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떨지 마. 어차피 네가 모르는 사람들이야.”
목욕탕 문을 닫자마자 뛰어내려와 택시를 타고 경양식집으로 갔어. 십 분이 채 안 걸렸어. 그녀 말대로 요금이 오백 원이었어. 왕복이면 천 원인데... 택시를 타면 남는 게 없을 것 같았어. 버스는 110원이지만 대신 제시간에 도착을 못해. 도착하자마자 바로 튜닝하고 노래를 시작했어. 가수처럼 잘 부를 재주가 없으니 나름의 창법을 고안해야 했어. 소리 지르지 않고 읊조리는 창법. 대신 기타 반주를 좀 더 많이 넣는 거야. 그런데 막상 사람들을 의식하니 호흡도 가쁘고 가사도 틀리고 기타에 신경 쓰다 보니 노래도 안 됐어. 이렇게 노래를 해도 되나. 쫓겨나는 거 아냐? 걱정이 됐어. 이런 내가 불안해 보였는지 사장님이 부르더니 커피잔에 야채수프를 담아 주셨어.
“떨지 마. 너는 가수가 아니야. 손님들도 어차피 네가 모르는 사람들이야.”
다른 사람보다 사장님이 가장 신경 쓰였는데 그분이 괜찮다고 하시니 마음이 좀 놓였어. 내 마음대로 하자고 생각했어. 노래하다 힘들면 로망스나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연주곡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힘든 첫날을 때웠어. 아홉 시 반이 넘으니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웨이터들이 청소를 시작했어. 나도 같이 청소했어. 테이블보를 모두 걷은 다음 의자를 테이블 위에 뒤집어 올리고 바닥을 쓸고 마포로 닦는 거야. 다 닦으면 의자를 내린 뒤 테이블과 의자를 손걸레로 닦고 새 테이블보를 덮은 다음에 후추며 소금이 들어 있는 양념 통을 장식해. 이어서 DJ박스 안 기계들을 닦고 내친김에 화장실 변기까지 닦고 있는데 마침 사장님이 들어오셨어.
“청소는 쟤들이 하니까 넌 안 해도 돼.”
“괜찮습니다. 저 청소 잘 합니다! 헤헤.”
“그래? 그럼 밥이나 먹고 가라.”
사장님이 고마워서 청소라도 한 건데 덕분에 밥을 얻어먹게 되다니! 배고픈데 잘 됐다. 팔다 남은 돈가스며 함박스테이크가 큰 쟁반에 얹혀 나왔어. 집에 갈 사람은 가고 주방일 보는 분, 나, 사장님, 또 다른 두 명이 테이블에 앉아 먹기 시작했어. 꿀맛이었어.
“근데... 주현이 너 음악도 좀 아니?”
“라디오에서 들은 거... 밖에 잘 모릅니다.”
“그래? 좀 들어보자. 가서 한 곡만 틀어 봐. 손님들 없으니까 볼륨 좀 키워.”
한 곡 만이라... 한 곡 만이라면 이럴 때 딱 떠오르는 곡이 있었어. 아니, 이럴 때뿐 아니라 항상 떠오르던 곡. 작년 중학교에서 같이 기타 치던 친구가 들어보라고 준 테이프에 있던 노래. 다른 노래보다 유독 그 노래가 나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콩닥거렸지. 하도 들어서 테이프가 늘어날 지경이던. 나도 어서 기타를 연습해서 그 사람처럼 쳐 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하던 그 노래. 딥퍼플의 Child in time이었어. 심벌과 기타가 동시에 여린 듯 그러나 엄숙하게 딘딘딘, 하고 첫마디를 메기면 건반이 똥또도도도도동 가벼운 하강 화음으로 받아. 그렇게 몇번씩 주고받으면서 주제가 약간의 변형을 거쳐 조금씩 고조되면 하드록이라기엔 다소 감성적인 보컬이 쓰윽 밀고 들어오지. 그런데 이 보컬이 마음 밑바닥을 훑어. 보컬에 익숙해지다 보면 이번엔 드럼과 건반이 본격적으로 붕붕거리기 시작해. 그것들이 뒤엉켜 절정을 이루다 사라지면 솔로 기타가 훅 솟아오르는데 여기부터가 제대로야. 기타 솔로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거든. 보컬의 흐느낌을 뒤따라가면서 건반과 기타가 빠른 패시지로 치닫다 보면 다시 처음으로 오지. 그리고 엄숙하게 끝나. 이 노래의 매력은 보컬의 흐느낌이야. 처음에 들었을 땐 마치 아이를 낳는 소리라고 생각했어. 전체적으로 요란하거나 시끄러운 리듬은 없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강렬한 파도를 경험하는 느낌이 드는 곡이야. 십 분이 넘으니 라디오에선 거의 안 틀어주는데 한 번 듣고 나서 바로반했어. 누가 내 마음을 흔들어 묵은 때를 털어주는 느낌이었거든.
