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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Dec 02. 2019

금지된 사랑을 들켰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변하나?

어느 목욕탕 뽀이 이야기 -29

여탕 누나는 때밀이 형의 동거녀에게 머리채를 잡힌 소동 이후로 출근을 안 하더니 끝내 그만뒀어형과 비밀스러운 관계를 이어 온 게 탄로 났잖아그 일로 형은 동거녀와 누나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했는데 결국 임신한 동거녀에게 돌아가기로 했대그럼 누나는 어쩌지걱정됐어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누나를 욕했어형이 가정이 있는 걸 뻔히 알면서 꼬여내어 바람피우게 했다는 거야특히 카운터 이모가 목소리를 높였어그분도 남편이 바람나 딴살림을 차렸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러신가그분은 말끝마다 거 보라고남의 가정을 파괴해 피눈물 나게 했으니 자기도 천 벌 받을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어근데 이해가 안 갔어사랑은 둘이 같이 하는 거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잖아근데 왜 여자를 더 비난하지내가 형과 누나의 대화를 들어서 아는데 누나가 형을 꼬여낸 게 아니야그 반대지누나는 술이 취하면 형의 동거녀 얘기를 꺼내며 울었거든오빠는 여자 친구가 이미 있는데 우리 이렇게 만나도 되는 거냐고그럴 때마다 형이 그랬어그 미친년이랑은 곧 헤어질 거라고난 니가 좋다고동거녀와 누나 사이를 오간 건 형이야근데 형은 그대로 일을 하고 누나는 그만둬야 돼동거녀가 누나 머리채를 잡은 것도 그래그녀를 배신한 건 누나가 아니라 형이잖아그런데 사건의 당사자인 형은 그대로 두고 피해자라 할 수 있는 두 여자들이 싸우다니두 여자가 싸우는 동안 형은 살짝 빠져 있으면 되는 거야형은 그 점을 이용하는 것 같았어누나가 그만둔 일을 듣고 형을 나무라러 온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거든. 

허헛... 제가 이번에 실수를... ... 했습니다일 잘하길래 불쌍해서 잘 대해줬더니만... 걔가 그렇게 달라붙더라고요허허...” 

사장도 동의하는 것 같았어. 

얌마옛날이랑 달라요즘은 조심해야 해남자가 아무 데나 쑤시다 잘못되면 코 꿴다다 뜯기고 불알 두 쪽만 남는 수가 있어이상한 년들이 좀 많아야 말이지.” 

어쩜 저렇게 입에 발린 거짓말을 할까내가 다 들었는데누나 앞에서 형은 늘 동거녀 흉을 봤거든그녀와는 영 맛이 안 난다고근데 넌 사람을 쪽쪽 빨아들인다고그러면 누나는 간드러지게 웃으며 저엉말하고 되묻곤 했거든형수님이랑 헤어질 테니 자기랑 살림 차리자고 조르던 형이었어근데 이제 와서 누나를 꽃뱀 취급하다니사랑이란 게 얼마나 덧없니. 

그런데 진짜 문제는 형의 속마음이었어동거녀가 싫은 거야오빠들이 찾아와서 동생 눈에 눈물 나게 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협박해서 할 수 없이 다시 살겠다고 했지만여전히 여탕 누나를 좋아한 거야내가 노래를 갔다가 열 시 반쯤 목욕탕으로 돌아오면 탈의실에 형과 누나가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곤 했어누나는 목욕탕 근처에 방을 얻어 놓고 혼자 살았어형은 가끔씩 나더러 일이십만 원을 찾아오라고 해서 생활비로 대 주면서 가끔씩 퇴근길에 누나 방에 들러 갔어형이 너무 안 오면 누나는 형의 퇴근 무렵에 목욕탕으로 찾아왔어그런 날은 형이 화를 냈어내가 알아서 갈 텐데 왜 찾아오냐고그럴 때마다 누나는 훌쩍거렸어그럼 형은 누나와 탁자에서 술을 마시면서 달래거나 정사를 나누고 나갔어그러면서 나에게는 입단속을 시켰어어떤 날은 누나가 낮시간에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어형이 화를 더 냈어그 불똥은 내게도 튀었지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는 거야심지어 월급날이 지났는데 아무 말 없이 안 주는 거야일주일이 지나도록 안 주길래에 더 기다릴 수 없어서 퇴근하는 형에게 말을 꺼내보았어. 

