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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l 08. 2022

누군가 누고 간 화장실 바닥의 똥을 치우며

청소 노동자를 대하는 아이들을 보며


#

1학년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먼저 먹고 양치하러 갔던 아이가 뛰어와 소리친다.


아이 : 선생님, 큰일 났어요. 화장실에 바닥에 똥이 있어요. (양손을 크게 벌리며) 이따만한 똥!


나 : 아이고, 똥이?


아이 : 네, 누가 왕창 싸놓고 그냥 갔나 봐요!


그러자 한 아이가 타박하며 나선다.


아이2 : 아, 드럽게! 야, 너 왜 선생님한테 똥 얘기해? 선생님 아직 밥 다 안 먹으셨잖아! (내 눈치를 보며) 선생님, 밥 먹을 때 똥 얘기하면 안 되죠?


그러자 아이는 잠시 내 눈치를 보는 것 같더니, 그래도 얘기를 해야겠는지 표정에 힘을 주고 말한다.


아이 : 야, 진짜 똥이 딱! 있다니깐? 너도 가 보면 알 거 아냐? 나 양치하러 갔다가 토 나올 뻔 했다니깐!


아이1 : 으이구, 그럼 니가 치우면 되지. (손 모양을 동그랗게 하며) 휴지로 요렇게 싸서 변기에 버리고 물 내리면 되잖아.


아이 : (코를 막으며) 우엑! 야, 똥 냄새가 지독하니까 그렇지. 니가 가서 해라, 그럼. 지도 막 토할 거면서.


나 : (아이들을 말리며) 아이고, 너네가 토하면 안 되지. 선생님 밥 거의 다 먹었으니까 같이 가 보자.


아이2 : 선생님이 치울라고요?


나 : 응. 그래야 너네가 화장실도 가고 양치도 하지.


아이2 : (손으로 코 막는 흉내를 내며) 우엑! 안 돼요. 그러다 손에 똥 묻으면 어떡할라 그래요?


나 : 아, 그런가?


아이 : 고무장갑을 끼세요. 그럼.


나 : 아, 그러면 되겠네. 알려줘서 고마워.


아이2 : (내 팔을 잡으며) 헉! 안 돼요! 그러다 고무장갑에 묻으면요?


나 : 아, 그런가?


아이 : 깔끄미 선생님더러 치우라 그럼 되잖아요.


나 : 근데 깔끄미 선생님이 방금 식사하러 들어오셔서 한참 있어야 하는데?


아이 : 그래도요. 선생님이 치우다 똥 묻으면 어떡할라고요? 깔끄미 선생님이 나중에 치우겠죠.


나 : (고민하는 척하며) 그럴까? 근데 그 사이에 친구들이 화장실에 갔다가 똥을 밟으면 어떡하지?


아이2 : 화장실 문을 닫으면 되죠. 문에다 '똥 있으니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써 붙이세요.


나 : 그러다 갑자기 쉬 마려운 친구가 나오면 어떡하지?


아이2 : 아, 그러면... (고민하는 표정으로 말을 흐린다)


나 : 선생님이 가서 치워야겠다.


"(아이들, 내 앞을 막아서며) 안 돼요! 선생님 손에 똥 묻는 다니깐요. 그러면 공부시간에 똥 냄새나잖아요. (코를 막으며) 우엑!"


나 : 선생님이 손에 똥 안 묻게 잘 할게.


아이 :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약간 짜증을 내며) 그냥 깔끄미 선생님 시키면 되잖아요. 밥 이따 먹구 먼저 똥 치우라 그러세요.


아이1 : (옆 아이가) 야, 그건 아니지! 똥 먼저 치우면 밥이 맛있겠냐? 으이구.


아이 : 야, 원래 화장실 청소하는 사람이 똥 치우는 거야.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1 : 근데 밥 먹으시잖아.


아이 : 그래도 해야지. 대신 월급 받잖아.


아이1 : 야, 월급 받아도 밥도 못 먹고 똥 치우는 건 좀 아니지. 너한테 밥 그만 먹고 똥 치우라 그러면 좋냐?


아이 : 내가 왜 치우냐? 난 월급 안 받고 깔끄미 선생님이 돈 받잖아. 그럼 치워야지. 하기 싫음 관두면 되고.


아이1 : 헐. 관두면 청소는 누가 하냐?


아이 : 새 깔끄미 선생님이 오겠지. 뭐가 걱정이냐?


아이들은 학교 청소 노동자를 '깔끄미(깔끔이)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분을 뵐 때마다 인사도 하고 말도 잘 건다. 그분도 아이들이 손자 같다며 귀여워해 주신다.

스승의 날, < 학교생활을 돕는 분께 편지 쓰기> 행사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깔끄미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하나같이 학교를 깨끗이 청소해 주셔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들과 청소 노동자가 학교에서 일상의 관계로 만날 때는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누고 간 똥을 치워야 하는 의외의 상황을 만나면 온도 차가 두드러진다.

돈을 받기로 했으면 어떤 청소든 해야 한다는 냉혹함이 우세해지고

청소 노동자 편에서 인간적 공감을 드러내는 아이는 몇몇에 불과하다.


약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던 동화를 듣고 애휼하며 눈물짓던 아이들은 다 어디 갔나.

먼 나라의 가난한 또래가 나오는 영상을 보고 기꺼이 용돈을 내어놓는 아이들인데

늘 대하는 약자에게는 왜 따뜻하지 않을까. 이리 되도록 선생인 나는 뭘 가르쳤나.


