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전학 서류를 들고 교육청으로 갔어. 그런데 안산 시내 고등학교는 이미 정원이 다 차서 자리가 없다는 거야. 반월공단이 조성되면서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몰려들다 보니 주택도 학교도 미어터져 동생들 학교도 오전, 오후 2부제 수업을 하고 있었어. 결국 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반시간쯤 가야 하는 시골학교를 선택해야 했어. 그런데 막상 가보니 실업계고등학교면서 인근 마을 아이들 대상의 인문계 반도 두 학급 개설되어 있었어. 이 학교 상업 반 졸업생들은 실력이 꽤 좋은지 해마다 몇 명은 은행에서 뽑아 간대. 그 말을 들으신 엄마는 나도 상업 반에 넣고 싶어 하셨어. 은행에 취직하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거야. 내 마음도 그랬어. 넣어만 주시면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간곡하게 말씀드렸어. 그랬더니 안 된대.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전학 왔기 때문에 계열이 안 맞는대. 상업 반에 가고 싶으면 내년에 다시 입학하는 수밖에 없대. 그럼 입학금도 다시 내나요? 엄마가 물으셨어. 그렇죠, 라는 선생님 말에 엄마 기분이 상하셨어. 인문 반인가 거기서도 공부 잘하면 은행에 취직이 되냐고 물어보셨어. 은행은 안 되겠지만 요즘 반월공단에서 애들 보내 달라고 난리니까 취직은 될 거라는 선생님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을 놓으셨어.
다음날 새 학교로 갔어. 선생님이 나를 소개하자 아이들이 와,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어. 정말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얘네들, 뭐지? 날 언제 봤다고 저럴까? 예전 학교 같으면 전입생을 소 닭 보듯 하거나 아예 처다 보지도 않았을 텐데. 시골이라 그런가? 일 년 꿇었는지 묻지도 않았어.
실업계 고등학교라 그런지 예전 학교와 분위기도 달랐어. 아이들은 대학을 목표로 다닌다기보다 부모들이 고등학교나 마치라고 보낸 경우가 대부분이었어. 아이들도 대부분 어릴 때부터 초중고를 같이 다닌 사이라서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사이도 좋아. 공부는 안 해. 할 생각도 없어. 학교도 신경을 안 써. 상업계 학교다 보니 교사들은 주로 상과 과정 전공자야. 인문계열이라야 3학년 통틀어 6 학급밖에 없으니 교사들이 부족해. 그래서 전공과 다른 교과를 가르쳤어. 수학교사가 사회를 같이 가르치고 윤리교사가 지리도 가르치는 식이야. 수업도 깊이가 없었어. 선생님이 그냥 책을 읽고 넘어가는 수준이야. 수업 시간 중 절반은 농담을 하거나 아이들 앞으로 불러내서 노래를 시키기도 하고 심지어 축구 중계를 같이 보기도 했어. 오후 세시 반에 정규 교과가 끝나면 더 이상의 자율학습은 없어. 그냥 집에 가는 거야. 그런데 막상 버스를 타러 나와 보면 아무도 없어. 다들 운동장에서 축구, 또는 농구를 하거나 친한 애들끼리 떠들고 노는 거야. 어떤 아이는 영어 선생님께 카세트를 빌려 올리비안 뉴튼 존을 들으면서 춤을 추기도 했어. 동아리나 클럽처럼 형식적으로 구분되진 않았지만 다들 끼리끼리 어울려 잘 놀았어. 학교 주변은 산이라서 여기저기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 지천이었어. 좀 논다 하는 애들은 버스 두 정거장 타고 고개 넘어 읍내로 나가서 당구를 쳤어. 주말이면 친구네 집에 모여 모내기를 하거나 과수원 일을 돕고 밥을 얻어먹거나 바닷가에 가서 망둥이 낚시를 해서 초고추장 찍어 먹었어. 아이들은 전학 온 나를 스스럼 없이 끼워주었어. 