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욕탕 뽀이 이야기 -19
아무리 낯선 환경이라도 입문기가 지나면 익숙해지게 마련이지. 목욕탕에서의 나도 그랬어.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게으름을 피우고 형의 눈을 피해 가며 책을 보는 요령까지 영악하게 알아갔지. 근데,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게 있었어. 목욕탕 배수구 청소할 때마다 어김없이 짜증이 솟구치는 거야. 이상해. 다른 일은 그냥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배수구 청소만 하면 꼭 짜증이 나더라. 배수구는 탕 전체에 있던 땟물이 최종 모여 배수관으로 빠져나가는 곳이야. 항상 검은 때 덩어리가 끼지. 보기가 안 좋겠지? 그래서 모든 목욕탕의 배수구는 손님들 눈에 안 보이는 구석에 설치되어 있거든. 탕 안엔 습기도 많고 조명도 흐린데 구석에 있으니 더 안 보여. 근데 때밀이 형은 항상 여기를 검사하는 거야. 내가 청소를 덜 했다 싶으면 어김없이 그 배수구에 머리를 박으라고 시켰어. 딱딱한 타일에 머리를 박으니 죽을 맛이지. 그런데 더 힘든 건 배수구 냄새야. 썩는 냄새. 거길 닦는 게 아주 어려웠어. 구멍이 작아 솔이 안 들어가거든. 그래서 칫솔 끝에 휴지를 돌돌 말아 닦아내는데 가끔 휴지가 물에 녹으면서 배수구로 흘러내려가거든. 막히지. 막히면 바닥을 깨야 할 거 아냐? 그 공사비는 때밀이 형이 내야 한대. 그러니 형은 절대 배수구가 막히면 안 되는 거야. 한 번은 손님들이 버린 일회용 때수건이 배수구를 막은 적이 있었어. 공사를 했고, 형이 돈을 물었지. 화가 난 형은 그 뒤로는 배수구 입구에 목욕의자를 쌓아버렸어. 어차피 그렇게 막을 거면 배수구를 굳이 청소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형이 시키니 별 수 있나. 결국 손가락 끝부분에 휴지를 돌돌 말아 구멍에 넣고 좌우로 휘휘 돌려가며 닦는 거야. 그때 손가락 끝에 느껴지던 물컹함이 싫었어. 내가 적응 안 된 게 그거야. 손가락을 넣으면 소름이 돋아. 배수구멍이 꼭 뱀 대가리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배수구 입구를 청소한다고 해도 입구만 닦는 거라 썩은 냄새는 그대로야. 그래서 소독용 크레졸을 붓곤 했어. 하지만 크레졸 냄새를 맡아본 사람이라면 차라리 썩는 냄새가 더 낫다고 할 거야.
청소는 항상 혼자 했으니 나 말고는 듣는 사람이 없지. 그런데도 배수구를 청소할 땐 꼭 욕이 나왔어. 대상도 없이 하는 욕은 결국 나에게 하는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욕은 나왔어. 시발, 지겹다, 지겨워, 짜증 나, 이런 욕을 나에게 했어. 그거야 말로 자학이잖아. 욕이 나오는 걸 어떡해. 욕이라도 하면서 어쨌든 청소를 하긴 하니까. 그렇게라도 견뎌본 거지. 한편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어. 나는 왜 나에게 욕을 할까. 욕을 하게 만든 건 형인데 얻어맞고 쫓겨날까 봐 말을 못 하면서. 이럴 때 내 편을 들어준 사람이 있었어. 내가 휘청거리던 때마다 잡아준 사람. 내가 때밀이 형에게 맞아 눈두덩이 퍼렇게 되었을 때 나보다 더 서러워해 준 사람. 내 열일곱의 멘토.
손님 중엔 밤새 술 마시고 외박하고 아침 일찍 목욕탕으로 오는 사람들이 있었어. 그들은 대부분 남자야. 집에 못 갔으니 속옷이 없겠지? 내게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곤 했어. 때밀이 형은 탈의실 뽀이인 나를 심부름 보낼 수 없다고 했지만, 그런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다들 땡삐 같은 깡패들이라는 게 문제였어. 칼을 들이대고 죽이겠다고 하는데 어떡하겠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한편 돈에 밝은 형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어. 싸구려 양말과 속옷을 떼어다 비싸게 파는 거야. 막상 팔기 시작하자 의외로 잘 팔렸어. 그걸 사는 사람들은 다들 헌 속옷을 버렸어. 난 영업이 끝난 뒤 쓰레기통에서 그것들을 꺼내 비누칠해 빨아 탈의실 바닥에 널었지. 속옷 중 상태가 좋은 것들은 형이 가져 온한 새 비닐봉지에 넣었어. 형은 그걸 구제 장사꾼에게 판댔어. 낡아서 못 파는 것들 중 그나마 상태가 나은 건 형이 가져가고 나머진 버리래. 그럼 그 중 몇 개는 내가 입고 장깨도 줬어. 돈 있는 사람들이 입던 거라 그런지 너무 좋은 거야. 이 팬티 저 팬티를 입어보면 우린 낄낄거렸어.
