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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l 21. 2015

아이들은 이러면서 철이 든다.

1학년 아이들에게 경제관념을 가르치기 위한 꼼수

아이들은 담임인 나에게 관심이 아주 많다.

난 아이들이 물으면 대부분 사실대로 말해 준다.

내 말을 듣고 아이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의 범위 안에서 나를 파악한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는 내가 할머니와 같이 살지 않는 걸 불쌍히 여겨 준다.

또 강아지를 키우는 아이는 내가 강아지도 없이 외롭게 사는 걸 불쌍히 여겨 준다.

아이들은 내게 자기들의 삶을 자랑하기 보다는 주로 나를 위로하고 연민으로 대해 준다.

내가 올 들어 옥수수를 아직 못 먹었다고 하면, 아이들은 자기네 밭엔 옥수수가 많은데 한 개 주까요 그런다.

아이들은 그렇게 나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선함과 친절은 아이들의 본성이다.

어떤 아이는 나의 살림살이를 묻기도 한다.

내가 모닝을 타고 다니는 걸 보고 자기 집엔 카니발도 있고 트럭도 있으니 하나 주까요 그러기도 하고

아빠가 소를 팔면 나한테도 돈을 조금 갖다 주겠다고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내가 자기 아빠보다 돈을 더 잘 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니 좋겠다요 부터

자기도 돈 많이 벌고 싶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도 한다.

아이들이 내가 더 부자일 거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단순하다.

아빠는 밭에서 일을 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를 부러워한다. 그리고 가끔은 제가 선생님 아들이면 좋았겠다요... 그런다.


자기 집은 시골에 있으니 가난하다고 생각다.

TV에서 부자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지 이런 시골에서 농사를 짓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남들 다 있는 스마트폰 사 달라고 부모님께 조르지도 못하고

그냥 혼자 부러며 자란다. 시골 아이들이 철 드는 방식이다.



이 곳 아이들이 선생인 내 형편을 부러워하는 걸 보니 마음이 불편하다.

도시에서의 는 '받아 봐야 얼마 안 되는 박봉'의 교사였는데,

이곳에선 '따박따박 월급 걱정 없는 얼굴 하얀 선생님'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이 또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이들이 볼 때 선생이 돈 많고 여유로운 삶을 특권처럼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면 문제다.

아이들 잘 되라고 하는 나의 잔소리들이 녀석들에게는 곧이 들리지 않을 테니까.

자신들을 사랑하고 염려해서 하는 소리가 아닌, 값 싼 연민으로 깔보면서 훈계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교육이 안 된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아이들 눈에 돈 많은 부자일 거라는 선입견은 어디서 온 걸까. 궁금해서 물어봤다.


- 우리 엄마 아빠는 얼굴이 까만데 선생님들은 하얗다.

- 우리 엄마는 몸빼 바지만 입는데 선생님들은 예쁜 옷을 입고 오신다.

- 우리 아빤 트럭을 타고 다니는데 선생님들은 자가용을 타신다.

- 우리 엄마 아빤 비 올 때도 일을 하는데 선생님들은 우산을 척 쓰고 집에 가신다.

- 우리 아빤 개고기도 막 먹는데 우리 선생님은 개고기를 안 드신다.

- 우리 아빤 욕도 막 하고 담배도 피는데 선생님들은 안 그러신다.

- 우리 엄마 아빤 농사밖에 모르는데 선생님은 아는 게 많다.


아이들이 비교하고 싶은 건 돈의 액수가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였나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어릴 때도 그랬다. 하얀 얼굴에, 하얀 셔츠에 넥타이 매고 오시는 선생님은

늘 땅에 엎드려 일만 하시던 어머니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으로 보였다.

내가 어릴 때야 몰라서 그랬다지만... 나라가 이렇게 발전을 했는데도 시골 아이들의 정서는 여전히 같아야야 만 하는 것인지. 이 또한 마음이 불편하다.



내 가르치는 아이들이 나의 가르침을 돈 잘 버는 상류계급 어른이 훈계하는 것처럼 들을까 봐 걱정이다.

빵이 없으면 쿠키를 먹지 그러냐는 앙트와네트처럼, 아이들을 허탈하게 하고 서럽게 만드는 그런 선생이 되면 곤란하다.

선생 노릇을 잘 하려면 아이들과 정서적인 합일이 먼저인데, 뭔가 묘한 엇갈림의 정서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는 한편, 자연스럽게 아이들 집 살림에 자꾸 눈이 갔다.

