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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l 15. 2015

그래서 저 아이들이 참고 사나 싶다

나는1학년담임 

지난 월요일쯤이었나 보다.

아이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점심을 먹으면서 자기들끼리 수군수군 하더니 나더러 물었다.

선생님, 4월 9일 될라면 몇 밤 자야 돼요.

난 건성으로 야, 너넨 꼭 어려운 것만 선생님한테 물어보더라. 그거 알려면 9 빼기 6을 해야 되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어. 했더니,

두 아이가 벌떡 일어나면서 아, 그러게 2학년 형님들한테 가서 물어보자니까 어쩌고 떠드는 것과 동시에 한 여자아이가

야, 9에서 6을 빼면 3이니깐 세 밤만 더 자면 되지, 니넨 그것도 모르냐, 으이구. 그런다.

그러자 퉁을 들은 아이들이 노려 보면서 그래서 어쩌라구를 외친다.  1학년 아이들의 흔한 실랑이다.

내가 4월 9일은 왜? 무슨 날이냐고 물으니 아이들이 일제히 날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그날 치킨이 나온다구요 한다.


우리 학교는 급식실 입구 잘 보이는 곳에 일주일 치 식단표를 붙여 놓는다. 1학년 아이들은 특히 그 메뉴에 관심이 많다.

아이들은 나란히 줄을 서서 따라 급식실을 가다가도 메뉴판 앞을 지날 때에는 어떻게든 천천히 가면서 목을 뒤로 빼 늦추며 메뉴를 읽는다.

아직 글씨를 읽기가 벅찬 아이들이어서 메뉴를 한 번에 읽지 못하고 하루에 몇 개씩 깨우치는 모양인데

그중 글씨를 잘 읽는 아이가 첫날부터 목요일에는 양념통닭이 나온다고 말을 해 버린 모양이다.

그 뒤, 아이들은 온통 목요일에 나올 치킨에 매료되었다.

아이들은 그날이 무슨 설날이라도 되는 양 부산을 떨었다. 선생님, 목요일에 치킨이 나온대요, 글쎄.

나 또한 아이들에게, 우리 목요일에는 절대 결석하지 말자. 치킨 먹어야 되잖어, 하며 은근히 부추겼다.

도시와 달리 치킨의 배달이 제한적인 농촌 마을에서 치킨은 도시 아이들의 그것과는 무게감이 다르다.

그걸 한 번 먹으려면 읍내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읍내로 외식을 나가려면 할머니 생신이 오거나 무슨 특별한 날이어야 한다.

어쩌다 아이들이 시내에 나가 외식을 하고 온 날이면 아침부터 내게 와서 자랑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 앞에서 일부러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는 표정으로 호들갑을 떨며 뭘 먹었느냐고 물어준다.

그러면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거만한 귀공자의 표정으로 뭘 먹었는지를 하나씩 세면서 말해 준다.

내가 와, 그거 엄청 맛있었겠다. 선생님은 어제 그냥 밥만 먹었는데. 그러면 아유, 선생님도 이담에 맛있는 거 먹으세요 하고 위로한다.


아이들에게 치킨이나 피자를 먹는다는 건 단순한 자랑을 넘어 하나의 권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치킨이나 피자를 먹었다는 아이가 하나 나오면 주변 아이들이 입맛을 다시며 부러워한다.

그 부러움은 손쉽게 주문을 해서 먹을 수 있는 도시 아이의 그것보다 클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날의 치킨 메뉴를 더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생각났다는 듯이 치킨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아이들의 이야기에 살을 보탰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여러 가지 치킨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고 다양한 치킨 메뉴도 찾아 보여줬다.

아이들은 우리나라에 치킨을 만드는 회사가 엄청 많고 치킨집도 많은데

왜 우리 동네에는 경로당 구판장만 있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기도 하고,

자기가 ㅇㅇ치킨을 먹어 봤는데 그게 젤 맛있다고 자랑을 하면

또 다른 아이가 그 치킨보다 ㅇㅇ치킨이 더 맛있어. 두 마리 시키면 콜라도 줘 그러자 패가 나뉘어 다투기도 했다.

그렇게 치킨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덧 아이들에게 최고조가 되는 순간이었다.