“야, 빤쓰가 우리 바지보다 더 비싼 거 같다야. 속에만 입기 존나 아까운데 슈퍼맨처럼 겉에 입을까? 킬킬.”
사실 녀석이나 나나 그전까지는 속옷을 못 입었어. 옷도 얻어 입는 형편에 속옷이 다 뭐야. 그냥 맨 몸에 바지를 입었지. 속옷을 입으니 참 좋아. 든든한 누군가가 내 몸을 안아주는 느낌인 거야. 속옷 덕분에 배앓이도 없어졌어. 그래서 사람들이 속옷을 입나 보다 생각했어.
깡패들 중에는 속옷뿐 아니라 셔츠 다림질 심부름을 시키는 두목도 있었어. 형은 이 기회도 놓치지 않고 다리미를 사다가 다림질 장사도 시작했지. 형이 군대에서 배운 다림질 기술을 알려줬어. 두 어깨를 다리고 소매를 가지런히 놓은 다음 다리미가 쭉 지나가면 주름선이 나와. 그다음에 등판과 옆구리를 다리고 마지막으로 단춧구멍을 다리면 된대. 그런데 문제는 나의 다림질을 깡패 손님이 마음에 안 들어하는 거였어. 무조건 세탁소에 가서 다려 오래. 형이 설득하려고 해 봤지만 따귀만 맞았지.
세탁소는 몇 골목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걸어가기엔 멀고 버스를 타기엔 아까운 거리였어. 형은 나더러 빨리 튀어갔다 오라고 하면서도 버스비를 주지는 않았어. 방법이 있나, 두목이 탕으로 들어가는 즉시 셔츠를 들고 세탁소로 뛰어야지. 그러다 보니 세탁소에 도착하면 헐떡거릴 수밖에 없지. 신기하게도 세탁소 아저씨는 나를 딱 알아보셨어.
“너, 목욕탕에서 왔지?”
“네, 맞습니다. 헉헉. 근데 어떻게 아셨...?”
“목욕탕에서 오는 아이는 항상 뛰어 오더구나. 숨찬 거 보고 알았지.”
내가 셔츠를 건네자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내더니 빨대를 꽂아 건네셨어. 다리려면 시간이 걸리니 앉아서 쉬래. 형이 튀어갔다 오랬으니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싶어서 마음이 급했어. 근데 아저씨는 내가 요구르트를 다 마시도록 다림질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시는 거야. 급한 마음에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당장 가 봐야 하니까 먼저 해주실 수 없냐고 여쭤보았어.
“걱정 마라. 삼십 분 안에 가게 해 줄게.”
삼십 분? 형은 셔츠 다림질 하나에 삼분을 넘으면 안 된 댔는데? 급한 마음에 늦게 가면 곤란한 일이 생기니 빨리 좀 부탁드린다고 말했어. 아저씨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웃었어.
“셔츠가 매매상 손님 거잖아. 그렇지? 어제 술 마셨다면 지금쯤 사우나에서 한 잠자고 있겠구나. 안 잔다고 해도 삼십 분 전에 목욕을 끝내진 못할 거다. 그 사람들 주먹이 무서워 때밀이도 너한테 뭐라고 못할 거 같은데? 그 핑계로 여기서 쉬었다 가거라.”
이 아저씨 뭐지? 목욕탕 사정을 다 알고 있잖아. 신기해서 그걸 어떻게 아시냐고 물었어.
“너 전에 일하던 아이도 그랬단다. 여기 오면 무조건 삼십 분 쉬었다 갔지. 네가 일찍 가면 때밀이가 어떻게 생각할까? 전에 일하던 뽀이는 게으름을 폈다고 하겠구나. 혹시 때밀이가 뭐라고 하면 세탁소 아저씨가 바빠 늦게 다렸다고 하렴.”
첫날부터 그 아저씨가 좋았어. 내 편인 것 같아서. 아저씨 말대로 삼십 분을 쉬었지. 아저씨는 나에 대한 이것저것을 물었고 내 얘기 중간중간 자기 얘기도 해 주셨어. 그분도 중학교만 다니고 시멘트 공장, 옷 공장에서 일했대. 어느 날, 오염된 옷을 세탁하러 갔다가 세탁소집 딸하고 눈이 맞았고 결혼해서 물려받았다는 거야. 내 또래의 아들과 그 밑으로 딸 둘이 더 있었어.
