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빛나는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by 나는일학년담임

41.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빛나는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아침에 엄마가 전기밥솥에 밥을 안쳐놓고 출근하시면 내가 씻고 밥 차리면서 도시락 두 개를 쌌어. 학교 가면서 동생들을 깨우면 녀석들도 씻고 밥 먹고 도시락을 쌌지. 먹던 밥상은 보자기로 덮어 놓았다가 동생들이 학교 끝나고 오면 다시 보자기를 열고 밥을 먹어. 나와 동생들이 지금도 그 풍경을 떠올릴 때마다 빠지지 않는 얘기 소재가 밥상 보자기야. 가운데 손잡이 꼭지가 있던 그 보자기. 내 동생은 그 보자기를 덮을 때마다 속으로 기도했대. 이따 학교 갔다 와서 보자기를 열면 새로 지은 밥과 소시지 반찬이 있게 해 달라고. 보자기를 열 때마다 아침에 먹다 남은 밥이 그대로 있으면 괜히 서글퍼지더래. 도시락 반찬은 여름엔 김치, 겨울엔 콩나물이야. 냉장고가 없으니 반찬이 금세 시어졌어. 신 김치는 설탕과 들기름을 넣고 볶아먹었어. 어떤 날은 시간이 없어 그냥 싸 가기도 했어. 집에서 신 김치를 쌌으니 학교 가면 더 시어지지. 냄새가 났어. 친구 중엔 보온도시락에 소시지나 햄, 계란말이에 국까지 싸오는 아이도 있었어. 당연히 그런 아이들 주변엔 한 젓가락 얻어먹으려는 친구들이 꼬였어. 아예 도시락을 안 싸고 젓가락만 가져오는 아이들도 있었어. 워낙 애들이 많으니 그 친구에게 몇 젓가락 양보한다고 밥이 모자라지는 않았을 거야. 그런 친구 중에는 건들거리는 아이도 있었어. 맛있는 도시락을 가져오는 아이들 옆에 붙어서 자기 밥처럼 먹는 거지. 처음엔 미안한 척 얻어먹는 표정을 하는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나자 당연해했어. 당하는 아이들은 차마 대꾸하지 못하고 그냥 당하는 것 같았어. 남자 고등학교 교실의 흔한 풍경이랄 수 있었어. 문제는 녀석이 교실 전체를 돌아다니며 아이들 반찬에 대해 품평을 하는 거였어. 원래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친구라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 날 내 앞에 오더니 김치에 젓가락을 대려다 말고 한 마디 했어. 반찬이 구리다고. 똥반찬이라고.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거야.


“똥반찬? 야, 너는 무슨 말을... 우리 집에는 김치밖에 없어서 김치 싸왔다. 어쩔래?”


그랬더니 녀석이 내 말투를 우는 흉내로 따라 하는 거야.


“흑흑. 니네 집에는 김치 밖에서 엄떠서 김치를 싸와쩌요? 엉엉엉. 존나 슬프구나. 그지 새꺄. 엉엉엉.”


뭐 그깟 일로 쩨쩨하게 구냐는 투였어. 이 녀석 봐라? 나는 수저를 책상에 딱 소리 나게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어. 내가 발끈할 걸 예상 못했는지 녀석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어. 그러더니 이내 눈에 힘을 줬어. 나랑 한 번 해 보겠다는 건가? 점심 먹던 교실이 이내 조용해지며 우리 쪽으로 시선이 모였어. 그동안 몇 번 시비를 걸어왔지만 상대하기 싫어서 참았는데 더 물렁하게 보이면 앞으로 계속 당할 것 같았어. 미친 척 한 번 해야겠다 싶었어. 다른 친구들은 참을 만하니까 참겠지만, 난 싫었어. 녀석이나 나나 팔다리도 두 개씩이니까. 비슷하게 휘두르면 비슷하게 때리고 맞을 거야. 목욕탕에서 때밀이 형은 나보다 작았어도 나를 꼼짝 못 하게 했잖아. 땡삐 또한 덩치가 커서 우두머리가 된 게 아니라 칼을 휘두를 때 머뭇거리지 않는 담력 덕분이라고 했어. 맞아 죽어도, 몸이 찢겨죽으면서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눈빛이야말로 승부를 가르는 무기인 셈이야. 일단 한 방 맞으면 옆구리든 어디든 치면 된다고 생각했어. 힘으로 안 되면 의자를 던지든 교실 뒤 마대자루를 휘둘러서라도. 나를 건드리면 상대도 낭패를 감수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 구두 공장 친구들과 장깨도 그랬어. 뒷골목에서 살아남으려고. 떨리는 두려움을 최대한 감추면서 녀석의 뺨을 두 손으로 어루만졌어. 미소까지 지으면서. 그리고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줘 낮은 목소리로 말했어.


