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꿇고 고등학교 입학해서 처음 들은 말

by 나는일학년담임

35. 한 해 꿇고 고등학교 입학해서 처음 들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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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왔어. 형은 어릴 때 동네에서 알려진 수재였어. 하지만 중학교 일 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고등학교 못 가고 농사일을 해야 했어. 그 와중에도 검정고시 보겠다고 헌 책을 구해 공부를 했어. 마침 동네 교회에 부임해 오신 목사님이 형을 알아보고 신학공부를 시키려고 데려갔는데 어느덧 공부를 마치고 집에 다니러 온 거야. 내가 고등학교를 못 가고 돈을 번다는 얘기를 듣고 형은 참담해했어. 동생을 고등학교도 못 보내는 형편을 그냥 두고 목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걸 괴로워했어. 형이 엄마를 설득했어. 주현이 고등학교 보내라고. 저 나이에 돈 벌어야 얼마나 버냐고. 하지만 엄마도 완강하셨어. 학교? 우린 지금 쌀이 없는데 무슨... 학비는 어떡하니. 형이 울먹였어. 나야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포기했지만... 동생들까지... 엄마가 힘드신 거 알지만 동생들 고등학교까지는 보내주라고. 쟤 인생이 앞으로 얼마나 길 텐데. 고등학교도 못 나오고 어떻게 살겠느냐고. 내게도 다짐을 했어. 엄마가 고등학교 보내주시면 니 학비는 니가 벌어야 한다, 알았지? 난 고개를 끄덕였어. 눈물이 나왔어. 일단 보내주기만 하면 신문배달이라도 하겠다고. 아버지 돌아가신 후 형에게 의지하던 엄마는 표정이 좋지 않으면서도 형의 말을 들었어. 다음 날, 바로 졸업한 중학교에 가서 수속을 했어. 체력장 시기를 놓쳐 점수가 깎이는 건 감수해야 했어. 간 김에 작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어. 기뻐해 주셨어. 잠깐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고입 문제집과 참고서들을 한 아름 얻어 주셨어. 그걸 다 풀기 전에 연합고사 날짜가 다가왔어.


대우 전자 배달 일은 오후에만 있었어. 난 운전하는 기사님을 도와 세탁기, 냉장고, TV, 오디오처럼 덩치가 큰 물건을 함께 들어 나르고 설치했어. 요령이 없어서 온 몸으로 힘을 쓰다 보니 힘은 힘대로 들고 여기저기 욱신거렸어. 배달 간 집에서 폐가전제품을 대신 버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멀쩡한 것들은 기사님이 고물상에 팔아넘겼어. 덕분에 나도 버려진 카세트와 전기밥솥 하나를 얻었어. 엄마가 좋아하셨어. 고등학교 가게 되었다는 편지를 받은 인희씨가 고등학교 때 공부하던 책들을 경양식집으로 가져다줬어. 하이라이트 국어, 성문 기본 영어, 정석과 해법수학이었어. 그녀가 공부한 책을 받으니 가슴이 뛰었어. 뿐만 아니라 날 헌책방에 데려가서 나머지 참고서들도 사줬어. 입학 전에 1학년 과정을 미리 공부하는 게 좋을 거랬어. 형 말대로 학비를 벌려면 일을 하거나 장학금을 받아야 해. 달력을 떼어 공부 계획표를 만들었어. 입학까지 남은 날들 중 주말을 제외한 날짜를 세어서 전체 쪽수로 나눠보았어. 성문 기본 영어는 전체가 350쪽이니까 하루 8쪽씩 공부하면 될 것 같았어. 수학 정석과 해법은 하루에 16쪽을 하면 한 번에 뗄 수 있을 것 같았어. 영어와 수학은 매일, 국어는 이틀에 한 번씩 하되 국사, 지리, 물리, 생물, 지학도 각각 계획을 짰어.


