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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Nov 19. 2019

운동권 대학생을 알게 되다

어느 모욕탕 뽀이 이야기 - 15

사람들은 모이면 꼭 뒷담화를 하지? 인간의 언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해 설명하는 능력을 갖게 된 것도 뒷담화를 위해서였다잖아. 때밀이 형과 누나도 그랬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뒷담화를 했지. 자는 척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어. 술 마시고 하는 뒷담화는 맨 정신일 때의 그것보다 세잖아. 덕분에 난 모르던 일들을 많이 알게 됐어.


그들이 가장 많은 뒷담화를 한 건 사장이었어. 사장은 얼마 전 구속된 지하 다방 마담과 그렇고 그런 사이래. 마담은 가끔 월세를 돈 대신 몸으로 낸다지. 그래서 사장 마누라가 마담을 싫어한대. 그녀 역시 예전에 마담이었대. 손님으로 온 사장과 사귀다 임신했는데 사장이 도망가려 하자 그녀 오빠가 칼 들고 쳐들어와 할 수 없이 결혼했대. 사장 마누라는 다방 마담이 혹시 자기처럼 임신이라도 해서 목욕탕 한 자리 내놓으라고 할까 봐 늘 신경 쓴대. 전에 땡삐가 지하 다방을 때려 부술 때 마담이 경찰보다 사장에게 먼저 알린 것이나 사장이 출근하자마자 목욕탕 대신 다방으로 내려간 것도 다 그런 이유였대. 그런데 다행히 마담이 감옥에 가서 사장 마누라 표정이 살아났대. 땅딸보에 두꺼비 상인 사장이 미녀 마누라를 얻은 것도 결국은 돈 때문이래. 사장의 바람기는 멈출 줄 모른대. 이번에 새로 온 다방 마담에게도 또 껄떡대는 중이래. 카운터 지키는 아줌마는 사장 마누라의 친척인데 사장을 감시하려고 앉힌 거래. 그들은 내 뒷담화도 했어. 한 마디로 대책 없는 인생이라는 거야. 아버지는 일찍 죽고 돈도 없는데 일도 못한대. 요령이 없어서 음료수도 잘 못 팔고 뭐라고 하면 질질 짜서 잘라 버리려고 해도 불쌍해서 데리고는 있는데 애새끼가 눈치도 없고 영 돌대가리래. 그들의 뒷담화 속 나는 책을 좋아하거나 라디오를 좋아하는 모습이 아니었어. 그런 내용은 아예 있지도 않았어. 그저 자기들이 부려먹을 만한 가치가 얼마나 있는가에 대한 것뿐이었어. 형과 누나와 비슷한 나이인 사장 아들에 대한 뒷담화는 가장 적나라하고 비판적이었어. 사장 아들은 망나니 중에 상망나니래. 원래 돌대가리였는데 사장이 돈을 퍼부어 과외시킨 덕분에 겨우 들어간 거래. 돌대가리라 대학 가서도 공부할 턱이 있나? 만나는 여자 마다 임신시켜서 사장이 돈으로 막느라 죽을 지경인 데다 꼴에 또 무슨 데모를 하러 다녀서 전담 경찰까지 있는데 툭하면 집으로 찾아온대. 그럴 때마다 사장이 돈으로 막는대. 뒷담화는 하는 사람 마음이잖아. 문제는 그들의 태도였어. 모든 사람들을 나쁘거나 모자란 사람으로 폄하하는 거야. 사장은 오입쟁이로, 사장의 아내는 다방 마담 주제에 몸 팔아 얻은 사모님 지위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여자로, 그의 아들은 머리 나쁜 난봉꾼으로 만들어 버렸지. 그들의 뒷담화는 얼마나 사실일까. 내가 그걸 알아볼 방법은 없었어. 다만 알려진 것과 꽤 다른 경우도 있었어. 사장 아들에 관한 이야기. 오늘은 그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사상전집 때문이야. 사장이 아들의 대학 입학을 축하하는 의미로 샀지만 아들은 그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대. 심지어 집에 안 들어오는 날도 잦았지. 자식이 친구들과 놀러만 다니고 공부를 멀리하는 걸 보고 사장은 절망했겠지. 이북에서 내려와 의지할 사람 없이 몸뚱이 하나로 일군 목욕탕을 기반으로 하나뿐인 아들을 번듯하게 키워보려고 했는데 하는 짓을 보니 영 가망 없어 보였을 거야. 가끔 사장이 아들을 데리고 목욕을 오곤 했어. 목욕을 오면 나와 형에게 아들 자랑을 했어. 얘가 어릴 때부터 책을 그렇게 좋아하더니 대학교에 척 붙었다. 목욕탕을 물려주고 싶지만 아직 젊은 나이에 몇 푼 나가지도 않을 목욕탕이 가당키나 하겠느냐. 사법고시나 외무고시를 보든지 정 안되면 행정고시라도 해서 나랏일을 시켜야지. 지금이야 번듯한 대학생이 되었지만 저 아이 어릴 때만 해도 돈이 없어 산동네로 이사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도 우리 아들은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고 책만 읽더라. 그때 뒷바라지를 했으면 지금쯤 미국에 가서 너끈히 박사 공부를 했을 텐데 부모가 못나 이 고생을 시키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 사장은 진심을 다해 자랑하는 것 같았어. 그런데 아들은 영 씁쓸하고 민망한 표정인 거야. 그러면 때밀이 형은 인심 좋은 표정을 하고 분위기를 띄우듯 말했어.