“새끼? 내가 니 새끼로 보이냐?”

“하, 거... 그... 새끼. 시발 진짜!”

“시발? 이 씨애키 봐라? 너 그러다 형한테 덤비겠다?”


형,이라는 말에 녀석이 멈칫했어. 나처럼 일 년 꿇고 들어 온 아이들이 뒤쪽에서 아무 생각 없이 구경하다가 형이라는 말에 정색을 했어. 남자 고등학교에서 형이라는 말은 학년을 초월하는 힘이 있었어. 내 말에 겁을 먹었을까, 녀석의 표정이 갑자기 슬랩스틱 코미디를 하는 배우의 표정으로 바뀌더니 어머, 호호호, 쏘리쏘리 하고 웃으며 내 김치를 날름 집어 먹었어. 그러더니 호들갑을 떨면서 오! 이 맛이야~ 하며 킬킬 웃었어. 내가 너무 진지하게 나갔나?밥 먹는 소리로 시끄럽던 교실이 잠잠했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녀석이 원래 아이들 사이에서 쉬는 시간이면 즐거움을 담당하는 캐릭터였는데 내가 너무 녀석을 몰아붙여 창피를 준 건지도 몰라. 나도 장난스럽게 녀석의 어깨에 팔을 둘러 목을 조이는 흉내를 내고 엉덩이를 툭 쳐서 보냈지만 이미 아이들 시선은 나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어. 사교적이지 않으면서 공부에만 매달리는 내 모습은 처음부터 친구들에게 비호감이었어. 안 그래도 한 해 꿇어서 아이들과 거리감이 있는데 이번 일로 열등감을 들킨 것 같아 당혹스러웠어. 점심을 먹고 그 친구에게 내가 오버해서 미안하다고, 우리 집 못 산다고 놀리는 거 같아 울컥해서 그랬다고 사과했어. 녀석도 미안해했어. 하지만 녀석의 얼굴에 남아 있는 어색한 눈빛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았어. 아, 내가 실수했구나, 생각했어.


서열을 정하려는 시도는 교실에서 끝없이 일어났어. 수컷의 본성이겠지. 한 학기가 지나면서 주먹으로, 성적으로 어느 정도 정해지는 것 같았어. 가끔 어느 반의 누가 싸워서 정학을 당했네, 누가 여자 친구를 성폭행을 해서 소년원에 잡혀갔네, 하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다들 공부하느라 정신이 팔려 신경 쓰지 않았어. 공부 때문에 남의 일탈이나 불의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어. 교실엔 2년이나 더 남은 학력고사 날이 D- 며칠로 적혀 있었어. 급훈 또한 공부에 관한 거였어. 목욕탕에서의 일과와 학교 일과가 다르지 않았어. 아침 일곱 시에 집에서 나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저녁을 먹은 다음 진학실 가서 열두 시까지 공부하다 집에 가 쓰러져 자는 일이 목욕탕보다 더 힘들었어. 게다가 어떻게든 이번에는 절반이 아닌 온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하루하루가 안간힘의 연속이었어. 어머닌 지금이라도 학교를 그만두고 돈 벌기를 바라셨거든. 장학금을 놓치면 학교를 그만둬야 할지 몰라. 그러던 중 우리 반 재수생 중 한 아이가 학교 밖 폭력배들 싸움에 연루되어 경찰에 잡혀갔어. 교장이 본보기로 퇴학을 시키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어. 교실에서 조용히 지내던 친구였는데 싸움이라니. 다들 의외였어. 실장이 친구들에게 탄원서를 쓰자고 제안했어. 친구들 대다수가 동의하기에 솔직히 관심은 없었지만 손을 들었어. 그랬더니 실장이 나더러 탄원서를 써 달라는 거야. 경찰과 교장에게 따로 써야 하는데 내가 써 주면 자기들이 연대 서명을 하겠다고. 친구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어. 난 싫다고 했어. 탄원서를 두 종류나 쓰려면 몇 시간은 걸리잖아. 난 잘 풀리지 않는 이차 방정식으로 이미 골치를 앓고 있었어. 게다가 그 친구랑 친하지도 않아. 학교도 학칙이 있을 텐데 퇴학당할 만한 짓을 했으니 퇴학시키겠지. 죄를 지었으면 책임지는 게 당연하잖아. 또 우리가 탄원서 낸다고 이미 정해진 퇴학이 바뀌겠어? 괜히 착한 척하지 말고 시간 아껴 공부나 할 것이지, 지들이 무슨 정의를 이룬다고 난린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실장은 나를 경멸의 눈으로 빤히 보더니 알았다면서 돌아섰어. 그러자 평소 말없이 구석에 앉던 한 친구가 일어났어.


