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최소한 어제까지는 오늘 수업할 내용을 미리 사이트에 등록해 놓아야 했다.
미리 가상의 학급을 만들어 놓고 수업자료를 올려 놓았으니 오늘 날짜로 복사만 하면 되는데...
휴일인 어제, 로그인이 안 되거나 시간이 많이 걸렸다.
로그인이 되어도 자료 등록이 안 되는 일이 잦았다.
아직 개학 전이 학생들이 굳이 이 시간에 접속할 리는 없겠고
나같은 교사들이 다 붙어 있다는 말인데...
오전에 안 돼서 오후에... 또 안 돼서 저녁에... 또 안 돼서 자정 가까운 시각에... 또 안되어 오늘 새벽 5시에 겨우 했다.
그나마 5시에라도 했으니 망정이지. 9시 가까운 시각에 했다면 등록도 못했을 것이다.
사이트에 들어왔는데 아무 자료도 없으면 아이들은 얼마나 황당할까. 아니지, 우리 반 아이들 같으면 환호를 했겠네. ㅋ
학교에 조금 일찍 나가면서도 불길했다.
아침 9시면 아이들이 접속을 할 텐데 서버가 버텨줄까?
역시나...
9시가 되니 아이들로부터 전화가 오시 시작했다.
- 선생님, 서버 터졌네요. 클릭을 해도 멈춰 있어요.
- 아이디, 비번 까먹었어요. 다시 가입할게요.
(이 경우 우리반 수강생이 중복되어 숫자가 늘어난다. 실제 학생 수보다 수강생 숫자가 많으면 출석률이 100%가 안된다. 결국 일일이 확인해서 수강취소를 해줘야 한다)
- 겨우 로그인 했어요. 뭘 클릭해야 되나요?
PC화면과 모바일 화면이 메뉴배치가 달라 설명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내가 버벅대자 아이들이 먼저 말했다.
"에이, 걍 있어 보세요. 제가 아무거나 막 눌러 보죠, 뭐."
역시. 역시 IT에 익숙한 아이들이라 그런지 잠시 뒤 해결했다는 연락이 쏟아졌다. 출석율 100%. 정말 뚝딱.
얘들아, 너희들은 다 계획이 있구나!
부모님들도 연락을 해오셨지만 내용은 조금 달랐다.
- 아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않고 돌아다녀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ㅠㅠ)
- 과제는 어떻게 확인하실 건가요?(등교할 때 보내시면 된다)
- 이런 식으로 공부해도 효과가 있을까요?
아이들은 방법을 묻고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공부 태도를 염려했다.
아이들아, 너희 부모님의 염려를 너희들이 이해한다면...
어떤 아이는 엄마가 내게 전화해서 방법을 묻는 도중에 먼저 방법을 찾아내고 "엄마, 알아냈어!" 외치기도 했다.
아이들은 인터넷 환경을 소화하는데 동물적인 감각이 있는 건 아닐까.
아이들의 뇌 속엔 정말 CPU 반도체가 들어 있을지도 몰라.
학부모님께서 저에게 전화,문자 등으로 문의해주신 질문을 요약, 정리해드립니다.
● 아이가 사이트에 들어가면 선생님 얼굴 보고 화상 수업하는 게 아니었나요?
- 죄송하지만 아닙니다. 화상 수업하는 선생님들도 계시다고 들었습니다만 우리 학교는 아닙니다. 실시간 화상 수업은 고해상도 영상 데이터가 오가야 하는데 이 경우 서버에게 부담이 될 것이 염려되었습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제가 아이들이 할 것들(참고 영상, 그림, 과제 지시 안내문 등)을 사이트에 등록해 놓고, 아이들은 그걸 클릭해서 본 뒤 제시 된 과제를 하는 방식입니다.
● 그럼 꼭 아침 09:00에 시작할 필요는 없네요?
- 맞습니다. 규칙적인 생활 태도를 기르시려면 시간을 정하셔도 됩니다만 아침에 동시에 접속하면 서버가 불안정할 수 있으니 오후에 공부해도 됩니다. 다음날 해도 되고요.(7일 안에 하면 인정됩니다. 혹시 가정의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가 고장이 나서 7일 이상의 수리가 필요한 경우, 저에게 연락해주시면 나름의 방법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 점심시간은 몇 시인가요?
- 따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다만 효율적인 학습을 위해서는 중간에 적당한 휴식을 두는 게 좋겠습니다.
