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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an 08. 2018

우리동네 고씨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녀는 화전을 일구던 부모의 2남 6녀 중 막내로 양평에서 태어났다.

아들 바라는 집안에서 태어난 딸이 으레 그러하듯 막녀, 말순 끝녀 같은 이름을 얻었다.

아홉 살에 어머니 여의고 다음 해, 이웃 동네로 시집을 갔다.


시집 간 날부터 시어머니께 종아리를 맞았다. 

아무리 어린 열 살이라도 그렇지 며느리가 되어 밥도 제대로 못한다는 게 이유였다.

자기 몸보다 큰 함지에 빨래를 이고 꽁꽁 언 개울물에 손이 얼도록 빨래를 하고 

밤이 새도록 옷을 꿰매 시부모와 시누이들을 봉양했다.

손이 느리다고 맞고 배가 고파 감자 한 알 집어 먹어도 맞았다.

때리면 맞고 욕 먹으면 서러워 뒤안에서 울며 사는 동안 

친정 부모 한 번 보지 못한 채 열일곱에 첫아이를 낳았다. 딸이었다.


시어머니는 손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이 부모님 눈 피해 가끔 물동이를 여 주고 군불도 때 주는 게 고마웠다.

세 해 더 지나 둘째를 낳았다. 또 딸이었다.

아들 귀한 집에서 시집 와 아들을 못 낳았으니 어찌 대를 잇고 조상님 제사를 받들겠느냐고 시어머니의 미움이 늘었다.

그래도 살가운 남편이 있어 매운 시집살이를 버티나 했는데 그가 전쟁에 끌려간다.

남편이 없으니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시집살이가 더 매웠다.

여차하면 아들도 못 낳은 년이라며 시어머니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시누이들이 물동이에 침을 뱉어도 시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었다.


물 길러 갈 때마다 우물에 빠져 죽고 싶지만 어미 없이 자랄 두 딸 때문에 가슴이 메이던 어느 날, 군에 갔던 남편이 돌아온다.

일이 잘 되려는지 다음 해 첫 아들까지 얻는다.

왼 새끼에 고추 꿰어 금줄을 치던 날, 시어머니는 처음으로 그녀가 더 이상 부뚜막에서 혼자 바가지 밥을 안 먹어도 된다고 허락한다.

같은 꽁보리밥인데도 쌀밥처럼 맛있게 느껴졌다.


아들도 낳았고 남편도 위해주니 같은 일을 해도 덜 힘들게 느껴지던 어느 해 여름,

시어머니한테 아들을 맡기고 남편 따라 산 넘어 옥수수밭에 일을 하러 갔다 와 보니

아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마루에 누워 있었다.

저 혼자 나무에 기어 올라갔다 떨어져 머리가 깨진 것이다.

놀란 마음에 용하다는 의원을 다 찾아가 보았지만, 아들은 얼마 못 가 죽고만다.

기가 막혀 울려고 해도 꺽꺽 신음만 날 뿐 눈물이 나지 않았다.

독현 며느리가 잘 못 들어와 집안 대가 끊기게 생겼다고 시어머니가 무당을 불러 굿을 다.


세월이 흘러 아이 셋을 더 낳았다. 모두 딸이었다.

자상하던 남편 마저 아들 없는 팔자 탓을 하며 밖에서 먹고 마시는 날이 늘어간다.

보다 못한 시어머니가 정신이 온전치 않아 시집에서 쫓겨났다는 어떤 여자를 아들 씨받이로 데려온다.

그녀는 상한 속을 부여잡고 남편과 새 여자를 위해 밥 짓고 빨래를 한다.

그 해에 홍수가 나서 시댁의 천수답이 떠내려간다.

대가 끊길 징조라며 시어머니가 그녀를 욕한다.


머잖아 새 여자가 남편의 아이를 가진다.

그녀는 새우젓 넣은 계란찜이며 신김치볶음을 매일 해 바친다. 딸들에게는 먹여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새 여자의 산달이 다가오고 아이를 낳았는데, 딸이었다.

아들이든 딸이든 아이 하나만 낳고 보내겠노라는 남편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두 해 더 지나 드디어 새 여자가 아들을 낳는다. 남의 배로 낳은 아이지만 뽀얗고 예뻤다.

새 여자는 밭 한 뙈기를 얻어 자기가 낳은 딸을 데리고 떠난다.

시어머니가 직접 손자를 업어 키운다. 딸들에게는 등 한 번 내주지 않으시던 시어머니였다.


그녀의 넷째 딸이 유독 똑똑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던 날, 담임교사까지 나서 중학교에 보내라 간청했지만 시부모가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그 딸은 중학교 대신 언니들처럼 가발공장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는다.