경양식집 노래를 하고 오면 밤 10시 반이었어. 엄마와 동생들이 잠자리에 들면 난 바로 세수하고 앉은뱅이 밥상을 펴고 작은 스탠드를 켰지. 먼저 영어를 시작해. 성문 기본 영어는 문법에 대한 해설과 함께 예시로 제시된 문장들이 유명한 연설문이라 모르는 단어가 많았어. 그 단어를 사전 찾아 명사, 형용사, 부사형, 과거, 과거완료 같은 시제와 소유격과 비교급, 숙어 예시 등을 적었어. 그렇게 정리한 문장들을 외울 때까지 종이가 까맣도록 반복해서 썼어. 이런 식으로 기본 영어 여덟 쪽을 하다 보면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걸려. 끝나면 잠바를 걸치고 화장실을 갔어. 야외에 있으니까 저절로 바람을 쐬게 되어 잠이 달아나지. 그리고 다시 들어와 수학을 시작해. 정석을 먼저 풀고 해법을 풀었어. 정석의 유제 풀이가 어려워서 시간이 걸릴 때도 있었지만 달달 외워야하는 영어만큼은 아니었어. 수학이 끝나면 3시쯤 돼. 이삼십 분 정도 헤드폰 끼고 라디오를 듣거나 인희씨에게 편지를 쓰다가 다시 다음 과목을 공부했어. 네 시 반이면 엄마가 새벽기도 가기 위해 맞춰놓으신 자명종이 울려. 그 무렵이면 세 번째 과목 공부가 끝나. 여섯 시쯤 엄마가 돌아오셔서 아침밥을 하시면 나는 한쪽 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기 시작해서 낮 열두 시쯤 일어나 밥을 먹고 대우전자에 일하러 갔다 와서 저녁 먹고 경양식집에 노래하러 갔어.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이 일정을 하루도 바꾸지 않고 계속했어. 공부하다 보면 책 곳곳에서 그녀가 나를 응원하기 위해 써놓은 문구를 발견하곤 했어. 예쁜 색 볼펜으로 쓴 것들이었어. 그중엔 전교 일등 하면 뽀뽀해주겠다는 글도 있었어. 그것들을 쓰는데 꼬박 며칠이 걸렸다고 했어. 그때 내가 열심히 공부 한 건 그녀 덕분이야.


내가 입학한 하게 될 고등학교는 매일 밤 열 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해야 해서 경양식집 노래는 입학식 전날 까지만 할 수밖에 없었어. 대신 동네 신문 보급소에서 배달 일을 구했어. 경양식집에서 마지막 노래를 하고 나오는데 사장님이 봉투에 특별 보너스를 넣어 주셨어. 대학교에 가면 다시 오라고도 하셨어. 인희씨도 입학 선물을 줬어. 빨강과 파랑 볼펜이 가득 들어 있는 상자와 샤프연필. 그뿐 아니었어. 장학금 정보를 갖고 온 거야. 인희씨 아버지가 은행에서 퇴직하시고 대기업 회계 담당자로 전직하셨는데 그 회사에서 고등학생 대상 장학금을 준다는 거야. 그 지역에 거주하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골라 성적이 전교 3% 안에 들면 10만 원, 1% 안에 들면 20만 원씩 준대. 분기별로 지급하는데 3,4만원인 학비를 내고도 남는 액수였어. 엄마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 아들이 내가 입학할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전교 일등을 하면 학비가 전액, 이 등은 반액 면제라는 것도 알려줬어. 또 학급 실장도 하면 학비 면제가 된대. 난 우선 실장 선거에 나가보기로 했어.


1985년 3월 4일 월요일. 나를 포함한 육백여 명의 남자아이들이 꽁꽁 언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했어. 추위쯤은 아무렇지도 않았어. 그렇게 바라던 고등학생이 되었으니까. 우리가 교실로 들어가 앉자 젊은 남자 선생님이 들어왔어. 무뚝뚝한 얼굴로 일일이 출석을 불러 가며 인원 파악을 하더니 출석부를 소리 나게 탁, 놓았어.


“재수한 사람 손들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무도 손을 안 들자 목소리를 조금 높였어.


“어쭈? 꿇은 놈들 손들라고, 새끼들아.”


담임 선생님이 신입생인 우리에게 제일 먼저 한 말이 이 말이었어. 불현듯 때밀이 형이 생각났어. 그 형도 저런 선생님한테 배워서 말이 험했을까. 나를 비롯한 네 명이 주섬주섬 손을 들자 자리에서 일어서래. 교실의 모든 아이들이 일제히 쳐다봤어.


“니들 말야. 꿇은 게 죄는 아니다. 하지만 딴 짓하면 가만 안 둔다. 알았냐?”


