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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Nov 11. 2019

즐거움과 괴로움이라는 반죽으로 만든 빵

어느 목욕탕 뽀이 이야기 - 11


삶이란 즐거움과 괴로움이라는 반죽으로 빚어진 빵이 아닐까. 어떤 빵은 즐거움이라는 맛이, 어떤 빵은 괴로움이라는 맛이 더 강할 거야. 지금 너희 삶은 어떤 맛이니. 삶이 어떤 맛이었는지는 마지막 눈을 감을 때 알게 될 거야. 늙은 내가 돌이켜보자니 삶은 어떤 맛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어떤 맛을 느끼려 했는지의 결과인 듯 하다. 구두를 빼돌려 번 돈으로 유흥을 즐기던 친구들에게 주어지던 호시절도 오래가진 않았어. 나와 장깨가 밤에 구두공장을 드나드는 횟수가 늘수록 그곳의 형들하고도 인사를 트게 됐어. 가끔 그들의 포장 마차 회식에 끼어 얻어먹기도 했지. 그 대신 우리에게 소주나 담배 심부름을 시켰어.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술을 마시고 형들이 본드를 불고 그중 몇 명은 바지까지 내리고 성기를 꺼내 수음을 하던 그때였어. 사장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 온 거야. 눈 앞에 벌어진 광경에 놀란 사장은 구석에 있던 마포 걸레 자루를 빼들고 휘두르기 시작했어. 본드에 취한 형들은 피할 생각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맞을 수밖에. 심부름은 했지만 형들 무서워 감히 술을 못 마시고 앉아 있던 나와 장깨는 후다닥 도망을 쳤어. 그런데 그중 본드에 덜 취해 있던 형 하나가 매를 견디다 못해 구두 틀로 사장의 머리를 후려친 거야. 사장이 피를 흘리며 경찰을 불렀어. 


그 사건은 가출 청소년들의 집단 탈선으로 신문에 났어. 기사에서 구두공장 사장은 평소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봉사를 많이 한 선한 기업가로 소개되었어. 오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들을 불쌍히 여겨 숙식 제공은 물론 일자리까지 제공하며 자립을 도왔는데 은혜도 모르고 본드를 흡입하는 등 탈선을 한 것도 모자라 선도하는 사장까지 폭행한 청소년들을 지탄하는 내용이 덧붙여졌어. 한 달에 십만 원도 안 주면서, 단무지에 칼국수나 먹여가며 하루 종일 일을 시킨 사장은 선하디 선한 어른으로, 지문이 닳고 손톱이 빠지도록 구두를 만든 친구들은 배은망덕한 철부지 청소년이 됐어. 시팔 좆같은 세상이라고 장깨는 욕을 했어. 나도 같은 마음이었어. 사람들이 보는 우리는 바퀴벌레 같은가 보다, 생각했어. 괜히 돌아다녀서 사람들 불편하게 하지 말고 알아서 어디로 꺼져주거나 존재하더라도 중심이 아닌 구석에서 티 나지 않아야 하는 존재. 우리 같은 불행아들은 하나도 없다고 믿고 싶은 이들이 마음 불편해지면 안 되니까.


그날 공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경찰서에 잡혀 갔어. 신문에 까지 났으니 쉽게 넘어갈 것 같지 않아 보였지. 그런데 단 한 명, 사장을 때린 형이 소년원에 간 걸 빼고는  나머지는 예상과 다르게 단 하루 만에 공장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열심히 일 했어. 밤마다 하던 술자리는 더 이상 없었어. 심지어 구두를 빼돌리던 일도. 하지만 막내였던 두 친구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어. 그들은 그날 술을 마시지도 본드를 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야. 당장 갈 곳이 없는 그들이 목욕탕으로 왔어. 


그들이 돌아온 걸 기념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장깨가 중국집에서 고량주를 훔쳐왔어. 우린 새우깡을 펼쳐 놓고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었어. 무섭고 무섭고... 무섭기만 한 이야기를. 우리처럼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일단 경찰서에 잡혀가면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수갑을 채우고 사방이 막힌 지하실에 끌고 가 불을 끈 다음 채찍인지 막대기인지로 한참 동안 사정없이 때린대. 너무 아파서 혀를 깨물어 죽고 싶어도 입에 재갈을 물려서 못했대. 그저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엎드린 채 조금이라도 덜 아픈 곳을 내밀어 맞을 수밖에 없었대.  맞고 나면 없는 잘못도 지어내게 된대. 그도 본드 한 거, 청량리 집창촌에 간 거, 어린애들 돈 뺏은 거, 구두 빼돌린 걸 썼대. 하지만 그들이 빨리 풀려난 게 그들의 반성문 때문은 아니었어. 당장 납품기한을 지켜야 하는 사장 때문이었지. 막내 두명은 숙련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쫓겨난 거야. 


