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깨가 사고라니. 아무리 자전거를 타도 사고라고는 안 날 것 같은 장깨가? 녀석의 성격 상 전화까지 할 정도면 보통 사고가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 형에게 이야기하고 잠깐 가봐야 할 것 같았어. 근데 지하 보일러실에도 탕 안에도 없는 거야. 마음이 급하니 어떡해. 빨리 다녀오면 되겠지, 생각하고 후다닥 계단을 내려가 길 건너 병원이 있는 골목으로 뛰었어. 병원으로 들어가 보니 바지에 피가 범벅인 장깨가 인상을 쓰며 아픔을 견디고 있었어. 가위로 바지를 오려낸 곳을 보니 무릎 아래쪽으로 부러진 뼈가 삐져나와 있었어. 장깨 눈이 실핏줄이 터질 듯 충혈돼 있었어.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아랫입술은 벌겋게 부풀고 목덜미에도 핏줄이 돋아 있었어. 넘어지면서 잘못짚었는지 오른손과 팔꿈치도 옷이 온통 해진 채 피가 묻어 있었어. 상처 부위를 닦고 붕대를 감고 진통 주사를 놓고 사람들이 나가고 나서야 난 병실로 들어갔어.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실없이 웃었어.
“고삐리 새끼들 쫓아가다 좆됐다. 쉬발. 아, 쪽팔려.”
장깨의 배달처 중에 고등학교 교무실이 있었어. 녀석은 유독 거기 배달 가는 걸 싫어했어. 그 학교 아이들이 교실 창을 열고 장깨를 놀리거든. 중학교 애들이 그러면 어려서 그러겠거니 하는데 같은 나이인 아이들이 놀리는 건 참기가 어렵더래. 그날도 눈길에 배달을 마치고 살살 오는데 길 건너에서 고등학생 몇이 ‘짱깨 새꺄!’라고 소리치더니 골목으로 달아나더래. 안 그래도 눈 와서 짜증 나는데 시발놈들 오늘 뒤졌다, 바로 쫓아갔대. 그런데 아이들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 싶은 그 순간, 그만 골목에서 차가 튀어나오더래. 그 차를 피하다 미끄러진 거야. 마침 출발하려던 트럭 밑으로 처박혔지. 놀란 운전자가 녀석을 싣고 병원으로 바로 와서 그나마 다행인 거야. 엑스레이 촬영 결과 다리가 여러 조각으로 부러졌대. 당장 핀 박는 수술을 해야 하고 한두 달은 입원이 필요하며 또 몇 달 뒤 뼈가 붙으면 핀 제거 수술도 해야 한대. 근데 중요한 건 돈이야. 첫 수술비가 사오십 만원이 소요되는데 당장 보증금을 몇만 원이라고 걸어야 수술에 들어갈 수 있대. 장깨가 돈이 있나. 나도 없고.
장깨네 중국집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했어. 중국집 사장은 사고 이야기를 듣더니 벌컥 화부터 냈어. 오늘 같은 날 사고나 내고 병원에 자빠져 있으면 배달은 어떡할 것이며 못쓰게 된 자전거 값은 어쩔 거냐고. 그러면서 그달 치 월급에서 자전거 값을 넉넉하게 제한 뒤 달랑 오만 원을 줬어.
“일부러 사고 낸 것도 아니고 배달하다가 사고가 났는데... 자전거 값까지 물어내게 하다니.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사장님 돈 벌어 주다가 그렇게 된 거잖...”