아이들은 끝없이 토닥거리고 싸웠지만 그 학교를 졸업하도록 특별한 사건 하나 없었어. 주먹이 오가거나 욕설이 오가는 경우도 거의 못 봤어. 아이들끼리는 서열로 군림하지도 않았고 2, 3학년 선배들도 동네 형, 누나니까 각자 알아서 선을 지키는 것 같았어. 잘난 척하던 애들은 다들 시내 큰 학교로 진학하고 남는 애들이 모인 학교라 그런지 다들 성격이 둥글둥글했어. 며칠 전까지 아침 일곱 시에 집에서 나와 밤 열두 시에 집에 가던 나로서는 여러모로 문화충격이었어. 아이들은 공부를 안 해. 또 교사들은 그런 아이들을 혼내지 않고 내버려 둬. 이해할 수 없었어. 점심을 먹으면 적당히 변소 뒤 산으로 흩어져 담배를 피우며 낄낄거리는데도 교사들이 잡아다 혼낼 생각을 안 해. 알면서도 봐주는 거야. 한 번은 아이들이 시내 당구장에서 당구 치다가 졸업한 선배들하고 시비가 붙었는데 교장은 처벌 대신 학생회의 안건으로 올려버렸어. 이놈들을 퇴학을 시킬지 어떻게 할지 우리더러 정하라는 거야. 회의를 학생들끼리 하다 보니 아수라장이지. 토론의 기본도 모르는 애들이 막 떠들다가 웃기는 얘기 나오면 지들끼리 막 웃고 정신이 없어. 회장이 조용히 하라고 하면 너나 조용히 해, 새꺄, 그러면서 도무지 말을 안 들어. 역시 시골이라 그런가 싶었어. 그 와중에 어떤 애가 우리 학교도 당구대를 사 달라는 의견을 냈어. 그럼 우리도 힘들게 시내로 안 나갈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다들 또라이 새꺄. 아예 큐대랑 다마까지 사 달라 그러지, 병신아, 라고 웃었어. 학생회 서기는 또 이 의견을 적어서 교무실에 제출했지. 근데 학교에서 진짜 당구대와 큐대, 당구공 세트를 사 준 거야. 탁구대도 아니고 그 비싼 당구대를 말이지. 학생회에서는 학급별로 당구대 사용 시간표를 만들어서 입구에 붙여놨어. 나중엔 당구대회까지 열었다니까? 덕분에 나도 당구를 쳐봤어. 장깨가 이 학교 학생이었으면 당구왕이었을 텐데. 교사들이 아이들 단속하기 귀찮으니까 해달라는 걸 앞 뒤 안 가리고 다 해주는 거 같았어. 어떤 아이가 그룹사운드 만들어 달라고 했어. 정말로 얼마 뒤 앰프, 드럼 세트를 사서 과학실에 놔줬어. 그날 동네 할아버지처럼 생긴 교장이 말했어.
“느덜 말여. 당구대랑 그룹사운드 장비 보니께 좋지야? 좋을 겨. 시방 말여. 반월공단에서 취업생 보내달라고 쌩 난리인 줄은 느덜두 알겨. 느덜 선배들이 월매나 많이 공단으루다 취업을 갔냐. 그래서 회사들이 고맙다고 학교에 기증한 거란 말여. 이게 다 니들 선배들 피와 땀이여. 깨깟이 써야겄냐, 안 써야 겄냐? 회장 워딨냐. 회장, 너 말여. 니가 수시로 잘 보란 말여. 말 안 들어 처묵는 노무시키는 교장실로 끌고 와. 아주 느덜 선배들한테 일러갖고 손모가지랑 대가리를 싹다 조사불 거여. 앞으로도 학교가 돈이 많으면 운동장에도 당구대 쫙 깔아주께잉. 기타도 한 앞에 한 대씩 돌릴 겨. 진짜여. 지금은 교장 능력이 여기까징게 오늘은 느덜이 봐줘, 잉? 그라고 3학년 이 놈 새끼들 말여. 점심 곱게 처잡쉈으문 왜 산으로 기어 올라가. 니들이 다람쥐여? 니들 펴 대는 담배 연기가 교장실에서 안 보이는 중 아나본데. 니들이 그 모냥이문 후배덜이 몰 배우겄냐. 으차피 느덜은 내년에 취업 나가면 양껏 필 거 아녀. 그리구 이노무섀키들아, 양심적으루다가 느덜이 핀 꽁초는 들고 내려와얄 거 아녀. 창피한 건 알아서 숨겨 놓고 내려오는겨? 내가 쓰레기통까지 놔 줬으문 최소한 니들도 알아서 버리란 말여. 내가 교장실에서 지켜 볼 겨. 알겄지야?”
학생들은 교장이 훈화를 하는 중간중간에 교장 말투를 흉내 내며 암유, 그렇쥬, 맞어유, 같은 추임새를 장난스럽게 넣다가 웃긴 표현이 나오면 와하하 웃었어. 그래도 교장 말이 끝나면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며 박근배! 박근배!를 외쳤어. 그러면 교장은 싫지 않은 표정을 하면서 일부러 화난 표정을 하고 한 마디 더 했어.
“시방 박수 안 치는 놈들은 누구여. 야, 회장! 다 이름 적어 와. 이노무시애키들 말여.”