“주현인 이 음악이 왜 좋니?”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가 다른 노래하고 좀 다릅니다.”
“가사를 아니?”
“사전을 찾아보긴 하는데... 뜻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그래, 이 노래는 가사가 빚어내는 분위가 독특해. 밀란 쿤데라나 알베르 까뮈 느낌이 나거든. 요즘 말로 하면 시크하다, 쿨하다고 해야 하나? 절대 말랑말랑하거나 달달하지 않아. 선언적이고 직설적이지. 비굴하거나 돌려말하지 않고 내 쏘는 가사가 기존의 노래들을 깨부순다고 해야 하나? 도발적인 가사가 꽂혔어.
Sweet child, in time, you'll see the line.
The line that's drawn between Good and bad.
See the blind man Shooting at the world.
귀여운 아가야, 너는 선과 악 사이에 그려진 선을 보게 될 거야.
장님이 이 세상을 쏴버리는 걸 보렴.
얼마나 멋진 가사니. 이 가사 속 아가는 마치 나를 말하는 것 같았어. 목욕탕 오기 전에는 세상 물정을 모르던 나였는데 몇 달 만에 선과 악을 적나라하게 경험하게 되었잖아. 선이 장깨와 세탁소 아저씨라면 악은 때밀이 형이나 목욕탕 주인인 셈이었어. 그전까지 난 모든 인간이 선하다고, 적어도 원래부터 악하지는 않다고 배웠어. 세상엔 사람을 교화시키는 많은 장치들이 있잖아. 교회, 절, 성당 같은 종교와 심지어 교도소까지. 악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회심을 하거나 정 안 되면 갇히게 될 테니 세상엔 선한 사람이 넘칠 거라고, 그래서 세상은 아름다운 거라고 배웠잖아. 근데 내가 경험한 목욕탕은 속임수와 착취가 일상이었어. 구실은 언제나 돈이야. 속여서라도 더 비싸게 많이 팔아야 해. 그렇게 번 돈과 성실하게 번 돈이 같은 대접을 받는 게 이상했어. 내가 한 달을 고생해서 받는 육만 원과 형이 나를 때려가며 번 육만 원이 차이가 없다니. 내 한 달 노동과 형의 이틀 치 노동이 화폐가치로 보면 똑같은 거야. 고귀함과 추함의 경계가 돈에는 없었어. 그래서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된다고 하는 건가? 부당하게 느껴졌어. 정직하고 고결하게 번 돈만 가치가 있다는 논리는 장발장 같은 옛날 책에나 나오는 건가? 지혜가 넘치는 경전이라는 것들이 한낱 목욕탕 뽀이도 구제하지 못하고 있었어. 웃기는 일이지. 결국 세상을 구하는 건 철학자나 종교인이 아니라 장님이라고 노래하는 것 같았어. 설득이나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총으로 빵! 그래서 한 방에 해체시키는 해결사. 결국 파괴밖에는 방법이 없는 걸까. 우울하면서도 파격적인 가사가 묘하게 끌렸어. 그때부터 난 그런 음악에 빠졌던 것 같아. 특히 핑크 플로이드로 대표되는 프로그레시브 락 음악에. 삐딱해진 거지. 마침 사장님도 그런 음악을 좋아하신댔어. 목욕탕 청소만 아니면 오래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지만 음악 이야기를 사장님과 나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재미있었어.
다음 날, 세탁소 심부름 다녀오는 길에 하늘색 셔츠와 노란색 넥타이를 샀어. 장깨에게 자전거도 빌렸어. 택시비는 비싸고 버스는 돌아가니 결국 대안은 자전거밖에 없었어. 그걸 타고 부랴부랴 가면 땀이 쏟아졌어. 재빨리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씻고 새로산 셔츠로 갈아입고 노래를 했어. 노래를 하면서 알게 된 것도 있어.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 노래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거. 그들은 함께 온 사람들과 즐겁게 식사하러 온 거지, 내 노래를 들으러 온 게 아니었던 거야. 내가 노래를 시작하면 내 쪽을 한 번 흘깃 보는 게 다였어. 내가 괜한 걱정을 했던 거야. 일부러 목청을 크게 할 필요도 없었어. 그들은 식사를 하러 온 거니까. 부담이 줄어드니 노래가 한결 편했어. 가끔 어떤 손님은 신청곡을 부탁하기도 했어. 대표적인 노래가 정태춘의 ‘촛불’이야. 처음에 난 그 노래를 부를 생각이 없었어. 근데 정태춘의 다른 곡을 부르면 다들 ‘촛불’도 불러 달래. 경양식집에 오면 그 노래가 떠오르는 모양이야. 또 다른 노래는 배호의 ‘누가 울어’였어. 주로 연세 지긋한 손님들이 신청했어. 신청곡은 손님이 뜸할 때 들어오는데 그걸 부르는 날엔 DJ 박스 앞 신청곡 바구니에 팁이 놓여 있곤 했어. 어떤 사람은 몇 천 원을 주기도 했어. 의외의 수입이었어. 난 그분들을 기억했다가 재방문하시면 자리에 가서 인사를 드렸어. 어떤 날은 그분들 자리에 가서 기타를 치기도 했어. 그렇게 해서 단골이 된 분들이 생겨났어. 사장님도 흡족해하셨어.