"너희들도 알다시피 난 공부도 잘 못하고 아는 것도 없다. 내가 잘하는 거라야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는 재주뿐이다. 하지만 오늘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인간으로서 학우를 구하는 일에 기꺼이 나서고 싶다. 탄원서는 내가 써 오겠다. 그런데 알다시피 난 글재주가 없다. 일단 내가 써 오면 주현이가 손봐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새끼. 말 한 번 잘하더라고. 멋진 척은. 게다가 중저음의 목소리가 홀딱 넘어갈 정도로 멋있어. 얼굴도 잘 생겼어. 왜 그런 애들 있잖아.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빛이 나는 사람. 녀석이 딱 그 경우였어. 수업시간에는 무협지나 읽다가 야단도 자주 맞고 야간자습도 맘대로 도망가지만 이상하게 담임이 감싸주는 아이. 여자랑 잔 이야기를 얼마나 실감 나게 하는지 듣는 것만으로도 몸이 뜨거워지게 만들곤 했어. 녀석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도 박수를 치며 환호했어. 다음 날 녀석이 아주 긴 탄원서 두 장을 써 왔어. 훌륭한 문장이었어. 난 바로 백지에 옮겨 썼고 실장이 친구들 서명을 받아 제출했어. 그날 오후 담임이 몽둥이를 들고 종례에 들어왔어. 불길했지. 내 이럴 줄 알고 안 쓰려고했는데. 나를 포함해 탄원서에 서명한 아이들이 한 명씩 불려 나가 엎드려뻗쳐하고 맞았어. 한차례 구타가 끝나자 이번엔 탄원서 누가 썼냐고 물었어. 내가 손을 들었어. 그랬더니 녀석이 일어나서 주현이는 옮겨 썼을 뿐이니 잘못이 없고 원본을 쓴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말했어. 그 순간에도 녀석은 멋있었어. 담임은 둘 다 나오라고 했고 둘 다 허벅지를 맞았어. 그걸 계기로 녀석과 친해졌어. 그제야 녀석이 읽던 책이 무협지가 아니라 삼중당 문고라는 걸 알았어. 읽은 것 중 재미있는 건 내게도 빌려줬어. 작년에 목욕탕에서 읽던 책은 아무리 읽어도 내용 이해는커녕 문장 몇 개 겨우 건지는 수준이었는데 녀석이 빌려준 책들은 꽤 재미있었어. 걸리면 감점당할까 봐 수업시간에는 차마 못 읽고 학교 오갈 때 신호등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며 읽거나 학교 계단을 오르내리며 읽었어. 녀석이 혀를 찼어.


"주현아, 넌 책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 이런 책을 수업시간에 당당히 읽는 것이야 말로 작가에 대한 경의다."


아이고, 어떤 말도 참 멋있게 해. 근데 들을수록 또 맞는 말이야. 녀석은 어떻게 저런 멋진 말을 골라할까. 수업시간에 걸려도 기죽지 않았어. 한 번은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읽다가 음악 선생님께 걸렸는데 녀석은 책을 뺏기면서도 이렇게 떠들더라니까.


"선생님, 저의 카스탈리엔을 소중히 다뤄 주십시오. 언젠가 제가 돌아갈 곳입니다."