그러면 나머지 아이들도 모두 박근배!를 외쳤어. 아이들 말이 저 교장은 작년에 새로 왔대. 충청도 시골 출신이면서 서울대를 나왔는데 워낙 머리가 좋아서 전교생 이름을 다 외운대. 아이들은 교장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 선배들은 교장을 근배형이라고 부른댔어. 전통이었어. 나도 모르는 척하고 그룹사운드에 들어갔어. 앰프와 드럼밖에 없으니 악기도 사달라 건의를 했어. 교장이 육성회장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싸구려 기타 두 대와 베이스 기타, 건반을 구해다 놨어. 그러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어.
“이놈들아. 이 기타 꽁짜 아녀. 육성회장님 모친 칠순 잔치 때 기생 부른다길래 내가 우리 학교에도 기생 많으니깐 기타만 사달라 그런겨. 앞으로 동네잔치는 느덜이 다 쫓아댕김서 혀라잉? 잘허면 용돈도 줄 거 아녀.”
그 집 가서 두어 시간 띵가띵가 놀아드리고 악기를 얻었어. 그날부터 수업만 마치면 과학실에 가서 노는 거야. 제일 먼저 시작한 노래가 크리스 노만의 <스텀블링 인>이었어. 쉬워서 밴드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시도하는 노래야. 그 노랫말처럼, 그 시절 그곳엔 수많은 불꽃들이 타올랐어.
영어 단어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고 코드도 악보도 모르던 우리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흔히 하는 방법대로 테이프를 무한 반복 들으면서 멜로디를 땄어. 일반인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노래가 적어도 그 학교에선 가장 유명한 노래가 되었어. 매일 수업만 마치면 과학실에서 불러댔거든. 겨우 튜닝만 할 줄 알 뿐 이론은 모르니 그냥 듣고 따라 하는 거지. 될 때까지 하고 또 했어. 다른 애들도 과학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우리가 하는 걸 보며 노래를 따라 불러줬어. 내가 가사를 한글로 써서 붙였어. 아월 럽 이즈 얼라입 앤 쏘 위 비갠... 그중 목청 좋은 여자애들 몇 명을 보컬로 영입한 우리들은 레퍼토리를 넓혀갔어.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젊은 미소>, <젊은 그대> 같은 멋있는 노래들로. 점심을 먹으면 과학실로 달려가 노래를 불렀어. 먼저 배운 아이들이 또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는 식으로 악기를 다루는 애들도 늘어났어. 학교 소풍은 학교 뒷산 중턱,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갔어. 우린 아침 일찍 학교에 모여 앰프며 배터리를 각자 지게에 나눠지고 소풍 장소로 미리 가서 세팅을 해 놓고 기다렸어. 소풍이라고 해서 특별히 뭐 모이고 말고 하는 것도 없었어. 선생님들은 경치 좋은 구석에 앉아 우리가 학급비 모아 사 드린 치킨에 맥주를 아침부터 드시고 우리는 밴드 앞에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르다가 지루해지면 영어 선생님께 빌린 카세트에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를 틀어 놓고 춤을 췄어. 점심시간이 따로 정해진 것도 아니었어. 그냥 알아서 먹고 노는 거야. 그러다 선생님들이 얼큰해지시면 교장을 앞세워 우리들에게 왔어. 우린 반주를 하고 그분들은 노래를 하시는 거야. 아이들은 자기들 담임 차례가 되면 다 나와서 같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담임을 헹가래 쳤어. 뭐랄까, 정다운 풍경이었어. 문득 내가 처음부터 이 학교에 입학을 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어.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전학 오게 되어 다행이라고.
44. 무엇이 소년을 어른으로 성장시키나?
