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내 마음속 수호신, '오기'
방학을 맞아 다시 신문배달을 시작했어. 보급소 사장은 수금을 강조했어. 수금해서 갖다 줘야 그중에서 월급을 덜어 주었어. 수금을 못하면 월급을 주지 않았어. 문제는 수금이 힘들다는 거야. 새벽에 신문 돌리면서 수금을 부탁드리면, 아침부터 애새끼가 재수 없게 돈 달라냐고 욕을 하는 구독자가 있었어. 같이 배달하는 형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구독자였어. 다들 그 집을 꺼리니 신참인 나한테 떨어진 집이었는데, 나 역시 몇 달째 신문값을 못 받고 오히려 내 돈으로 물어내고 있었어. 학교가 늦게 끝나니 주말에 받으러 가는데 그 또한 핑계가 많았어. 은행이 문을 닫아 돈이 없다는 거야. 집은 꽤 좋아 보이는데, 안 주니 별 수 있나. 돈을 주지 않거나, 주더라도 최대한 늦게 주려는 구독자와 돈을 받아야 월급을 받는 나의 관계가 답답했어. 그렇다고 수금을 안 하자니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월급은 못 받게 되잖아. 가만있을 수 없었어. 사람들은 다른 돈에 비해 신문값 주는 걸 아까워하는 것 같았어. 어쩌면 내가 만만하기 때문인지도 몰라. 장깨 말대로 드러누워야 하는 건 아닐까. 난 결국 그 집 앞에서 주인이 올 때까지 영어 단어라도 외우며 기다려 보기로 했어. 한참을 기다려 주인이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꾸벅 인사를 하고 불쌍한 표정을 하며 조심스레 신문값 얘기를 꺼냈어. 주인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짜증 섞인 표정으로 다음에 오라고 반말을 했어. 난 다시 꾸벅 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어. 오면서 아, 이번엔 꼭 받았어야 하는데 생각하니 애가 탔어. 다음에 오라고 했으니 다음에 가면 주겠지, 믿어보는 게 차라리 마음도 편했어.
무조건 막무가내로 버티면 백 퍼센트 줄 수밖에 없으니 문 앞에서 그냥 드러누우라고 보급소 형들도 말했어. 하지만, 엄두가 안 났어. 돈 줄 생각을 아예 안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달라고 할까. 목욕탕에서 월급 달라고 하다가 맞은 생각이 났어. 더 겁이 났어. 괜히 얻어맞을지도 모르니 그냥 없는 셈 칠까. 그러면 창피하지는 않잖아. 그렇게 망설이다가 수금 마감일이 지나갔어. 결국 보급소 사장에게, 그렇게 병신 쪼다처럼 하다가 앞으로 어찌 먹고 살끼고? 하는 걱정까지 들었고, 결국 그 달치 월급을 못 받았어. 엄마도 걱정하셨어.
“아이고, 어리다, 어려. 그런 새끼들이 너같이 물렁한 애한테 순순히 돈을 내 줄 줄 알어? 허이구,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겠니?”
월급도 못 받아 속상한데 엄마까지 그러시니 잠이 오지 않았어.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닌데 내가 왜 돈을 못 받아야 할까. 난 지금 왜 잠을 못 자나. 이 모든 원인이 그 사람 때문이었어. 그가 아니라면 한 밤중에 잠도 못 자고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잖아. 내가 왜 그 사람 때문에 이렇게 비참해야 하나. 나는 벌떡 일어나서 옷을 입고 다시 그 집으로 갔어. 제법 늦은 밤이었어. 도착하자마자 벨을 눌렀어. 한참 뒤에 문이 열렸어. 난 즉시 마당을 지나 계단을 서너 개 올라 현관 앞으로 갔어. 잠시 후 뭔가 짜증스러운 소리와 함께 주인이 나오더니 대뜸 눈을 부라리며 재수 없는 새끼가 또 왔다며 욕을 했어. 그 욕을 고스란히 다 듣고 나서, 난 최대한 차분하게 신문값 얘기를 꺼냈어. 신문을 이미 보셨으니 다음 달에 끊더라도 지금까지 보신 건 제발 부탁드린다고. 신문을 봤으니 돈을 내야 한다는 나의 말에 그의 양심이 자극되었을까, 그는 내게 바짝 다가와 당장이라도 한 대 칠 것처럼 손을 번쩍 들면서 경멸하는 눈빛으로 소리 질렀어.
“너 같은 새끼한텐 안 준다, 씹쌔꺄. 꺼져.”