카스탈리엔은 <유리알 유희>에 나오는 이상향이야. 그는 언젠가 그곳으로 돌아가겠다고 중얼거렸어. 그 멋진 목소리로. 그 책을 아는 몇몇 선생님들은 호탕하게 웃으며 넘어가 주셨어. 심지어 어떤 선생님은 녀석의 독서 경력을 칭찬하시면서 나중에 훌륭한 작가가 될 거라는 예언까지 하셨지. 하지만 그 책을 모르는 선생님들이 더 많았어. 그들에게는 엎드려뻗쳐를 하고 맞았어. 학생이 공부 안 하고 쓸데없는 짓 한다고. 지금은 니가 겉멋이 들어 폼 나 보일지 모르겠다만 2년 뒤 대학 떨어지고도 그럴 수 있겠냐고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주거나 비아냥거리는 선생님들도 있었어. 그래도 녀석은 개의치 않는 것 같았어. 그런 걸 잘 견디는 비결도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어.


“카스탈리엔에 가면 넌 뭘 할 건데?"

"주현아, 우리가 카스탈리엔에 일단 가면 말이다. 뭘 하는 게 아니란다. 그냥 있는 거란다."


새끼. 역시 멋있었어. 녀석이 나중에 작가가 될 거라는 선생님들의 예언은 적중했어. 대학은 떨어졌지. 하지만 재수를 하면서도 녀석은 그 잘생긴 얼굴과 목소리로 여대생을 꼬여 나를 찾아왔을 만큼 공부와는 아예 담을 쌓더니 다음 해에는 무슨 재주인지 문예창작과에 척 붙더라고. 거기서도 공부 대신 술과 최루탄을 쫓아다녔지. 여자에게 버림받고 자살 시도를 하더니 군대 끌려갔다가 와서 구로공단에 취직했을 때에도 어떤 여자를 데리고 찾아왔었어. 그다음 해에 신춘문예로 등단을 했어. 덕분에 출판사에 취직을 했는데 거기서도 선배를 꼬셔 결혼을 했지. 아내에게 꽉 잡혀 동화와 소설 몇 권을 쓰면서 라디오와 TV에도 얼굴을 비추는 동안 아이들이 태어나 자랐어. 음악 감상 취미가 지나쳤는지 비싼 앰프며 스피커를 사들이다가 결혼반지까지 잡히는 바람에 몇 번 쫓겨날 뻔했지만 다행히 억척스러우며 자비로운 아내 덕분에 아직도 자칭 글 노예로 살고 있어. 물론 여전히 멋있지.


그렇게 멋진 친구를 두고도 소심한 나는 등수에 대한 집착 때문에 없는 스트레스도 만들어가며 공부에 매달리던 그 시절, 그래도 가끔은 단비처럼 즐거운 시간들이 있었어.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음악시간. 그 학교에는 지하에 음악실이 따로 있었어. 그곳엔 제법 그럴듯한 오디오 세트가 있었는데 음악 선생님은 매 수업시간마다 음악을 들려주셨어. 클래식 한 곡과 팝송 한 곡. 목욕탕에서 FM을 하도 들어 팝송을 제법 알고 있던 나는 그 시간을 몹시 좋아했어. 3월, 첫 음악시간에 들려주신 음악은 아직도 귀에 선 해. 로드리고의 안달루시아 협주곡. 네 대의 기타가 쏟아내는 강력하고 뾰족뾰족한 사운드가 가슴을 뒤흔들었어. 팝송을 소개하실 때에는 팝의 계보를 칠판에 써 가며 설명해 주셨어. 딥퍼플이나 핑크플로이드를 비롯한 록음악과 쇼팽, 슈만에 대해서도. 그렇게 공부에 찌든 나를 음악으로 구원해주셨어. 세상에 그렇게 멋진 음악이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어. 선생님은 점심시간마다 음악을 틀어 놓고 듣고 싶으면 오라고 하셨어. 난 심심하면 그곳에 가서 턴테이블 침압 조정하는 방법, 이콸라이저 세팅, 프리앰프와 파워앰프의 연결을 배웠어. 내가 지금까지 오디오와 음악 취미를 갖게 된 건 그분 덕분이야. 선생님의 권유로 중창 동아리도 만들었어. 나와 친구 넷이 매주 한 시간씩 연습을 해서 조회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불렀어. 에레스 뚜, 하우 딥 이즈 유어 러브 같은 노래를 불렀는데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나는 기분이었어.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2학기 중간고사를 봤어. 시험이 끝나고 몇몇 친구들과 가채점을 해 보니 다행히 고질적인 독일어에서 실수가 안 나왔어. 전교 일등이 가능할 것 같았어. 기말고사도 이 정도만 하면 인희씨 아버지 회사 장학금과 등록금 전액 면제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았어. 하지만, 그 장학금들은 끝내 받을 수 없었어. 갑자기 전학을 가야 했거든.