그녀에게 한동안 편지를 쓰지 않았어. 그녀를 보러 가지 못해 면목이 없어서이기도 했어. 시간이 갈수록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 그녀는 잘못이 없잖아.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을 만난 걸 위로받아야지. 근데 내가 먼저 화를 내고 헤어지자는 말을 던져버렸으니 이렇게 옹졸할 수가 있을까. 미안한 만큼 보고 싶기도 했어. 그럴 때마다 무주 여행에서 같이 찍은 사진을 봤어. 허름한 민박집 쪽마루에 둘이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 옆방에 왔던 아저씨가 둘이 잘 어울린다면서 찍어 준 거야. 사진 속 그녀는 수건을 목에 둘렀고 난 양 손에 칫솔과 비눗갑을 들고 웃고 있지. 그때 우린 막 계곡으로 세수하러 내려가던 참이었어. 그런 우리가 그렇게 잘 어울려 보였을까. 사진 속 우린 어떤 걱정도 없어 보였어. 내 얼굴 어디에도 가난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지. 그녀 목에 걸려 있던 수건은 내가 준비한 것이었어. 여행을 준비하면서 저 수건을 얼마나 빡빡 문질러 빨았는지 몰라. 지하 방에서는 빨래를 바짝 말리기 힘들어 항상 꿉꿉한 냄새가 났거든. 그래서 다리미로 빳빳하게 다린 뒤 비눗갑과 같은 봉지에 넣었어. 비누 향기라도 스미라고. 이제 그녀는 사진 속으로만 남게 됐어. 앞으로 이 사진은 어떻게 해야 하나. 드라마에서는 찢거나 태우던데. 난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었어. 볼 때마다 가슴이 뭉근하게 아려왔지만 책갈피에 곱게 꽂아 놓았어. 책을 볼 때마다 그녀가 보고 싶었어. 너무 보고싶을 때마다 짧게 쓴 편지가 열 장쯤 되었을 때 미친 척하고 봉투에 넣어 보냈어. 답장이 오던 날엔 비가 왔어. 우체통에 반쯤 삐져나온 편지가 젖어 있었지. 남자와 선봤다고. 앞으로는 그쪽에 충실하려 한다고. 공부 잘해서 자격증 잘 따고 보일러 기사 되어 취직 잘하길 바란다고. 나중에 서로 잘 되면 한 번 보자고 쓰여 있었어. 선 본 거 축하한다고, 만남이 잘 이루어져서 인희씨도 행복하시길 빕니다,라고 답장을 쓰는 게 좋을까 잠시 생각해 봤지만 그녀의 편지를 여러 번 읽고 나서 아, 앞으로 절대 편지하지 말라는 뜻이란 걸 깨달았어. 가슴속에서 뭔가 차가운 게 흐르는 느낌이었어. 그녀를 좋아하던 내 마음을 꼬깃꼬깃 접어 어느 구석에 숨겨 놓고 싶었어. 기운이 빠지고 속이 상해서 그 날은 밥을 먹지 못했어. 그동안 그녀에게 받은 편지들을 검은 비닐봉지에 모두 담았어. 그녀는 편지봉투도 우표도 예쁜 것들만 샀는데. 편지봉투들이 묵직했어. 다락 구석 깊은 곳에 숨겨 두었어.
대입 모의고사를 봤어. 과목별 전국 등수가 나오고 연습 삼아 가고자 하는 대학에 지원해 볼 수도 있는 시험이었어. 내가 어느 대학 무슨 과에 지원하면 전국의 고1 아이들 중에 그 과에 지원한 학생이 몇 명이고 그 과 정원은 몇 명인데 나는 몇 등쯤 하니까 붙을지 떨어질지 알 수 있었어. 난 고등학교 졸업 후 반월공단에 취직할 생각이어서 일부러 지원하지 않았어. 점수가 나오는 날, 교장이 불렀어. 형편이 어려운 모양이라는 말을 담임에게 들으셨는지 마침 군청에서 주는 장학금을 연결해 주셨어.
“니는 시방 주소가 안산이잖여. 근데 장학금은 시흥군에서 준단 말여. 그니께 주민등록을 시흥 사는 애 집으로 옮겨야 겠지야? 그래서 진흥위원장헌티 부탁해 놨응게 당장 옮겨. 알았쟈? 근데 그건 불법이잖여. 학생이 불법을 허면 쓰겄냐. 그래서 말인디. 불법은 내가 책임질 테니께 겨울방학 때 교실 하나 정해서 난로 펴 주면 거기서 자습한 번 해 볼쳐? 해 봐서 공부 할 만하다 싶으면 대학교에도 가고 좋잖여. 그렇게 허겄다고 허면 장학금 주고 안 하면 딴 놈 줄겨.”
시골이라 학비가 서울의 반값인데 장학금은 분기당 7만 원씩이니 등록금을 내고도 남아. 그것도 졸업할 때까지 준 대. 마다할 이유가 있나.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고 친구에게 주민등록을 옮겼어. 며칠 뒤 시흥군청에 가서 장학금을 받았어. 엄마는 기뻐하시면서도 내가 상과에 못 간 건 아쉬워하셨어. 할 수 없지, 뭐. 졸업만 할 수 있어도 어딘가 싶었어. 학교가 세시 반에 끝나니 저녁에 일 할 시간이 났어. 라이브 가수 자리를 다시 구했어. 학교 끝나고 집 와서 이른 저녁을 먹고 기타를 챙겨 노래하러 가서 밤 10시에 끝났어. 목욕탕에서보다 벌이가 좋았어. 하지만 그 일도 오래 하지 못했어. 우리 학교 애들이 노래하는 나를 본 거야. 담임이 불러 소문을 확인하고는 곧장 교장실로 보냈어.