갑자기 때밀이 형이 떠올랐어. 나도 모르게 움츠리며 고개를 돌려 피하는데 거실에서 내 쪽을 쳐다보는 가족들과 눈이 마주쳤어. 그 집 아이도 내 또래쯤 되어 보였어. 그 순간 뭔가에 떠밀리듯 멈칫, 뒤로 물러섰어. 계단을 내려와 마당 끝 대문까지 걸어갔어. 마치 뭔가를 잘못하다 들켜 부끄러워 제 풀에 달아나는 것처럼. 차라리 신문대금을 못 받아도 좋으니 그 상황을 벗어나 숨고 싶었어. 없었던 일처럼 잊고 싶었어. 그런데 더 이상 발이 움직이질 않는 거야. 손도 막 떨리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어. 숨이 가빠지더니 토하듯 울음이 터져 나왔어. 도대체 내가 왜, 내가 왜 이 시각에 여기서 울고 있어야 하나. 이대로 돌아가면 난 또다시 잠이 안 올 거야.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월급을 받아야만 하겠어. 시발,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오기가 난데없이 들었어. 여전히 무서웠지만 다시 현관문 앞으로 올라가 문을 세게 두드렸어. 여전히 끅끅거리는 울음과 함께. 가족들이 날 쳐다보거나 말거나. 잠시 후 나온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그의 아내였어. 안에서 바깥의 소동을 다 본 그분은 말없이 다시 들어가더니 돈을 가져왔어.
그 뒤로도 배달을 위해 그 집 앞을 지나가야 했지만 신문을 넣진 않았어. 구독자가 줄면 그만큼 내 월급이 깎여야 했지만 아깝지 않았어. 욕하던 남자와 마주칠까 봐 겁이 나서 가능하면 이른 시간에 그 집을 지나도록 배달 순서를 바꿨어. 그 집 아이가 학교에 갈 만한 시간에도 일부러 그 집을 피했어. 마주치면 내가 비참해질까 봐. 그렇다 보니 배달 시간이 더 걸렸어. 그만큼 잠을 못 잤어. 교회에 가서 그 남자를 혼내달라고 기도했어. 몇 번 그러고 나니 어느 순간엔 그 남자를 마주쳐도 별로 무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심지어 그 남자가 날 때리려고 달려들어도 힘으로 밀리지 않을 것 같았어. 그 집 아이를 만나면 창피할 것 같던 생각도 바뀌었어. 나는 나대로,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타고난 팔자에 맞춰 살면 될 테니. 다시 배달 순서를 예전으로 바꿨어. 오히려 그 남자는 나를 잊었을지도 모르는데 스스로 피해 다니던 예전 내 모습이 가엽게 느껴졌어.
그토록 겁에 질려 있었으면서도 나를 다시 그 집 현관문 앞으로 이끌었던 마음은 어디서 왔을까. 어쩌면 이미 내 속에 존재해 왔는지도 몰라. '오기'라는 이름으로. 내 삶이 구석에 몰리면 쓰윽 나와서 나를 구해주려고 조용히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몰라. 엄마 기도에 나오는 섭리도 혹시 이런 게 아닐까. 나와 수금을 같이 하지는 않지만 엄마가 내게 보내신 알파와 오메가, 그분이 나의 오기를 돌봐 준 덕분에 신문값을 받아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오기 덕분에 다른 집도 수금을 했고 편히 잘 수 있었어. 그 뒤로 나의 마음속 어딘가에 항상 ‘오기’가 있을 거라고 믿게 되었어. 설움이 받쳐 울음이 나오려고 하면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내 마음을 차분히 응시해보기로 했어. 그러면 오기가 '난 여전히 여기 있어'라고 말해 줄 것 같아서.
38. 그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왜 아무 말도 없었을까?
