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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n 24. 2015

단짝이란 이런 것

점심시간.

다른 아이들은 밥을 다 먹고 각자의 놀이를 찾아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는데, 오늘  따라한 아이가 식사가 늦어지는군요. 비지를 넣고 끓인 찌개가 먹기 싫은가 봅니다. 그래서 한 숟가락만 먹어 보고 나가라고 했는데, 이 녀석, 그것도 내키지 않는지 버티는군요.


아이고, 이러다 선생님이 먼저 먹고 운동장 나가겠네. 


저는 빨리 먹는 척을 하며 아이를 재촉해 봅니다. 그래도 요지부동입니다.


그때, 먼저 나갔던 아이가 급식실로 옵니다. 먹고 있는 아이의 단짝 친구입니다. 레고도 같이 하고 화장실도 같이 가고 항상 챙기는 사이지요. 그러다 보니 다툼도 잦아서 서로 이르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잠시 후, 어김없이 착 붙어 있습니다. 그 아이가 아까 먼저 먹고 나가면서 그네 맡아 놓고 기다리겠다고 하더니 기다려도 안 나오니까 급식실로 다시 찾아온 겁니다. 대뜸 와서 야, 너 땜에 못 놀잖아 하며 화를 낼만도 한데 아이는 심지어 숟가락을 받아 들더니 밥알을 싹싹 긁어 모아 입에 넣어 줍니다.


야, 야, 이거 빨리 먹고 나가서 재미있게 놀자, 응?


살갑게 달래기까지 하는군요. 마치 엄마를 보는 듯 합니다. 받아 먹는 아이는 또 방금 전 까지 완강히 버티던 표정은 어디 가고 아가처럼 순한 표정을 하고 덥석 덥석 잘 받아 먹습니다. 자기 옷 스스로 꺼내 입기, 자기 밥 어른이 먹여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먹기를 방금 전 시간에 공부까지 했는데, 바로 눈 앞에서 이런 상황이라니. 저 녀석들, 나한텐 도대체 뭘 배운 거지? 하지만 정말 보기 좋은 풍경이군요. 와, 준희는 좋겠네. 호준이가 먹여줘서. 아이고, 부러워라. 선생님은 준희가 너무 부러워. 제 말에, 먹여 주는 아이나 받아 먹는 아이나 씨익 웃습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저에게 식판을 턱 보여주면서 호기롭게 말합니다. 봐요. 다 먹었죠? 저 이게 나가요!



헐.

선생님이 먹으라고 할 땐 완강히 버티던 아이가 친구의 한 마디에 저렇게 바뀌다니. 둘 사이에 어떤 마법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밥을 마저 먹은 뒤, 두 아이가 궁금에 그네터로 따라 나와 봤습니다.

또 헐.

밥까지 떠 먹여 준 걸로 끝난 게 아니었군요. 자기가 타던 그네까지 떡하니 양보했네요. 그리고 자기는 기꺼이 주변에서 기다려 줍니다. 단짝 친구의 봉사를 받은 저 아이, 표정에서 뿌듯함이 가득하군요.


1학년.

모든 것이 낯선 일만 가득한 학교 생활. 초등학교에서 스트레스가 가장 많을 학년입니다. 갑자기 많아진 수업시간도 참기 힘들고, 규칙만 강요하는 선생님의 요구도 감당하기 어렵겠지요. 그럴 때, 저런 단짝 친구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먹기 싫은 비지찌개도 기꺼이 먹을 수 있게 만드는 힘의 원천, 단짝 친구 말입니다.


숟가락으로 밥을 먹여주던 기억, 크레파스를 기꺼이 빌려주던 기억, 그네를  말없이 내 주던 추억들이 모여 평생의 기쁨과 슬픔을 내 일처럼 나누며 눈물을 닦아주는 친구로 살아 갈 겁니다. 때로는 기꺼이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서로를 도울 일도 오겠지요. 저 끈끈함이라면,  문제없을 겁니다. 저 두 아이의 우정에 제가 함부로 촐싹거림을 삼가야겠군요. 감히. 아이고, 부정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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