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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l 07. 2015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1학년 아이들의 여러 행태

과저 몇 봉지의 힘

어떤 부모님께서 상담 오시는 길에 선물 한 보따리를 가져 오셨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잘 볼 수 있는 빈 책상에 과자를 쫙 늘어 놓았지요.

다음 날, 학교에 가 보니 아이들이 과자 주변에 모여 있군요. 과자 먹을 기대에 부푼 표정들입니다.


한 아이가 말합니다. 이거 한 번에 다 먹으면 이 썩어요. 하루에 한 가지씩만 먹어야 해요.

아, 그렇겠구나. 그럼 오늘 뭘 먹고 싶은지 쉬는 시간에 정해 보자. 하며 저는 공부를 해야 하니 책을 꺼내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책을 꺼낼 생각이 없군요. 흐음... 벌써부터 오늘 먹고 싶은 과자를 정하느라 난리입니다.

제가 몇 번 씩이나 공부를 할 시간이라고 말 해 보지만 과자에 쏠린 눈은 요지부동입니다.

난감해하는 제 마음과 달리, 한 아이가 포카칩을 먹고 싶다고 집어 듭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포카칩은 맛이 없고 떡볶이 과자가 맛있다고 말하며 포카칩을 뺏어 내려 놓습니다.

그러자 포카칩을 빼앗긴 아이는 선생님, 쟤가 자기 과자도 아닌데 제가 들고 있는 걸 뺏어요 하며 이릅니다.

그러자 빼앗았던 아이는 니꺼도 아니잖아 하고 맞섭니다. 갈수록 목소리가 커져 나중엔 비명에 가까운 볼륨이 나는군요.

옆에 있는 다른 아이도 끼어 듭니다. 야, 너네 왜 소리 질러. 시끄럽게.

그 상황이 가라앉는 듯 하자, 한 아이가 이거는 예성이네 아빠가 사 오셨으니까 예성이가 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성이는 갑작스런 상황에 좀 당황한 표정입니다. 중구난방. 1학년 7명 아이들의 주장이 교실에 가득하군요.

잠시 상황을 그대로 두다가 제가 끼어 듭니다.

"예성이 아빠는 사이 좋게 나눠 먹으라고 하시던데?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하니까 쉬는 시간에 너네가 한 번 정해 봐."

그렇게 과자를 먹지 못하고 국어 공부를 시작합니다.

아이들 표정을 보니 인상이 안 좋군요. 친구들이 서로 다툰데다 과자까지 못 먹게 된 게 화가 나나 봅니다.



또 쉬는 시간. 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책을 읽으면서 못 본 척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과자를 먹고 싶은 가 봅니다. 또다시 모두 모여 있군요.

그러러면 자기들끼리 먹을 과자 순서를 정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의견은 잘 안 모이는군요.

하지만 아까처럼 중구난방은 아닙니다. 의견을 놓고 다투지는 않는군요.

다투면 선생님이 또 자리에 앉으라고 할까 봐 조심하는 겁니다.

한 아이가 말합니다. 어차피 우리가 다 먹을 거니까 순서는 아무거나 먼저 먹어도 되잖아. 그러니까 빨리 골라.

그 말을 듣고 아까 포카칩을 집었던 아이가 다시 포카칩을 집에 듭니다. 오늘 이거 먼저 먹고 내일 딴 거 먹자.

그러자 떡볶이 과자를 고집했던 아이가 나섭니다.

넌 왜 또 포카칩만 먹자 그래. 너 땜에 우리 또 못 먹겠다. 으이구. 빨랑 내려 놔.

그러자 포카칩 아이도 맞섭니다. 근데 너 왜 또 소리 질러. 선생님, 얘 또 소리 질러요.

그러자 상대 아이가 책상을 땅 치며 더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내가 뭐? 그래서 어쩌라구!


상황이 너무 커져서 그런 걸까요. 나머지 아이들은 두 아이의 대결에 별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누구 편도 안 드는 걸 보니 두 아이의 위세를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느 사회든 목소리와 완력이 큰 사람이 비합리적인 결정을 맘대로 하고 밀고 나가면 대중은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끌려가곤 하지요.

그런데 이 아이들, 이제 겨우 1학년인 아이들도 그런 걸까요. 그럼 안됩니다.

어느 아이가 힘으로 다른 아이를 통제하기 시작하면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를 피하게 되고,

그러면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자기와 안 놀아주니 외롭게 되고 아이들과 놀기 위해 힘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힘의 강도가 세지게 되고, 자신의 힘이 효력을 미친다는 걸 안 아이는

점점 더 자신의 힘에 의존하게 됩니다. 폭군은 그렇게 태어나는 법이지요. 그건 모두에게 불행합니다.

그래서 그런 아이를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제가 한 번 더 끼어 듭니다.

"예성이 아빠가 그러셨어. 이 과자는 우리 일곱 명이 모두 사이 좋게 나눠 먹으라고."

그러자 가만히 있던 아이가 나섭니다.

야, 너네 둘만 자꾸 싸우지 마. 그러면 우리 또 못 먹어.

그러다 그 옆에 있던 아이도 말합니다. 맞아. 너네 때문에 우리가 못 먹으면 너네 어뜩할 건데.

갑자기 전세가 바뀌는 것이 불안했는지 포카칩 아이가 과자를 책상 위에 던집니다. 나 안 먹어. 니네 맘대로 해.

그러자 한 아이가 말합니다. 그래, 넌 먹지 마. 선생님, 쟤 안 먹는대요. 우리 끼리만 먹어도 되지요?

조직의 합리적 의사결정에  방해되는 구성원을 아예 제외시키려 하는군요.

그래서 결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비협조자에게는 결정권 박탈이라는 사회적 징벌을 내리는 거지요.

