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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Sep 03. 2015

던져진 가방

아이들로 하여금 학교에 가고 싶게 만든다는 것


 

월요일 아침.

교실에 와 앉아 있는데 저 멀리부터 콩콩콩.

아이가 복도를 달리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아이고, 저 녀석 또 뛰네.

잠시 뒤, 교실 앞문이 왈칵 열리고 가방이 휙 날아온다. 아이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또다시 숨 가쁘게 멀어지는 소리 콩콩콩.

놀고 싶어서, 너무 놀고 싶은 마음에,

서너 발짝만 더 걸어오면 가방을 자리에 걸어 놓을 텐데

그 시간이 아까워 밖에서 내던지고 운동장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어떤 날은 실내화 갈아 신을 시간도 아끼려고 현관부터 아예 맨발로 달려온다.

너 그렇게 뛰면 넘어져. 다치면 놀지도 못하잖어. 그러니 살살 댕기라고 야단을 쳐도 그때뿐, 아침마다 이 모양이다.

잔소리 덕분일까, 아니면 삼신할미의 보살핌일까. 아이들은 이런 일로는 잘 다치지 않는다.


가방이 던져져 있는 날이면 난 그걸 집어 아이 책상에 걸어준다.

그걸 본 아이들은 마땅찮은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한다.

자기 가방은 자기가 걸으라 그래야죠. 선생님이 자꾸 걸어주니까는 만날 저렇게 던지죠. 으이구.

난 몰랐다는 듯 응수한다. 아, 맞어. 오늘은 누가 밟을까 봐 걸어줬지만 내일 또 던지고 도망가면 선생님이 걸어주지 말아야지.

그러면서도 그 뒤로 계속 가방을 걸어주었다.

그랬더니 저렇게 던져지는 가방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복도로 뛰어오는 것도 귀찮았는지 창밖에서 창 틀에 가방을 올려놓기도 한다.


1학년 아이들은 학교를 좋아한다. 자기 집에는 없는 그네나 미끄럼틀이 있고, 무엇보다 같이 놀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자랑하듯 말한다. 일어나기 싫었는데도 억지로 일었났다요. 밥도 못 먹었다요. 그런데 내가 오늘 학교 왔다요.

학교에서 놀고 싶어서 주말마다 빨리 월요일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저 아이들.

금요일 공부를 마치고 인사를 할 때에는 자기들끼리 비밀 작전이라도 짜듯 속닥인다. 야, 니네  밤 자고 또 만나자.


학교라고 와 봐야 온갖 규칙에, 하기 싫은 공부에, 담임인 나 때문에 힘든 날의 연속일 텐데,

그래서 학교 가기 싫다고 떼쓸  법한데도 잠깐씩 저렇게 온몸을 던져 노는 걸로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심지어 잔소리로 숙제로 자기를 괴롭히는 담임도 너그럽게 봐주나 싶어 대견하면서도

저 아이들이 언제까지 학교라는 곳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다니게 될까 싶어 애잔하다.

그래서 난 가끔 아이들이 올 시간에 일부러 운동장에 왔다 갔다 하는 척하며 기다리다가 가방을 날름 받아 들어 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이면 씩씩하게 학교에 오는 저 아이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


내가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혼자 자식 다섯을 키우시던 어머니는 셋째인 나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가 짓던 농사를 홀로 맡으시면서 하루 종일 집에서 떨어져 있는 밭에 게딱지처럼 엎드려 일을 하다 어둑하면 집에 돌아왔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고 그저 메고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하던 나의 일상에

조금씩 순서와 체계를 부여하는 역할은 오로지 담임 선생님의 몫이었다.

내가 세수도 안 하고 학교에 가면, 나의 선생님은 나를 불러내 코를 쓱 닦아 주시곤 했다.

내 머리에는 늘 머릿니가 있었다. 보다 못한 선생님께서 나를 무릎에 뉘고 참빗질을 해주셨다.

난 그게 창피해서 어떻게든 머리를 빼려고 애쓰곤 했다. 그럴수록 선생님은 내 머리를 꽉 쥐고 빗질을 하시던 기억이 난다.

기억난다, 엄마 아닌 다른 어른이 내 머리의 이를 잡아 주시던 그때, 어렴풋이 맡았던 선생님의 분 냄새. 그리고 막 잠이 오던 일.


나는 숫기가 없어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고 툭하면 질질 울고 앉아있기 일쑤여서

담임 선생님으로선 손도 많이 가고 은근히 짜증 나는 아이였을 것이다.

그런 내가 교실 구석에서 혼자 조물락거리고 있으면 선생님은 그런 나와 비슷한 성향의 아이와 엮어 놀아보게 하셨다.

시골 학교였지만 우리 반엔 70명 남짓한 1학년이 바글바글했었는데 그 많은 아이들을 나처럼 돌보시느라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학교 들어가기 전에 연필을 잡아 본 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위해 연필 쥔 내 손을 같이 잡으시고 함께 글씨를 쓰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의 분 냄새가 아득한 느낌이 들곤 했다. 선생님은 이 세상이 아닌 어딘가의 꽃밭에서 오신 건 아닐까.