학교에서 성적증명서를 떼어 버스를 타고 인희씨 아버지 근무하시는 회사에 갔어. 넓은 로비 바닥이 깨끗이 닦여 있었어. 내가 매일 청소하던 탈의실 바닥보다 깨끗해 보였어. 수건을 빨아 넓게 편 채 엎드린 자세로 끝에서 끝으로 밀고 다니며 닦던 탈의실. 그걸 다 닦고 나면 엎드려뻗쳐 기합을 받은 것처럼 허리며 어깨가 뻐근했는데. 여기는 사람들이 신을 신은 채 오가는데도 먼지 하나 안 보여. 다들 신발이 깨끗한가 봐. 이렇게 좋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흙을 안 밟고도 사는 건 아닐까. 깨끗한 집에 살면서 깨끗한 신을 신고 깨끗한 길만을 골라 깨끗한 차를 타고 오는 지도 몰라. 문득 내 발을 내려다봤어. 빨아야 할 시기가 꽤 지난 누런 운동화. 승강기 근처 안내데스크에 가 서류를 보여주면서 이러이러한 일로 왔다고 말했어. 직원이 몇 군데 전화를 하더니 잠시만 기다리래.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대학교를 나왔겠지. 그것도 아주 좋은 대학교를. 비싼 등록금을 척척 냈을 만큼 돈도 많을 거야. 잠시 후 어떤 직원이 내려와 내 서류를 확인하더니 이틀 후에 부모님과 함께 오래. 단체로 수여식을 한다고. 부모님과 함께? 어머니께서 직장을 다니셔서 혼자 가야 하는데요, 말하니 난감해해. 엄마가 안 되면 다른 어른이라도 꼭 모시고 오라는 거야. 퇴근하고 내 말을 들으신 엄마가 혀를 차셨어.
“허이구, 참. 장학금을 주려면 그냥 곱게 줄 것이지, 지들이 천금을 준다든? 하루하루 벌어먹는 사람을 오라 가라 하게.”
엄마가 장학금에 대해 곱지 않은 건 그럴만한 사건이 있어서야. 내가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장학금을 이만 원 받게 되었는데 선생님들 마음이 고맙다고 엄마가 점심을 차리셨거든. 그런데 선생님 한 분이 서운한 말씀을 하신 거야. 교장 선생님이 맥주 좋아하시는데 몇 병 사놓지 그랬냐고. 어머닌 그 일을 두고두고 불쾌해하셨어.
“그깟 이만 원 장학금 주고 맥주 타령을 해? 그걸로 닭 몇 마리에 소주, 과일까지 사다 바쳤다. 그러고 얼마나 남아서 중학교 학비 보탬됐을 거 같냐고 물어나 보고 싶구먼.”
결국 나 혼자 미리 빨아 놓은 옷 중 깨끗한 걸 골라 입고 갔어. 나를 포함해서 열 명의 학생들이 와 있는 것 같았어. 그중 부모님 또는 아무 어른 없이 온 사람은 나 혼자였어. 강당으로 안내된 우린 높은 사람이 수여하는 장학금과 그 회사에서 후원했다는 백과사전을 한 권씩 받았어. 수여식이 끝나자 직원의 안내로 회장실에 가니 음료가 나왔어. 그 자리에서 회장이라는 사람이 덕담을 했어. 자기도 혈혈단신으로 서울 와 장사했다. 일이 안 풀릴 때마다 잠을 안 자고 궁리했더니 마침내 이런 회사를 세우게 되더라. 너희들도 공부가 안 되면 될 때까지 매달려라. 옛날에 비해 요즘은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느냐.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온다. 덕담이 끝나자 부모들이 한 명씩 감사인사를 했어. 난 혼자라서 머쓱했어. 회장실에서 나와 아까의 그 강당에 다시 가 보니 음식이 차려져 있었어. 고급스러운 그릇이 깔려있고 요리사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음식을 채워주었어. 음식을 먹기 전에 회장을 가운데 앉히고 좌우로 빙 둘러선 채 사진을 찍었어. 환하게 웃지 않는다고 몇 번을 다시 찍었어. 이어서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고 회장과 높은 사람들이 미소를 띠고 부드러운 말투로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했어. 반대로 수상자 가족들은 말없이 먹기만 했어. 그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다면 음식이 생소해서 그랬을 거야. 모두 처음 먹어 본 것들이었어. 김치찌개라든가, 불고기 같은 게 아니라 고기를 두껍게 잘라 구웠는데 처음 맛보는 양념을 발랐거나, 상추와 고구마를 얇게 썰어 무쳤는데 기름이나 소금으로 무친 게 아니라 땅콩을 갈아 넣었다거나. 아주 맛있었어. 하지만 양이 많지는 않았어. 그렇다고 더 달라는 사람들은 없었어. 난 더 먹고 싶었지만 가만있었어. 후식으로 잣이 들어간 음료가 나왔어. 엄마도 함께 오셨으면, 싶었어. 식사가 끝나고 회장과 일행들이 먼저 일어나 나가고 우리도 한꺼번에 나와 각자 흩어졌어. 내가 받아 온 장학금을 보시고 엄마가 깜짝 놀라셨어. 엄마 월급의 두 배 가까이 되었거든. 이렇게 많이 줄 줄 알았으면 가서 인사라도 할 걸, 그러셨어. 봉투에서 선뜻 오만 원을 꺼내 주시면서 소개해 주신 분에게 감사 인사라도 하고 오라고 하셨어.