교장은 나를 보더니 당장그만 두래. 평생 노래 불러 먹고 살 거냐고. 니 얼굴로는 가수 안되야. 꿈도 꾸지마라잉. 난 중학교 못 간 일, 목욕탕에서 일한 일을 솔직히 말씀드렸어. 그런데 그 얘기를 다 듣고도 노래 같은 건 하지 말래. 자기 말 안 들을 거면 장학금 내놓으래. 난 당장이라도 돈을 벌어야 버스라도 타고 다니는 형편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버스 비 얼마냐, 그 돈 내가 줄 테니 그 시간에 공부를 하래.
“시방 니가 노랜가 뭔가 해서 몇 년이나 돈 벌겄냐. 평생 벌어먹고살아야 하는 게 니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운명이여. 그럼 당장 버스 비 버는 게 중허냐, 조금 힘들더래두 평생 먹고 살 준비를 허는 게 중허냐?”
엄마가 버시는 걸로는 생활이 어려워서 그런다고 말씀드려도 안 통해.
“늬 어매가 너 키우냐고 고생허시제? 그건 니 어매 팔자여. 니 어매 짐을 니가 떠맡으려는 마음은 가상타마는 인생은 아주 질다니께. 시방 니가 버스비 더 벌문 니 어매 고생이 확 줄어든다디? 버스비가 그렇게 아까우면 차라리 아침 일찍 일어나 걸어서 학교 댕기겄다는 결심을 사내새끼가 왜 못혀. 나도 이십 리 길 걸어 댕김서 길 위에서 공부한 사램이여. 너 노래한다고 껍적대는거 내 보기엔 징징거리는 거여. 그 시간에 공부 안 하는 건 어매한테 안 죄송허냐?”
엄마 삶은 엄마 삶이다. 너는 너의 삶을 준비해라. 노래 안 해도 엄마는 돈을 벌 것이고 노래를 해도 어머닌 어차피 돈을 벌 것이다. 불효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괴로워하지 말고 대신 공부를 해서 좋은 직장을 얻으면 엄마도 더 이상 일 안 하셔도 될 테니 그게 효도라는 말씀이셨어. 맞는 말이야. 꼭 새겨 들어야 할 어른의 말씀이란 저런 것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난 라이브 카페를 그만두고 자율학습에 참여하기 시작했어. 세시 반에 일과가 끝나면 저녁을 미리 먹고 애들 따라 뒷산에 올라가 담배 피우는 애들과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고 놀다가 다섯 시쯤 슬슬 내려와 공부를 하다가 여덟 시 막차를 타러 나가는 생활이 시작됐어. 며칠 뒤 교장 선생님이 부르시더니 봉투에 오만 원을 넣어 주셨어. 버스비 하라고. 엄마는 내가 노래를 그만 두자 당장 수입이 줄어 서운해하셨지만 교장과 나눈 이야기를 들으시고 더는 말이 없으셨어. 엄마가 다음 달 월급에서 오만 원을 떼어 봉투에 넣어 주시며 감사 편지를 써서 교장 갖다 드리래. 교장은 돈을 받지 않으셨어. 자기 아들이 돈 잘 버는 의사라고. 용돈 하라고 주길래 조금 덜어 준 것이니 갚을 생각 말고 공부나 하라고 하셨어. 겨울방학을 며칠 앞둔 때였어. 새벽 신문배달을 시작했어. 그건 들키지 않을 것 같아서. 겨울 방학 동안에도 작년에 한 것처럼 정석과 해법, 성문 종합 영어 책 쪽수를 날짜 수로 나눠 밤 10시부터 새벽 4시 반까지 공부하다가 엄마가 새벽기도 가시려고 일어나는 시각에 맞춰 신문배달을 하고 다녀와서 낮까지 잤어.
겨울방학이 지나고 2학년이 됐어. 2학년 반편성은 취업반과 진학반을 나눠서 했어. 대학에 뜻이 있는 아이들과 취직할 아이들의 반을 달리 한 거야. 나를 포함한 취업반 신청이 훨씬 많았어. 문제는 두 반을 비슷한 수로 편성해야 한다는 거야. 취업반은 어차피 대학을 안 가니까 어려운 수업은 설렁설렁하고 기초영어회화나 펜글씨, 주산, 타자연습을 더 많이 해서 취업에 유리하게 하려는 거야. 진학반은 인문계 고등학교와 비슷하게 가는 거야. 취업반에 아이들이 몰리자 담임은 취업반에서 진학할 만한 아이들을 따로 불러 상담을 하시고 진학반에 넣으시느라 진땀이셨어. 회유와 강제가 적당히 동원되어 취업반과 진학반이 정리가 될 무렵, 나도 불려 갔어. 모의고사 성적이 나쁘지 않으니 진학반에 들어가라고 하시길래 집안 형편도 안 되고 공단에 빨리 취업을 해서 얼마라도 벌다가 군대 갔다 와서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버텼어. 결국 또 교장이 불렀어. 시험만 잘 보면 등록금 면제도 받을 수 있고 심지어 기숙사비와 책값을 받으며 다닐 수도 있는데 왜 해 보지도 않고 도망만 가려고 하냐고. 너 특별히 생각해서 장학금도 알선해 줬으면 죽어라 해 볼 생각을 해야지, 그런 정신머리로 사냐고 막 호통을 치셨어. 엄마가 늘 내게 하시던 물렁한 정신머리 어쩌고...와 똑같은 야단을 맞자 갑자기 울컥해졌어. 난 진짜 대학 못 간다고, 고등학교도 겨우 다니고 있다고 말씀드리는데 눈물이 질질 나왔어. 교장이 혀를 차셨어.
