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일학년담임 Aug 28. 2015

1학년에게 반장이라는 완장은...

1학년 아이들은 '반장'에 대하여 누구에게, 어떻게, 뭐라고 받아들일까

쉬는 시간.

두 아이가 교실 구석에서 딱지놀이를 하고 있다.

만화 캐릭터 모양의 플라스틱 딱지가 두 아이 옆에 수북이 쌓여 있고 친구들이 딱지를 중심으로 모여 구경을 하고 있다.

어떤 아이는 딱지치기 하는 아이를 구경하는 대신 쌓여 있는 딱지를 만지작거리고

그 딱지의 주인 아이는 딱지 치랴, 자기 딱지 만지는 아이한테 잔소리 하랴, 바쁘다.


두 아이의 실력이 쟁쟁해서일까, 평소라면 다른 놀이를 할 것 같던 아이들까지 와서 구경을 하고 있다.

딱지를 내려칠 때마다 교실에 짝짝하는 소리가 가득하다.

그 날카로운 소리가 시끄러워 나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칠 때마다 소리가 달라 자극적이다.

그렇다고 그걸 못하게 하자니 오로지 그걸 위해 학교에 왔을 아이들에게 미안해 차마 못 그런다.

딱지놀이를 차라리 밖에 나가서 하면 좋겠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

먼지도 안 묻고 소리도 짝짝 더 크게 나는 교실을 아이들은 더 선호한다.


딱지치기를 너무 재미있어하길래 쉬는 시간이 조금 지났어도 모른 척하는데

딱지를 만지작 거리던 아이가 시계를 흘끗 보더니 뭔가 분풀이하듯 외친다. 야, 니네 쉬는 시간 끝났어. 빨랑 가서 앉아.

그 아이, 딱지를 만지작거리다가 딱지 주인 아이에게 한 소리 듣고 기분이 상했나 보다.

그러자 한참 딱지를 치던 딱지 주인 아이가 화를 낸다. 니가 선생님도 아니면서 왜 그래.

같이 놀이를 하던 아이도 거든다. 넌 무슨 반장인 것처럼 잘난 척하지 마.


두 아이에게 공격을 받은 그 아이, 내게 와서 왜 저 아이들에게만 쉬는 시간을 더 주냐고 따진다.

아이 말이 틀리지 않아 할 말이 없어진 난 민망해져서 입맛을 쩝쩝 다신다.

그렇다고 당장 자리에 앉으라고 하자니 너무 이 아이 편을 들어주는 것 같고

이 아이의 요구를 무시하고 딱지 노는 아이들 편을 들어주자니 그것도 곤란하다. 아차, 선생님이 시간 가는 걸 몰랐네. 미안.


내 사과를 받은 아이는 순순히 자리에 가 앉는데, 이번엔 딱지 주인 아이가 내게 그 아이를 이른다.

선생님, 남의 딱지 막 만지는 거 못하게 해요. 지꺼도 아니면서 막 만지잖아요.

내가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못마땅했나 보다.

난 아까처럼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한다. 아이구, 딱지가 엄청 멋있어 보여서 너무 만져 보고 싶었나?

그 아이, 잠깐 화가 나 있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더 말이 없자 자리에 가 앉는다.


*

자리에 앉은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뒤숭숭하다.

난 다시 시간 확인을 못한 걸 사과하면서 선생님이 눈이 두 개라서 시계만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는데,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느냐 물었다.

그러자 아까 딱지를 만지던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반장을 뽑아요. 반장이 시간을 알려 주면 돼요.

그래서 투표를 하기로 했다. 임기는 1주일이고 돌아가면서 반장이 된다.

1학년 총 6명 중 6명이 출마했다. 심도 있는 공약들이 발표됐다. 


친구에게 준비물을 빌려주겠어요.

애들이 떠들면 조용히 하라고 하겠어요.

애들이 잘 모르면 놀리지 않고 가르쳐주겠어요.

우유를 가져다주겠어요

점심시간에 애들이 싸우면 싸우지 말라 그러겠어요

딱지치기하다가 싸우면 싸우지 말라 그러겠어요


친구들에게 쉬는 시간의 끝을 알려주기 위해 반장을 뽑기로 한 아까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공약이다.