새끼가 싸가지 없이! 사장이 내 뺨을 후려쳤어. 맞고 나니 악에 받치더라. 사장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일단 수술비라도 주셔서 치료하고 난 다음에 일 해면서 갚으라고 해도 되잖냐고, 지금 애가 피투성이라고, 살려주시라고 애원하듯 말해보았어. 소용없었어. 나를 언제 봤냐는 듯 멱살을 잡아끌더니 가게 밖으로 끌어냈어. 다들 너무하다 싶었어. 우리는 물건이야? 쓰다가 버리면 그만인가. 돈이 문제였어. 당장 응급 수술비만 해도 돈 십만 원은 있어야 하는데. 그다음 회복될 때까지 필요한 입원비와 핀을 제거하는 이차 수술비는 어떡하나. 장깨에게 시골에 계신 아버지에게 연락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으니 펄쩍 뛰었어. 다리를 잘라 병신이 되는 한이 있어도 아버지에겐 연락 안 할 거래. 그래도 아들이 사고가 났다는데 다만 얼마라도 주시지 않겠느냐 물어도 워낙 완강했어. 녀석은 그냥 퇴원하겠다고 했어. 집에서 쉬면 나을 거라는 거야. 간호사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어. 당장 수술하고 깁스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아물 때까지는 다리를 전혀 쓸 수 없다. 혼자 쉰다고 저절로 낫는 게 아니라 장애가 되는 거다. 그냥 두면 염증이 올 수 있고 그러면 잘라야 한다고. 저렇게 허우대 멀쩡한 녀석이 다리가 없어진다고? 더럭 겁이 났어.
장깨 앞으로 병원식사가 나왔어. 난 그제야 목욕탕 일이 걱정되어 서둘러 돌아왔어. 형은 때를 밀고 있었어. 달려가 꾸벅 인사를 하고, 급히 나갔던 사정을 이야기하려는데 형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어. 너... 한증막에 가 있어라. 한증막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어. 잠시 후 따라 들어온 형이 주먹을 날렸어. 눈 아래 광대뼈에 맞았어. 입안이 터졌는지 비릿한 게 고였어.
“죄송합니다. 장깨가 사고가 나서...”
퍽!
“허락을 받으려고 했는데 어디 계신지 못 찾아서...”
퍽!
형의 주먹에 고개가 젖혀지면서 입안에 고였던 피가 터져 나와 한증막 나무 의자에 흩뿌려졌어. 저곳에 피 묻으면 닦기 힘들 텐데. 그 와중에도 그 걱정을 했어. 손을 뻗어 피를 문지르자 형의 발등이 옆구리에 꽂혔어.
“컥! 잘못했...”
난 그대로 고꾸라지면서 바닥에 나동그라졌어. 숨이 턱 막혔어. 누가 내 가슴에 무거운 쇳덩이를 올려놓은 것처럼.
“엄살 피지 말고 일어나, 이 새꺄.”
형이 소리 질렀어. 근데 옆구리가 마비된 것처럼 일어날 수가 없었어. 일부러 안 일어나는 게 아니라 몸이 안 움직인다고 손짓하자 형은 내 얼굴에 침을 뱉고 손에 감고 있던 때밀이 수건을 던지고는 바깥으로 나갔어. 잠시 뒤 손님 몇이 한증막 문을 열고 들어 와 나를 발견하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어. 오른쪽 눈 윗부분이 욱신거리더니 피가 흐르는 느낌이 들면서 머리가 지끈거렸어. 손님 둘이 내 양 옆구리를 부축해 끌고 나가는 걸 느끼며 잠에 빠졌어. 눈을 떠 보니 어둑했어. 난 탈의실 바닥에 누워있었어. 숨 쉬는 건 좀 나아졌는데 옆구리는 아직 아팠어. 이마가 쓰리고 머리가 띵했어. 밖에서 사람들 말소리가 들렸어.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경찰이 형에게 수갑을 채운 채 앉혀놓고 뭔가를 묻고 있었어. 형 얼굴에 벌건 손자욱도 있는 걸 보니 맞았나 봐.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어. 경찰 한 명이 내 상처를 이리저리 보더니 내일 아침 병원 가서 진단서를 떼어 경찰서로 오래. 그들이 형을 끌고 갔어.