딸이 그녀에게 울며 매달렸지만 시부모 무서워 딸 편을 들지 못한다.

딸이 엄마에게 모진 말을 퍼붓고 떠난다. 그 이후 연락을 끊는다.


그녀가 행여 아들에게 설움 줄까 봐 시어머니는 한층 감시를 높인다. 그녀의 눈물이 잦아진다.

그러던 어느 날, 밭에서 돌아와 보니 어떤 차가 와서 장농이며 가재도구 싣고 있다.

남편이 어떤 여자와 시내에 살림을 차렸다는 것이다.

원통하고 분해 옷을 찢으며 우는 대신 남편에게 매를 맞는다.

여우 같은 여자와는 살아도 너처럼 곰 같은 여편네랑은 못살겠다는 말을 던지고 남편은 떠난다.

그제야 시어머니도 그녀 편을 든다. 덕분에 남편 뺏긴 년이라는 시선이 덜 괴롭게 느껴진다.

그녀는 남편 없이 시부모 모시고 농사를 짓고,

아들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간다. 그 또한 딸들은 가 보지 못한 곳이었다.

시어머니가 아들 학교 앞에 방을 얻고 그녀더러 밥 해먹이라고 시킨다.


어느 날, 그녀는 아들 담임으로부터 학교 부적응에 대해 듣는다.

공부에 관심이 없고 친구들과 어울려 싸움질을 하러 다닌다는 것이다.

그녀가 아들을 불러 야단을 친다. 아들은 책가방을 마당에 내던지더 그 길로 집을 나간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득달같이 쫓아온다.

제 자식 아니라고 얼마나 구박을 했으면 집안 장손이 이렇게 엇나가겠느냐고 시어머니 닦달한다.


어느 덧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해 나간다.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와 농사 지어 딸 자식들 시집 보내고 시부모 모시며 살던 어느 날, 아들이 폭력 사건으로 경찰서에 잡혀갔다는 전보가 온다.

시부모는 그 사건 해결을 위해 땅을 판다.

어떻게 일군 땅인데 한 순간에 남의 것이 되나 싶어 가슴을 치는 세월이 이어진다.

그래서 그런가 가끔 숨이 가쁘고 가슴이 뻑뻑해진다.

병원에 가 보니 심장병이었다.


딴 살림을 차렸던 남편이 이혼을 요구해 온다.

다른 여자 사이에 아들을 낳았는데 학교 갈 때가 되니 호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절대 이혼해주지 말라는 딸들의 조언대로 버틴다.

남편은 잊을 만하면 찾아와 살림을 때려 부수고 그녀를 협박한다.

그러다 우연히 시내에 나간 길에 남편과 살림 차린 여자와 아이를 본다.

그리고 남편과의 이혼에 동의한다.

자기를 배반한 남편도 밉고 가정 있는 남편을 꾀어낸 여자도 밉지만 아이는 무슨 죄일까 싶었다.


이혼 후 그녀는 딸들이 구해 준 열다섯 평 농가에 머물며 시내 닭갈비집에 일을 나가 닭고기 포 뜨는 일을 시작한다.

손 기술이 좋아 주방으로 들어가고 마침내 양념소스를 만드는 위치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식당에 큰불이 나 일자리를 잃는다.


유난히 좋은 꿈을 꾼 날, 생사를 모르던 넷째 딸이 기적처럼 돌아온다.

넷째 딸과 함께 춘천으로 가 닭갈비 집을 낸다.

솜씨가 좋아 두 평도 안 되는 안방이 손님으로 차고 넘친다.

두 해가 채 못 되어 뒷마당에 간이 방을 만들어 가게를 넓히면서도 힘든 줄 모른다.

시부모, 남편은 자기를 사람 취급 안 했는데 손님들은 자기 음식을 맛있다고 해주니 신바람이 났다.

손님들이 외상을 구걸해도 아깝거나 미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정이 많으니 가게 이름을 그에 걸맞게 지어 걸라고 권한다. 그날, 드디어 그녀 가게에 이름이 생긴다.

닭갈비 집이 방송에 나오고 손님이 늘어 돈 셀 틈도 없이 장사하던 어느 날, 심장병이 그녀를 쓰러뜨린다.


시간이 흘러 손님 중 한 남자와 눈이 맞은 넷째 딸이 늦은 결혼을 하고 사내아이를 낳는다. 그녀의 한이 풀린다.

그 아이가 자라 학교에 입학한다. 몇 해 전, 난 그 아이 담임이었다.

나를 보면 그녀는 안 그래도 굽은 허리를 코가 땅에 닿도록 숙여 인사를 하신다.

돈도 벌고 고대하던 아들 손주까지 있으니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녀 삶에 신산한 한이 서려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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