"아유, 그러셔얍죠. 나중에 큰 자리 하나 떡하니 맡으시면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


그러고 나서 멍청히 서 있는 내 어깨를 탁 쳐. 그럼 나도 같이 꾸벅하면서 형을 따라 했어.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 사장의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어. 아들을 위해 새벽기도를 할 정도로. 그녀는 성경책이 들어 있는 작은 가방에 전도지를 넣어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주곤 했어. 나와 때밀이 형에게도. 그러면서 교회 꼭 나가래. 내가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일요일에 목욕탕 문을 열어서 이번 주에는 못 가겠습니다, 그러면 당황하는 표정이야. 형이 내 볼을 꼬집으며 대신 말씀드리지.


"얌마, 그러니까 지금 말고 나중에 나가면 되잖아. 염려 마십쇼, 사모님. 제가 꼭 보내겠습니다. 헤헤."


그러면 그녀는 이내 예쁜 얼굴을 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그럼 나중에라도 가래. 그럼 나도 네, 사모님, 나중에 꼭 가겠습니다, 헤헤. 그러지. 근데 그녀가 만나고 다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지, 아니면 나눠 줄 전도지가 너무 많은지 날 만날 때마다 주는 거야. 사모님이 주신 걸 그냥 버리면 혼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딱히 모아놓을 것도 아니고 해서 임시로 음료수 냉장고 위에 차곡차곡 올려놨지. 형은 그걸 볼 때마다 한 마디 하는 거야.


"시발. 교회 가면 그 년이 한 번 대 준대냐? 이 새꺄, 넌 이런 걸 왜 여따 놔, 재수 없게. 빨리 안 치워?"


그렇다고 전도지를 버리면 안 돼. 다음에 사장이나 사모님이 오면 찾을지 모르거든. 어느 날 청소를 마치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길에 전도지도 같이 버리려고 한 움큼 들고나가다 사모님과 맞닥뜨린 거야. 난 얼른 뒤로 감췄지. 사모님은 반가워하셨어. 늘 하시던 당부도 잊지 않으셨지.


"송군아, 너도 꼭 교회 나가라. 교회 가야 복을 받는다. 우리 남편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지만 오직 예수님만 붙잡고 목숨 걸고 기도해서 목욕탕에 손님이 많이 들고 축복을 받았잖니. 우리 아들도 학교와 교회밖에 모르던 아인데 대학을 가더니 지금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가 죄 없이 죽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며..."