모두 가고 나자 카운터 이모가 수건을 빨아다 내 얼굴을 닦아 주셨어. 머리는 여전히 지끈거렸어. 형의 발길질에 쓰러지면서 뇌진탕이 왔었나 봐. 내가 기절한 사이에 손님들이 나를 부축해 탈의실로 데려가 피를 닦아 주었대. 그 손님 중 한 명은 신고도 한 거야. 형은 현행범으로 잡혔어. 형이 잡혀갔으니 이 기회에 형한테 맞은 거 다 일러바치고 월급 안 준 것도 다 받아내라고 이모가 말씀하셨어. 하지만 형에게 맞은 것보다 당장 경양식집 노래가 더 걱정이었어. 갈비뼈를 다쳤는지 심호흡이 안 되는 거야. 입안도 터져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 사장님이 실망하실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지만 방법이 없었어. 죄송하지만 오늘은 못 가게 되었다고 전화하고 목욕탕 청소를 간신히 하고 수건을 널고 누웠어. 장깨 수술비가 걱정됐어. 결국 장깨는 다리를 잘라야 하나?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미안했어. 나와 장깨 같은 사람은 효용가치가 있을 때에도 밑바닥 취급을 받았는데 이제 그 가치마저 떨어지면 장깨는 어떻게 살아가지? 막상 장깨가 다치자 사람들은 그가 알아서 조용히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어. 때밀이 형도, 중국집 사장도 그렇게 말하잖아. 예전에는 자기들도 밑바닥 삶이었을 텐데. 그래서 누구보다 우리의 비루한 삶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는 거야. 오히려 돕고 이끌어줘야 할 그들이 우리를 가장 먼저 버리려 한다는 게 살벌하게 느껴졌어. 그렇다고 지금 그들을 미워만 하고 있을 상황도 아니었어. 납작 엎드려 빌든, 울면서 애원하든 돈을 얻어내야지. 그래야 장깨 수술을 할 거고, 녀석의 다리도 지킬 거 아냐. 일단 십만 원이면 수술을 한다고 했으니 집에 가서 엄마한테 오만 원만 얻어 볼까? 아냐, 지난번 일을 생각하니 뻔할 것 같았어. 이번에도 엄마는 내가 친구에게 돈을 뜯긴다고 생각하실 거야. 그런 친구를 왜 사귀느냐고 혀를 차실 걸. 친구가 입원했으면 넌 거기 가지 않으면 되지, 왜 참견을 하면서 니 돈까지 쓰냐고, 그렇게 어리석어서 어떻게 돈을 벌겠냐고 걱정하실 거야. 더구나 엉망인 내 몰골을 엄마가 보시면 마음이 어떠실까. 냉장고에 있는 음료 캔을 얼굴에 문지르니 통증은 줄어드는 것 같았어. 저녁부터 아무것도 못 먹어 배가 고팠어. 입 안이 아프니 라면은 안 되겠고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나 하나 따 마셨어. 하지만 바로 뱉어야 했어. 입안이 쓰려서 먹을 수가 없는 거야.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겨우 수프 뺀 라면을 하나 끓여 먹고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떼어 경찰서로 갔어. 형은 밤새 유치장에 있다가 나를 보자 반색을 했어.
“잘 잤냐? 야, 형이 어제 좀 심한 것 같다. 잠이 안 오더라. 형이 니 걱정 많이 했다. 알지?”
왜 이렇게 다정한 척하지? 형에게 뭔가를 요구한다면 바로 지금 해야 할 것 같았어.
“저... 장깨가 자전거 사고가 났습니다...”
“알지. 니가 어제 말했잖아. 그 새키 살살 좀 다니지, 아휴, 참... 대책 없는 새끼지. 너도 조심해라. 다치지 않게. 응?”
“수술비가 많이 모자라서 그러는데... 제 월급... 밀린 것 까지 두 달 치를... 오늘 주셨으면 합니다.”
“아, 그 섀끼, 답답하네. 니 월급으로도 어차피 수술비 안 되잖어. 임마. 그 새끼 일에 참견하지 말라니까. 어머니 돈이나 벌어 드릴 생각 해야지. 니 월급은 너 나갈 때 내가 목돈으로 준다 그랬잖아.”
내가 나가는 주겠다고? 장깨는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럼 나도 오늘 나가는 수밖에. 때밀이가 되어 목욕탕을 인수하는 꿈은 포기해야겠네. 가슴 한쪽이 아려왔지만, 할 수 없었어.