아이들의 공약을 보면, 아이들이 반장이라는 역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돕거나(가르쳐주겠다는 공약), 베풀거나(빌려주겠다는) 심지어 지도하는(싸움을 말리려는) 사람이 반장인 것이다.

이런 역할은 다른 아이들과 수평관계에서가 아니라 친구들 위에 있어야만 가능한 역할이다.

결국, 아이들은 선생인 나의 역할을 대신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힘을 사용하고 싶어서 반장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런 공약들의 행간에서 읽히는 건 아이들의 권력욕이지만,

아이들이 왜 친구들 위에 서고 싶어 하는지를 알면 그런 영향을 끼친 나의 행동을 반성하게 된다. 

교실 안에서 아이들은 교사의 애정을 놓고 끝없는 경쟁하는데 이 과정에서 선생의 작은 행동 하나가

아이들의 역학 관계를 단번에 뒤집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생의 역할은 아이들의 역학관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교사가 반장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준다면, 반장인 아이는 그걸 이용해 아이들에게 군림할 것이다.

반대로 너무 역할을 주지 않으면 반장이 된 아이는 담임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서 역할에 소극적일 테고

다른 아이들도 반장의 역할을 무시하거나 월권을 하려고 할 것이다.

반장 아이가 아이들과 관계에서 너무 적극적이거나 혹은 그 반대인지를 잘 살펴서

그 아이가 반장으로서의 적당한 존재감을 친구들에게 드러낼 수 있게 물밑 작업을 미리 해 주어야 한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반장 아이는 리더십을 익히고 아이들도 그걸 보고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선생이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하고 섣불리 개입하면, 그동안 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졌던 힘의 균형이 흐트러진다.

이 과정에서 갑자기 유리한 위치에 오르는 아이가 있고 기껏 쌓아 놓은 관계를 한 방에 잃는 아이도 있다.

갑자기 유리해진 아이는 그걸 유지하기 위해 틈만 나면 교사를 끌어들이려고 와서 고자질을 하게 되고

관계를 잃은 아이는 선생에 대한 신뢰를 잃어 상심한다. 그리고 학급에서 겉도는 아이로 변한다.

그래서 나는 어설프게 아이들 관계에 끼어들어 관계를 꼬이게 만드느니 차라리 바보인 척 옆에 물러나 있는 걸 선택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기존에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다시 찾아가고 생각보다 다 쉽게 상황이 정리되는 걸 자주 보았다.

어리석은 지도자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진리는 단 여섯 명뿐인 1학년 교실에서도 엄연하다.


선생님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싶은 존재가 되고 싶어서 잘 보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반장이 된다면, 선생님과 특별한 관계가 될 수 있을 테니 그러면 더 사랑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고

그걸 친구들에게 앞당겨 과시한다. 내가 반장 되면 선생님한테 다 일를거니깐 니네도 조심해.

친구들이 그런 아이를 좋아할 리 없다. 유권자인 그들은 결국 그 아이를 떨어뜨린다.


어떤 아이는 자기가 반장이라는 위치를 이용해서 담임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으려 하기도 한다.

친구들로 하여금 자기가 담임에게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일부러 묻지 않아도 될 것들을 아이들이 보는 데서 묻곤 한다. 

선생님, 지금 손 씨러(씻으러) 가는 거 맞죠? 제가 애들한테 뛰지 말고 걸어가라고 말하까요?

그러면 반장이 되고 싶었지만 떨어진 아이는 딴지를 걸게 마련이다. 야, 너 왜 잘난 척해.

인정받고 싶어서 나서는 아이나 딴죽 거는 아이 모두에게 이런 시비는 기껏 만들어진 우정을 망가뜨린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서로 조금씩 모난 욕망을 다듬어 갈 때까지는 선생이 좁쌀영감처럼 간섭을 해야 한다.


*


아이들에게 기표용지를 만들어 주었다. 이름은 한 명을 쓴다. 자기가 반장이 되고 싶으면 자기 이름을 써도 된다.

아이들은 저마다 남이 못 보게 손으로 가리고 썼다. 그 모습에서 긴장감이 피어오른다. 가리고 쓰는 건 누구에게 배웠을까. 