“그렁게 말여. 내가 시방 니 대학 가도록 만들어 주겠다잖여. 미련헐 것 같으면 고집이라도 피지 말어야지. 고등핵교 못 가고 목욕탕 갔었다문서 그것도 못 배운겨? 그럴라문 당장 꺼져. 쳐다보기도 싫응게.”
새 학기가 시작되던 날, 교실 문에 게시된 학급편성 결과를 보니 난 진학반이었어. 아,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담임을 찾아갔더니 올해는 진학반 해 보고 내년에 취업반으로 가든 하래. 아마 교장이 시켰을 거야. 더 드릴 말씀이 없었어. 학기가 시작되었고 3개월마다 모의고사를 봤고 그때마다 나도 이 대학, 저 대학에 모의지원해봤어. 어떤 학교는 되고 어떤 학교는 점수가 모자랐어. 반월공단이 확장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이사 오면서 나처럼 안산시내에 자리가 없어 그 학교까지 전학 오는 친구들이 늘어났어. 다들 처음엔 생소해했지만 나처럼 금세 학교를 좋아하게 됐어. 그래서 3학년 반편성에는 진학반 숫자와 취업반 숫자가 비슷해졌어. 난 또 취업반을 선택했고 교장도 또 반대했어. 모의고사 성적을 보니 사범대에 갈 점수는 되는데 국립대는 학비도 싸고 장학금이 흔하니까 일단 가보면 돈 안 들이고 다닐 수 있다는 거야.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대학생이 되고 싶은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어. 엄마한테 말하니 표정이 어두우셨어. 4년을 또 공부하느냐고, 군대까지 갔다 오면 7년 아니냐고. 엄마 말을 교장께 말씀드렸더니 그럼 교대를 가래. 교대는 군대가 면제라는 거야. 햐, 그런 게 있다니! 솔깃해졌어. 군대 3년이 어디야. 그날부터 난 교대를 가기로 마음먹었어.
평일엔 막차 시간인 여덟 시까지 공부를 하고 일요일에도 학교에 갔어. 막상 학교에 가보니 나만 나오는 게 아니었어. 낮엔 덥고 애들이 왔다 갔다 해서 집중이 안 돼 일부러 신문배달이 끝나자마자 첫차를 타고 학교에 가니 아직 어둑한 6시였어. 설마 그 시간엔 아무도 없겠지. 근데 아니었어. 옆 반 신발장에 운동화가 있는 거야. 이 시간에? 옆 반은 상업반인데? 복도에 바싹 붙어 살살 걸으며 교실 안을 살피는데 마침 그쪽도 내 인기척을 들었는지 창가에 붙어서 복도를 보다가 딱 마주친 거야. 둘 다 깜짝 놀랐지만 그쪽이 먼저 소리를 질렀어. 내가 뭐라도 했나? 소리는 왜 지르고 난리람. 교실로 돌아가려니 또 마음이 개운치 않았어. 누군지 얼굴이나 보자는 마음에 교실 문을 열어보았어. 뽀리였어. 상과반 전교 1등이면서 학생회장. 학교 앞 문구점 집 딸. 툭하면 집에서 소주를 훔쳐다 산에서 애들과 마시는 애. 그래서 별명도 훔친다는 의미의 <뽀리>였어. 장 씨라서 장뽀리. 생긴 건 여잔데 하는 짓은 남자 찜 쪄 먹는 애. 그래서 남, 녀 모두에게 사랑받는 애. 대학생과 사귀고 있다지.
“아우, 깜짝이야. 야, 장뽀리! 너, 이... 씨... 왜 사람 놀래켜, 깜짝 놀랬네!”
“병신. 지가 놀래구선. 남의 교실 왜 쳐다보냐?”
“근데 넌 여기서 뭐하냐? 뭐 느네 집에서 또 뭐 뽀리깠냐?”