이럴 때 때밀이 형이 있었다면 사모님이 기분 나쁘시지 않게 화제를 전환하면서 나를 구해줄 텐데. 어느 시점에서 빠져나와야 할 줄 모르고 네, 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꼼짝없이 사모님 설교를 들어야 했어. 사모님이 계시니 전도지를 버릴 수가 있나. 빈 쓰레기통과 함께 다시 들고 올라왔지. 전도지 내용은 하나같이 자비로우신 하나님, 나의 죄를 대신 해 죽은 예수님 이야기였어.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양 손을 적당히 벌려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그림까지. 사실 난 이미 하나님과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어. 아버지가 투병하던 무렵부터 우리 집은 이미 기독교인이었거든. 아버지는 땅을 교회 부지로 내놓으실 만큼 신앙이 좋으셨고 어머니 또한 새벽기도를 빼놓지 않으실 만큼 독실했지. 나 또한 교회에서 한글을 뗐을 정도로 교회는 늘 내 삶 안에 있었어. 주일학교에 가고 성경 요절을 외우고 여름 성경학교를 기다리는 아이였지.


하지만 목욕탕 뽀이로 사는 내내 전지전능하시며 어디에나 계시다는 하나님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심판하러 오실 거라는 예수님도 만날 겨를이 없었어. 나에게 교회는 그냥 어릴 때 뭣도 모르고 다니던 추억에 불과한 곳이어야 했는지도 몰라. 그렇게 자비로운 하나님이 이층 집까지 있는 사장에게는 그만 줘도 될 것 같은 물질의 축복을 연신 퍼주면서 왜 나나 장깨 같은 하층민에게는 백 원짜리 하나 공짜로 주지 않는지 모르겠는 거야. 자비의 수혜자를 고른다면 나와 장깨야 말로 적격이잖아. 아하, 알겠다. 내가 교회에 안 가서 그런 모양이네. 교회에 가야 축복을 받는다며. 하지만 일요일은 목욕탕이 가장 바쁜 날인데 내가 교회를 어떻게 가지? 일요일에 교회에 가려면 목욕탕을 때려치워야 하는데. 그럼 돈을 아예 못 벌잖아. 아니지, 나 대신 사장 마누라가 가잖아. 맞네, 그분은 가서 물질 축복을 계속 받아서 더 부자가 되고 난 일요일마다 일해야 되니까 그분의 돈을 더 벌어주고. 그분 말씀이 딱 맞네. 에이, 시팔. 니미 뽕이다. 난 씩씩거리며 전도지 다발을 탈의실에 패대기쳤어. 그들의 축복을 위해 내 축복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라니. 울적했어. 그래도 시골에 살 때엔 일하다가도 일요일이면 밭일을 멈추고 교회에 가느라 쉴 수 있었는데.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어. 크리스마스이브에 눈길을 헤쳐가며 집집마다 새벽송을 도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그땐 십자가를 보면 나도 모르게 경건한 기도가 나오곤 했는데. 그나마도 고등학교를 못 가고 목욕탕에 일하러 온 뒤로는 한 번도 주어지지 않는 기회가 된 거야. 난 일부러 전도지를 외면했어. 힘든 자, 병든 자들을 모두 자기 품으로 오라고 하는 예수님도 눈에 안 들어왔어. 갈 시간이 있어야 품으로 가든 말든 할 거 아냐. 그런 건 시간 많은 사람들이나 하라고 해. 난 예수님이 금기로 정했다는 담배나 피우고 침이나 뱉다가 지옥이나 갈란다, 젠장.



우울에 떠밀리듯 며칠이 지나 손님이 뜸한 어느 날이었어. 때밀이 형은 지하 보일러실에 놀러 가고 나 혼자 탈의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지. 사장 아들이 혼자 목욕을 왔어. 나도 모르게 때밀이 형의 뒷담화가 떠올랐어. 그런데 막상 그를 직접 대면하자 나름 점잖고 부드러운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어. 목욕을 마친 그가 베지밀을 주문했어. 내가 금방 드리겠습니다, 외치며 냉장고 쪽으로 가자 마침 그 옆에 있던 그가 직접 꺼내면서 내게도 권했어. 그런데 마침 냉장고 위에 쌓여있는 전도지 뭉치를 본 거야.