바로 이어서 실장 선거를 했어. 담임은 먼저 하고 싶은 사람 일어나라고 했어. 후보가 나까지 세 명이었어. 갑자기 재수한 아이로 분류되어 불량스러운 낙인을 받고 난 다음이어서 그랬을까, 선거 유세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 결국 실장이 되지 못했어. 장학금 기회를 놓쳐 아쉬웠어. 쉬는 시간에 서무과에서 재학증명서를 뗐어. 인희씨 아버지께 장학금 신청서로 보내야 하거든. 첨부할 자기소개서도 썼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농사를 짓다가 냉해가 와서 수확을 못한 일, 농협 빚이 늘어 어쩔 수 없이 서울 변두리로 이사해야 했던 이야기, 학비가 없어서 고등학교에 못 가고 목욕탕에서 일한 일, 방학 때 시간을 쪼개서 미리 공부했던 계획표,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공부를 해서 성적을 유지할 지에 관해 썼어. 바로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어. 인희씨 만나 서류를 전해주는 김에 경양식집에 들렀어. 사장님이 돈가스를 그냥 주셨어. 고마워서 노래를 몇 곡 하고 나왔어.


그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학교가 시작되었어.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신문 보급소에 가서 신문을 받아 돌리고 여섯 시 반쯤 집으로 와서 씻고 밥 먹고 도시락 두 개를 싸서 학교에 갔어. 매 수업 시간마다 노트 한 가득 필기를 하고 요점에 밑줄을 긋고 쉬는 시간에 외웠어. 저녁 도시락을 먹은 뒤 자율학습을 하고 밤 열 시에 끝나면 집에 와서 바로 잤어. 담임이 엄격한 데다 공부에 방해되는 아이들은 몽둥이로 때려가며 잡았기 때문에 교실은 수용소처럼 늘 조용했어. 정규수업 시간보다 자율학습 시간이 더 공부하기가 좋았어. 성문 기본 영어와 정석을 가지고 다니며 외우고 풀었어. 나를 비롯한 네 명의 재수생들은 두 달에 한 번씩 학생과에 불려 가 정신교육을 받았어. 학생과는 교무실 바로 옆에 있었는데 마포 걸레 자루로 만든 몽둥이가 여러 개 있었어. 사고 치면 안 된다, 담배 피우지 마라, 동급생 갈취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어. 우리 반 재수생 한 명은 그게 기분 나빴는지 불려 갔다 올 때마다 교실에서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어. 다른 애들은 감히 하지 못할 욕을 하고 의자도 발로 차고. 한 해 꿇고 입학했다는 걸 아이들이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 꼭 나쁜 건 아니었어. 아무도 날 건드리지 않았거든. 그 학교에서 싸움 좀 한다는 애들은 다들 나처럼 재수한 애들이었어. 다른 학교에서 사고 치고 퇴학당했다가 이 학교로 다시 온 거지. 재수한 아이들은 또 그 나름대로 동류의식이 있는지 나에게는 호의적이었어. 녀석들이 화장실에 모여 담배 피울 때 가끔 망을 봐주는 거 말고 내가 그들에게 도움 준 게 없는데도.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고 중간고사가 되었어. 다른 과목은 겁먹었던 것만큼 힘들지 않아서 잘하면 일등이 될 것 같았는데 독일어가 문제였어. 스펠링 한 문제를 틀린 거야. 전교 일등을 해야 2학기 학비 전액 면제인데... 마음이 조급해졌어. 생각해 보니 잠이 모자란 게 원인일 것 같았어. 담임 선생님이 자율학습을 교실이 아닌 진학실에서 하게 해 주셨어. 그곳은 학교 지하에 있는데 책상에 개인 칸막이가 있고 스탠드도 달려있는 교실이었어.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따로 공부하는 곳이랬어. 교실은 밤 10시면 끝나는데 거긴 12시까지 공부할 수 있었어. 담임과의 상담 끝에 신문 배달을 그만 두기로 했어. 엄마가 실망하셨어. 독한 마음을 먹으면 그깟 신문 배달 아니라 밤새 일하고도 왜 공부를 못하겠느냐고. 하지만 별 수 없었어. 그렇게 1학기 말이 되어 기말고사를 봤어. 아, 이번에도 또 독일어가 문제였어. 데어 데스 뎀 덴 디 데어 데어 디... 책을 통째로 외웠는데 또 실수를 해서 한 문제를 틀린 거야. 결국 전교 일등을 놓치고 이등이 되었어. 한 문제로 전액 장학금을 놓치니 미칠 노릇이었어. 그동안 오로지 공부만 생각하고 덤볐는데 안 되는 거야. 엄마한테 뭐라고 하지? 다시 신문배달을 해야 하나, 심란했어.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해도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도대체 일 등을 하는 아이는 어떻게 공부를 하길래 전과목 만점을 받는지 모를 일이었어. 창피를 무릅쓰고 그 아이 교실을 찾아갔어. 가보니 책상 위에 성문 종합 영어가 있었어. 기본 영어보다 두꺼워 보였어. 당장 헌책방에 가서 그걸 샀어.




