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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Sep 04. 2015

당신이 이런 학교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면,

소규모 작은 학교 교육의 힘


전교생 40명의 작은 학교.

이 곳의 학교가 관리하는 학구는 도시보다 훨씬 넓다.

도시로 치면 동(洞) 몇 개는 족히 됨직한 넓이의 마을에 학교가 달랑 하나 있다.

마을은 넓어도 가구수는 적어 집들이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따로 모여서 노는 일이 쉽지 않다.

놀이터에만 모이면 쉽게 놀 수 있는 도시와 달리, 이 동네에서 친구와 놀려면 어른이 차로 태워다 줘야 한다.

걸어가기엔 친구네 집이 너무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골 학교들은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에라도 최대한 전교생이 같이 어울리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심심하면 전교생을 하나로 묶어 모일 기회를 만드는데 그중 하나가 선후배를 골고루 섞어 만든 모둠활동이다.

같은 동네 살거나 형제자매, 친인척인 아이들은 가급적 다른 모둠에 배치해서 학기 초에 발표한다.

이왕이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끼리 서로 좀 더 잘 알고 지내게 하려는 의도다.

1학년 아이들은 이 모둠 행사를 아주 좋아한다. 어느 모둠에 가든 형님들의 귀여움을 받기 때문이다.

규칙과 통제를 주 목적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담임과 달리, 형님들과는 같이 축구도 하고 나무에도 올라가는 사이라서

서로에게 열어 보이는 속마음의 크기부터 다르다. 어른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끈끈한 정서가 아이들끼리는 흐른다.


모둠만 만들어 놓으면 아이들이 스스로 어울리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학교는 모둠이 뭔가를 하게 교육과정을 고친다.

예를 들어, 개교기념일에 학교 홍보 동영상 만들기를 하는데 이를 모둠별 대회로 진행하는 식이다.

그러면 극본이나 촬영 같은 난도 높은 역할은 고학년이 맡고 1학년 아이들은 엑스트라 배우 역할이나 효과음을 맡는다.

자기가 화면에 비중 있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텝으로 특별히 기여하는 것도 없는데도

1학년 아이들은 형님들이 모이라는 시간보다 항상 일찍 가서 기다린다. 그 자체가 너무 좋은 것이다.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모둠이 할 만한 것들을 계획해서 상품(모둠이 모여서 먹을 간식)을 내 걸고 행사를 한다.

물총놀이, 눈싸움, 아지트 만들기, 우유갑으로 조형물 만들기, 긴 줄넘기 대회, 학교폭력 에방 현수막 만들기 등.

그렇게 하면 주로 고학년들이 계획을 하고 동생들 능력에 맞는 역할을 그 안에서 나눠준다.

1학년 아이들은 그 모둠 안에서 형님들이 자기들에게 뭔가를 시켜 준다는 그 자체에 이미 흥분한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온몸을 던져 열심히 한다. 그리고 행사가 끝나면 상품으로 받은 간식을 먹으며 즐거워한다.


그래서일까, 교실에서 내 말을 안 듣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도 모둠에 가면 좀 더 고분고분한 아이가 된다.

내가 싸움을 말릴 땐 끝내 자기주장을 안 굽히고 바락바락 대드는 아이도 선배들이 달래면 좀 더 순순히 받아들인다.

난 가끔 아이들에게 이걸 투정한다. 야, 너네는 형님들 말은 잘 들으면서 왜 선생님 말은 안 듣는데. 흥!

그러면 아이들은 내가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이 딱하다는 듯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타이른다.

으이구, 선생님은 혼낼까 봐 무섭지만 형님들은 안 그러니깐 그렇죠.


교사는 상황을 판단하여 대책을  명령하며 자기들 위에 군림하지만 형님들은 자기와 나란히 공존하기 때문에 같은 편이라는 것이다.

또 아이들은 자기들을 통제하고 구속하는 교사라는 공공의 적을 공유하고 있다. 같은 처지인 것이다.

