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일학년담임 Nov 08. 2019

그 많던 구두공장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느 목욕탕 뽀이 이야기 - 10


아침이면 책가방을 들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사정이란 결국 가난으로 수렴되는 사정일 거야. 나처럼 학교에 가지 못한 처지를 비관한 아이들이 내 주변에는 꽤 있었어. 학생이라는 주류에 끼지 못하고 자청해 뒷골목을 떠돌던 아이들. 당시에 고등학교를 못 가는 삶이란 공장에 가야 하는 걸 의미했어. 학교 못 가는 형편이란 가난하다는 거잖아. 놀 여유도 없어. 당장 돈을 벌어야지. 목욕탕과 멀지 않은 허름한 건물 지하에 구두 공장이 있었어. 을지로 큰 구둣가게에 납품할 정도로 꽤 비싼 구두를 만드는 공장이야. 비싼 구두라 그런지 신발 틀 몇 개 빼면 대부분 수작업을 했어. 그 공장에는 열 명 남짓 청년들이 일하고 있었는데 둘이 나와 동갑이었어. 그들을 알게 된 것 역시 장깨 덕분이야. 녀석은 어디든 배달을 갔으니까. 


내 친구들이 가장 어렸어. 어리면 서열문화의 불합리한 고충을 겪게 마련이잖아. 당시 열일곱이라는 나이는 대부분의 노동현장에서 가장 어린 축이야. 밤 여덟 시쯤 구두공장 일이 끝나고 사장이 퇴근을 하면 공장 청소를 해. 물론 청소는 내 친구들 차지야. 안 하면 공장 형님들에게 맞거든. 선임자가 어린 후임자를 때리는 일이 흔했어. 학교도, 군대도. 공장에선 더했어. 내가 때밀이 형에게 맞은 것처럼 장깨도 맞았대. 배달이 늦었느니, 단무지를 조금만 가져왔느니, 군만두 서비스를 안 가져왔느니 하면서 때리더래. 그러려니 했어. 이유도 모르고 맞을 때도 많았어. 안 맞으려면 눈치껏 빨리빨리 움직여야 했어. 노동현장에서 우린 그런 위치였어. 


청소가 끝나면 작업대 위에 이불을 깔고 자. 물론 나이가 좀 있는 형들은 바로 자지 않았어. 내 친구들에게 소주와 담배 심부름을 시켜서 한 잔 하지. 하지만 그 무서운 형들도 쉬는 날은 다들 어딜 가곤 했어. 그때를 틈타 친구들이 장깨를 통해 나를 초대했지. 일을 마치고 밤 10시쯤 장깨와 그곳에 처음 갔을 때가 기억 나. 작업대 주변엔 온통 구두를 만드는 가죽과 밑창, 깔창, 실과 바늘, 본드 깡통들이 쌓여 있었어. 갓 가공한 가죽 냄새, 본드 냄새가 환기 안 되는 지하에 가득했어.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곳에서 사람이 종일 일하고 잠까지 잤을까 싶지만, 당시의 일터는 위험하거나 더러움에 대한 기준이 없었어. 사장은 어떻게든 돈이 안 드는 운영을 했어. 공장이 싫으면 내가 나가야 해. 나가면 다른 공장을 가야 하잖아. 그 공장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어.  


장깨와 나도 작업대 위에 앉았어. 우리를 초대한 친구들이 소주와 새우깡을 내왔지. 첫 만남의 어색함은 잠시, 금세 우리 넷은 그 공장 형들을 흉내며 술을 마셨어. 지하에 담배 연기가 자욱해지고 우리들의 상스런 언어와 낄낄거림이 오가던 중, 한 친구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구석에서 본드 깡통 하나를 가져왔어. 뚜껑을 따고 본드를 한 숟가락 퍼서 비닐봉지에 담더라. 이어서 봉지 주둥이로 입과 코를 감싸더니 본드 냄새가 새 나가지 않게 두 손으로 감싸 막고 풍선 불듯 불기 시작했어. 그들의 호흡에 따라 비닐봉지가 부풀었다 쪼그라들었다를 한 스무 번이나 반복했을까, 친구가 봉지를 내던지더니 축 늘어져 누웠어. 곧이어 장깨 녀석도 익숙한 듯 따라 했어. 그걸 본 나도. 