원래 아이들이... 이랬나?

아닌데.

두 시간 전, 운동장에서 애벌레가 개미에게 물려가는 걸 보며 마음 아파하던 아이들이잖아.

빙하가 녹아내리는 영상을 보며 북극곰을 걱정하던 아이들이잖아.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직업으로 구별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생각에 확고하며 직업으로 다르게 대하는 걸 혐오한다.

모든 노동은 그 자체로 평등하며 노동을 하는 한,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진한 생각일까.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돈이 많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몇 있다.

그들이 돈 자랑하는 걸 본 적은 없다.

다만 은연중에 그들의 자부심이 돈에 기반함을 느낄 때가 있다.

내 인생 마지막 차라고 생각해서 큰맘 먹고 외제차로 바꿨는데 주변에서 돈 xx 한다 그러는 것 같아 피곤하다는 푸념을 들을 때,

몇 안 남은 가방을 사려고 새벽부터 백화점에 줄을 섰는데 비까지 내려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다는 말을 들을 때,

새로 들인 가사도우미 음식 솜씨가 마음에 안 들어 벌써 몇 번째 내보내고 다시 들이느라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들을 때,

여유 돈이 있어서 돈 좀 불리려고 아파트 하나를 더 산 게 투기라고 욕먹을 일이냐며 억울하다는 말을 들을 때,

가난한 사람 중에는 호의를 베풀면 감사할 줄 모르고 기어이 뭘 더 뜯어가려는 질 나쁜 사람이 많더라는 말을 들을 때.

그들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 화장실 바닥에 똥이 놓여 있다면, 그 학교 청소 노동자는 밥을 끝까지 먹을 수 있을까.

그들의 아이는 약자를 배려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른들이 돈에 한이 맺혀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1학년 아이들까지 그렇게 자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

어느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이 노동권 개선을 위해 집회를 했는데

그 소음에 학습권을 침해당했다며 학생들이 고소를 했다고 한다.

여염집 그렇고 그런 자식들이 아니라 대학생들이,

대학 권장도서 중에서도 특히 어렵다는 그 대학 권장도서쯤은 가볍게 읽을 지성의 힘을 지닌 젊은이들이

하필이면 약자인 청소 노동자를 고소하면서 바로잡고 싶었을 정의는 어떤 색깔이었을까.

1학년 아이들이 따라 배우면 어떡하지?



"얘들아, 만약에... 너희 부모님이 우리 학교 깔끄미 선생님이라면, 너네는 어떤 마음일까?"


"에이, 우리 엄마 아빤 안 하죠. 지금 회사가 얼마나 좋은데요."


"아, 그렇겠네. 하지만 만약에 말야. 그래도 하신다면?"


"불쌍하겠죠. 학교 청소하는 것도 힘든데 똥까지 치워야 되니깐요."


"대신 월급을 받잖아."


"그래도 똥은 냄새도 나고 더럽잖아요. (코를 막으며) 우엑!"


"그래서 도와드리고 싶을까?"


"네, 우리 엄마가 깔끄미 선생님이라면 도와야죠. 엄만데."


"왜 돕고 싶을까?"


"내가 좋아하는 엄마가 힘든 일을 하니까요.


"그래. 너네 엄만 좋겠네."


나는 성큼성큼 교실에 가서 고무장갑을 찾아 낀 다음, 쓰레받기를 들고 화장실 쪽 복도로 나간다.

내가 움직이자 우리 반 아이들이 우르르 나를 따라오며 묻는다.


"선생님, 진짜 똥 치울라고요?"


"응. 금방 치우고 올 테니 너네는 여기 있어."


"에이, 그러지 말라니깐요. 쫌 있으면 깔끄미 선생님 밥 다 드실 텐데. 제가 가 볼게요."


"선생님이 치울래. 깔끄미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마. 편하게 식사하시게."


"(걱정해 주는 표정으로) 아, 왜 선생님이 치우냐고요. 청소하는 사람이 있는데!"


"너네 엄마가 깔끄미 선생님이라면 너네도 도울 거잖아. 선생님도 그래서 하는 거야."


나는 화장실 안에 있고 아이들은 저마다 코를 막은 채 화장실 문밖에 도열해 있다.

조금 있으면 깔끄미 선생님이 와서 똥을 치울 건데 그분이 할 일을 왜 선생님이 하냐며 내 편을 드는 아이들이 소수 있지만,

대분은 내 손에 똥이 묻을 것인지에 신경을 집중한 아이들이다.

나는 아이들을 한 번 쳐다본 뒤 씩씩한 걸음으로 똥 앞으로 걸어가자마자 쓰레받기를 똥에 바짝 대고 한 손으로 똥을 쓸어 모아 쓰레받기에 넣는다.

내 손이 똥에 닫는 순간, 아이들이 두 손으로 코와 입을 막으며 저마다 꺅꺅 소리를 지른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똥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린 다음 세면기 수도를 틀어 고무장갑에 묻은 똥을 씻는다.

깨끗해진 고무장갑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자 꺅꺅 소리가 멈춘다.

내가 똥이 있던 바닥에 물을 한 바가지 뿌린 뒤 청소용 솔로 문지르는 사이에

한 아이가 바가지를 얼른 집어 수돗물을 담아다 준다. 대화 내내 청소 노동자 편에서 이야기하던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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