"송군도 교회 나가세요?"


그것들은 사모님이 주신 거라고, 그런데 때밀이 형이 버리지 말라고 해서 그곳에 두었다고 했지. 나더러 교회에 가 본 적이 있냐 물었어. 형이 있었다면 적당한 아부를 섞어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헤헤거리며 그를 대했겠지만, 그날은 그러고 싶지 않았어. 어릴 때는 엄마가 시켜서 교회에 나갔지만, 지금은 보시다시피 목욕탕 일을 해야 해서 갈 수도 없고 앞으로도 생각 없다고 말했어. 어차피 시간도 안 나고 돈도 없다고. 그랬더니 그가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무는 거야.


"버드란트 러셀이란 사람이 그랬어요. 인간이 종교를 갖는 건 두려워서라고."


대학생이라 저렇게 멋있는 말을 줄줄 읊어대나. 목소리까지 부드러우니 나한테 그 말이 착 붙는 느낌이었어. 두려워서 종교를 갖는다고? 그가 한 수많은 말들 중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건 그 문장 하나야. 그날 일기에 그 구절을 적어두었어.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 엄마가 피곤을 무릅쓰고 새벽기도를 다니는 건 무엇이 두려워서일까.


“사장님, 사모님 뭐가 불안해서 교회에 가시는 겁니까?”


이미 돈이 많은 사람들은 또 뭐가 두려울까. 도둑이 와서 돈을 훔쳐갈까 봐? 돈이야 그렇다 쳐도 목욕탕 건물은 못 훔쳐가잖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아니면 그걸 못 벌까 봐? 아무리 생각해 봐야 내 생각은 거기가 끝이었어. 사장 아들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담배를 끄며 말했어.


“저도 모르겠어요...”


며칠 뒤 사장 아들이 다시 왔어. 그의 손에는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이 들려 있었어. 겉표지가 같은 걸 보니 그의 아버지가 옮겨 놓으라 시킨 사상전집의 일부 같았어. 아하, 그는 아버지가 사 준 책을 읽지 않았던 게 아니구나. 필요한 것만 읽었을 뿐.


러셀의 책은 내가 궁금해하던 것들을 설명해 주었어. 하나님의 자비가 느껴지지 않는 현실이 있다는 말도 이해가 됐고 내가 죽고 나면 또 있다는 영생이라는 걸 안 믿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 목욕탕 뽀이로 사는 것도 지겨워서 욕탕 물에 콱 빠져 죽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영생? 그럼 그곳에서도 난 목욕탕 뽀이겠네? 씨발. 팔자 한 번 좆같다고 생각했어. 러셀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그러나 나처럼 천박한 욕설 몇 마디로 가 아니라 우아하고 품격 있는 단어로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었어.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열 받는 걸 참아가며 끝까지 의연하게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책을 읽으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대학교도 물론 나왔겠지? 아는 건 아는 대로,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적어 두었다가 다음에 사장 아들이 오면 물어보려고 일기장에 적어두었어. 며칠 뒤 사장 아들이 다시 왔어. 그런데 형이 있어서 대화는 못 하고 내가 적은 것들을 건넸어. 그는 담배를 피우며 내가 쓴 걸 천천히 읽더니 러셀 말고 또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 물었어. 사상전집과 문학전집 중에서 그때까지 내가 읽은 책 제목을 적어 놓은 일기장을 보여줬어.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 다음에는 좀 다른 책들을 가져다주겠다고.