“저... 그럼 오늘 나가겠습니다. 밀린 돈 주십시오.”
“아, 이 새끼, 아침부터 열 받게. 사람도 못 구했는데 어딜 나가, 이 새꺄!”
“그럼 진단서 제출하겠습니다.”
어제 왔던 그 경찰 앞으로 가서 진단서를 내밀었어. 그리고 어제 늦게까지 쓴 종이를 내밀었어. 그동안 형한테 맞은 일을 기록한 종이. 경찰은 내 얼굴을 한 번 보고 형을 쳐다봤어. 그러자 형이 소리쳤어.
“알았어, 야, 알았어. 아이고, 형이 한 번 해 본 얘기야. 돈 줄게. 당장 줄게!”
경찰 앞에서 형에게 다짐을 받고 진단서는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말하니 경찰이 진짜냐고 물었어. 많이 맞은 거 같은데 정말 아무 일도 아니냐고. 난 괜찮다고 했어. 경찰이 합의 각서를 내밀었어. 빨리 나가서 월급을 받아서 병원 갖다 줄 생각에 형이 찍은 바로 옆에 내 지장을 찍었어. 그런데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형의 생각이 바뀐 거야. 돈을 못 주겠다는 거야. 오히려 싸가지 없는 새끼라고 욕을 한참 하고는 집에 가 한잠 자고 오후에 나올 테니 그때까지 목욕탕 똑바로 지키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택시 타고 가버렸어.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어. 어떻게 온 기회인데, 이렇게 날아가나 싶어 속이 상했어. 다시 경찰서로 들어갔어. 아까 그 경찰에게 형이 약속을 안 지켰다고 말하는데 서럽게 눈물이 나왔어. 경찰이 딱한 표정을 했어.
“너 몇 살이냐?”
“열일곱입니다.”
“학교 안 다니고 왜 그런 데서 일하냐?”
“...”
“니가 아까 그 형하고 지장 같이 찍었잖아. 그런데 형이 약속 안 지켰지? 고소를 하면 돼. 누가? 너 말고 보호자가. 넌 지금 미성년자라서 안 돼."
돈을 먼저 받았어야 했어. 그걸 모르고 순진하게 형 말을 믿은 거야.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렸어. 형이 그럴 줄은 몰랐어. 그렇게 욕먹고 맞으면서도 형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는 게, 그것도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속다니. 부끄러웠어. 지장을 찍었으니 지킬 거라고 믿었잖아. 내가 고소가 뭔지 알기를 하나. 그것도 내 손으로 못하고 보호자인 엄마가 해야한다고? 그럼 엄마가 이 일을 알게 되잖아. 친구 수술비 내겠다고 목욕탕 그만 두는 아들을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까. 고소는 포기해야겠네. 바보, 멍청한 놈. 입술을 깨물었어. 아직 아물지 않은 입술에서 피가 났어. 더 아프라고 질겅질겅 씹었어. 진단서를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넣었어. 그리고 장깨 병원으로 갔어.
“돈을 못 구했다. 미안하다.”
아직 수술도 하지 않은 장깨는 이미 다 나은 표정을 하며 웃었어. 당장이라도 퇴원을 해서 다시 배달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야. 자식, 그 상황에서도 멋진 척하는 것 좀 봐.
“니가 마징가 제트냐? 다리 퉁퉁 부은 거 다 보여, 병신아. 그리고 너 중국집에서 잘렸어. 니네 사장이 사람 구한다고 써 붙였더라.”
저 다리를 하고 배달을 하겠다니. 저것도 살아보겠다고 꿈틀대네. 내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어. 타이밍 참 엿 같은 눈물이었어. 장깨가 낄낄 웃었어. 우리 팔자가 왜 이리 더럽냐고, 그냥 우리 같이 어디로 사라져 버릴까, 말하려다 말았어. 일단 있는 돈이라도 수술 보증금으로 충분하니 수술을 해 달라고 병원에 말했어. 안 된대. 수술비와 최소 입원비라도 납부를 하든지 아니면 부모나 형제가 와서 지급보증을 하래. 우리처럼 부모가 안 오는 아이들은 어딜 가도 믿어주지 않았어. 정말 이대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 달라는 뜻인가? 장깨 같은 애들 때문에 자기들이 집에서 편하게 배달음식을 먹었잖아. 이젠 다쳐 쓸모없으니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거야?