42. 올림픽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지하방은 햇살이 전혀 들지 않았어. 도로를 향해 반 뼘짜리 창이 있긴 한데 환기 기능은 무리였어. 지하 창고를 개조해 살림집으로 세를 주는 건 불법이었어. 하지만 이농현상으로 도시에 이주민이 집중되면서 중랑천 건너 면목동 언덕에 판자촌이 생기고 맞은 편 장안동 빌라촌에도 지하방이 생겼지. 거주 난은 심한데 집값은 뛰고, 해결책이 없다 보니 한동안은 이런 집이 용인되는 분위기였어. 문제는 88 올림픽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거였어. 환경개선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대대적인 정비가 진행된 거지. 판자촌이나 천막촌, 불법 개조된 지하방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터전이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지정되어 우선 제거 대상이었어. 우리가 살던 빌라도 구청 직원이 와서 보고 갔다는 소문이 돌았어. 집주인은 불안했는지 엄마께 아직 계약기간은 끝나지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방을 빼면 자기가 특별히 위약금 없이 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했어. 당장 우리 형편에 갈 곳이 없으니 특별히 좀 봐 달라고 엄마가 부탁을 했지만 안 통했어.


“올림픽이잖아요. 다들 이 행사 잘 치르려고 얼마나 애써요. 외국 손님들이 오셨는데 지하에서 사람이 막 나오면 어떻겠어요? 없이 살아도 나랏일에는 협조해야지. 안 그래요?”


집주인은 지하에서 사람이 막 나온다는 표현을 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부엌 배수관에서 밤마다 몰려나와 방 여기저기로 스며들던 바퀴벌레가 떠올랐어. 불을 켜면 순식간에 어딘가로 사라지지. 바퀴벌레들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어 본 사람이라면 그 괴기스러움을 알 거야. 외국인들이 우리 마을 구경을 왔는데 나와 동생들이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벌레로 변신해 막 기어 나오는 장면을 상상해봤어.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라던데, 그래서 올림픽이 결정되었다고 했을 때 나도 기뻐했는데, 결국 그것 때문에 쫓겨나게 되다니. 엄마는 할 수 없이 집을 알아보러 다니셨어. 그런데 집이 없는 거야. 단속이 시작되니 사람들이 일제히 집을 구하러 다녔거든. 집은 없고 전세는 껑충 뛰었지.


엄마가 며칠 만에 알아 오신 방은 어느 집 바깥방이었어. 방 하나만 달랑 있대. 부엌이나 화장실은 주인집과 같이 써야 해. 그런데 주인이 아이 셋을 부담스러워한대. 엄마가 나를 따로 부르셨어.


"두 동생은 내가 데리고 들어가겠다. 넌 학교 그만두고 목욕탕처럼 숙식제공되는 일자리를 알아봐. 니가 3학년이라면 졸업이 코앞이니 졸업을 시켜주겠다만 이제 겨우 1학년이니... 차라리 더 늦기 전에 관두는 게 낫지 않겠니?"


이제 겨우 전액 장학금도 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기운이 빠졌어. 아, 내 인생에 고등학교는 무리인가. 상황이 이러니 방법이 없었어.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있나. 자려고 누우니 눈물이 났어. 다음 날, 선생님께 자퇴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어. 엄마를 모시고 오래. 선생님은 엄마께 자퇴 대신 산업체 학교로 전학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어. 어떻게든 졸업장을 받으면 나중에 벌어서라도 대학을 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어머닌 반대셨어. 어차피 돈 벌 거 고등학교는 허송세월 아니냐. 그냥 관두게 해 주시고 혹시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자리나 아시는 거 있나요?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방을 비워줘야 되거든요. 지하방이라고 싼 방을 백사십만 원에 얻어 살았는데... 엄마 말이 길어지자 선생님이 당황하신 것 같았어. 수업 들어가야 하는 선생님을 붙잡고 집안 사정을 시시콜콜. 그것도 모자라 내 일자리까지 부탁하시는 엄마가 짜증 났어. 엄마, 일자리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 하고 그냥 나와 버렸어. 나의 이런 태도가 엄마의 화를 돋웠어.