반장이 되고 친구들과 다른 위치의 서는 권력을 얻고 싶은 욕망이 여덟 살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손 뒤에 가려져 있다. 



*


1학년 아이들이 반장에 대해 알 리 없고, 설사 반장이 된다고 해도 교실에서 딱히 할 것도 없기 때문에

보통 1학년은 반장 선거를 하지 않는다. 또 학급의 대표라는 이름의 반장이라는 말은 학교에서 없어진지 오래다.

요즘은 회의를 진행하는 역할이 많기 때문에 회장이라고 불리면서다.

회장 역할을 해 본 적이 없을 1학년 아이들이, 더구나 학급회장이라는 표현도 아니고 굳이 반장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뭘까.

반장이라는 명칭은 어른들이 가르쳐 줬을 것이다. 반장 나가라고. 나가서 꼭 뽑히라고.

학기 초마다 반장은 언제 뽑느냐고 묻는 아이들이 여러 명 있다. 난 그 아이의 맑은 눈동자에 드리운 부모의 욕망을 읽는다.

반장이라는 이름의 대표성과 권력을 경험했거나 부러워했던 어른.

또는 어린 시절, 그 권력 때문에 상처를 입었거나 그 권력으로 비정상적인 이득을 본 아이가 어른이 되면

단지 누리기 위해 권력을 탐하게 될 것이다.


같은 교실의 많은 아이들 중에 잘난 아이 몇만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있고

또 그중에서도 일부만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으며

그래야만 남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신앙처럼 강하게 드리운 사회에서,

그들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칠 뿐이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경쟁을 시켜 순위를 정하고 순위에 들지 않는 사람이 가혹하게 착취당하는 산업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 자식의 자식, 그 자식의 자식 대가 되어도 반장이라는 자리에 대한 욕망은 여전히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것이다.


내 아이를 반장으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반장이 못 된 다른 아이들과 구별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 대신 연설문을 써 주고 발표 연습을 시키고 선거 벽보를 만들어 주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어른은 자기 아이를 반장으로 뽑아달라며 떡볶이나 피자를 걸기도 하고

생일도 아닌 학기 초에 학급 아이를 집으로 불러 간식을 해 먹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들 말한다. 사회성이 중요하잖아요. 반장이 되면 리더십도 배울 수 있잖아요.

그분들의 눈빛 속엔 모범생으로 자라 제일 좋은 대학을 가고 높은 자리에 올라 명예와 부를 거머쥔 미래의 아이 모습이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 그것도 1학년을 막 시작한 시기엔 대부분의 부모들이 이런 꿈을 가지고 상담을 온다.

어쩌면 그 시기야말로 아이를 기르면서 가장 뿌듯한 시기가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 눈처럼 하얀 마음으로 학교에 던져진 아이들이

떠들었다고 반장에게 이름을 적혀 담임에게 매를 맞아 본 경험이 있다면,

청소 검사를 맘대로 하는 반장에게 잘 보이려고 비굴해 본 적이 있다면,

또는 반장이라는 이유로 능력과 상관없이 더 좋은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면, 누구나 권력에 목매는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아무 물정도 모르고 학교에 온 게 무슨 죄라고, 그 당시 아이들은 어릴 때 그런 폭력과 비굴, 비정상적인 대우를 경험해야만 했을까.

아이를 이렇게 만든 책임은 오로지 당시의 학교 선생들에게 있다.

아이들은 좀 더 쉽게 통제하려고, 좀 더 편하게 선생을 해 보려고, 반장을 담임의 시녀로 이용한 선생들의 책임이다.

독재자가 국민을 군인들처럼 쉽게 통제하고 싶어서 했던 억압 장치들을 선생은 반장이라는 도구로 아이들에게 적용했는지도 모른다.


*


그 시절, 투표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담임 선생님의 일방적인 지명에 의해 갑자기 갑자기 반장이 되었던 나는

떠드는 아이의 이름을 적으라는 명령을 자주 받곤 했다.

조용히 자습을 하라는 말을 남기고 담임이 나간 교실에서, 순식간에 떠들기 시작하는 친구들의 이름을 적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어쩌자고 나를 반장을 시켜서 이런 일을 하게 만드시나 서운한 생각을 하면서도

모두 다 떠들고 있는데 누구 이름을 쓰고 누구를 빼야 하는지 몰라서 멍하니 있으면

그렇게 시끄러운데도 떠든 아이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가 맞았다. 다른 매와 달리 더 서럽고 아픈 매였다.