하는 수없이 목욕탕으로 돌아왔어. 그날 오후에 형은 나오지 않았어. 옆구리가 아픈 몸으로 혼자 때를 미는 게 힘들었어. 일을 마치고 경양식 집에 갔지만 노래를 할 수 없었어. 얼굴에 멍이 더 선명해진 데다 터졌던 양 볼의 부기가 안 빠져 흉했거든. 차마 노래하겠단 말을 못 했어. 노래를 해야 돈을 받을 텐데... 아쉽지만 화장실 변기 청소만 해드리고 그냥 돌아왔어. 형은 그다음 날에도 나오지 않았어. 이틀 동안 나 혼자 때를 밀고 받아 놓은 돈이 이만 원이 넘었어. 형이 나와야 전해 줄 텐데. 형이 없으니 탈의실을 비우고 은행에 갈 수도 없었어. 때밀이가 되면 나도 이렇게 돈을 벌 수 있었을 텐데, 싶은 마음에 씁쓸했어. 난 정말 열심히 해서 잘 살아보고 싶었는데.
형이 안 나오고 삼일 째 되던 날, 아침 일찍 동거녀가 목욕탕에 왔어. 카운터 이모에게 사장을 불러달라고 하더니 꽤 긴 시간 얘기를 나눴어. 사장은 잠시 어딘가를 다녀오더니 봉투에서 수표를 꺼냈어.
“여기 천만 원입니다. 얘기 듣고 보니 안 됐네. 치료 잘하세요.”
형에게 일이 생긴 거야. 경찰 유치장에서 하룻밤 자던 날, 참다못한 동거녀가 오빠들에게 울면서 전화를 했대. 여탕 누나와 정리한다고 하더니 급기야 오늘은 아예 외박이라고. 오빠들은 화가 많이 났지. 군대 막 제대해 한 푼도 없던 놈이 동생을 좋아한다기에 방까지 얻어주었는데 돈 좀 번다 싶으니 임신 한 동생을 버리고 딴 여자를 만나? 혼내주고 동생에게 떼어놓아야겠다고 맘먹고 형 집에 숨어 있다가 덮쳤대.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겨우 탈출은 했는데 급한 마음에 차도로 뛰어들었다가 차에 치인 거야. 오빠들은 도망가고 행인들이 신고해 병원에 옮겼지만 사흘 째 깨어나지 못하자 동거녀가 보증금을 찾으러 온 거야. 그 순간 내 머리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어. 그럼 내 월급은? 가방을 챙겨 일어나는 동거녀에게 두 달 동안 못 받은 월급에 대해 이야기했어. 그녀는 묘한 표정을 지었어.
“그건 모르죠. 월급은 받는 쪽이 알아서 받았어야지, 나한테 말하면 안 되지. 정말 안 줬는지 내가 어떻게 믿어요. 안 그래요?”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보고 계단을 내려갔어. 급한 마음에 쫓아가 팔을 잡았어.
“형이 나중에 목돈으로 준다고 했거든요. 진짭니다.”
“그럼 그 새끼 나오면 직접 받으면 되겠네. 난 몰라요.”
그녀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가 버리고, 난 허망한 표정으로 막막하게 서 있었어. 사장이 위로하듯 말했어.