“야, 그거 애들이 다 만들어 낸 말이야. 난 소줏값 받고 갖다 줬다, 뭐.”
“야, 누가 애들한테 쏘주 팔라그랬어. 지도층 인사가 그럼 되냐?”
“지도층 인사?”
“학생회장님이 말야. 학생한테 술을 팔지 않나, 깜짝 놀래키질 않나, 말이야.”
“깔깔. 웃긴다, 너. 그런 넌 왜 왔냐? 되게 일찍 왔다?”
“내가 요즘 교대 좀 가 볼라 그러잖냐. 근데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자신도 없고...”
"지랄하네. 여기 자신 있는 사람 어딨냐? 그냥 하던 데로 하면 되지, 병신아."
소문에 뽀리는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이미 다 땄다는 말이 있었어. 독한 데다가 머리가 보통이 아니래.
“너 신문 배달한다매? 우리 반 은숙이가 신문 넣는 거 봤다던데?”
“야, 근데 그거 누구한테 말하지 말라 그래. 근배형 알면 지랄하실라.”
“걱정 마라. 몰래 알바 하다가 근배 오빠에게 털린 애들 너 말고도 많어.”
잠깐 떠들고 교실 와서 공부하다 보니 슬슬 애들이 나오기 시작했어. 나오면 또 한참 앉아서 수다 떨다가 또 공부 좀 할까 싶으면 또 다른 애가 와서 떠들어. 그러다 보면 점심 먹을 시간이야. 밥 먹으면 뒷산에 가서 다들 담배를 피워. 그러다 내려와서 공부하다 보면 집에 갈 시간이야.
정작 공부는 몇 시간 못했지만 이때가 좋았던 이유는 함께 얘기 나누던 친구들 때문이야. 그 학교에서 우리들 중 누구는 첫사랑을 했고 소울메이트를 만들었으며 불안한 미래를 공유했어. 그럴 때마다 뽀리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어. 애들이 좀 진지한 얘기를 한다 싶으면 잠깐! 그러면서 집에 가서 담배 몇 갑, 소주 몇 병과 일회용 투명 잔을 뱃속에 감춰 오는 거야.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저 년이 학생회장 된 게 다 뽀리 실력 때문이라고 놀렸어. 한 잔 씩 마시고 각자 고민을 얘기하면 나머지 애들이 처방을 내놓곤 했어. 옆반 남자애를 짝사랑하는 여자애 고민에 대해서는 일단 키스부터 하라는 처방을 내리고, 부모와 갈등하는 친구에게는 일단 가출을 권하는 식이야. 그때 난 과연 교대에 붙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주로 말했어. 그러면 애들이, 병신아, 그러니까 넌 여기 있지 말고 빨랑 내려가 공부나 해, 새꺄. 그러는 거야. 그럼 난 더 진지한 얼굴로, 야, 내가 고민을 얘기하면 격려나 위로를 해줘야지. 내쫓냐? 그러면 애들이 나한테 나뭇가지며 솔방울을 막 던져. 빨리 꺼지라고. 고마운 친구들이었어. 방학 땐 운동장에서 캠핑도 했어. 밤에 모닥불 피워 놓고 노래하던 일, 진실게임하던 일, 새벽에 비 와서 혼비백산하던 일, 뽀리가 가져온 술 마시고 영어 선생님 카세트로 밤새 <터치 바이 터치>를 들으며 방방 뛰던 일.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어. 그 분위기가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오며 동창이라고 하면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로 지내고 있으니 참 아름다운 날들이었지.
고3인 87년 두 번째 모의고사가 끝나고 얼마 안 되던 날. 스무 살이 된 내게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받으러 오라는 통지서가 왔어. 그리고 그날, 인희씨에게도 편지가 왔어. 전화해 달라고. 한동안 뜸했지만 다시 가슴이 동동거리며 시동이 걸리는 느낌이었어. 전화를 하니 주말에 만나재. 버스를 타고 영등포에 내리니 그녀가 새로 산 자가용을 몰고 나와 있었어. 흰 장갑을 끼고 운전석에 앉은 그녀가 멋져보였어. 광명을 지나 시골길로 빠져 어느 저수지로 갔어. 큰 저수지 주변에 경양식 집들이 있었어. 거기서 돈가스를 먹으며 맥주를 마셨어. 좋아 보인다고, 잘 지냈냐고 물으니 그동안 몇 번의 선을 봤고 그중 하나는 아직 이어지고 있지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으며, 엄마 아빠가 계속 맞선을 주선하고 있다, 만나는 남자는 아빠 친구 아들인데 강남에 아파트가 한 채 있다더라, 또 어떤 남자는 마음에 안 드는데 자꾸 꽃을 사 들고 찾아와서 마음이 흔들린다. 주현아, 돈 많은 남자가 좋겠니, 꽃 사주는 남자가 좋겠니. 아버지가 스물다섯 안에 결혼하라고 하셔서 아직 여유가 있으니 선은 최대한 더 볼 거라고.