● 아이가 컴 앞에 앉아있고 자꾸 돌아다녀요. 어떡해요ㅠ
- 아이고, 그 녀석 참... ㅎ 제 마음 같아서는 당장 쫓아가서 녀석을 앉혀놓고 싶습니다만 온라인 수업의 특성 상... ㅠㅠ 나중에 개학하면 제가 혼내줄 테니...ㅋ 온라인 수업 기간 동안에는 부모님께서 잘 달래서 컴 앞에 앉혀 주세요.(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봐. 이따가 맛있는 거 해 줄게~ / 힘들지? 그럼 조금만 쉬었다 하렴. 그래도 생각보다 아주 잘 하고 있는걸?) 공부가 중요하다지만 혼내면서까지 시킨다면 아이와의 관계가 나빠질까봐 걱정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곧 다가 올 사춘기... 더 힘드실 수 있어요ㅠㅠ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와 부모님의 관계를 해치는 선택은 하지 말아주세요.
● 아이가 온라인 학습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 했다고 게임을 하려고 해요. 어떡해요?
- 녀석이 온라인 학습에 특화된 천재성을 지녀서 빨리 마쳤다면 기쁜 일이겠네요ㅎ 흐음... 아이 마다 속도와 과제 완성도 기준이 제각각 달라서 어떤 아이는 하루 종일 하고(모든 아이가 이러면 좋으련만) 어떤 아이는 5분 만에 휘리릭 해치웁니다.(부모님 속터지는 건 신경 안 쓰지요ㅠ) 아이의 기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실에서는 제가 일정한 기준을 놓고 감독을 하지만... 그 기준을 부모님께서 정하시기가 쉽지 않지요? 제가 드릴 말씀은 <가능하면 아이를 설득해서 적당히 타협하시라>는 겁니다. 아이와의 관계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 주세요. 고학년은 아이의 자아가 강해지는 시기라서 힘으로 억압하면 학습효과가 급격히 떨어지거든요. 이 기회에 아이 스스로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키우는 연습을 하게 유도해 보세요.
● 아이가 벌써 다 했다길래 다시 한 더 하라고 했어요. 괜찮나요?
- 온라인 수업이므로 여러 번 반복해도 됩니다. 다만 그래서 아이가 앞으로 온라인 업을 더 지겨워한다면요? 아이는 학습을 싫어하게 됩니다. 앞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갈 길이 먼데 지금부터 학습을 싫어하면 안 되겠지요? 지금의 온라인 수업에서 부족한 점은 아이가 등교하면 보완할 테니 부족해 보여도 야단치지 마시고 믿어 주시고 격려해주세요(우리 딸, 생각보다 컴퓨터를 잘 다루네? / 우리 아들, 게임만 좋아하나 했더니 온라인 공부도 제법 잘 하네? 엄마가 선생님께 알려드려야 겠다!)
● 수업 내용이 너무 쉬워요. 한 시간 도 안 돼있는데 다 했다고 놀기 시작하네요. 이런 식으로 개학하면 아이들 실력이 늘어날까요?
- 학년 첫날 수업은 원래 쉽습니다. 본격적인 공부 대신 오리엔테이션 성격이거든요. 더구나 온라인 개학이라서 아이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가볍고 쉬운 학습을 구성했습니다. 며칠 간 적응이 되면 본격적인 수업을 하게 됩니다.(아이들은 힘들어지겠네요 ㅠ) 또 원래 학교에서도 하루 종일 공부만 계속하지는 않습니다. 수학 같은 머리 아픈 공부를 하면 다음 시간엔 체육을 넣어서 마음껏 뛰게도 해주거든요. 그런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 아이가 힘들고 지루하다면서 딴짓을 해요. 잔소리 하다보니 저도 지치네요. 어쩌면 좋나요?
- 당연한 반응입니다. 교실에서도 아이들은 그러거든요. 뭔가를 배우는 건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어른이라면 참겠지만 아이들은 그러지 못해요. 이건 성장 과정에서 보이는 모습입니다. 야단치지 마시고 잠시 쉬게 해주세요. 저도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다보니 차라리 어서 등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교실에서는 말로 하면 되는데 온라인 수업은 일일이 영상을 만들어가 문자로 써야 해서 너무 힘들어요) 이렇듯 교사들은 학교에서, 학부모님은 가정에서 참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지요? 하지만 지금 온라인 개학에서 가장 힘들고 당황스러운 입장은 우리 아이들이 아닐까요? 우리 반 아이들이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온라인 공부 좀 덜 했다고 야단까지 맞을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아이에게 잔소리하면서 부대끼는 시간 만큼 나중에 아이와 친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지금 이 시간에 가장 힘든 건 <아이들이다!>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기운을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