“얌마, 니도 앞으로 사회생활 해 봐라. 수없이 떼이는 일 천지다. 그게 다 인생 공부다, 공부. 나도 돈 많이 떼었다. 내가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아, 다들 왜 이럴까. 내가 불쌍하지도 않나? 자기들은 나보다 돈도 많고 힘도 세잖아. 자기들 용돈 수준도 못 되는 그 작은 돈 때문에 내가 눈물을 흘리는데 저렇게 매정할 수 있나. 그 목욕탕 때밀이가 돈을 잘 번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날 오후부터 바로 새 때밀이가 와서 계약을 했어. 나는 그가 혹시 나를 목욕탕 뽀이로 고용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공손하게 부탁을 했어. 음료수를 하루에 얼마어치 이상 팔 수 있다, 은행에 그날그날 예금하기도 한 것도 내 아이디어였다, 식사는 밥 대신 라면만 먹어도 된다고. 열심히 고개를 조아렸지만 소용없었어. 조카를 데려오기로 했다는 거야. 결국 난 두 달 치 월급을 끝내 받지 못한 채 그만둬야 했어. 이럴 거였으면 장깨 말대로 진작 그만 둘 걸 그랬나, 그랬으면 맞지도 않고 월급도... 한숨을 쉬며 짐을 쌌어. 옷가지 몇 개, 기타, 그리고 내가 매일 썼던 장부. 장부를 펼치자 사이에서 통장과 도장이 툭 떨어졌어. 백이십만오천오백 원이 들어 있는 통장. 통장?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이 통장의 존재를 아는 건 형과 나뿐이야. 그런데 형은 혼수상태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고, 난 오늘 여기에서 나가야 하고. 형이 깨어나 다시 여기에 온다고 해도 난 없을 거 아냐. 더구나 이 돈이면 얼추 장깨가 완쾌될 때까지의 수술비가 돼!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더니 이렇게 살게 되나 봐. 장부를 가방에 넣고 기타를 든 채 은행에 가서 돈을 모두 찾았어. 마감 시간도 멀었는데 일찍 온 나를 보고 그녀가 의아해한 건 잠시, 내 얼굴의 상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눈물을 보였어. 민망했어. 나 보고 가지 말고 기다리래서 자리에 앉아 잡지를 읽었어. 은행 일 보자마자 항상 목욕탕으로 뛰어가곤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어. 마감 시간이 지나 창구에서 나온 그녀에게 그동안 이야기를 다 했어. 딱 하나만 빼고. 내가 형에게 맞고 기절한 것 말야. 약간의 과장도 보탰어. 나와 형은 일대일로 육박전을 벌였는데 나도 싸움엔 소질이 있더라. 형의 주먹을 거의 다 피했다, 거의 뭐 이소룡 영화를 상상하면 된다... 그녀가 눈물 가득한 얼굴로 피식 웃었어. 한 김에 거짓말을 더 했어. 형이 미안해하면서 장깨 치료비를 주었다고.
34. 가난한 집 엄마들은 왜 냉정할까?
장깨 병원에 들러 돈을 내미니 녀석은 역시 호기롭게 사양을 했어. 자긴 끄떡없다는 거야. 내가 사정을 했어.
"너 끄떡없는 거 아는데... 혹시 또 아냐? 수술하면 무쇠다리가 될지 모르잖어..."
내가 그 돈을 마련하려고 목욕탕을 그만두었다는 걸 장깨는 미안해했어. 이번엔 내가 호기를 부렸지. 그깟 목욕탕은 이담에 돈 벌어서 하나 지으면 된다고. 녀석이 힘 없이 웃었어.
“나, 간다.”
“그래. 가라.”
나도 목욕탕을 떠나고 녀석도 중국집을 잘렸으니 이렇게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었어. 그때 녀석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보는 건데. 전화도 없고 주소도 없던 그때는 있던 곳을 떠나면 다시 만날 걸 기약하기 어려웠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손이라도 한 번 잡아줄 걸. 치료 잘하란 말도 안 하고 마치 잠깐 어디 나갔다 오는 사람들처럼 간단한 인사를 나눴어. 그럴 수밖에 없었어. 길게 이야기하면 눈물이 났을 거야. 그렇게 헤어졌고, 그게 끝이었어. 집에 와서 짐을 내려놓고 버스를 타고 경양식집 일을 하고 오니 어머니가 퇴근해 계셨어. 내가 목욕탕에서 일하지 못하게 된 걸 안타까워하셨어.