"애미는 어떻게든 니들 데리고 살아보려고 애쓰는데 이렇게 철이 없으니 허이구, 니가 아직도 그런 정신으로..."


난 왜 엄마한테 막 하는 걸까. 엄마가 무슨 죄가 있다고. 후회했지만 소용없었어. 난 바로 작년에 일하던 목욕탕에 찾아갔어. 혹시 자리가 있나 해서. 없었어. 혹시 아는 목욕탕 중에 때밀이 구하는 목욕탕 있는지 알아봐 주실 수 있겠냐고 간곡하게 부탁드렸어. 몇 군데 전화 넣어 볼 테니 한 시간 뒤에 다시 오래. 마침 은행 마감시간이어서 인희씨 은행 앞으로 갔어.


“학교 안 가고 이 시간에 웬일?”

“그만뒀어요. 다시 일이나 하려고요.”

“그럼 공부는? 고등학교 졸업은 안 하고?”

“고등학교는... 고등학교는...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요.”


순간 내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눈물이 툭 떨어졌어. 시팔 놈의 눈물이. 하필. 그녀 앞에서. 아, 어떡해, 주현씨, 불쌍해서 어떡해... 그녀가 내 어깨를 잡고 발을 동동 굴렀어. 그때 그녀의 눈빛에 문득 나에 대한 실망감 같은 게 휙 지나갔다고 느꼈다면 나의 착각이었을까. 낭패감이 들었어. 차라리 그녀를 보러 가지 말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의 처참한 사정을 알면 우리 관계가 망가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충분히 가난한 내가 희망의 빛이라고는 한 점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잖아. 그녀도 지긋지긋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차라리 처음부터 대학생인 척할 걸 그랬나, 생각도 들었어. 올림픽이 없었다면, 그래서 지하방에라도 계속 살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녀가 언젠가 자러 가자고 했는데. 내가 학교를 그만두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그녀와 헤어져 구두 공장에 가 봤어. 공장 아이들이 많이 빠져 일손은 모자라는 것 같았지만 나와 장깨가 드나든 걸 기억하는 사장은 날 채용할 생각이 없었어. 다시 목욕탕에 갔지만 일자리는 없었어. 버스 탈 기운도 나지 않았어. 두어 시간을 그냥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어.