그 매가 무서워 난 이름을 적었다. 늘 떠드는 아이,

그중에 나보다 힘이 약해 싸워서 이길 만한 아이를 제일 먼저 쓰고 만만하면서 떠든 아이를 그 다음에 썼다. 

내게 이름이 적이면 선생님에게 매를 맞기 때문에 아이들은 내가 자기 이름을 쓰는지 항상 곁눈질을 했다.

어떤 아이는 떠들면서도 내가 이름을 쓰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난 아이의 이름을 쓰지 못 했다.

그런 아이들은 오히려 담임 없을 때 더 마음대로 떠들면서 그 시간을 즐겼다.

가끔은 나와 친한 아이들의 이름도 썼다. 그 아이들이 매를 맞는 걸 차마 볼 수 없었다.

그 친구들은 나를 흘겨보면서 비난했다. 

담임은 반장에게 대드는 놈은 가만 안 두겠다고 엄포를 놓으셨지만 그건 학교 안에서의 법이었을 뿐,

밖에서는 그 반대였다. 자기 이름이 적힌 친구는 내게 자기가 떠든 증거를 대라고 따지곤 했다.

나는 나대로 그 친구가 뭐라고 떠들었는지를 기억해서 증거로 제시했다. 그 일이 내겐 너무 고통스러웠다.


  

반장을 안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끝내 말하지 못 했다.

내색을 안 하지만 엄마는 내가 반장 된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동네 어른들도 내가 반장이라는 걸 아는 척해 주셨다.

학교만 안 가면 내가 반장이라는 사실이 뿌듯하고 즐거웠다.

그러나 학교에 가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수시로 배가 아팠다. 수업시간에 갑자기 먹은 걸 모두 토해낸 적도 있다.

자주 우울했다. 조회 때 맨 앞에 나가 차렷, 경례 같은 구령을 외치는 것도 재밌지 않았다.

그 일로 일기장에 담임을 저주하던 일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을 걸 보면 그 일이 내게 꽤 고통스러웠나 보다.


난 왜 담임에게 남의 이름을 적는 일은 부당한 일이며, 그 일을 하느니 반장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못했을까.

도중에 한 번 반장 못하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그 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나왔다.

담임 선생님은 잠시 내가 우는 걸 지켜보시더니 선을 긋 듯 말씀하셨다. 더 해 봐.

그 뒤로도 난 힘들어하면서도 안 하겠다는 말을 못 했다. 선생님 앞에 가는 일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나에게도 권력에 대한 욕망이 있어서 싫은 척하면서도 반장을 계속 한 건 아니었을까.


학년이 바뀔 때까지 나는 친구들의 이름을 적거나 변소 청소 검사를 계속했고 가끔은 대신 매를 맞고 울었다.

그때의 내 모습을 기억하는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은 지금도 가끔 그때 내가 울던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공부를 가르치시고 점심시간이면 항상 우리와 어울려 축구를 해 주시던 그 선생님이

왜 반장이었던 내겐 그렇게 힘든 대상이었는지, 당시엔 알 수 없었다.


그 시절의 학교는 왜 그랬을까.

반장으로 세워 놓고 감시를 하고 이름을 적어야만 통제가 될 만큼 나와 친구들이 미개해서 그랬을까.

그렇게 통제라도 했기 때문에 우리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공공질서를 지키고 위생관념을 익힐 수 있었을까.

그래서 장학사가 올 때만 공부 대신 복도 바닥에 엎드려 초를 발라 윤을 내면서도 부끄러운 걸 몰랐을까.

그래서 오로지 학교에서 시킨다는 이유 하나로 쥐를 잡아 죽여 아무렇지도 않게 꼬리를 잘라 종이에 싸서 학교에 내면서도 측은함을 몰랐을까.

그렇게라도 했기 때문에 게으르던 우리가 자라서 일등 국민으로 개조되어 그나마 이 정도로 먹고살게 된 걸까.

나의 그 시절은 지금의 이 나라가 잘 살게 진화하기 위해 꼭 필요했던 악이었을까.