구두공장 친구들에게는 여자 친구들이 있었어. 옆 골목 청바지 공장 여공들인데 스물 갓 넘은 누나들이었지. 청바지 공장은 일이 많아서 늘 야근을 했는데 어쩌다 작업이 없으면 누나들이 오곤 했어. 어떤 날은 목욕탕 앞 포장마차에 오기도 했지. 그런 날은 나와 장깨도 끼어 얻어먹었어. 그 친구들은 여자 친구들과 종종 외박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럴 때마다 나와 장깨에게 무용담처럼 자랑했어. 열일 곱 사내아이들이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 여자 친구와의 섹스를 떠벌린다면 그 수준이 어떻겠니. 그런 무용담은 특히 자극적이게 마련이잖아.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지하다방 그녀가 연상되곤 했어. 그럴 때마다 까닭 모를 죄책감과 수치스러움이 일었어. 마음이 불편했지. 남녀가 뒤엉키는 이야기를, 그것도 자기 여자 친구를 상대로 한 은밀한 이야기를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떠드는지 모르겠어. 여자 친구가 알면 실망할 것 같은데. 만약에 친구들이 나의 그녀도 같은 선상에 놓는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어. 그들의 말처럼 내가 그녀와 잔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 내가 그녀에게 어떻게 그래. 안돼. 그럴 순 없어. 혹시 나중에... 더 어른이 된다면 그녀와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 그녀에게 죄짓는 것 같아서. 친구들은 나더러 지하 다방의 그녀도 한 번 데려와 보라고 했어. 그녀가 일하는 시간이 겹쳐서 안 된다는 핑계를 대며 거절했어. 하지만 사실 그녀가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녀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 뭐랄까, 그녀와 그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살면서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었거든. 술과 섹스, 본드... 그들의 삶은 거칠고 즉흥적이고 무질서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해서 그녀가 저들을 만나면 그녀만의 맑은 무언가가 오염될 것 같은 걱정이 되는 거야.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그녀가 나를 좋아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어. 그녀는 나에게 호감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 짝사랑. 그래, 짝사랑이었어. 수없이 편지를 써서 장깨를 통해 보냈지만 그녀는 그다지 의미 있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 그렇다고 그녀가 내 편지를 거절한 것도 아니야. 물론 가끔 그녀도 아주 가끔 내게 답장을 주곤 했어. 하지만 내용은 주로 다른 사람이 쓴 글이었어. 버스, 또는 미장원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같은 글들 말야. 아무리 읽어도 나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었어. 


어울릴 사람이 없던 나와 장깨는 그들의 여자 친구가 낀 포장마차에서 자주 얻어먹었어. 그런데 항상 돈은 그녀들이 내는 거야. 월급을 많이 받나? 궁금해서 물었더니 비밀이 있었어. 구두공장 친구들이 공장에서 구두를 빼내서 그녀들에게 넘긴다는 거야. 원래 구두 완제품은 사장이 따로 퇴근길에 챙겨 납품하지만 불량품은 다시 해체해서 부품으로 쓰거든. 수량 파악도 없지. 그걸 이용하는 거야. 멀쩡한 제품을 일부러 뒤꿈치 칼자국을 낸다든가 하는 식으로 불량을 내고는 사장이 퇴근하면 뒤꿈치 교체 작업을 해. 그럼 멀쩡한 상품이 되잖아. 청바지 공장 누나들은 그 구두를 구제 가게에 팔아주는 대신 수고비를 떼는 거지. 구두 한 켤레 가격이 내 월급과 비슷했으니 그들이 얻는 수익이 꽤 되는 것 같았어. 그렇게 돈이 모이면 택시를 잡아타고 청량리 집창촌으로 갔어. 매춘을 하러. 


어린애들이 어쩜 그리 엄청난 짓을 벌일까, 놀라울 거야. 그래, 그 친구들은 어떤 도덕과 윤리로부터도 자유로웠어. 아니, 자유로웠다기보다 보호받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학교 못 가고 세상에서 내쳐진 삶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 저질렀어. 부끄러움이라는 건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처럼. 구두 빼돌리기든 취객을 상대로 한 퍽치기든 아이들의 돈을 뺏든 가리지 않았어. 하지만 그렇게 번 돈으로 다시 학교에 갈 생각은 하지 않더라. 대신 막 유행하기 시작한 나이키 운동화를 사거나 더 나중에는 오토바이를 샀어.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범죄 집단에 들어가기도 했어. 칼이나 야구방망이를 대신 휘두르고 대신 감옥에 가거나 몸이 상하기도 했어. 그때 누군가가 그들을 말려주었다면, 빈말로라도 이놈들, 그러면 안 된다고 나무라 주었다면 그 뒤의 삶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우린 대체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결손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양육자의 따뜻한 격려나 배려의 경험이 적었어. 냉정한 환경에서 약자로 눈치 보며 자라다 보니 뭘 하더라도 자신감이 못 붙었어. 이런 아이들은 어딜 가나 귀찮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잖아. 누가 편들어 주지도 않으니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도 못하지. 일 못한다고 때려도 누가 쫓아와 항의할 보호자도 없으니 함부로 부려먹다가 적당한 이유로 내쫓아도 부담이 없는 대상이잖아. 평소엔 잊고 살거나 귀찮게 여기다가도 무슨 날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 구호 대상으로 동정의 시선을 보내긴 하지만 그렇다고 끝까지 돕거나 이끌어주기에는 꺼려지는 대상. 그게 우리들이었어. 우리 같은 친구와 어울리면 물든다고 아이들을 단속하고 우리가 몰려다니는 동네를 슬럼가라고 피하는 시선을 늘 읽었어. 비행청소년이라는 틀과 수틀리면 잡아 쳐 넣어버리겠다는 위협 속에서 어린 우리의 선택지가 얼마나 됐겠니. 결국 뒷골목에서 선량한 시민을 상대로 범죄의 유혹 밖에는. 돈 없어서 사회에서 밀려난 우리들이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사회의 위협적인 존재로 낙인찍혀 있었어. 그들의 삶이 얼마나 가혹하게 풀려나갔는지를 다음에 하려니 벌써부터 애잔하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의 글씨 연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