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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Aug 31. 2015

그래, 방학 날이어서 그랬을까.

여름이 깊어가면서 학교도 더워진다. 그 열기 때문일까, 아이들과 교사들은 늘어지기 시작한다.

주변 교사들의 목소리가 가늘어지거나 갈라지다 못해 쇳소리로 변해 가거나

오래 서 있어서 허리가 결리고 종아리에 거머리처럼 부정맥 혈관이 불거지면 교사들끼리 서로 그런다. 방학할 때가 됐구먼.

스물 몇 살에 내가 처음 선생이 되었을 때에는 이런 풍경이 좀 생소했다.

공사장에서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하루 종일 힘쓰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학기 말이 되면 슬슬 앓던 선배 교사들을 이해하지 못 했다.


그러나 머잖아 나 또한 그 대열에 편입되었다.

한때 맑고 부드럽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내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맑지도 부드럽지도 않다.

목소리가 쉬면 말을 안 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상대로 끝없이 악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학기를 보내다 보면 서서히 목이 힘들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 더 가면 아예 목소리가 안 나오기도 한다.

이때는 어김없이 방학이 가까워지는 무렵이다.


선생으로 탈 없이 살아가려면 우선 성대가 튼튼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의사는 내 목이 간당간당한 상태라고 한다.

내가 조금 더 작게 말하지 않으면, 말하는 시간까지 더 줄이지 않으면 성대결절이 올 거라고.

그러다 신기하게도 방학이 되어 말을 안 하면 며칠 내로 목소리가 돌아오곤 했다.

방학 때 목소리를 회복하고 학기 중엔 다시 목을 괴롭히는 걸 반복하면서 나는 선생으로 늙어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목소리는 억지로 노래를 쥐어짜는 가수의 그것처럼 탁한 쇳소리로 변했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일부러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기술자가 연장을 아껴야 먹고살 수 있듯 선생인 내게 목소리는 삶의 방편이다.



목소리가 작은 아이들도 여럿이 얘기할 땐 모두 목소리가 한층 커진다.

그 아이들이 내게 와서 자기 이야기를 할 땐 그보다 더 목소리가 커진다.

친구들의 목소리에 자기 목소리가 묻힐까 봐 먹이를 다투는 새끼 제비들처럼 더 높게 소리를 지른다.

아직 발표 순서를 기다리는 습관이 덜 된 1학년 아이들의 목소리는 특히 더 크다.

어느 한 아이가 내게 와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면 또 다른 아이가 와서 자기 이야기를 끼워 넣고

또 다른 아이가 와서 그 위에 자기 목소리를 얹는다. 아이들은 자기 얼굴을 내 가까이에 들이대고 목울대가 보이도록 소리를 높인다.

난 한 발 물러서며 아이들을 달랜다. 한 사람씩 이야기를 다 들어줄 테니 조그맣게 말하라고.

내 말을 들은 아이들은 한 풀 낮춰서 말을 시작한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커진다. 1학년은 특히 더 하다.


이런 아이들을 상대하다 보면 나도 자연스레 목에 핏대를 세우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조금만 크게 말을 하면 목소리가 갈라져 이상한 목소리가 나온다.

나도 모르게 호흡이 새면서 그런 삑사리가 나면 아이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린다. 선생님, 개그콘서트 같아요. 한 번 더 해 봐요.

한 아이는 이 이야기를 부모님께 했다. 부모님의 반응은 이러했다고 한다. 야, 니네 슨상님 늙었다야.

내가 선생으로 살아온 증표다.


하루에 많아야 여섯, 일곱 시간 정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면 오후엔 주로 앉아서 일을 처리하는 업무의 강도만 봐서는

선생이라는 직업이 다른 대부분의 직장 환경에 비해 힘든 건 아닌데 선생들은 왜 다들 학기말이면 나가떨어지는가.

누구는 말한다. 아이들에게 몽땅 기를 빨려서 그러는 거야. 선생 똥은 영양가가 없어서 개도 안 먹는다잖아.

또 누구는, 적당히 말을 덜 하면 되지, 애들 상대로 뭐 그리 미련하게 하느냐고 한다.

그럴 수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 앞에 있으면 그게 잘 안 된다.

모르는 아이는 다시 한 번 설명을 해서 이해를 시켜야 하고

싸우는 아이는 왜 싸우는지를 들어주고 또 왜 싸우면 안 되는지를 알아들을 때까지 반복해서 말해줘야 한다.

의욕이 없는 아이에게는 사람이 왜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들을 때까지 말해 줘야 한다.