그런 걸 위한 군림의 사회는 우두머리를 뽑을 필요도 없고 군림도 없었을 원시 사회 보다 더 행복했을까.


*


하지만 요즘, 유권자인 아이들은 자기들에게 선생님처럼 군림하려는 아이를 반장으로 절대 뽑지 않는다.

그 아이를 뽑는 순간, 교실에서 벌어질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냥, 자기에게 친절한 아이를 뽑는다. 결국 인기투표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친구들과의 교우관계가 거의 관찰되지 않고 내성적이며 부드러운 성향의 아이가 반장으로 뽑히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의 눈은 세밀해서, 드러내지 않아도 그 속에 잠재된 능력과 성실성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돈을 들여 홍보물을 만들거나 친구들을 동원해서 요란하게 운동한다고 뽑히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 아이의 평소 모습을 여러모로 평가해서 반장으로 뽑는다.

아이가 친구들에 의해 반장이든 회장이든 무언가로 뽑혔다는 건 그래서 큰 의미가 있다.

다른 아이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교실에서 구현되는 정의다. 

학부모들은 반장 엄마를 부러워한다. 그리고 시샘한다.

어떻게 자식을 키우면 벌써 이렇게 어린 나이에 또래들의 인정을 받게 할 수 있느냐고 상담을 올 때마다 묻는다.

자기도 열심히 키운다고 키웠는데 왜 자기 아이는 친구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그 대답은 아마 엄마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 현재의 모습은 아이의 타고난 본성에 양육환경이 더해진 결과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사고방식과 행동엔 그 아이가 자라 온 환경이 모자이크처럼 녹아 있다. 

어른들이 키우고자 하는 아이는 다른 아이 보다 뭐든 잘 하는 아이다.

뭐든 잘하는 아이가 되려면 끝없이 경쟁해야 한다. 경쟁 끝엔 항상 피로가 따라다닌다.

그게 반복되면서 그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매사 자기 이익을 다투는 싸움닭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어쩌랴. 유권자인 친구들은 그런 이기적인 친구를 가장 싫어하니.


  



동점이 나와 여러 번의 결선 투표 끝에 반장이 뽑혔다.

나는 이름표로 사용하던 목걸이 뒷면에 반장이라고 써서 걸어 주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처음엔 '회장'이라고 썼는데 아이가 '반장'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아이는 세상을 얻은 듯 행복해 보였다.

그 기분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전에 없던 친절을 더 베푸는 듯했다.


떨어진 아이 중 어떤 아이는 울었다. 애절하게 지지를 호소했지만 결과가 허망하자 참지 못한 것이다.

어차피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반장을 할 거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말을 했다. 별 효과가 없어 보였다.

울어서 소화될 수 있는 허망함이라면, 울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 스스로 왜 떨어졌는지를 끝내 알아내지 못한다면, 선거를 할 때마다 울어야 할 것이다.


  



반장이 된 아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쉬는 시간에 미리 책을 펴 놓고 친구들의 의자를 넣어준다. 전에 없던 일이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내게 와서 묻는다. 쉬는 시간이 끝나려면 큰 바늘이 어느 숫자에 가면 돼요?

그 아이는 아직 시계를 못 읽는다. 하지만 우리 반에서 가장 빨리 시계를 읽어내는 아이가 될 것이다.

반장이라는 역할은 아이에게 없던 공부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희미하던 윤리의식을 일깨우기도 한다.

어른들도 그렇듯 감투는 사람을 이렇게 드라마처럼 변화시킨다.


무엇이 저 아이로 하여금 전엔 하지 않던 일을, 저리도 열심히 하게 만드는가.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저 아이를 들뜨게 하는 것이다.

반장이라는 완장의 힘으로, 성장이 한층 도약했다.

교사가 시키니까 혼나지 않으려고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인정받은 게 고맙고 감격스러워서 하는 것이다.

저 아이는 지금 느끼는 뿌듯함 쾌감을 몸속에 깊이 새길 것이다.

그리고 그 쾌감을 계속 느끼기 위해 유권자 마음을 살필 것이다.

나야 말로  저 아이들의 경건한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 선생이 되어야 할 텐데...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은 이러면서 철이 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