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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l 16. 2015

1학년 아이들의 글씨 -그 속에 담긴 삶

학교가 끝나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뒤, 아이들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공책들을 보았다.

글씨만 봐도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저 글씨들, 아이의 지문이다.

점 하나를 찍으면서도 대충 찍지 않고 여러 번 동그라미를 그렸다.

작고 앙증맞은 손에 얼마나 힘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까.

아이들이 글씨를 쓸 때면 손등 힘줄이 불끈불끈 한다.


난 아이들이 글씨 쓰는 걸 보면 석수장이가 돌에 글을 새기는 장면이 떠오른다.

아이에게 공부는 그래서 노동이다, 긴 삶을 꾸려가는 고된 노동.

소방관이  먹고살기 위해 무서운 불을 받아들이듯  아이들 또한 살기 위해 어렵고 어려운 글씨를 쓴다.

몸에 밸 때까지 쓰고 또 쓴다.

틀렸다고 혼 나고, 비뚤비뚤하다고 혼 나면서 처음 보는 글자를 몸에 새기고 또 새긴다.

아이들이 저리 애쓰며 자라는 걸 보면, 그걸 감시하는 내가 민망하다.


글씨가 서툰 1학년 아이들.

내가 낱말 하나를 불러주면 아이는 책에서 그 낱말을 찾고

찾은 낱말의 글자 모양을 눈여겨 본 다음, 그 모양을 기억해 공책에 쓴다.

그리고 또 한 글자, 또 한 글자. 안 보고 쓸 수 있을 때까지 연필이 닳도록 계속 쓴다.

너무 집중을 하다 보니 아이는 공책의 아래 위가 바뀐 것도 몰랐나 보다.

이 정도 쓰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받아쓰기 한 번 하면 아이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보인다.

도공이  온몸으로 작품을 빚어내고 쓰러지듯 아이들도 이렇게  온몸으로 배우며 지친다.

그런 정성 때문일까, 아이의 글씨가 마치 순백의 천에 꽃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받아쓰기를 하면 나는 무조건 아이들에게 백점을 준다.

만약 틀린 글자가를 발견하면 아이 앞에서 슬쩍 고쳐준다. 그리고 백점이라고 써 준다.

내가 글자를 고쳐 줄 때, 아이는 부끄러워한다.

그래도 난 모른 척 한다.

괜찮아, 틀릴 수도  있어,라고 일부러 말해주지도 않는다.

아이는 지금 부끄러워한 만큼 실력이 자랄 것이다.

난 다만 아이가 부끄러움을 창피함과 혼동해서 좌절하지는 않나 신경 쓴다.


옆에 있던 아이가 묻는다. 틀렸는데 왜 백점을 줘요.

난 그 아이에게도 모른 척 둘러댄다. 열심히 썼으니 백점이지.

이 아이는 글씨를 빨리 쓴다. 글씨만 빠른 게 아니라 행동도 빠르고, 포기도 빠르다. 그래서 뒤끝도 없다.

그 성격 때문에 저 아이, 자라서 어떤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잘 될 것 같다.




또 다른 아이의 공책. 이 아이는 글씨에 자기의 마음을 담았나 보다.

진하고 큰 글씨는 기분이 좋을 때, 작고 흐릿한 뒷부분의 글씨는 짜증이 났을 때 쓴 것이다.

아이가 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필 끝이 뭉툭해졌다.

아이가 짜증을 냈다. 에이씨, 연필이 자꾸 미끌미끌해요.

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것도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저 아이의 정체성은 단연 돋보인다.

이 아이는 흥이 많다.

심지어 그 흥은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래서 주변에 아이들이 몰린다.

저 아이 역시 흥으로 먹고 살 것 같아 난 아이의 흥을 깨지 않으려 눈치를 본다.

내가 아이 앞에 연필 깎기를 가져다 놓으며 말을 건넨다. 연필 줘. 선생님이 깎아 줄 테니 조금만 더 써 봐.

그래도 화가 안 풀리나 보다. 아우, 깎기도 싫어요. 그냥 쓸래요.

결국 아이는 조금 더 쓰더니 화를 내면서 연필로 지우개를 푹푹 찌른다. 아우, 선생님, 골머리 아퍼요. 그만 쓸래요.

골머리.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그 아이, 할아버지들이 주로 쓰는 언어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아이가 짜증을 내든 말든 난 내 고집을 피운다. 

나의 고집, 역시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다. 니 맘대로 해. 하지만 집에 가기 전엔 써야 해.

가르쳐야 먹고 사는 나의 노동과, 지금 배워야 나중에 먹고 살 수 있는 아이의 노동이 날카로워 둘 다 베일 것 같다.

앞으로 아이가 공부 때문에 상처받을 일들을 생각하니 애잔하다.

아이는 한 번 더 짜증을 확 내더니 다시 앉아서 꾸역꾸역 남은 걸 쓴다.

뒤로 갈수록 작아진 글씨가 아이의 눈물은 아니었을까, 마음에 걸린다.

아이들의 글씨, 단지 예쁘다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아이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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