셔츠 다림질 가격은 천 원이었어. 그런데 앞으로는 이천 원을 받을 거랬어. 때밀이 형에게 말했더니 날강도라고 화를 냈어. 자기네 동네에서는 팔백 원이라는 거야. 하지만 별 수 있나. 그 동네 세탁소는 거기밖에 없는데. 손님들에게 선불 이천 원을 받아서 세탁소로 뛰어갔지. 그러면 삼십 분간 아저씨랑 얘기도 하고 요구르트도 얻어먹는 거야. 다림질이 다 끝나면 아저씨는 셔츠와 함께 천 원을 내밀었어. 심부름 값 이래. 다림질 이천 원을 받은 이유가 내게 천 원을 주시려고 그런 거야. 괜찮다고, 안 주셔도 된다고 해도 내 몫이라며 주셨어.
“너 이 돈으로 술 먹고 담배 피우면 안 된다. 알았지? 때밀이 퇴근하면 빚은 만두라도 사다 끓여 먹어. 네 나이에 라면만 먹으면 골병든다.”
내가 라면 먹는 걸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몇 있었지만 돈을 주면서 뭐라도 사 먹으라는 사람은 아저씨가 처음이었어. 돈을 받는데 손이 떨리면서 코끝이 무겁게 느껴졌어. 고맙습니다, 인사를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어. 돈을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만두를 사 먹을 수는 없었어. 세탁소 심부름이 자주 있는 게 아니었거든. 그 돈까지 모아 엄마를 갖다 드렸어. 아저씨가 좋으니 세탁소 심부름이 기다려졌어. 내가 가면 아저씨는 항상 같은 질문을 하셨어.
“그래, 요즘은 뭐 하니?”
뽀이가 하는 게 뭐겠어. 손님 맞고 심부름하고 청소하고 자는 거지. 아저씨가 물어올 때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데도 아저씨는 마치 잊었다는 듯 다음 날 같은 질문을 하시는 거야. 근데 이상하지? 내가 목욕탕에서 매일 하는 일 말고 다른 얘기가 궁금하신가 보다, 생각이 문득 드는 거야. 자연히 목욕탕 얘기가 아닌 다른 얘기를 하게 됐어. 요즘 읽는 책 이야기, 지하 다방의 그녀와 데이트 한 이야기, 장깨라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 시간이 지나면서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드릴까 생각하게 됐어.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질문도 하셨어. 어떤 질문은 나를 후련하게도 했고 위로하기도 했어. 내가 엄마 이야기를 할 때 특히 그랬어. 당시 난 엄마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어서 수시로 투정을 했거든.
“아이고, 속상했겠네. 그래도 이 아저씨 눈엔 힘 팔팔 넘치는 열일곱 소년보다 다섯 아이를 어떻게든 키워 보시려고 애쓰시는 어머니에게 더 눈이 가는 걸?”
내가 라면만 먹는다는 말이 걸리셨을까, 어떤 날은 요구르트 대신 동그랑땡이나 전을 내어 주시기도 했어. 또 어떤 날은 냄비에 김치밥을 볶아 내놓기도 하셨지. 세탁을 맡겨 놓고 안 찾아간 옷들 중에 내게 맞을 법한 걸 골라주시기도 했어. 너무 피곤하면 세탁소 의자에 앉아 졸기도 했어. 거기만 앉으면 잠이 왔어. 내가 미처 잠을 못 깨 삼십 분이 넘어가면 아저씨가 나를 자전거 뒤에 태워 목욕탕 앞까지 데려다주시기도 했어. 너무 고마운 분인데 내가 뭐 해드릴 게 있나. 세탁소 마당을 쓸기도 하고 손걸레를 빨아 유리창이며 선반 먼지를 닦았어. 아저씨는 못하게 하셨지만 내가 하고 싶었어. 너무 고마워서. 우리 아버지가 계시면 저분 같았을까, 생각도 했어.
“저녁 여덟 시 넘어 목욕탕에 오세요. 저 때 엄청 잘 밀어요!”