그날 나는 인희씨라는 말을 슬그머니 감추고 '누나'라고 불렀어. 이젠 더 이상 인희씨라고 부르면 안 될 것 같았어. 누나라는 말은 그녀가 한때 나의 여자 친구였다는 색깔을 제거하는 중성적인 호칭이니까. 근데 누나,라고 말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려왔어. 내가 건널 수 없는 강 건너에 존재하는 것 같았거든. 할 수 없지. 그녀는 더 이상 나의 인희씨가 아니니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니까... 나 또한 취업반 대신 진학반이 되었지만 교대에 붙을지는 모르며 떨어지면 반월공단에 취직했다가 군대 갈 거고 갔다 오면 열관리 자격증이든 때밀이든 배워야죠, 누나가 스물다섯 살이면 내가 취업했다가 군대 있을 때니까 결혼식은 못 가겠네요. 미리 축하드려요. 헤헤. 각자의 이야기를 마치 남 얘기하듯 했어. 예전 같은 은밀함이나 달콤함은 피하려 애썼어. 일부러 그랬어. 나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지 그녀는 오랜만에 만났는데 재미도 없고 흥도 안 난다고, 그리고 넌 왜 뜬금없이 누나라 그러냐며 짜증을 냈어. 그러면서 술을 계속 마셨어. 운전하고 가야 하지 않느냐, 술은 그만 마시라고 하니 짜증 섞인 말투로 신경 끄고 빨리 재미있는 얘기나 하래.
이 여자는 오늘 왜 나를 만나자고 했을까. 선 본 거 자랑하려고? 자기가 부르면 달려오나 안 오나 보려고? 그녀가 앞서 비척거리며 그곳을 나와 내 손을 잡아끌고 모텔로 들어갔어. 떼쓰듯 자기 맘대로 내 옷을 벗기고 술 냄새 가득한 입술로 내 목이며 쇄골 주변에 키스마크를 남겼어. 그리고 약간의 실랑이 끝에 내 몸을 가졌어. 나는 저항을 했던가, 안 했던가. 인희씨, 라는 혀 끝 달달한 이름을 포기하고 누나라고 부르리라 마음먹고 나서 같이 잔 사람이 그녀라고 생각했던가, 환영일 거라고 생각했던가. 주말이 지난 월요일에 학교 친구들이 내 목을 보더니 당장 진실게임을 해야 한다고 외쳤어. 씹혔냐, 어떤 여자냐, 몇 살이냐, 잤냐?, 좋디? 수없이 물어왔지만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이거 그냥... 머리 감다가 빡빡 문질러서 그런 거야... 니들도 한 번 해 봐... 내 말이 너무 덤덤했을까, 아이들은 금세 수그러들었어.
그 해 말 학력고사를 봤고 나는 교대에 붙었어. 시골 학교가 유리한 내신 제도 덕분에 입학성적을 잘 받아 장학금도 받게 됐어. 담임 말씀대로 돈 안 내고 대학을 간 거야. 교장이신 근배 옹이 의사인 아들 시켜 서울 부잣집에 입주과외를 알아봐 주셨어. 덕분에 입학 전부터 돈을 벌 수 있었어. 내가 가르치던 학생은 재수생이었는데 낮부터 밤 10시까지는 학원에 가 있었어. 덕분에 저녁시간에는 스탠드바에서 오부리 기타를 칠 수 있었어. 과외와 오부리 밴드를 하면서 버는 돈이 엄마 월급보다 많았어. 처음으로14인치 칼라 TV를 샀어. 88 올림픽 호돌이 마크가 붙어 있던 냉장고와 가스레인지도. 전화도 놓았어. 더 이상 석유곤로의 그을음을 닦을 필요가 없었어. 나를 대학 보내길 잘하셨다고 엄마도 기뻐하셨어. 그해 초가을에 올림픽이 열렸어. 그녀는 아빠 친구 아들인 증권사 직원과 다음 해에 결혼했어. 그녀 나이 스물다섯이었어. 나는 교대를 졸업할 때까지 과외, 영어 학원 강사, 커피숍 DJ, 라이브 카페, 그것도 지겨우면 사무실 야간 경비를 하면서 교대를 다녔고 졸업하자마자 교사가 됐어. 5시에 퇴근하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실감하기까지 몇 주가 걸렸어. 첫 월급으로 시디 플레이어와 모짤트 시디를 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