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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n 24. 2015

1학년 아이들이 칭찬을 이해하는 법


힘자랑을 하고 싶었을까, 내려 놓은 의자를 책상 위에 번쩍 들어 올려 놓았다. 이렇듯 가녀린 1학년 아이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책걸상을 새것으로 교체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새 책상이 올 테니 자기 책상 속 물건을 꺼내고 복도로 내 가야 한다고 말하니 8명의 아이들 대부분이 아이가 책상이 무거워서 못 들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아이고, 선생님이 우리 반 책상 다 들면 아주 힘들겠는 걸 하며 엄살을 떨어보았다.




자기 책상을 들어보려다가 무거워 포기한 어느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 이 책상이 너무 무거워서 준희랑 호준이밖에 못 들겠어요. 책상이 무거워 못 들겠다던 준희, 호준이는 방금 전 까지도 아무 생각 없어 보였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금세 표정을 바꾸며 자기들이 해주겠다며 나선다. 난 약간 걱정스러운 척을 하며, 책상이 무거울 텐데 할 수 있겠어? 그러는데 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네!라고 크게 답하더니 아이들 책상으로 가서 그냥 살살 밀어도 잘 움직이는 책상을 아예 가슴 위까지 번쩍 든다. 그래도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책상이라, 아이들은 가슴 위까지 올렸다 금세 다시 떨어뜨린다. 살살 밀어도 된다고 내가 말을 해 보지만 아이들은 연신 들어서 옮기려 애쓴다.

그러는 중간중간 다른 아이들은 표정을 세심하게 살핀다. 아이들을 의식해서다.


결국 두 아이도 금세 지쳐 떨어지고 내가 끌어다 복도에 놓으면서, 와, 이거 진짜 무거운데? 준희, 호준이가 세긴 세구나 하고 한 마디를 하니, 다른 아이들 몇이 두 아이에게 맞아, 너네 정말 선생님만큼 힘이 세구나하고 칭찬을 한다. 그 말이 끝나자 두 아이는 지친 표정을 금세 감추며 다시 복도로 나오더니 내가 이미 다  정리해 놓은 책상과 나란히 짝 맞춰 있던 의자를 빼서는 번쩍 들어서 책상 위로 올려 놓는다. 힘자랑을 더 하고 싶은 것이다. 의자를 책상 위에 올리면 다른 아이들이 지나갈 때 떨어지면 다칠 수 있어서 원래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다시 내리면 두 아이가  실망할까 봐 나는, 일단 다른 아이들이 볼 때까지 그냥 두었다가 아이들이 점심 먹으러 간 사이에 재빨리 내려 놓았다. 하지만 웬걸, 내가 점심을 먹고 다시 와 보니 의자는 또 올라 가 있었다. 누가 했는지 짐작이 갔다. 아이들은 저렇게 사소한 칭찬에 제 몸을 기꺼이 던진다. 그러다 기운이 떨어져 그만 하고 싶으면 다시 친구들을 바라본다. 친구들의 눈빛에서 경이와 지지를 읽으면 또 힘이 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와는 다르게 늘 일상에서 접하는 가족들의 칭찬에는 아이들이 그러지 않는다. 계산된 칭찬의 가벼움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너무나 익숙한 일상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들뜨게 하는 칭찬을 일상에서 경험하기 힘들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능력과 입장이 같은 처지의 구성원으로부터 오는 칭찬과 격려, 신뢰는 아이의 인정 욕구를 북돋운다. 잠시 책상을 옮겨주는 대가로 얻는 인정은 그 어떤 상보다 큰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저 아이들을 움직인 칭찬이 지금은 겨우 책걸상 옮기기에 불과하지만 이담에 어른이 되었을 땐 다른 사람, 또는 이 나라를 구하는 일로 커져나갈 지 모른다.


엄마의 어떤 말은 명령이고 어떤 말은 잔소리인지 구분해서 능구렁이처럼 대하는 1학년 아이들로 하여금 지나가는 칭찬 몇 마디 만으로 저렇게 강렬한 열정을 태우게 만드는 지를 생각해 보면, 역시 아이 키울 때에도 노련하고 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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