30. 금지된 사랑을 들켰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변하나?
여탕 누나는 때밀이 형의 동거녀에게 머리채를 잡힌 소동 이후로 출근을 안 하더니 끝내 그만뒀어. 형과 비밀스러운 관계를 이어 온 게 탄로 났잖아. 그 일로 형은 동거녀와 누나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했는데 결국 임신한 동거녀에게 돌아가기로 했대. 그럼 누나는 어쩌지. 걱정됐어.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누나를 욕했어. 가정이 있는 걸 뻔히 알면서 남자를 꼬여내어 바람피우게 했다는 거야. 특히 카운터 이모가 목소리를 높였어. 그분도 남편이 바람나 딴살림을 차렸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러신가? 그분은 말끝마다 거 보라고, 남의 가정을 파괴해 피눈물 나게 했으니 자기도 천 벌 받을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어. 근데 이해가 안 갔어. 사랑은 둘이 같이 하는 거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잖아. 근데 왜 여자를 더 비난하지? 내가 형과 누나의 대화를 들어서 아는데 누나가 형을 꼬여낸 게 아니야. 그 반대지. 누나는 술이 취하면 형의 동거녀 얘기를 꺼내며 울었거든. 오빠는 여자 친구가 이미 있는데 우리 이렇게 만나도 되는 거냐고. 그럴 때마다 형이 그랬어. 그 미친년이랑은 곧 헤어질 거라고. 난 니가 좋다고. 동거녀와 누나 사이를 오간 건 형이야. 근데 형은 그대로 일을 하고 누나는 그만둬야 돼? 동거녀가 누나 머리채를 잡은 것도 그래. 그녀를 배신한 건 누나가 아니라 형이잖아. 그런데 사건의 당사자인 형은 그대로 두고 피해자라 할 수 있는 두 여자들이 싸우다니. 두 여자가 싸우는 동안 형은 살짝 빠져 있으면 되는 거야. 형은 그 점을 이용하는 것 같았어. 누나가 그만둔 일을 듣고 형을 나무라러 온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거든.
“허헛, 참... 아, 제가 이번에 실수를... 뭐... 했습니다. 일 잘하길래 불쌍해서 잘 대해줬더니만... 걔가 그렇게 달라붙더라고요. 허허, 참...”
사장도 동의하는 것 같았어.
“얌마, 옛날이랑 달라. 요즘은 조심해야 해. 남자가 아무 데나 쑤시다 잘못되면 코 꿴다. 다 뜯기고 불알 두 쪽만 남는 수가 있어. 이상한 년들이 좀 많아야 말이지.”
어쩜 저렇게 입에 발린 거짓말을 할까. 내가 다 들었는데. 누나 앞에서 형은 늘 동거녀 흉을 봤거든. 그녀와는 영 맛이 안 난다고, 근데 넌 사람을 쪽쪽 빨아들인다고. 그러면 누나는 간드러지게 웃으며 저엉말? 하고 되묻곤 했거든. 형수님이랑 헤어질 테니 자기랑 살림 차리자고 조르던 형이었어. 근데 이제 와서 누나를 꽃뱀 취급하다니. 사랑이란 게 얼마나 덧없니. 그런데 진짜 문제는 형의 속마음이었어. 동거녀가 싫은 거야. 오빠들이 찾아와서 동생 눈에 눈물 나게 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협박해서 할 수 없이 다시 살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여탕 누나를 좋아한 거야. 내가 노래를 갔다가 열 시 반쯤 목욕탕으로 돌아오면 탈의실에 형과 누나가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곤 했어. 누나는 목욕탕 근처에 방을 얻어 놓고 혼자 살았어. 형은 가끔씩 나더러 일이십만 원을 찾아오라고 해서 생활비로 대 주면서 가끔씩 퇴근길에 누나 방에 들러 갔어. 형이 너무 안 오면 누나는 형의 퇴근 무렵에 목욕탕으로 찾아왔어. 그런 날은 형이 화를 냈어. 내가 알아서 갈 텐데 왜 찾아오냐고. 그럴 때마다 누나는 훌쩍거렸어. 그럼 형은 누나와 탁자에서 술을 마시면서 달래거나 정사를 나누고 나갔어. 그러면서 나에게는 입단속을 시켰어. 어떤 날은 누나가 낮시간에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어. 형이 화를 더 냈어. 그 불똥은 내게도 튀었지.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는 거야. 심지어 월급날이 지났는데 아무 말 없이 안 주는 거야. 일주일이 지나도록 안 주길래에 더 기다릴 수 없어서 퇴근하는 형에게 말을 꺼내보았어.
