 빨아 잡숫잖니,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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