36. 신의 섭리라는 이름으로 해명되지 않고 넘어가는 의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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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이 되었어. 보충수업이 전교생에게 강제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난 신청하지 못했어. 돈이 없어서요,라고 차마 말하기 싫어서 혼자 공부계획이 있다고 거짓말했어. 사실 보충수업비가 적은 돈이 아니었어. 조금만 더 보태면 등록금이 될 정도였거든. 담임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어.


"너도 과외하냐? 안 그래도 아이들이 과외한다고 빠지려고 해서 내 입장이 난처한데 너까지..."


과외라니. 내가 중간고사 전까지 신문배달하던 아이라는 걸 잊으셨나? 그냥 돈이 없다고 말씀을 드릴까. 근데 말을 못 하겠는 거야. 그게 무슨 말 못 할 비밀이라고 자존심을 세웠을까. 나의 태도가 공손하지 못했는지 선생님이 화를 내셨어. 그렇게 안 봤는데 너, 이기적인 놈이구나. 이기적이라니. 돈 없다는 말을 차마 못 하는 학생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가 거짓말밖에 없는데. 서러움이 울컥 올라왔어. 눈물도 났어.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선생님은 혹시 돈 때문이냐고 물으셨어. 무슨 반항심인지 그런 거 아니라고 말씀드렸어. 선생님은 끝내 안 좋은 표정으로 가버리셨어. 선생님이 실망하신 것 같아 걱정됐어. 난 왜 돈 문제만 만나면 쉽게 서러워질까. 창피할 만큼. 그땐 그랬어. 차라리 처음부터 돈이 없어서 보충수업을 못한다고 말씀드렸으면 선생님을 언짢게 해드리지 않았을 거고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을 거야. 그런데 못했어.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 지금이라도 다시 찾아가 사실대로 말씀드릴까. 아냐, 너무 늦었어. 뭐, 어쩌라고. 모른 척했어. 아이고, 이건 또 무슨 자존심이었을까. 보충수업은 교실에서 하니까 나는 진학실에서 자습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보충수업을 신청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엄마가 나가시는 교회에 가서 공부하기로 했어. 그리 크지 않은 그 교회는 한 번에 다섯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기다란 나무의자가 스무 개쯤 있고 목사님이 설교하는 강대상 좌우로 드럼과 피아노, 기타가 있었어. 강대상 뒤 쪽엔 큰 십자가가 걸려 있는데 뭐랄까, 보기만 해도 제압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공부하기엔 좋은 곳인 셈이지. 그런데 교회라는 곳이 예배시간이 아닌 때에도 수시로 사람이 오가는 곳인 걸 몰랐지 뭐야. 구석에 앉아 공부 좀 하려고 하면 누가 들어와서 앉아 기도를 시작해. 어떤 사람은 소리 내서 해. 심지어 기도 하다 울어. 한 시간 넘게 기도 하는 사람도 있어. 본의 아니게 난 그들의 기도를 엿듣게 되었어. 감사기도는 아주 조금 뿐, 바라는 기도가 훨씬 긴 걸로 봐서 간구할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것 같았어. 돈을 벌게 해 달라, 죽은 사람의 빈자리를 채워 달라, 아픈 가족을 낫게 해 달라... 엄마도 매일 새벽 이 곳에 올 텐데. 엄마는 어떤 기도를 하실까. 나를 삼손처럼 담대한 사람으로 키워달라고 기도하시는 건 들은 적이 있어. 내가 생각해도 이루어지기 힘든 기도였어. 교회를 오가며 십자가를 자주 대하다 보니 나도 한 번 기도가 하고 싶어 졌어. 그래서 아무도 없을 때 한 번 해 보았어. 십자가가 가까이 보이는 앞자리에 앉아 두 손을 깍지 껴서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눈 감은 채 고개를 푹 숙였어. 이제 뭐라고 하지? 엄마가 기도하실 때처럼 중얼거려보았어.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며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대로 하옵시고...”’