아저씨는 내게 많은 걸 주셨어. 친절과 격려, 설움을 대하는 방법, 심지어 연애에 대한 조언까지. 그중 아직도 내가 고맙게 여기는 건 클래식 음악이야. 아저씨의 세탁소 구석에 제법 큰 카세트라디오가 있었어. 거기에선 항상 내가 못 들어 본 분위기의 음악이 나왔어. 가요나 팝송, 뽕짝이 아닌 음악.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비롯해 여러 악기들이 동시에 또는 각자 연주를 하고 나면 아나운서가 그 음악이 뭔지 이야기하고 또 비슷한 종류의 다른 음악이 나왔지. 아저씨 말로는 클래식이라고 했어. 목욕탕에도 작은 카세트가 있기는 했지만 저런 음악은 나온 적이 없었어. 형이 가끔 트는 가요 테이프 몇 개가 전부였지. 라디오도 뉴스와 노래가 나오는 걸 틀었기 때문에 난 저런 방송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어. 내가 관심을 보이자 아저씨가 서랍에서 노란색 테이프 하나를 꺼내시더니 맨 앞부분으로 감아서 주셨어.
“한 번만 들어보렴. 만약 네가 이 음악이 좋게 느껴진다면, 너도 나처럼 음악을 좋아하게 될 거야.”
테이프를 옷장에 잘 넣어뒀다가 형이 퇴근하자마자 바로 틀었어. 그리고 정말. 5초가 지나기도 전에 그 음악이 좋아졌어. 2,3분쯤 들었나? 난 다시 처음으로 되돌려 들어봤어. 그래도 좋았어. 뭐랄까, 막 봄이 온 것 같은 인상의 음악이었어. 봄이 온 고향 뒷산 계곡에서 듣는 느낌이랄까. 바이올린들이 경쾌한 상승곡선을 짧게 연주했다 다시 기본음으로 돌아오면 나무에 새싹이 피어나듯 하프 선율이 따라오는 음악. 헨델의 하프 협주곡 B플랫 장조. 봄이 와 막 얼음이 녹고 계곡엔 졸졸 물소리가 날 것 같은 음악이었어. 하프가 통통거리며 선율을 이끌면 바이올린들이 경쾌하게 상승시키고 저 아래에서는 첼로인지 뭔지 모를 저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둥둥거리며 따라와. 기분이 좋아지고 상쾌해지는 음악이었어. 아저씨는 내가 이 음악 좋아할 걸 어떻게 아셨을까. 소리를 키우고 욕탕 문을 연 채 청소를 했어. 여느 때와 같은 청소였지만 그날은 배수구를 닦으면서 더 이상 욕을 하지 않았어. 음악을 듣느라. 그날도, 그다음 날도 그랬어. 욕을 하지 않는 날이 이어지자 그동안 욕을 했던 게 부끄럽게 느껴지는 거야. 일을 다 마치고 엎드려 책을 보면서도 그 음악을 들었어.
https://www.youtube.com/watch?v=MJEE2eBqZfc( https://www.youtube.com/watch?v=MJEE2eBqZfc )
아저씨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나보다 더 반가워하셨어. 그러면서 이번엔 다른 테이프를 주셨어.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어. 이 음악도 좋았어. 빰빰빰빰 하고 금관악기가 네 박자를 내뿜으면 나머지 악기들이 꽝, 하고 받는 시작 부분이 귀에 꽂혔어. 기회만 되면 그 테이프를 들었어. 듣다 보니 하루에 서너 번도 더 들었어. 들으면 들을수록 전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선율이 들리는 데다가 내 마음속 어떤 체증을 밀어 내주는 통쾌함도 있었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더니 아저씨 말이 그 음악이 원래 광고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음악이래. 그다음부터는 세탁소 갈 때마다 음악이야기를 했어. 특히 슈베르트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 키도 작고 못생기고 돈도 없는 사람이었다고. 먹을 게 없어서 며칠을 굶기도 했대. 외모에 자신이 없어서 좋아하는 여자한테 고백도 못했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인데도 정작 피아노 살 돈이 없어서 남의 피아노를 빌리거나 상상으로 음악을 만들었대. 이름이 알려지면서 돈을 벌기 시작해 끝내 피아노를 샀지만 몇 달 쳐 보지도 못하고 병으로 죽었대. 가도 가도 불행이 끝날 것 같지 않은 내 처지와 비슷한 것 같아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을 졸였어. 그래도 난 굶지는 않으니까 어떻게든 때밀이를 잘 배워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아저씨는 클래식 라디오 주파수가 93.1이라는 것도 알려주셨어. 그전까지는 주로 두 시의 데이트 같은 팝송을 들었는데 아저씨 덕분에 영화음악이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됐어. 아저씨의 서랍에는 클래식 테이프가 백 개도 넘었어. 그 많은 음악을 다 들어봤대. 놀라운 건 클래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잠깐만 들어도 제목을 아신다는 거야. 그 뒤로 틈이 나면 음악을 듣고 지금까지도 클래식 감상을 취미로 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 아저씨 덕분이야. 나를 부려먹고 욕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던 목욕탕에서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신 유일한 분. 이 세상 어딘가에 천사가 정말 있다면 아마 그런 모습으로 계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