말썽꾸러기에게는 친구와 잘 지내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이외에 아이들을 성장시키기 위한 거라면 무엇이든 끝없이 말을 해줘야 한다.

엄마 말은 잘 안 듣더라도 선생인 내가 하는 말은 그나마 좀 들으려고 하니까, 선생인 내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혼자 스스로 흥분하고 스스로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니 병이 날 밖에.



*


방학 전날이었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네가 한 학기를 잘 마쳐줘서 맘대로 하게 해 싶은데 뭐가 좋을까.

운동장에 나가 놀아요. 검정 고무신 틀어줘요.  받아쓰기할 때 쉬운 문제만 내요.

친구들의 말을 듣고 있던 한 아이가 소리 질렀다. 차라리 공부 안 하고 가만있게 해 줘요.

투표를 할 것도 없이 그 아이의 의견대로 한참을 가만있어 보았다. 아이들은 생각만큼 오래가지 않았다. 심심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나는 또 물었다. 한 학기를 보내면서 내 친구들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을까.

그리고 나서 아이들끼리 서로 돌아가면서 물어보라고 하고 잠시 후 그 결과를 들어 보았다.

어떤 아이는 공부 때문에, 어떤 아이는 가족 때문에, 또 어떤 아이는 담임인 나 때문에 힘들었나 보다.


- ㅇㅇ는 받아쓰기 틀리면 엄마한테 혼나거덩요. 그래서 받아쓰기 시간에 틀릴까 봐 제일 힘들었대요.

- ㅇㅇ는 오이를 못 먹는데 선생님이 먹어보라고 자꾸 그랬잖아요. 그래서 급식시간이 엄청 힘들었대요.

- ㅇㅇ는 신발이 나무에 걸려서 집에 신을 한 짝만 신고 갔는데 그때가 제일 힘들었대요.

- ㅇㅇ는 아빠가 술 먹고 엄마 머리를 때리고 할머니까지 엄마더러 집에 가라 그래서 막 울어서 힘들었대요.


아이들의 각자 발표가 끝나자 한 아이가 불쑥 물었다. 선생님은 모가 힘들었어요?

난 솔직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너네가 다칠까 봐 계단에서 뛰어내리지 말라고 했는데도 너네가 자꾸 뛰어내려서 힘들었어.

너무 살찔까 봐 고기보다 채소를 먹으라고 했는데도 너네가 채소를 몰래 버려서 힘들었어.

내가 혼자 고기 다 먹으려고 먹지 말라고 한 게 아니었잖아. 너네 건강 생각해서 그런 건데 너네가 막  안 들어서 힘들었어.

그땐 너네 선생님 하기 싫다는 생각도 들었어.

잠시 조용한 듯하더니 몇 아이가 동시에 말했다. 에이, 참으세요. 선생님. 담엔 안 그럴게요.

늘 형식적으로 듣던 이 녀석들의 토닥거림이 그날따라 진짜처럼 느껴진 건,

그래서 저 아이들이 방학 때 정말 행복하게 잘 놀고 안전하게 다시 학교 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 건, 그래, 방학 날이었기 때문일까.



그러면 지금부터 맘대로 하기 시이작~!

나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아이가 책상 위로 올라갔다.

난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척을 해 보인 뒤,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여줬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아이 몇이 내 눈치 때문에 참고 있었는지 후다닥 책상 위로 따라 올라갔다.

그러자 나머지 아이들도 따라 올라갔다.

아이들이 모두 올라가자 뭐가  재미있는 지 자기들끼리 서로 보면서 낄낄 웃기 시작했다.

난 마침 아이들이 좋아하던 노래인 '검정 고무신'만화 영화 주제곡을 틀어보았다.

아이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노랫소리 보다 웃음소리가 컸다.

한참 춤을 추던 아이들이 나를 보더니 소리쳤다. 선생님도 책상 위로 올라가요. 선생님도 힘들었잖아요.

자기들을 구속하고 힘든 것만 요구한 담임을 향해 아이들 이런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도 교사 책상 위로 올라갔다. 내가 올라가자 모니터가 올려져 있는 교사용 책상이 삐거덕 소리를 냈다.

아이들이 그걸 보고 까를까륵 아기 제비들처럼 웃었다.

나도 아이들을 따라 궁둥이를 실룩거리며 함께 춤을 추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내가 책상 위로 올라가자 사진 속 아이들의 높이가 나와 나란해졌다.

책상 위, 천장과 한층 더 가까워진 아이들이 부쩍 자랐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를 책상 위로 불러 올리는 아이들의 그 제안이 유난히 뭉클했던 건,

이 녀석들, 아가였는 줄만 알았는데 그 새 철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건,

그래, 방학 날이어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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