“그 새끼, 징징대긴. 그거 깔아놓은 거야, 임마.”
깔아놓는다고? 일정 기간의 월급을 보증금처럼 잡아두는 걸 당시엔 깔아 놓는다고 표현했어. 구두 공장도 청바지 공장도 한 달 치 월급을 깔아놓는다고 했지. 그 달치 월급을 받고 바로 다음 날부터 안 나오는 경우를 예방하려고 담보로 잡아 놓는 거래. 근데 나는? 이제 와서 월급을 깔아 놓는 게 이해가 안 됐어.
“얌마, 니가 언제 토낄지 모르는데, 새꺄. 이번 달 월급 받고 도망가 버리면 내가 좆되잖어, 새꺄. 너 같음 주겠냐?”
내가 경양식집에 노래하러 다닌 일 때문에 화가 났나? 그래도 서운했어.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다니. 내가 그동안 충성한 게 얼만데. 걱정 마시라고, 난 갈 곳도 없고 때밀이도 배워야 하니 꼭 돌아오겠다고 해도 형이 들은 척 안 해. 그럼 월급의 반이라도 달라고, 어머니 갖다 드려야 한다고 해도 요지부동이야. 그나저나 당장 장깨 돈을 갚을 일이 문제였어. 애원하는 표정을 지으며 한 번 더 부탁을 해 보았어.
“그럼 만 오천 원이라도 먼저 주시면...”
“이 시팔노무씨애키가 짜증 나게! 콱 죽여 버릴라. 안 꺼져?”
울컥했어. 정말 해도 너무하는 것 같았어.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제가 일 안 한 걸로 월급 달라는 것도 아니고...
짝! 따귀를 맞았어. 휘청거리다 거울 앞으로 넘어졌어. 거울 앞에 있던 스킨로션들이 와르르 굴러 떨어졌어.
"쉽새끼. 은혜도 모르는 새끼가. 싸가지 없이! 꺼져, 시발놈아."
형은 그대로 퇴근해 버렸어. 일어나면서 거울을 보니 뺨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코피가 났어. 눈에 불이 확 켜지는 기분이었어. 죽여 버리고 싶었어. 사물함에 숨겨놓은 잭나이프가 떠올랐어. 그를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끓는 주전자 같던 울분이 조금 가라앉았어. 그래, 나도 널 해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두고 보자. 이를 악물었어. 나란히 서면 형은 나와 비슷한 덩치야. 같이 싸우면 상대가 될지도 몰라. 내가 형에게 맞는 걸 볼 때마다 장깨는 혀를 찼어.
“병신아, 왜 맞냐, 새꺄. 넌 깡이 없는 게 문제야. 그럼 계속 얻어터져라. 으이구!”
맞아. 형은 일이든 싸움이든 죽기 살기로 하는데 난 머뭇거리거든. 어린 내가 윗사람에게 대들어도 되나? 형이 월급을 주는데. 대드는 건 너무 무례한 건 아닐까. 고민하는 거야. 이런 정신 상태로 무슨 싸움을 하겠어? 내가 겁먹고 당하기만 하니까 형이 나를 함부로 대한다는 생각도 들었어. 얻어맞을 때마다 숨겨 놓은 칼을 떠올리는 걸로 혼자 위안 삼고 넘어갔잖아. 그러면 뭐해? 형은 내가 칼이 있는 것도 모르는데. 형이 아무리 무서워도 밟히면 꿈틀 한다는 걸 보여줬어야 했다는 생각도 들었어. 형 입장에서 함부로 대해도 되는 아이라는 인식을 준 건 내가 겁을 먹고 참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아무리 월급 받는 관계지만 폭력까지 당연한 건 아닐 거야. 경양식집 사장님이라면 날 이런 식으로 대하진 않을 텐데. 결국 월급은 못 받고 경양식집에서 받은 주급과 비상금을 합쳐 장깨 돈을 갚고 나니 돈이 하나도 안 남았어. 월급까지 받았으면 장깨를 포장마차 데려가 뭐라도 사 주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