“수박 좋은 걸로 한 통 사고 돼지고기도 한 근... 아니다, 두 근은 사야 어지간히 인사가 된다. 정육점에서 주는 대로 덥석 받지 말고 꼭 살코기로만 달라고 해라. 있는 사람들은 건강 생각해서 돼지비계 안 먹거든.”
다음 날, 엄마가 주신 돈으로 헌책방에서 2학기 문제집과 참고서를 사고 인희씨가 근무하는 은행에 가는 길에 시간이 남아 목욕탕에 가 봤어. 다들 바뀌었는데 카운터 이모는 그대로 계셨어. 내가 고등학교에 갔다는 말을 듣고 좋아하셨어. 고등학교 졸업하면 열관리 기사 시험을 봐서 이런데 취직하라고 덕담도 해 주셨어. 그분은 늘 보일러 기사가 하는 일 없이 월급은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셨거든. 때밀이 형이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는 소식도 전해주셨어. 안 됐다는 생각은 아주 잠시, 그가 돈 내놓으라고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어. 온 김에 목욕이나 하고 가라고 이모가 일회용 칫솔을 내주셨어. 시간도 되는데 들어갈까, 하다가 갑자기 지겨운 생각이 들어 그만뒀어. 계단을 내려와 길 건너를 보니 장깨가 일하던 중국집 앞엔 새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어. 녀석이 입원했던 병원에 가 예전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이차 수술까지 마치고 고향으로 갔대. 다행이었어. 불과 일 년 전 일인데 아득하게 느껴졌어. 일부러 천천히 걸어 은행 뒷골목 시장에서 수박과 돼지고기를 사 들고 인희씨를 만났어. 수박과 고기만 전해주고 가려했는데 그녀가 굳이 집으로 가자고 했어. 아빠한테 제대로 인사를 하면 또 다른 장학금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만나고 보니 그녀 아버지는 어제 수여식에서 뵌 분이었어. 장학금 줬다고 인사하러 온 사람이 내가 처음이라고 기뻐하셨어. 그녀 어머니가 쇠고기를 구워내셨어. 돼지고기 사간 게 부끄러웠어. 그녀 부모님이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주셨어. 난 소개서에 썼던 내용을 다시 말씀드렸어. 쯧쯧, 혀를 차며 공감해주셨어.
“장안동? 그럼 주공 아파트에 사나?”
“아닙니다. 아파트 못 미쳐 연립주택촌이 있습니다...”
그 연립주택 지하방에 삽니다,라고 말씀드리면 장학금 얻기에 유리하려나, 머뭇거리는데 그녀 아버지가 말을 끊었어.
“뭐, 거기도 앞으로 재개발 생각하면 그럭저럭 괜찮지. 어머니께 효도 꼭 해. 사람은 부모 은혜 잊으면 안 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떻게 할 건지 물어오셨어. 모르겠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어서 아까 목욕탕에서 이모에게 들은 대로 열관리 기사 학원에 가서 자격증 시험을 봐 취직을 할까 한다고 말씀드렸어. 열관리 기사라... 조용히 읊조리시더니 대학에 갈 생각은 없냐고 물으셨어. 네, 대학교까지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랬어. 더 이상 말을 안 하셨어. 혹시 근무하시는 회사에서 대학생 학비도 주시냐고 여쭤보려다 말았어. 그녀가 맥주를 따서 두 손으로 따라드리자 흐뭇한 표정으로 드셨어.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아버지의 옛날이야기가 나왔어. 가난한 어린 시절, 공부를 잘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쌀 배달을 하신 일, 학교 담임교사가 부모님을 설득해주신 덕분에 간신이 들어간 상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가 승승장구하신 일. 그게 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고 그래서 가훈으로도 정했다는 말씀. 덕분에 두 딸 모두 공부를 잘했다는 자부심. 이미 백 번은 더 했을 그의 이야기를 그녀와 언니는 진지하게 경청했어. 가장을 존중하는 방식인 것 같았어. 평소 내가 알던 당찬 그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어. 시간이 갈수록 식사 자리는 마치 내가 없는 것처럼 그녀 가족들만의 이야기로 바뀌어 갔어. 장학금 수여식에서 높은 사람들이 식사하던 모습처럼, 화기애애했어. 그럴수록 나는 자리가 조금 불편했지만 먼저 일어서기도 어색해서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음식을 먹었어. 