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욕탕 뽀이 이야기 -28
목욕탕 문을 닫자마자 뛰어내려와 택시를 타고 경양식집으로 갔어. 십 분이 채 안 걸렸어. 그녀 말대로 요금이 오백 원이었어. 왕복이면 천 원인데... 택시를 타면 그야말로 남는 게 없을 것 같았어. 버스는 110원이지만 대신 제시간에 도착을 못해. 도착하자마자 바로 튜닝하고 노래를 시작했어. 가수처럼 잘 부를 재주가 없으니 나름의 창법을 고안해야 했어. 소리 지르지 않고 읊조리는 창법. 대신 기타 반주를 좀 더 많이 넣는 거야. 그런데 막상 사람들을 의식하니 호흡도 가쁘고 가사도 틀리고 기타에 신경 쓰다 보니 노래도 안 됐어. 이렇게 노래를 해도 되나. 이러다 쫓겨나는 거 아냐? 걱정이 됐어. 이런 내가 불안해 보였는지 사장님이 부르더니 커피잔에 야채수프를 담아 주셨어.
“떨지 마. 너는 가수가 아니야. 손님들도 어차피 네가 모르는 사람들이야.”
다른 사람보다 사장님이 가장 신경 쓰였는데 그분이 괜찮다고 하시니 마음이 좀 놓였어. 내 마음대로 하자고 생각했어. 노래하다 힘들면 로망스나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연주곡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힘든 첫날을 때웠어. 아홉 시 반이 넘으니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웨이터들이 청소를 시작했어. 나도 같이 청소했어. 테이블보를 모두 걷은 다음 의자를 테이블 위에 뒤집어 올리고 바닥을 쓸고 마포로 닦는 거야. 다 닦으면 의자를 내린 뒤 테이블과 의자를 손걸레로 닦고 새 테이블보를 덮은 다음에 후추며 소금이 들어 있는 양념 통을 장식해. 이어서 DJ박스 안 기계들을 닦고 내친김에 화장실 변기까지 닦고 있는데 마침 사장님이 들어오셨어.
“청소는 쟤들이 하니까 넌 안 해도 돼.”
“괜찮습니다. 저 청소 잘 합니다! 헤헤.”
“그래? 그럼 밥이나 먹고 가라.”
사장님이 고마워서 청소라도 한 건데 덕분에 밥을 얻어먹게 되다니! 배고픈데 잘 됐다. 팔다 남은 돈가스며 함박스테이크가 큰 쟁반에 얹혀 나왔어. 집에 갈 사람은 가고 주방일 보는 분, 나, 사장님, 또 다른 두 명이 테이블에 앉아 먹기 시작했어. 꿀맛이었어.
“근데... 주현이 너 음악도 좀 아니?”
“라디오에서 들은 거... 밖에 잘 모릅니다.”
“그래? 좀 들어보자. 가서 한 곡만 틀어 봐. 손님들 없으니까 볼륨 좀 키워.”
한 곡 만이라... 한 곡 만이라면 이럴 때 딱 떠오르는 곡이 있었어. 아니, 이럴 때뿐 아니라 항상 떠오르던 곡. 작년 중학교에서 같이 기타 치던 친구가 들어보라고 준 테이프에 있던 노래. 다른 노래보다 유독 그 노래가 나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콩닥거렸지. 하도 들어서 테이프가 늘어날 지경이던. 나도 어서 기타를 연습해서 그 사람처럼 쳐 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하던 그 노래. 딥퍼플의 Child in time이었어. 심벌과 기타가 동시에 여린 듯 그러나 엄숙하게 딘딘딘, 하고 첫마디를 메기면 건반이 똥또도도도도동 가벼운 하강 화음으로 받아. 그렇게 몇번씩 주고받으면서 주제가 약간의 변형을 거쳐 조금씩 고조되면 하드록이라기엔 다소 감성적인 보컬이 쓰윽 밀고 들어오지. 그런데 이 보컬이 마음 밑바닥을 훑어. 보컬에 익숙해지다 보면 이번엔 드럼과 건반이 본격적으로 붕붕거리기 시작해. 그것들이 뒤엉켜 절정을 이루다 사라지면 솔로 기타가 훅 솟아오르는데 여기부터가 제대로야. 보컬의 흐느낌을 뒤따라가면서 건반과 기타가 빠른 패시지로 치닫다 보면 다시 처음으로 오지. 그리고 엄숙하게 끝나. 이 노래의 매력은 보컬의 흐느낌이야. 처음에 들었을 땐 마치 아이를 낳는 소리라고 생각했어. 전체적으로 요란하거나 시끄러운 리듬은 없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강렬한 파도를 경험하는 느낌이 드는 곡이야. 십 분이 넘으니 라디오에선 거의 안 틀어주는데 한 번 듣고 나서 바로반했어. 누가 내 마음을 흔들어 묵은 때를 털어주는 느낌이었거든.
“주현인 이 음악이 왜 좋니?”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가 다른 노래하고 좀 다릅니다.”
“가사를 아니?”