그 안에서 아이들끼리는 어른들이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의리와 연대감을 서로 경험한다.

또래가 잘 못 할 땐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던 형님들도 1학년 아이를 가르칠 땐 친절하고 부드럽다.

화만 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 것이다. 이렇듯 선후배를 섞어 놓으면 서로에게 배운다.


가끔은 후배만 못한 선배 이야기도 한다.

행사 하나가 끝날  때마다 1학년 아이들은 내게 와서 그런 일들을 상세히 일러준다.

선생님, 나는 6학년 ㅇㅇ형아 말 잘 들었는데 4학년 ㅇㅇ형아는 그 형아한테 막 까분다요.

ㅇㅇ형아는 자기가 한 것도 없으면서 간식은 더 많이 먹는다요. 화나겠죠?

그러면 이 말은 들은 다른 1학년 아이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가 겪은 선배들의 만행을 이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본받고 싶은 멋진 형님과 피해야 할 나쁜 선배를 자기들끼리 나눈다.

이런 과정은 사람의 어떤 행동이 주변의 존경과 지지를 이끌어내는지 배우게 해 준다.


선배 때문에 우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또 다른 선배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려 애쓴다.

그런 날이면 아이들은 내게 몰려와서 어떤 오빠가 누구를 놀렸는데 또 어떤 언니가 와서 혼내 주더라고 자세히 이른다.

아이들의 그 말 속엔 자신이 선배들에게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있다는 안도감도 보인다.

선배들이 자기를 돌봐 준 것처럼 이 아이들은 내년에 들어올 1학년 후배들을 살피게 될 것이다.

후배는 선배들과의 좋은 경험을 많이 하게 해 줘야 한다. 결국 서로 알아가고 정들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선배들은 모둠 행사가 없는데도 일부러 1학년 교실을 지나갈 때마다 자기 모둠 아이를 챙겨주기도 한다.

운동장에서 싸워 울고 있으면 시비를 가려주고 급식실에서 만나면 많이 먹으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내가 멀리서 이를 보고 있다가 아까, 운동장에서 누가 운 거야?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내가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 나의 호기심을 밀어낸다. 아, 그거 ㅇㅇ누나가 해결해 줬어요. 선생님은 몰라도 돼요.

이런 일이 고마워서 일까, 아이들은 선배를 굳이 '형님들'이라고 부른다.



*


요즘은 모둠별 긴 줄넘기 대회 준비를 하는 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모둠 간 긴 줄넘기 연습이 한창이다.

형님들은 점심을 먹고 있는 1학년 아이들에게 빨리 먹고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속삭인다.

1학년 아이들은 이 순간을 몹시 기다리기 때문에 평소엔 늦게 먹으며 끝내 반찬들을 남겨 버리던 아이들이 시키지 않아도 잘 먹는다.

그러면서 자랑하듯 내게 말한다. 나 이거 다 먹을거다요. 형님들이 줄넘기하러 오래요.


1학년 아이들의 이런 열정과는 달리, 형님들 입장에선 1학년이 달가울 리 없다.

1학년 아이들은 돌아가는 줄 쳐다보기도 바빠서 실수를 자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선배들은 1학년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는다.

오히려 손을 잡고 같이 넘는 연습을 하기도 하고 따로 빼내서 연습을 시켜 준다.

그래서 1학년 아이들은 자기가 만날 틀렸는데, 오늘은 안 걸리고 열 번을 넘어서 5학년 언니가 사탕을 줬다고 자랑을 하기도 한다.

형님들은 그렇게 동생들에게 어른 역할을 한다. 그렇게 1학년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2학년 형님들, 3학년 형님들 이렇게 부른다. 그러면서 형님들한테 까불면 안 된다요 그런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 따라 선배를 호칭할 땐 형님들이라고 불러준다.

가끔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6학년 사랑이 언니가 이랬어요, 저랬어요 할 때, 내가 그 언니가 누군데? 모르는 척을 하면

아이들은 으이구 선생님은 그 언니도 몰라요 하며 타박을 한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난 책에서 읽은 서머힐이나 루소의 학교가 생각난다.