대화는 인희씨와 언니 시집보내는 이야기로 이어갔어. 그녀 아버지의 동기가 은행 지점장인데 아들이 대학 졸업하고 증권사 연구원으로 취직을 했다고 말하자 그녀가 아, 그 오빠요? 잘 알아요, 그랬어. 그녀 아버지가, 너희들 어릴 때 꽤 잘 놀았잖니. 언제 한 번 식사 자리 만들 테니 예쁘게 꾸미고 만나 보라고 하셨고 그녀와 언니가 네,라고 대답했어. 그녀 엄마도 친구 아들 이야기를 꺼내셨어. 사범대 나와 역사 교사를 하고 있는데 나이도 네 살 많아서 딱 좋다고. 여자는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나야 사랑받는다고. 그러자 아버지가 선생 월급이 얼마나 되겠냐고 못 마땅한 얼굴을 했어. 그녀 엄마는 그래도 안정적이지 않느냐고 얼버무리더니 이참에 두 자매 같이 선보고 시집보내자고 말했어. 그 말에 그녀 가족 모두가 웃었어. 비싼 쇠고기와 어울리는 웃음 같았어. 그녀 아버지 말씀이 길어져서 늦게 식사가 끝났어. 배웅 나오는 그녀가 갑자기 팔짱을 껴왔어. 아까 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연구원과 선볼 거냐고 물어보았어. 그녀가 깔깔 웃었어.
“아버지가 보라고 하시는데... 당연히 봐야지. 왜? 걱정돼?”
“아니, 뭐... 근데 선봐서 잘 되면 결혼할 수도 있겠죠?”
“야, 니가 커야 결혼을 하지... 그러니까 빨리 커. 알았지?”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으며 내 등을 툭 쳤어. 그냥 장난으로 해 보는 말인가? 그녀가 선을 본다는 게 걱정이었거든. 애정의 크기로만 본다면 세상에서 그녀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나라고 주장할 자신이 있었어. 하지만 결혼이 애정만으로 되지 않을까 봐. 그런 면에서 난 가장 불리한 사람 같은 거야. 그녀가 날 싫어하면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어. 그녀가 날 버리면 난... 견딜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치유될 그런 따위는 아닐 것 같았어.
보충 수업 끝나고 학교에 나가 자습을 했어. 이차 방적식과 부등식이 이해가 잘 안 돼 시간이 많이 걸렸어. 원리를 어느 정도 익힌 것 같아서 유제 풀이에 도전해 보면 또 모르겠는 거야. 며칠을 낑낑대는데 같은 반 친구가 자기 집에 가서 같이 공부하재. 수학을 가르쳐줄 테니 영어 문법을 가르쳐 달래. 좋은 제안 같았어. 옷가지를 몇 개 싸서 그 친구네 집으로 갔어. 형편이 좋아 보였어. 아침이면 회사 사장인 아버지를 태우러 기사가 오고 친구 방에는 전축과 피아노도 있었거든. 친구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시면서 하는 말을 들으니 나를 집에 불러 같이 공부하자는 계획이 그분 아이디어 같았어. 자극도 받고 공부 도움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적당한 등수의 친구를 데려오게 하신 거야. 그분은 친구가 한양대만 붙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셨어. 그러자 친구는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그깟 한양대가 뭐냐고, 자긴 서울대 갈 거래. 그 말에 친구 어머니가 흐뭇해하셨어. 보기 좋은 광경이었어. 난 엄마와 한 번도 대학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대학을 간다고 하면 엄마는 아마 깜짝 놀라실 거야. 함께 공부하는 게 부모의 권유에 의한 거다 보니 친구는 어머니가 계시면 공부하는 척하다가 나가시면 책 덮고 전축을 틀거나 피아노를 치며 딴짓을 했어. 그러다 엄마가 오시면 공부하는 척하면서 맛있는 걸 해 달라고 졸라. 시간이 갈수록 점점 먹고 노는 분위기가 됐어. 애초 내가 기대한 수학 공부는 아예 없는 거야. 그렇다고 그냥 집에 가기는 싫었어. 친구 엄마가 밤에 간식으로 주는 계란 토스트와 우유가 너무 맛있었거든. 나도 이런 집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과일이 항상 있는 식탁과 빛이 잘 드는 공부방도 부러웠어. 하지만 거긴 우리 집이 아니잖아.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왔더니 그녀의 편지가 와 있었어. 드디어 여름휴가를 얻었다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