아버지를 잃고 엄마가 의지 할 곳을 찾아 교회에 가셨을 때, 어떻게 기도하는지 몰라서 목사님께 여쭤보신 적이 있대. 그때 목사님께서 기도 시작 부분을 써 주셨대. 기도 순서도 알려주셨대. 먼저 감사할 일을 고하고 그다음에 이루고 싶은 걸 아뢰라고. 그때 써 주신 기도가 알파와 오메가로 시작되는 문장이었어. 알파, 오메가면 처음이자 끝이라는 거잖아. 하나님이 우리 삶을 주관하신다고? 그럼 내가 목욕탕 간 일도 그분이 하신 거야?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에이, 아닐 거 같았어. 그게 맞다면 그분은 나쁜 분이야. 굳이 나를 괴롭게 할 이유가 뭐 있겠어? 하나님의 섭리? 섭리라는 이름으로 해명되지 않은 채 넘어가는 의문들이 얼마나 많은데. 기도를 하려다 그만뒀어. 나를 고생시키는 따위의 섭리라면 필요 없어. 그런 교회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마음껏 하고 정신승리하라지. 계획한 시간을 채우기도 전에 집에 와 버렸어. 집에 와서 점심을 먹는데도 기도 생각이 나 기분이 안 좋았어. 공부를 하려면 동생들 있는 집 보다 교회가 나았어. 할 수 없이 다시 교회에 가서 앉았는데 여전히 공부는 하기 싫고 날도 더워서 갈 곳도 없는 거야. 강대상 옆에 있는 기타를 집어 들고 아는 곡들을 튕겨 보았어. 공간이 넓어서 그런지 좋게 들려 노래까지 흥얼거렸어. 그러다 문득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싶어 기타를 내려놓고 책을 폈어. 이상하게 아까보다 기분이 풀렸어. 다시 십자가가 보였어. 혹시 이런 게 섭리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방금 전에 투덜거리던 내가 기타를 만지고 나니 기분이 풀리는 거 말야. 이런 걸 주관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거야 말로 은근한 위로고 보살핌일 거잖아. 혹시 엄마가 기도하는 그 섭리가 나에게 이런 식으로 미치는 건 아닐까. 엄마는 식당에서 일해야 하니까 대신 하나님을 내게 보내 마음을 달래준 건 아닐까. 다시 공부를 하다가 저녁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책을 챙겨 일어나기 전, 다시 앞자리에 앉아 보았어. 기도를 해 보려고.


“알파와 오메가...”


막상 해 보려니 청승맞기도 하고 가증스러웠어. 그래서 소리 내지 않고 속으로만 읊조려 보았어. 막상 시작해보니 되는 거야. 오늘 같은 날 이렇게 공부할 공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고... 엄마가 우리를 위해 고생하시는데 아프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바라옵기는, 앞으로 시험을 잘 봐서 장학금 받게 해 주시고... 동생들이 기죽지 않고 잘 크게 해 주시고... 내가 빨리 커서 돈을 벌게 해 주시고... 식당에서 힘들게 배달하시는 엄마 힘들지 않게 해 주시고... 훌쩍. 눈물이 툭 떨어졌어. 재빨리 눈물을 쓱 닦고 누가 있나 주변을 봤어. 들키면 무슨 창피야. 빌어야 할 게 너무 많아 하나님께 민망한 생각도 들었어. 이왕 기도하는 거 그 뒤로도 몇 번 더 기도 했어. 공부하기 전에는 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마치고 나면 잘하게 해 주셔서 고맙다고. 기도를 하고 나면 개운한 느낌이 들었어. 이래서 엄마도 매일 새벽에 굳이 교회에 가 기도를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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