삶의 구석까지 몰린 사람에게는 죽는 일을 뺀 나머지 일상이 기적일지 몰라. 좋은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그러나 어쩌면 나빠지는 것도 아닌, 그러니까 남들에겐 기적이 아니지만 우리에겐 기적이랄 수 있는 일. 그게 갑자기 일어났어. 엄마가 다닌 식당엔 엄마까지 세 명의 종업원이 있었는데 식당이라는 곳이 현금이 오가다 보니 주인이 가끔 자리를 비울 때 발생하는 매출은 종업원들이 금고에 넣지 않고 따로 나눠가지곤 했나 봐. 그런데 엄마는 그 돈을 받지 않았대. 비리에 동참하지 않으니 동료들 미움을 받으셨겠지. 그러니 식당 홀 서빙이나 주방 일 보다 힘든 배달을 주로 맡게 되셨지. 쟁반 가득 밥과 찌개를 얹어 머리에 이고 남산타워 근처 곳곳의 공사장을 누비시느라 늘 허리가 아프셨어. 종업원들의 빼돌리기는 곧 주인이 알게 되었어. 유독 엄마만 가담하지 않은 이유가 신앙인으로서 거짓을 하지 않겠다고 하나님한테 한 약속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주인이 엄마를 좋게 보셨어. 그 식당 단골 중에 교회 장로가 있었어. 그분이 엄마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식당 월급보다 더 줄 테니 자기 집 식모로 와달라고 제안했어. 식모로 가신 어머닌 천국에서 일하는 것 같았대. 식사 준비하고 청소만 끝내면 쉬는 시간이니까. 이렇게 일하고 돈을 받아도 되나 할 정도로 쉬워서 액자도 닦고 소파 밑도 닦고 냉장고도 매일 닦았대. 그렇다고 그 집 가정부 일이 마냥 쉬운 건 아니었대. 아침 식사를 챙기기 위해 일찍 가야 하는 거야. 식당에서 일할 때보다 더 이른 시간에 집에서 나가셨고 늦게 퇴근하셨어. 가끔 그 집에 행사가 있으면 버스가 끊겨 못 오시기도 했어. 집에 전화가 없으니 연락이 되나? 결국 우린 밤늦게 까지 엄마를 기다렸어. 집에 있다가 버스 정류장에도 가봤지. 막내 동생은 엄마가 영영 오지 않을까 봐 울었어. 그 뒤로 엄마가 밤 열한 시 넘어도 안 오시면 그 집에서 자는 줄 알게 되었어. 그 집에서 엄마의 가장 큰 어려움은 수선스러운 다섯 살짜리 손주를 돌보는 일이었대. 교사인 아이 엄마가 출근을 하고 나면 엄마가 종일 돌보시는 거야. 아이가 남산 케이블카 타는 걸 좋아해서 매일 태워주러 가셔야 했대. 어른과 아이가 매일 케이블카 타는 돈이 한 달이면 얼마겠느냐고, 넉넉한 그 집 살림을 부러워하셨어. 그런데 손주 때문에 사달이 났어. 장난기가 심한 그 녀석이 가스레인지 조절 손잡이를 돌려놓는 거야. 집안에 가스가 고였지. 시간이 갈수록 불쾌한 냄새가 나는 건 엄마도 느끼셨대. 석유 곤로 말고 가스렌지를 안 써 보신 엄마는 그게 가스냄새라는 건 모르신 거야. 아이가 가끔 장난으로 집 안 어딘가에 똥을 싸놓곤 했으니 이번에도 그랬나 싶어 걸레를 빨아 들고 여기저기 찾아봤는데 없더래. 엄마는 가스가 새면 폭발할 수 있다는 걸 모르셨어. 천만다행으로 마침 장로의 딸이 방문해 상황을 보고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어. 신앙에서 우러나온 정직과 성실이라는 덕목을 갖춘 엄마였지만, 도시의 부잣집 식모로 일하시기에는 부족했나 봐. 오븐을 사용해야 하는 서양 요리에 대한 경험도 없었으니. 전기, 가스에 대한 안전지식도. 어머닌 며칠 만에 그 편한 일자리를 그만둬야 했어. 두고두고 아쉬워하셨어. 전에 일하시던 식당에 돌아가봤지만 이미 충원이 되어 있었어. 그런 엄마 처지를 불쌍하게 여긴 식당 주인이 자기 딸 집에 식모 자리로 알아봐 주었어. 사위가 외교관 이랬어. 그런데 한 열흘 일했나? 사위가 갑자기 미국으로로 발령이 났어. 그가 엄마에게 제안을 했지. 자기네를 따라 미국에 가서 한 3년 살다 오면 어떻겠느냐고. 월급은 여기서 받는 돈에다 미국에서 시간제로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알선해 주겠다고. 계산을 해 보니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엄마는 나와 동생들을 고모네 집에 맡겨 놓고 갈 생각을 하셨어. 고모도 엄마의 결정을 지지하셨어. 우리 집 전셋돈을 고모에게 맡기고 생활비만 보내주면 애들도 잘 키워주고 이자도 불려 주시겠다고. 그런데 동생들이 울고 난리가 난 거야. 엄마 말 잘 들을 테니 미국에 가지 말라고. 사실 나도 고모네 집에 가 살 일이 걱정이었어. 고모네는 우리 집과 분위기가 제법 달랐거든. 서울에서 오래 산 사람 특유의 세련되고 깔끔한 성격의 고모네 가족들은 이상하게 나를 주눅 들게 하는 뭔가가 있었어. 동생들이 떼를 쓰자 결국 어머닌 미국행을 포기하셨어. 장기적으로 그 선택은 잘한 것이었어. 당시 고모는 사채를 쓰고 있었거든. 안락한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유동성 위기가 있었던 거야. 고모에게 전셋돈을 맡겼으면 그 마저도 날렸을지 몰라.