어릴 적, 해마다 늦가을이면 산골의 우리 동네엔 집집마다 호박죽이 유행이었다.

주황색의 늙은 호박을 껍질 벗겨 조각내어 푹 삶다가 찹쌀을 넣고 간을 하면 샛노란 호박죽이 되었다.

난 특히 그걸 좋아해서 엄마가 부엌에서 호박죽을 쑤는 날이면 너무 좋아서 마당을 겅중겅중 뛰곤 했다.

수시로 부엌을 드나들면서 얼마나 익었는지 솥 뚜껑을 열어 보기도 하고 부지깽이로 아궁이 불을 살리기도 했다.

호박이 익으면서 냄새가 부엌에 가득하면 그 맛있는 냄새에 숨이 막히도록 좋았다.


그런데 그 호박죽 보다 더 나를 흥분시키는 것이 있었는데, 호박 시루떡이었다.

시루떡은 어머니가 여간해서 하지 않는 메뉴였는데 마침 그때 손님이 온 것이다.

쌀가루를 켜켜이 놓는 그 틈에 말린 호박과 대추를 넣고 찐 시루떡.

몇 년에 한 번 먹어볼 까 말까 한 그 떡이 익어가는 동안 기꺼이 아궁이 불을 지키던 나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그 시루떡만 먹을 수 있다면 세상 그 어떤 무서운 악마에게도 기꺼이 영혼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쪄서 한 뜸 식힌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시루떡 속의 호박과 대추를 한 입 베어 물 때의 그 행복감. 어떤 말로 표현이 가능할까.

또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떡 맛이 연해지면서 끝내 시큼하게 쉬어질 때의 그 안타까움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시절 어린 나는 내가 부자 어른이 되면 '시루떡을 맘껏 먹다가 배 터져 죽었음 좋겠다'는 일기를 쓰곤 했다.

얼마나 먹고 싶으면 먹다가 배가 터져 죽었으면 좋겠다고 썼을까. 그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간절한 문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도 치킨을 배가 터져 죽도록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직 구사할 수 있는 어휘가 짧은 1학년 아이들은 죽겠다는 표현으로 그 센 느낌을 표현한다.

글씨 쓰느라 팔 아퍼 죽겠다요. 엄마가 보고 싶어 죽겠다요. 빨리 급식 먹고 싶어 죽겠다요.


목요일 하루 전 날인 어제, 수업을 마치려는데 한 아이가 책상을 엎었다.

의자를 책상에 바짝 끌어다 놓고 발끝을 곧추세워 무릎을 올리는 바람에 책상이 앞으로 넘어간 것이다.

책상이 제법 무거워서 만약 그 앞에 다른 아이가 있었다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1학년 아이들은 한 아이가 뭔가 재미있는 걸 하면 금세 전체가 따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분명히 알려주려고 잔소리를 하느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는데

한 아이가 슬쩍 오더니 그런다. 선생님, 내일 뭐 먹는 날인 거 알죠? 아프지 말고 학교 꼭 오세요.

그렇게 좋아하는 치킨이 나오는 날, 야단을 맞으면서도 선생님이 못 먹을까 봐 걱정을 해주는 것이다.

내가 아, 맞어. 선생님도 내일 치킨 먹으러 학교에 꼭 올게.

그 와중에 그랬더니 그 아이, 전체를 향해 다시 말한다. 야, 니네도 내일 아프지 말고 와.

다른 아이들도 서로 기대의 미소를 교환을 한다.

마치 좋은 날을 앞두고 서로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원시의 축제처럼 아이들 얼굴에는 강렬한 행복감이 퍼진다.

태어나 겨우 5년을 살았는데 갑자기 학교에 던져져서 매일 혼나고 울고 떼쓰면서 1학년을 보내는데

그래도 내일 치킨을 먹게 될 달콤한 풍요를 위해 서로 넉넉한 마음 씀씀이를 맘껏 보이고 싶은 것이다.

그 와중에 책상 속 정리해라, 신발장 문 닫을 때 꽝 닫지 마라, 집에 갈 때 잠바 잘 챙겨라 잔소리하는 나만 열등한 시민이다.

비록 치킨 몇 조각이지만,

그걸로 그간의 고통을 스스로 상쇄하고도 남을 줄 아는 아이들. 그래서 저 아이들이 참고 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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