“그런 데를 왜 그만두니? 뭐든 꾸준히 할 생각 안 하고 툭하면 그만두면서 무슨 기술을 배워?”
“새 때밀이가 조카를 데리고 와서...”
“그럼 다른 데라도 소개해 달라고 말해 보지. 그냥 집으로 와버리면 밥이 나오니, 떡이 나오니?”
“목욕탕이 너무 힘들어서... 다른 일 찾아볼게...”
“힘들다고 그때마다 관두면 어떻게 살어? 꾹 참고 열심히 해야지. 남의 돈 먹는 게 쉬운 줄 아니.”
“저녁에 노래하는 일은 계속하니까... 목욕탕 그만뒀으니까 시간을 늘리면 지금보다는 더 받을 거야...”
“남의 밑에서 열심히 일하면 때마다 월급 주잖아. 편한 줄 알아야지. 농사지을 때 생각해 봐라. 비 오면 비와 서 망하고 비 안 오면 안 와서 망하고... 서울이 좋더라. 나만 열심히 하면 한 달에 쌀 두세 가마는 벌잖니.”
어머닌 내가 게으르고 끈기가 부족해서 쫓겨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서운했어. 이럴 때는 그동안 애 많이 썼다, 이왕 그만두었으니 푹 쉬라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서운한 마음에 눈물이 났어. 엄마는 내가 일 안 하고 집에서 놀까 봐 걱정하셨을까. 나를 달리는 말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어. 그래서 채찍질을 계속하는 거야. 엄마로서 당연한 일일 텐데도 난 상처가 됐어.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에 나오는 주인공 엄마도 그러잖아. 왜 가난한 집 엄마들은 하나같이 다들 냉정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엄마, 나... 목욕탕에서 매일 맞았어. 내가 일을 못하기도 했겠지만... 그렇게 맞으면서 어떻게 일을 해...!”
맞았다는 말에 엄마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슬며시 돌아앉아 한숨을 쉬었어.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어. 내가 괜한 말을 했나. 라면만 먹었다는 말은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마음 같아선 며칠 푹 쉬고 싶었지만 엄마 눈치에 빨리 일을 구해야 했어.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밥을 해 놓고 일곱 시쯤 식당으로 출근하셨어. 잠시 후 동생들이 일어나 밥 먹고 학교 가고 난 한 숨 더 자고 일어나 늦은 밥을 먹었어. 먹으면서 보니 밥상이며 냄비, 숟가락에 때가 더 꼬질꼬질해졌어. 석유곤로도 그을음이 다시 생겼고 타일을 대충 붙여 만든 개수대에도 물때가 만연했어. 밥을 먹다 말고 철수세미를 집어 들었어. 손에 잡히는 대로 박박 문질렀어. 어지간한 건 닦이는데 구석이나 주름에 있는 때는 잘 안 닦여. 가난의 흔적이란 저런 걸까. 아무리 애써도 없어지지 않는 때와 같은 거. 언젠가 내가 돈을 벌면 저것들이 반짝반짝해질까. 닦을 만큼 닦고 나서 식어버린 밥을 마저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옆방 아저씨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어. 순식간에 소름이 돋으면서 가슴이 철렁했어. 때밀이 형의 돈을 장깨에게 준 뒤 생긴 무섬증이야. 형이 의식을 되찾아 나에게 찾아 올 지도 모른다는 공포. 꿈도 꿨어. 버스를 타거나 걸어갈 때에도 형 비슷한 사람을 보면 문득 놀라곤 했어. 집에 들어갈 때마다 혹시 우리 방 문 앞에 누가 있나 살피는 습관도 생겼어. 남의 돈을 마음대로 했으니 벌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형에게 잡혀 얻어맞을 생각을 하면 몸이 움찔움찔했어. 형의 주먹은 순식간이어서 내가 눈을 감을 사이도 없이 얼굴로 날아왔거든. 그때의 공포를 어떻게 설명할까. 주먹에 맞아 입안이 터져 피가 입안에 퍼질 때 비릿하게 느껴지는 죽음의 징조들을. 교회 갈 때마다 제발 형이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어. 그게 형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도. 그 기도 때문에 내가 지옥에 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