미국에 못 가시게 된 엄마는 바로 다음 날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셨어. 다행히 엄마 사돈 되시는 친척 중에 경기도 어느 공단에서 공장 경비를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식당 아줌마 자리가 났대. 그래서 갑자기 공단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어.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의 마을이 된 그 동네. 지금이나 그때나 서울보다 집값이 저렴해서 같은 돈으로 지하가 아닌 지상에 방을 구할 수 있었어. 여전히 단칸방이고 야외 화장실이었지만 연탄 광이 따로 있는 데다 부엌에는 사다리로 연결된 다락도 있었어.


어머닌 내켜하시지 않았지만 내가 며칠을 애원해서 자퇴 대신 시골학교로 전학 허락도 받았어. 엄마와 떨어져 일터로 끌려갈 뻔했던 내가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알리고 싶어서 전학서류 받으러 간 김에 은행에 들렀어. 그런데 그녀는 그다지 기쁜 것 같지 않아 보였어. 오히려 내가 멀리 이사 간다는 말에 기분이 상한 것 같았어.


“반월 공단? 거기가 어디야? 그럼 우린 앞으로 어떻게 만나?”

“집 앞에서 영등포 오는 버스가 있어요. 인희씨가 거기까지 와서 만나도 되고... 아니면 내가 전철이랑 버스 타고 쫌 만 더 오면 여기니까, 뭐... 후딱 와요. 헤헤.”

“그래도 너무 멀리 가잖아. 이제 난 어떡해...”

“미안해요. 그래도 부지런히 올게요.”

“주말마다 나 보러 올 거지? 그 먼 곳을 내가 어떻게 찾아가냐?”

“올 게요. 인희씨 보러 올 거예요.”

“서울에서도 삼 년 채 못 살았잖아. 다음엔 더 먼데로 이사 가는 거 아냐?”

“지금 형편 생각하면 그럴지도 모르는데... 안 그러면 좋겠지만.. 돈 벌어야 하니까...”

“주현씨네 그렇게 가난해? 돈이 그렇게 없어? 내가 좀 빌려줄까?”

“그런 문제가 아니고.. 뭐랄까, 인희씨는 경험하지 못해 봤을 그런 절박함이 우리 집엔 아직 있거든요... <가난한 사람들>에 나오는 마까르의 상황 같은...”

“마까르? 주현씨는 그것보다 더 한 거 같은데? 멀리 가잖아. 이러다 전국으로 떠돌아다니는 거 아냐?”

“인희씨, 화 많이 났구나... 그 마음 이해해요...”

“아니, 넌 내 마음 모를 걸.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아니? 니 상황을 아니까 차마 말은 못 하지만... 너무 답답해서 그래. 솔직히 지금은 내 마음도 힘들고...”

“차마 말 못 하지만 답답한 그거... 그래서 인희씨 마음 힘든 거 말이에요... 혹시 그게 헤어져야 할 이유라면... 인희씨, 우리 헤어져요.”

“야, 너는 지금...! 지금 니가 그런 말 할 상황이니?잘났어, 정말.


미안해요. 무서워서... 인희씨가 나랑 헤어지고 싶을까 봐 무서워 그래요,라고는 차마 말 못 했어. 은행 앞에서 버스를 타고 전철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영등포역에서 내린 다음, 역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가 다시 지하상가를 통과하면 반월공단 가는 시외버스가 있었어. 가을비가 시리게 내리고 있었어. 퇴근시간이라 좌석도 없어서 한 시간 내내 서서 휘청거렸어. 버스는 산업도로를 따라오다가 안산으로 접어든 뒤 시내 중심가를 다 거쳐서야 우리 집이 있는 끝 동네에 멈췄어.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를 정도였어. 빗물처럼 마음도 구불거렸어. 그녀와는 이제 끝인가. 내가 주말마다 서울을 갈 수 있을까. 거기까지 갈 차비는 어디서 나고. 겨우겨우 서울로 다닌다 쳐. 그다음은 어떡할 건데... 집 오자마자 푹 쓰러져 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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