학교 안 구성원이 가르치고 감독하는 자와, 배우고  통제받는 자로 나뉘는 게 아니라,

서로 하나의 인간과 인간으로 만나 함께 성장해 나가는 그런 학교.





고학년 형님들이 양쪽에 서서 긴 줄을 돌릴 때마다 그 안의 동생들이 폴짝폴짝 뛴다.

줄이 착착 돌아갈 때마다 참새처럼 가벼운 아이들의 다리가 가볍게 허공을 난다.

맨 앞, 1학년 아이의 분홍 운동화가 사뿐사뿐 뛸 때마다 예쁜 꽃치마도 팔랑팔랑.


긴 줄을 잘 넘으려면 줄 돌아가는 걸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형님들은 그래서 가장 어린 1학년 아이를 가장 앞과 뒤쪽에 서게 해 준다.

그게 고마워서일까, 줄에 걸리지 않으려고 작은 주먹을 꼭 쥐고 입을 앙다물었다. 폴짝폴짝.

자기 다리에 줄이 걸려 넘어져도 울지 않고 재빨리 형님들이 불러주는 박자를 따라 외치며 뛴다. 폴짝폴짝.


상대에 대해 잘 모를 때, 사람들은 그 상대에게 더 매정할 것이다.

잘 모르니 상대가 나와 다른 점이 더 강조되어 보일 것이다. 

다른 점 중에서 특히 나보다 못난 점이 두드러져 보일 것이다.

죄 없는 아이들이 그 다름 때문에 의심과 배척과 공격의 대상이 된다.

자기와 종교가 다르다고 살던 터전에서 이웃을 쫓아내고도 신에게 용서를 구할 줄 모르고,

못 사는 이웃 동네 아이들이 잘 사는 자기 아이들과 노는 게 싫다고 두 동네 사이에 담을 쌓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피부색이 달라서, 심지어 고향이나 출신학교가 차별하고 무시하고 배척한다.

서방국가와 이슬람 세계가 그렇고 다문화 아이와 원주민 아이가 그렇고 부자와 가난한 계층이 그렇다.

잘 몰라서 그렇다. 막상 서로에 대해 알면 따뜻하게 감싸주고도 남을 선한 사람들이,

단지 잘 몰라서 그렇다.


아이들끼리 서로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되면 학교 폭력은 잘 생기지 않는다. 

상대에 대해 알면 측은지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상대가 미운 짓을 해도 잠시 화가 날 뿐, 끝까지 미워할 수가 없다.

내가 도시의 큰 학교에 근무할 때, 1학년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다가 친구와 시비가 생기면

교실에 있는 나를 찾아와 이르곤 했다. 담임 외엔 말할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학교 아이들은 어지간해선 교실의 나한테까지 오지 않는다.

자기 말을 들어 줄 선배들이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그냥 운동장에서 울고 있으면 형님들이 바로 와서 관심을 가져주니까.

사정을 들은 선배들은 아이를 달래고 아이들의 잘잘못을 따져 적당히 야단도 치고 관계를 조정해 준다.

그러면 또 아이들은 형님들의 말을 듣고 쉽게 푼다.




*

오래전부터 문명은 그런 학교를 꿈꿔왔지만,

자본과 노동이 집중되어야 융성해지는 도시의 생리 때문에 사람들은 몰리고 과밀학교가 생겨나고

학교는 인간과 인간 만나 서로 배우는  곳이라기보다, 사육하는 자와 사육당하는 자가 뒤엉킨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런 점에서,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규모라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학교를 잘 개 쪼개 더 작은 규모로 바꾸면 된다.  교육이 잘 되는 나라가 그런 것처럼.

학교에 학생 수가 적어서, 그래서 큰 학교 대비 경제적 운영 효율이 떨어지는 게 아까워서, 

시골의 작은 학교 문을 닫고 아이들을 큰 학교로 모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관료들아,

당신들이 이런 학교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면, 그리 판단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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