경찰서에서 있었던 말을 하는 내내 매 맞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친구들의 표정이 공포와 안도 사이를 오가고 그를 보던 우리도 전율과 공포로 온 몸을 떨던 그때, 내게도 큰일이 일어났단다. 때밀이 형이 갑자기 들어온 거야. 마침 근처에서 술 한 잔 하고 가다가 목욕탕에 불 켜진 걸 보고 들어 온 거지. 나는 어떻게든 상황을 설명해보려고 종종걸음으로 형에게 다가갔지만 첫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먼저 형의 주먹이 얼굴에 닿았어. 한 대로 끝나지 않았어. 입술이 터지고 발길질에 나동그라지기를 여러 차례. 잘못했다고 앞으로 안 그럴 테니 한 번만 봐주시라고 비는데도 계속 때리는 거야. 


"아, 씨발! 제 얘기 좀 들어보시라구요, 진짜!" 


술김이라 그랬을까, 계속 맞다가 뭐가 치밀었는지 내가 소리를 질렀어. 나도 놀랐어. 씨발이라니. 형에게 대들다니. 형도 놀란 것 같았어. 불콰하게 취한 형의 표정이 기분 나쁘게 변하면서 시계를 풀었어. 그 사이에 공장 친구들은 후다닥 도망 나갔고 난 맞았어. 형에게 대든 게 미안했을까, 별로 저항도 안 하고 이리저리 몰리면서 때리면 때리는 대로. 형에게 평소 아양을 떨던 장깨가 매달려 살려달라고 울부짖지 않았더라면 아,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형은 화가 다 안 풀렸는지 장깨 뺨도 후려치며 이 좃빠리들, 똑바로 안 하면 다 죽여버린다고 식식대다가 가버렸어. 형이 나가자 장깨가 휴지에 물을 조금 묻혀 내 코피를 닦아줬어. 형이 가고 없는데도 눈물이 계속 나왔어. 그걸 장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화장실에 가서 코피를 마저 닦고 입안에 고여 있던 피를 뱉어냈어. 


그땐 왜 그렇게 사람을 때렸을까. 툭하면 때렸어. 정강이를 구둣발로 차거나 뺨을 때리거나. 구두를 잘 못 닦았다고 때리고 때를 덜 밀었다고 때리고. 뭐, 개새끼, 병신 새끼 같은 욕은 기본이야. 맞은 분풀이는 또 다른 약자에게 하게 마련이잖아. 하긴, 국가에서 삼청교육대를 만들던 시절이니. 군대에서도, 심지어 학교에서도 그렇게 때리다 보면 가장 약한 계급인 누군가는 계속 맞기만 해야 하잖아. 난 아마 맨 끄트머리쯤에 있었던 것 같아. 


목욕탕에 가기 전만 해도 내가 담배를 피고 침을 뱉고 씨팔, 같은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부류가 될 줄은 몰랐어.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렇게라도 하면 세상을 향해 꾸역꾸역 기어오르는 화가 좀 달래지는 기분이었어. 내 속의 분노를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고 껌을 질겅대며 밤거리를 쏘다닌 게, 사실은 내가 혼내 줄 대상이 딱히 있어서라거나 누구 들으라고 한 건 아니야. 그냥... 그렇게라도 내 속에서 뜨겁게 끓고 있던 것들을 토해놓기라고 하면 좀 나았어. 


밤이 깊어지면 목욕탕 동네는 화려한 네온의 거리로 변했어. 술과 매춘, 싸움과 구토, 범죄가 골목 곳곳에서 난무했지. 그 당시 밤 10면 청소년 귀가 권유 방송이 나왔지?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으니 부모님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방송 말야. 근데 그 방송을 들으면 더 짜증이 났어. 시팔, 돈 버느라 존나 뺑이쳐야되는데 가긴 어딜 가라고 지랄이야. 우린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킬킬거렸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각자 마음 한 켠이 쓸쓸해지는 건 감출 수 없었어. 그걸 감추려고 더 욕을 하고 담배를 피고 침을 뱉었어. 그러면서 속으로 빌었어. 우리도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같은 청소년인 우리는 그 시각에 당연히 안락한 집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공부를 했어야 했지만 학생이 못된 우리는 누구의 애정 어린 권유나 심지어 법의 강제도 받지 못했어. 대신 후미진 골목길 여기저기에 이리떼처럼 숨어 본드를 불거나 담배를 물고 밤거리를 돌아다녔어. 취객의 주머니를 뒤지고 시비가 붙으면 욕지거리를 하고 쫓아오면 도망가고. 누군가가 토해 놓은 토사물과 쓰레기가 넘치는 골목 여기저기를 이유도 모르고 배회하던 그 날을 생각하면 난 지금도 서늘해져. 무섭고 아슬아슬하고 무지했던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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