마치 어른들의 냉정한 세계를 재현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까지 이러면 우리 사회가 어찌 될까. 이건 좀 곤란합니다.

자신들과 코드가 안 맞는다고 내치기 시작하면 그 집단은 도태됩니다.

드센 아이들이  배척당하고 얌전한 아이들만 남으면 키우기는 쉽겠지만, 그 사회는 전투력을 잃습니다.

한 사회에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견제하며 공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전 또 한 번 끼어듭니다.

에이... 예성이네 아빠가 우리 반 사이 좋게 먹으라 그러셨는데... 이러다 선생님이 저 과자 혼자 다 먹겠네.

아이들이 저를 또 째려 봅니다. 다시 공부시간이  시작되고 아이들은 화난 표정으로 자리에 앉습니다.


다음 쉬는 시간.

아이들이 다시 과자 주위로 몰려 듭니다.

이번에는 먹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가득하군요.

지난 시간까지 얌전히 있던 아이가 제안을  하나합니다. 가위 바위 보 해서 이기는 친구가 정하자는 겁니다.

7명이 가위 바위 보를 합니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서 잘 될 리 없습니다.

빨리 내는 아이, 늦게 내는 아이, 가위 냈다가 주먹으로 바꾸는 아이.

그걸 시비 거는 아이, 자긴 결백하다고 우기는 아이. 급기야 한 명이 삐쳐서 자기 자리에 가 엎드렸군요.

아이들의 화가 오를 만큼 올랐나 봅니다.

참다 못한 아이들이 저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아, 짜증 나. 차라리 선생님이 정해 주란 말예요!

좋아. 음... 선생님은 오늘 과자 안 먹고 싶어. 내일 다시 의논하자.

헐... 아이들이 동요하는군요. 그런 게 어딨어요. 빨랑 정해 주란 말예요. 아이들이 뭐라거나 말거나. 전 다시 공부를 시작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가정에서 의사결정의 경험이 별로 없지요.

대부분 자기가 선택하면 바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냥 나 뭐 먹을래. 또는 싫어. 이 말만 하면 되었겠지요.

그런데 학교라는 사회에서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거든요. 이런 아이들에게 의사결정은 너무 힘든 일입니다.

모두 자기중심적인 아이들이 모인 세계에서, 의사결정은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자신이 어떤 주장을 하기에 앞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미리 생각하는 능력,

다른 친구들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지 미리 파악하는 능력,

파악된 의견을 나의 의견과 조율하거나 상대의 의견을 포기하고 내 의견에 동조하게 만드는 설득력.

그래서 복잡한 의견을 하나로 끌어 모으는 능력, 그걸 리더십이라고 합니다.

입학 전에 한글을 떼고, 구구단을 외우는 일 보다 훨씬 더 가르치기가 힘든 덕목이지요.

이런 능력을 기르려면,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경험이 쌓여야 합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제가 아이들에게 보채기 시작합니다. 얘들아, 선생님도 과자 빨리 먹고 싶어. 오늘은 너네가 결정 좀 잘 해 봐.

이번엔 어제 다투던 아이 둘은 자리에 그냥 앉아 있군요.

나머지 아이들이 과자 주변에 모여 뭐라 얘기를 나누는 것 같더니 한 아이가 포카칩을 번쩍 들며 외칩니다.

야, 포카칩 먼저 먹고 싶은 사람 손들어.

아까 포카칩 먹겠다고 우기던 아이, 이번엔 손을 안  드는군요. 마음이 아직 상했나 봅니다.

떡볶이 과자도 0표가 나왔습니다.

고구마깡 한 표, 카스타드 한 표... 몽쉘통통이 2표가 나왔군요.

와, 몽쉘통통으로 결정됐습니다. 땅땅땅~ 저는 엄숙하게 결과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교무실로 가서 칼을 얻어다가 엄숙하게 반씩 잘라서 각각의 아이의 손에 올려 주는 과정을 또 엄숙히 집행합니다.




달콤한 과자가 입에 들어가서 일까요, 아이들 표정이 한결  밝아졌군요.

내일 먹는 과자 순서는 카스타드, 고구마깡에 대한 투표 결과에 따라 정해집니다.


이 상황에서 리더십을 보여 준 아이는 누구일까요.

용감하게 나서서 소수의 전횡을 나무란 아이, 표결로 다수결을 이끈 아이지요.

그럼 이 아이는 도대체 뭘 먹고 컸길래 이런 리더십을 갖추게 되었을까요.

이 아이 주변엔 항상 비슷한 또래가 많이 있습니다. 큰 집, 작은 집이 한 마을에 있지요.

사촌이든 친구든 경쟁과 협조를 서로 나눠야 하는 대이 많은 겁니다.

아이는 끝없이 사촌들과 어울려 놀아야 하고, 그 안에서 자기 몫을 확보해야 생존이 가능합니다.

아이에게는 매일매일이 의사결정권을 놓고 벌이는 전쟁일 겁니다.

그런 치열함이 저 아이로 하여금 교실에서 의사결정을 리드하는 기술을 몸에 배우게 했겠지요.

지금은 교실에서 다른 아이들을 이끌었지만, 머잖아 자기 자신을 이끌 겁니다.

스마트폰이나 게임에 빠지고 싶은 자기 자신을 이끌어 공부하는 학생으로 변할 것이고,

부정부패를 가까이 하고 싶은 자신을 이끌어 절제하는 어른으로 변할 겁니다.


태어나 이제 겨우 만 오 년을 넘긴 1학년 아이들, 그들의 변화무쌍한 머리 속을 이끌어줄 내면의 힘, 사회성.

사촌이든 친구든, 부모든, 담임이든 아이의 독선을 견제해 줄 장애물이 많은 아이들이 결국엔 리더십으로 빛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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