선생님이 내 공책에 글씨를 쓰시면 그게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여 난 끝없이 그걸 따라 쓰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간사함은 알아서 선생님의 그 친절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일부러 글씨를 못쓰는 척 하곤 했다.

내 필통에 연필이 있는지 보시고 없으면 선생님 서랍에서 누군가가 쓰던 연필을 꺼내 주시던 일,

똥이 마려우면 미리 말을 해야 하는데 부끄러워 말을 못하다 끝내 바지에 묻혔을 때, 닦아주시던 일,

무슨 이유도 없이(아마 사소한 일로 친구가 뭐라 했겠지) 질질 울고 있으면 와서 어깨를 토닥여 주시던 일을

이리도 소상히 기억하는 건 내가 그 선생님을 엄마처럼 생각하고 애틋하게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선생님 관련해서 가장 고맙게 기억하는 건 정작 따로 있다.

장마철 이었다. 학교가 끝나 집에 가려는데 비가 쏟아졌다.

엄마가 데리러 온 아이들은 엄마와 가고, 우산을 가져온 아이들은 알아서 쓰고 갔는데

엄마도 안 오고 우산도 없는 나와 몇몇이 남아있었다.

선생님은 어딘가에 가서 농사용 비닐을 얻어 오셔서 우리 몸이 들어갈 만큼 큼지막한 사각형으로 잘라 씌워 주셨다.

선생님이 내 머리에 비닐을 둘러주고 남은 끄트머리를 내 손에 꼭 쥐여주시면서 분명히 말씀을 하셨다.

바람이 불어도 놓지 말고 꼭 붙잡고 집에까지 가거라. 넌 집이 멀어 옷이 다 젖을 테니 집 가면 바로 갈아입어라. 엄마 기다리지 말고 니가 찾아 입어라.

난 선생님 말씀대로 꼭 붙잡고 한 시간을 넘게 걸어 집에 가서는 내 손으로 옷 서랍에서 옷을 찾아 입었다.

아이들에게 비닐을 씌워 보낸 일을 어머니는 두고두고 선생님을 칭찬하셨다.

철부지인 내가 학교에 다니더니 조금씩 커 가는 게 어머니의 눈에도 띄었던 건 아닐까.


그 무렵, 나는 선생님이 좋아서 선생님이 하라고 하시는 건 뭐든 하려고 애를 썼다. 단지 선생님이 좋아서.

손가락에 힘을 줘서 글씨를 또박또박 쓰고 책을 읽고 숙제를 하고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단지 선생님이 좋아서.

아침이면 혼자 우물가까지 걸어가 세수를 하고 목의 때를 문질러 씻고 뱀 나오는 숲에 더 이상 뛰어들지 않게 되었다. 단지 선생님이 좋아서.

원래 집에서는 뭣 하나 나 스스로 하는 게 없던 내가, 선생님이 좋아서, 선생님이 하라고 하셨다는 이유만으로 내 의지에 의해 뭔가를 한 것이다.

어쩌면 그건 내 유년시절의 전환점이었는지 모른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사랑도 맘껏 받을 수 없었을 때, 난 그 선생님 덕분에 애정의 결핍을 면했는지 모른다.


선생님은 기회가 날 때마다 내게 말씀하셨다. 아부지 돌아가셨다고 고개 숙이고 댕기지 말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어린 나는 그때 '용기'라는 말의 뜻을 몰랐다.

난 아무것도 잃어버린 게 없는데 선생님은 날 보실 때마다 잃어버렸다고 야단을 치시는 것 같이 들려서 불편했다.

그렇다고 내가 뭘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고 선생님께 여쭤보기엔 너무 수줍었다.

결국 난 어머니께 그 얘기를 했다. 난 주머니에 뭐든지 잘 넣고 댕기는데 선생님이 자꾸 뭘 잃어먹지 말라 그런다고.

어머닌 그 얘기 또한 두고두고 하시면서 웃으셨다. 아이꼬, 니겉은 애 사람 맹그시느라고 슨상님 애 마이 쓰신다야.

교사의 한 마디는 아이에게 이렇게 깊은 여운을 준다.


그 많던 아이를 그렇게 살뜰히 돌봐주셔서 일까, 동창 친구들도 모일 때마다 그 선생님 이야기를 한다.

그 뒤로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지만 1학년 선생님처럼 좋아한 기억이 없다.

그 뒤의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너무 무섭거나 혹은 너무 무관심하신 분들이었다는 느낌만 남아 있는 건,

내가 보냈던 1학년 선생님과의 시간들이 너무 달콤해서였을 것이다.


*


콩콩콩 달려와 휙 던져진 가방들. 그 안에 가방 주인의 열정이 가득하다.

얼마나 놀고 싶으면, 얼마나 노는 게 좋으면 저렇게 뜨거울까.

애고. 열정도 없이 그냥 뜨뜻 미지근하게 사는 나보다 느덜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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