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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n 30. 2015

1학년 아이가 엄마를 이해하는 방법

1학년 아이들.

아침이면 학교에서 만나자마자 쪼르르 달려와서는 뭔가 끝없이 이야기를 해댑니다. 우리 개가 강아지 여덟 마리를 낳았다요. 학교에 데리고 올라면 몇 달 더 커야 된대요. 어제 우리 뒷산에 불나서 소방차가 왔었다요. 소방차 소리가 엄청 컸어요. 내일 우리 언니 생일이어서 치킨 먹는다요. 맛있겠죠?


제가 일일이 답을 할 사이도 없이 자기들 이야기를 한바탕 쏟아 놓고는 방금 무슨 일 있었나 싶게 놀던 놀이를 계속 이어가지요.



그런데 오늘 수림이의 이야기는 제법 길군요. 선생님, 있잖아요. 으하하. 오늘 아침에 엄마가 춥다고 장갑을 꺼내 줄라 그랬단 말예요. 그런데 장갑을 강아지가 물어뜯었단 말예요. 으하하. 그래서 다른 장갑을 꺼낼라고 그랬단 말예요. 으하하. 그런데 장갑이 서랍 맨 아래 있단 말예요. 하하하. 그런데 엄마가 서랍이 안 빠지니깐 쎄게 잡아 땡겼단 말예요. 하하하. 그런데 그만!!! 제 이마를 거따가 박았단 말예요. 으하하. 그래서 엄마가 왕파스를 붙여줬단 말예요. 하하.

 

그래서 이마에 자기 발바닥만 한 왕파스를 붙이고 왔던 거군요. 이마를 슬쩍 만져주니 혹이 난 건 아니군요.

음... 요 녀석, 저 왕파스 붙이고 싶어서 엄살 꽤나 떨었겠는데요?


아이고, 수림이 많이 아팠겠네. 아유, 하하하. 왕파스 붙여서 안 아파요. 엄마가요. 이따가요. 돌봄 끝나고 집에 가면요. 맛있는 거 해 준대요. 으하하.


세상에서 가장 엄마랑 가장 친한 아이, 수림이. 어떻게 키우면 아이가 엄마를 저리도 좋아하고 신뢰할까요.


아침마다 선생님에게 엄마랑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수림이. 곧 그림일기를 쓸 때 엄마를 예쁘게 그려야 되는데 잘 안 그려져서 속상하다는 수림이. 학교 끝나고 엄마가 데리러 오면 가느다란 목소리로 엄마를 크게 부르며 달려가는 수림이. 남자 친구들이 연필을 막 빌려가고 늦게 줘도 눈만 흘기고 때리지는 않는 수림이. 그러면서 너 다음엔 안 빌려준다! 큰 소리도 치는 수림이. 내가 공부시간에 책을 엉뚱하게 펴서 다른 아이들의 놀림을 받을 때에도 야, 니네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돼! 하고 내 편을 드는 수림이. 꽃망울 가득한 마당가 자두나무 아래에서 놀다가도 내가 퇴근길 수림이네 집을 지나갈 때면 쏙 숨었다가 잠시 뒤, 다시 고개를 쑥 내밀고 선생님! 하고 부르는 수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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