옷을 입고 집을 나섰어. 집을 반경으로 거리를 넓혀가며 골목을 다니며 구인광고가 있나 봤어. 근데 저 쪽에서 낯익은 아이가 와. 동생이었어. 이 시간에 왜 집에 오냐고 물으니 입을 굳게 다물고 말을 안 해. 다시 물으려는데 집으로 쏙 들어가.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주택가를 빠져나와 큰길을 건너 가게들이 많은 곳으로 가니 사람 구한다는 쪽지가 붙은 가게가 제법 있었어. 보일러 설비 조수, 가전제품 배달, 중국집 배달, 장난감 조립... 하지만 구인광고를 붙여 놓았다고 해서 지금 당장 일을 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어. 힘들고 보수가 적어서 사람들이 쉽게 그만두기 때문에 늘 구인을 하는 거야. 자리가 나면 연락을 줄 테니 전화번호를 적어 놓고 가라는데 우리 집에 전화가 있어야 말이지. 매일 가서 물어보는 수밖에. 오토바이를 갖고 있으면 배달 일을 줄 수 있다고 해서 할부로라도 오토바이를 사려고 매장에 갔지만 내가 아직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안 된대. 사정을 했더니 그럼 보증인이라도 구해 오래. 내가 배달하다가 사고가 나서 드러눕거나 죽기라도 하면 오토바이 값은 어떡하냐는 거야. 세상은 내가 죽거나 다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 확실한 경우에만 아주 조금 자비로워지는 것 같았어. 그 자비 또한 회수 가능한 선을 넘지 않아. 맨 몸뚱이의 내 삶은 결국 근근한 연명만을 허락받는 기분이었어. 오토바이 살 돈도 없는 내게 조금이라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어. 엄마한테 오토바이 살 돈을 부탁드려봤지만 별 수 없었어. 오히려 내가 근성이 부족하다고 걱정하셨어. 죽기 살기로 아무 일이나 해야 하는데 오토바이 타령을 하면서 뜬구름 잡을 생각만 한다는 거야. 끈기가 없으니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겠느냐고. 엄마에겐 늘 같은 말이 나왔어. 하지만 막상 엄마가 말하는 그런 일자리는 구해지지 않았어. 신문배달 이런 거 말고 돈을 좀 더 주는 그런 일자리 말야. 잔소리를 듣는 게 점점 고역으로 느껴졌어. 그럴 때마다 답답해서 그릇을 박박 닦았어. 그릇 닦는 가루 약을 수세미에 묻혀 문지르다 물에 헹구면 은처럼 반짝거렸어. 난 왜 그릇 닦기에 집착했는지 모르겠어. 그냥 반짝거리면 좋았어. 가난하지 않아 보여서였을까. 걸레도 여러 번 빨아 방 구석구석을 닦았어. 창틀과 장롱 위도 닦았어. 가난의 먼지들을 떼어 버리고 싶었어.
며칠 뒤 동생을 거리에서 또 만났어. 동생은 그때 중학교 일 학년이었어. 물어보니 학교를 안 가고 있대. 친구들이 자기를 놀려서래. 도시락 반찬을 매일 똑같은 장아찌만 싸온다고, 니네 집이 그렇게 가난하냐고 한대. 그러면서 울었어. 나였다면 그런 친구와 싸우거나 무시하고 넘어갔겠지만 내향적인 동생은 쉽지 않은 모양이었어. 답답한 마음에 동생 가방을 뺏어 들고 앞서 학교로 갔어. 동생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울었어. 버스 타고 가면 갈 거냐고 물으니 가겠대. 아이고, 어리다, 어려. 나도 엄마 눈에 저렇게 보이겠지. 버스 타고 학교 가서 담임 선생님을 만나 사정 얘기를 했어. 선생님이 동생을 위로하셨어. 동생 표정이 밝아져서 교실에 들어갔어. 돌아오는 길에 큰 사거리 대우전자 대리점에서 사람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들어갔어. 다행히 취직이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