다음에 그가 가져온 책들은 사상전집과는 다른 것들이었어. 군사정권 시대에 사회과학으로 분류되던 책들. 표지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책 같아 보이지 않는 책들. 타자기로 쳤거나 심지어 손으로 쓰기까지 한 <공산당 선언>과 해방신학, 고리끼나 체홉 같은 러시아 소설들이었어.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처럼 가난한 하층민의 삶을 사실대로 묘사한 책들과 김지하로 상징되는 저항시인의 시집과 노래책까지 보따리 몇 개가 있었어. 그 책들은 귀한 거니까 탈의실 책장이 아닌 개인 옷장에 넣고 열쇠로 잠그라고 부탁했어. 그가 굳이 그 말을 안 해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렇게 허름한 책이 책장에 꽂힌 걸 사장이 보면 난리 나지. 난 열심히 읽던 김원일, 전상국, 오정희 대신 그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어. 사상전집처럼 어려운 말이 없고 내가 아는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여서 잘 읽혔어. 특히 누군가가 밑줄을 긋고 빨간 글씨로 주석을 달아놓은 걸 읽는 재미가 가장 좋았어. 대학생들은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구나 싶었거든. 앞으로 나도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그으며 읽어야지, 생각했어. 시간이 갈수록 읽은 책들이 늘어났어. 그럴수록 으쓱해지는 마음도 있었어. 난 읽은 책과 앞으로 읽을 책 목록을 일기장에 쭉 쓴 다음 각각 다른 사물함에 넣고 잠갔어. 나중에 사장 아들에게 돌려줘야 하니까.


하지만 끝내 사장 아들에게 그 책들을 돌려주지 못했어. 그가 한동안 목욕탕에 오지 않았거든. 사장 말이 맞았어. 그가 어릴 때부터 똑똑했다는 것. 책도 많이 읽었다는 것. 또 공부 안 하고 친구들과 술 먹으려 다녔다는 것도. 그런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만 거야. 사장은 여기저기 돈을 싸들고 다니며 수소문을 했지만 찾을 수 없었대. 그가 평소 순진한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불온한 사상교육을 시키다가 사복경찰에게 잡혀갔다는 걸 안 건 그로부터 꽤 여러 날이 지난 뒤였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해서 몸이 많이 상하고 나서야 풀려나온 그를 끌어안고 사장 부부는 어떤 축복을 빌었을까. 혹시 그래서 교회에 갔을까.


그 뒤로 때밀이 형의 뒷담화 내용 중 사장 아들에 대한 부분이 일부 바뀌었어. 돌대가리로 망나니 중에 상망나니, 돈을 써서 대학에 들어가 여자애들 따 처먹고 다닌다는 내용은 그대로인 채 부모 등골 빼쳐먹고 대학까지 가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빨갱이 새끼가 되어 데모한답시고 깝치다가 짭새 새끼들한테 걸렸는데 병신 같은 게 토껴보지도 못하고 잡혀 존나 얻어터지고 개 박살난 등신 새끼라는 내용이 추가되었어.


고문을 하도 받아 다리가 하나가 안쪽으로 반 바퀴나 돌아간다는 그. 수갑에 두 손이 묶인 채 그 고문을 받으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자기는 선배가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하면 그렇게 심한 고문까지는 안 당했을 텐데 미련하게 버텨 몸이 더 상했다며 사장은 눈물까지 흘렸어. 그래도 다행히 불온서적들이 안 나와서 감옥에 안 간 것만 해도 천행이래. 아들이 잡혀가던 날 밤에 집에 형사가 들이닥쳐 샅샅이 뒤졌지만 불온서적 하나 안 나온 걸 보면 아들이 죄 없다는 걸 알 거 아니겠냐고. 불온서적? 그 말을 듣고 내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했어. 그날 밤, 사물함에 보관하던 책 보따리를 난 장깨 자전거 뒤에 싣고 뚝방으로 가서 중랑천에 모두 버렸어. 내 일기장에 있던 목록들도 뜯어내버렸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씩 궁금했어. 사람이 다리가 꺾이도록 고문을 받으면서도 변절하지 않는 그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보따리 안에 있던 그 허름하던 책 몇 권이 사람을 그렇게 바꿀 수도 있나? 사지가 찢기면서도 소신을 바꾸지 않은 사육신이나 유관순처럼 사장 아들을 독하게 만든 그 신념들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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