그 새끼징징대긴그거 깔아놓은 거야임마.” 

깔아놓는다고일정 기간의 월급을 보증금처럼 잡아두는 걸 당시엔 깔아 놓는다고 표현했어구두 공장도 청바지 공장도 한 달 치 월급을 깔아놓는다고 했지그 달치 월급을 받고 바로 다음 날부터 안 나오는 경우를 예방하려고 담보로 잡아 놓는 거래근데 나는이제 와서 월급을 깔아 놓는 게 이해가 안 됐어. 

얌마니가 언제 토낄지 모르는데새꺄이번 달 월급 받고 도망가 버리면 내가 좆되잖어새꺄너 같음 주겠냐?” 

내가 경양식집에 노래하러 다닌 일 때문에 화가 났나그래도 서운했어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다니내가 그동안 충성한 게 얼만데걱정 마시라고난 갈 곳도 없고 때밀이도 배워야 하니 꼭 돌아오겠다고 해도 형이 들은 척 안 해그럼 월급의 반이라도 달라고어머니 갖다 드려야 한다고 해도 요지부동이야그나저나 당장 장깨 돈을 갚을 일이 문제였어애원하는 표정을 지으며 한 번 더 부탁을 해 보았어. 

그럼 만 오천 원이라도 먼저 주시면...” 

이 시팔노무씨애키가 짜증 나게콱 죽여 버릴라안 꺼져?” 

울컥했어정말 해도 너무하는 것 같았어.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제가 일 안 한 걸로 월급 달라는 것도 아니고... 

하는 소리와 함께 휘청거리다 거울 앞으로 넘어졌어거울 앞에 있던 스킨로션들이 와르르 굴러 떨어졌어. 

"쉽새끼은혜도 모르는 새끼가싸가지 없이꺼져시발놈아." 

형은 그대로 퇴근해 버렸어일어나면서 거울을 보니 뺨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코피가 났어눈에 불이 확 켜지는 기분이었어죽여 버리고 싶다사물함에 숨겨놓은 잭나이프가 떠올랐어그를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끓는 주전자 같던 울분이 조금 가라앉았어그래나도 널 해칠 수 있다마음만 먹으면두고 보자이를 악물었어나란히 서면 형은 나와 비슷한 덩치야같이 싸우면 상대가 될지도 몰라내가 형에게 맞는 걸 볼 때마다 장깨는 혀를 찼어. 

병신아왜 맞냐새꺄넌 깡이 없는 게 문제야그럼 계속 얻어터져라으이구!” 

맞아형은 일이든 싸움이든 죽기 살기로 하는데 난 머뭇거리거든어린 내가 윗사람에게 대들어도 되나형이 월급을 주는데대드는 건 너무 무례한 건 아닐까고민하는 거야이런 정신 상태로 무슨 싸움을 하겠어내가 겁먹고 당하기만 하니까 형이 나를 함부로 대한다는 생각도 들었어얻어맞을 때마다 숨겨 놓은 칼을 떠올리는 걸로 혼자 위안 삼고 넘어갔잖아그러면 뭐해형은 내가 칼이 있는 것도 모르는데형이 아무리 무서워도 밟히면 꿈틀 한다는 걸 보여줬어야 했다는 생각도 들었어형 입장에서 함부로 대해도 되는 아이라는 인식을 준 건 내가 겁을 먹고 참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아무리 월급 받는 관계지만 폭력까지 당연한 건 아닐 거야경양식집 사장님이라면 날 이런 식으로 대하진 않을 텐데결국 월급은 못 받고 경양식집에서 받은 주급과 비상금을 합쳐 장깨 돈을 갚고 나니 돈이 하나도 안 남았어월급까지 받았으면 장깨를 포장마차 데려가 뭐라도 사 주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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