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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l 20. 2015

아주 잘 생긴 과자 갑 하나

아이가 친구들의 시샘, 경쟁심, 치졸함을 대하는 법

어떤 부모님이 상담을 오시는 길에 아이들 주라고 카스타드를 사 오셨다.

그걸 나눠 먹고 나니 빈 갑이 남았는데

한 아이가 그거 자기가 가지면 안되겠느냐고 제법 정중하고 애절하게 묻는다.


아이는 그걸 자기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런데 그 갑이 커서 책상의 반을 차지한다. 공부시간에 책을 꺼내면 비좁다.

그래도 아이는 어떻게든 과자 갑과 책을 같이 놓아보려 애쓴다.

그러나 너무 커서 옆 아이의 책상으로 넘어간다. 책상 주인이 신경질을 낸다.


그러자 아이는 과자 갑을 자기 발 밑에 내려 놓는다.

이번엔 아이의 발이 닿을 때마다 빠득빠득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이번엔 주변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그 아이를 나무란다.

이번엔 그 아이도 못 참겠는지 신경질을 낸다. 선생님, 애들이 자꾸 저한테만 뭐라 그래요.

그러자 옆 아이가 쏘아 부친다. 야, 니가 그걸 선생님한테 달라 그래서 너만 받았으니까 그렇지.

그러자 또 다른 아이가 돕는다. 선생님, 차라리 카스타드 통 뺏으세요. 그리고 빨리 공부해요.


난 두리뭉실하게 말한다. 선생님이 한 번 줬는데 뺏으면 되나...? 그럼 약속을 어기는 건데?

그러자 아이가 아예 책상을 옆으로 빼며 말한다. 그럼 저는 이쪽에 혼자 앉을래요.

이번엔 다른 아이들도 별 말이 없다. 오히려 아이가 빠져 나가길 기다렸다는 표정들이다.

아이는 모둠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아이도, 다른 아이들도 모두 카스타드 갑 때문에 마음이 상했는지 분위기가 어색하다.  


공부시간이다.

각자 공부할 때도 있지만 친구들과 의견을  주고받아야 할 때도 있는데,

저렇게 따로 앉으니 책상과 의자를 밀고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다른 아이들이 불편한 눈치를 보내는데도 아이는 꿋꿋하게 무거운 책걸상을 이리저리 밀고 움직인다.

아이는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 저 그냥 의자만 갖고 왔다 갔다 하면 안되나요.

난 곤란한 척 하며 말한다. 어쩌나. 책상이 있어야 글씨를 쓸 텐데.

아이는 생각보다 쉽게  수긍한다. 내 말에 오히려 기운이 나는지, 아이들을 스윽 쳐다본다.

이미 책상을 몇 번 옮기면서 요령이 생겼는지 경쾌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이들은 저 아이가 움직이는 동안 기다려야 할 때마다 나에게 항의한다.

선생님, 저 카스타드 상자 뺏어서 버려요. 우리가 너무 기다리잖아요.

난  우물쭈물하는 척 대답한다. 아유, 한 번 줬는데 또 뺏으면 되나? 저렇게라도 쓰면 좋지. 그냥 버리면 쓰레기 잖어.


만약 내가 과자 갑을 뺏으면 또 다른 아이가 저걸 가지겠다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아이들이 저 아이에게 신경질을 내는 건 저 아이가 과자 갑을 받은 것에 대한 샘이 나서다.

자기도 갖고 싶었는데, 차마 선생님께 달라고 말을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저 아이는 당돌하게도 저걸 얻어 낸 것이다.

선생님의 물건을 얻어 냈으니 선생님의 사랑도 얻어 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부러운 것이다.

부러울 뿐만 아니라, 저 아이는 원하는 걸 잘 얻는데 자기는 그렇지 못한 것이 속상하기까지 하다.

자기가 얻을 용기는 없지만, 그렇다고 용감한 친구가 먼저 얻는 것도 용납하기 싫다.

그러니 차라리 선생님이 뺏어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시샘이 지나쳐 치졸해지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몇 번 더 원하는 기회를 빼앗겨 속상함을 경험해야 자기도 비로소 용기를 낸다.

아이 또한 자기가 원하는 걸 얻었으니 무거운 책걸상을 밀고 왔다 갔다 하는 불편을 감내한다.

다른 아이들의 질투와 시기를 군소리 없이 참아 내는 것이다. 오히려 다른 아이들의 시샘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1학년 아이들은 아직 소유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지 않아서

자기 물건을 몹시 아끼거나 어떤 물건을 대상으로 자신의 욕망이나 감정을 투사하는 능력이 약하다.

그 능력의 발달 속도는 그 아이를 양육하는 어른들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원하는 게 있으면 조르면 된다.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물건에 대한 애착이 덜하다.

그래서 잃어버려도 잘 찾지 않는다. 심지어 멀쩡한 걸 버리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은 물건에만 이러한 게 아니라 친구관계도 비슷하게 여긴다.

굳이 친구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려는 생각 보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다가오길 기다린다.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지만 다가가자니 거절당할 것이 두렵다.

오히려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 달라고 조르듯 친구까지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 전까지는 혼자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 그러면서 끝없이 친구들 쪽을 바라다 본다. 놀고는 싶기 때문이다.


무엇이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을 위해 기꺼이 모험을 감수하는 영웅이 되는 걸 막는 걸까.

결국 아이에게 지나치게 친절한 부모의 보호 위주의 교육방식이 결국 아이의 발달을 퇴행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1학년이라도 저 아이는 또래들보다 그런 면에서 앞선다. 그 까닭은 저 아이가 속한 환경에 있다.

위로 아직 초등학생인 두 언니가 있다. 아이의 부모 역시 아이가 막내라고 해서 막내 편을 드는 법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겨우 1학년인 저 아이가 언니들 사이에서 자기 것을 확보하는 건 힘들다.

그래서 저 아이는 뭔가 하나라도 얻어내기 위해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치열하고 냉정한 형제관계 속에서 자라는 저 아이의 환경. 난 그게 저 아이의 복이라고 본다.  

아이가 돌아가고 난 뒤, 아이의 책상 앞에 고이 놓인 과자 갑을 들여다 봤다.

과자 갑에 남아 있던 작은 부스러기가 싹 닦여 있다.

그리고 아이가 평소 아끼던 마술 지팡이가 고이 담겨 있다.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의 욕망과 앞으로 더 도약할 성장동력도 담겨 있을 것이다.

1학년. 겨우 6년 째 살아가는 아이들이지만, 양육태도에 따라 벌써 이렇게 격차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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