“사전을 찾아보긴 하는데... 뜻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그래, 이 노래는 가사가 빚어내는 분위가 독특해. 밀란 쿤데라나 알베르 까뮈 느낌이 나거든. 요즘 말로 하면 시크하다, 쿨하다고 해야 하나? 절대 말랑말랑하거나 달달하지 않아. 선언적이고 직설적이지. 비굴하거나 돌려말하지 않고 내 쏘는 가사가 기존의 노래들을 깨부순다고 해야 하나? 도발적인 가사가 꽂혔어.
Sweet child, in time, you'll see the line.
The line that's drawn between Good and bad.
<귀여운 아가야, 너는 선과 악 사이에 그려진 선을 보게 될 거야.>
See the blind man Shooting at the world.
<장님이 이 세상을 쏴버리는 걸 보렴.>
얼마나 멋진 가사니. 이 가사 속 아가는 마치 나를 말하는 것 같았어. 목욕탕 오기 전에는 세상 물정을 모르던 나였는데 몇 달 만에 선과 악을 적나라하게 경험하게 되었잖아. 선이 장깨와 세탁소 아저씨라면 악은 때밀이나 목욕탕 주인인 셈이었어. 그전까지 난 모든 인간이 선하다고, 적어도 원래부터 악하지는 않다고 배웠어. 세상엔 사람을 교화시키는 많은 장치들이 있잖아. 교회, 절, 성당 같은 종교와 심지어 교도소까지. 악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회심을 하거나 정 안 되면 갇히게 될 테니 세상엔 선한 사람이 넘칠 거라고, 그래서 세상은 아름다운 거라고 배웠잖아. 근데 내가 경험한 목욕탕은 속임수와 착취가 일상이었어. 구실은 언제나 돈이야. 속여서라도 더 비싸게 많이 팔아야 해. 그렇게 번 돈과 성실하게 번 돈이 같은 대접을 받는 게 이상했어. 내가 한 달을 고생해서 받는 육만 원과 형이 나를 때려가며 번 육만 원이 차이가 없다니. 내 한 달 노동과 형의 이틀 치 노동이 화폐가치로 보면 똑같은 거야. 고귀함과 추함의 경계가 돈에는 없었어. 그래서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된다고 하는 건가? 부당하게 느껴졌어. 정직하고 고결하게 번 돈만 가치가 있다는 논리는 장발장 같은 옛날 책에나 나오는 건가? 지혜가 넘치는 경전이라는 것들이 한낱 목욕탕 뽀이도 구제하지 못하고 있었어. 웃기는 일이지. 결국 세상을 구하는 건 철학자나 종교인이 아니라 장님이라고 노래하는 것 같았어. 설득이나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총으로 빵! 그래서 한 방에 해체시키는 해결사. 결국 파괴밖에는 방법이 없는 걸까. 우울하면서도 파격적인 가사가 묘하게 끌렸어. 그때부터 난 그런 음악에 빠졌던 것 같아. 특히 핑크 플로이드로 대표되는 프로그레시브 락 음악에. 삐딱해진 거지. 마침 사장님도 그런 음악을 좋아하신댔어. 목욕탕 청소만 아니면 오래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지만 음악 이야기를 사장님과 나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재미있었어.
다음 날, 세탁소 심부름 다녀오는 길에 하늘색 셔츠와 노란색 넥타이를 샀어. 장깨에게 자전거도 빌렸어. 택시비는 비싸고 버스는 돌아가니 결국 대안은 자전거밖에 없었어. 그걸 타고 부랴부랴 가면 땀이 쏟아졌어. 재빨리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씻고 새로산 셔츠로 갈아입고 노래를 했어. 노래를 하면서 알게 된 것도 있어.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 노래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거. 그들은 함께 온 사람들과 즐겁게 식사하러 온 거지, 내 노래를 들으러 온 게 아니었던 거야. 내가 노래를 시작하면 내 쪽을 한 번 흘깃 보는 게 다였어. 내가 괜한 걱정을 했던 거야. 일부러 목청을 크게 할 필요도 없었어. 그들은 식사를 하러 온 거니까. 부담이 줄어드니 노래가 한결 편했어. 가끔 어떤 손님은 신청곡을 부탁하기도 했어. 대표적인 노래가 정태춘의 ‘촛불’이야. 처음에 난 그 노래를 부를 생각이 없었어. 근데 정태춘의 다른 곡을 부르면 다들 ‘촛불’도 불러 달래. 경양식집에 오면 그 노래가 떠오르는 모양이야. 또 다른 노래는 배호의 ‘누가 울어’였어. 주로 연세 지긋한 손님들이 신청했어. 신청곡은 손님이 뜸할 때 들어오는데 그걸 부르는 날엔 DJ박스 신청곡 박스에 팁이 놓여 있곤 했어. 어떤 사람은 몇 천 원을 주기도 했어. 의외의 수입이었어. 난 그분들을 기억했다가 재방문하시면 자리에 가서 인사를 드렸어. 어떤 날은 그분들 자리에 가서 기타를 치기도 했어. 그렇게 해서 단골이 된 분들이 생겨났어. 사장님도 흡족해하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