실상은 아이들 집이 나 보다는 더 부자다. 사는 곳이 시골이어도 다들 땅이 있으니.

다만 그걸 팔아서 아이들 손에 쥐어줘야 큰 돈인데 평생 갈아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 형편에 땅은 그저 생산수단일 뿐이다.

나중에 자기가 대학을 가거나 꿈을 이루기 위해 그 땅을 팔아서 큰 밑바탕을 해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아직은 모르는 나이.

그러니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 줄 수도 없다.


아이가 어리다지만 나는 이럴 때도, 가능하면 사실을 말해주려 애쓴다.

너네는 집도 있고 소도 있고 땅도 있잖어. 그거 합치면 선생님보다 부자야.

아이들은 그걸 잘 이해 못하면서도 나의 그런 말을 들으면 안도한다.

아이가, 어제 우리 아빠가 농협에 오이 팔았다요, 그러면 난 항상 넘치는 덕담을 해 준다. 와, 니네 부자 되겠다.

그 말을 위로 삼아 듣고 싶어서일까, 그 아이는 아빠가 뭔가를 팔 때마다 내게 와서 알려준다.


농촌의 아이들은 도시의 아이들과 생각의 내용이 사뭇 다르다.

가뭄이 너무 길어 걱정을 하고 토마토가 잘 안 익어 걱정을 하고

아빠가 일하시는 건설현장의 공사가 자꾸 멈춰 걱정을 한다.

한 아이가 이런 걱정을 하면 아이들이 공부를 하다 말고 함께 한숨을 쉰다.

아이들의 이런 걱정의 이면엔 아이들 가정의 살림살이가 잘 되길 바라는 간절함이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기 집 경제를 위해 뭔가를 해 보라고 부추겨 보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섣불리 수긍하지 않았다.

하우스에서 일을 하려고 하면 엄마가 저기 가서 놀라고 하는데 어떻게 돕냐고  따졌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라고 엄마들에게 권할 수도 없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생산하는 농산물을 자랑하는 광고를 만들어 보자고 부추겨 보았다.

그 광고를 보고 만약 물건이 팔리면 엄마로부터 한 건 당 500원씩 받으면 어떻겠냐고.

그랬더니 한 아이가 그런다. 엄마가 돈 안 주면 어떡해요. 그러자 한 아이가 그럼 니네 엄마랑 계약서를 써, 그런다.


한 아이가 하겠다고 나섰다.

난 아이의 광고를 찍어 인터넷에 올려주기로 하고 부모님께 경제교육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했다.

부모님들은 자기 아이가 경제관념을 익힐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주셨다.

난 부모님께 사진을 요청했고 아이의 광고 동영상을 찍었다.

인사를 빼 먹어 다시 찍고, 눈을 깜짝거려서 다시 찍고, 전화번호를 빼 먹어서 다시 찍기를 여러 번,

아이는 짜증 한 번 안 내고 열심이었다. 친구들도 카메라 주변에서 잔소리를 해 주었다. 아이들은 이러면서 철이 든다.














<호준이네 농산물 설명>

큰 토마토는 5~6월까지 수확하고요~ 정품, 비품으로 나뉘어 가격이 다릅니다.

방울토마토는 8월~10월까지 수확, 5킬로 택배비 포함 2만원입니다.

오이는 8월부터 10월까지입니다. 가격대는 시장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토마토즙은 110미리 50포(택배비 포함 25000원 / 두 상자 45000원)입니다.

7월 현재 구매 가능하신 건 방울토마토와 토마토즙입니다.


<동영상 광고 크레딧>

ㅇ출연 : 호준이

ㅇ의상 및 헤어 : 호준이

ㅇ소품 : 호준이

ㅇ촬영 : 선생님

ㅇ홍보 문구 코치 : 친구들

ㅇ잔소리 제공 : 친구들



* 토마토 이왕 택배로 사실 거라면 호준이네 토마토 한 번 드셔 보세요!

* 구매를 원하시면 호준이 엄마(ㅇ1ㅇ-7732-26ㅇ8)로 전화 부탁드립니다.

* 호준이 엄마에게 호준이가 참 멋지게 나왔더라고 칭찬 부탁드립니다.

* 호준이가 돈 많이 벌면 친구들에게도 한 턱 쏘기로 했답니다. ㅋ

* 호준이 동영상은 초상권, 저작권이 보호됩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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