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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Oct 22. 2015

독립하라, 1학년

1학년 아이와 부모님을 상대로 독립심 기르기 프로젝트를 하는 이야기



 

평소보다 조금 일찍 온 한 아이가 아침에 교실에 들어 오자마자 가방을 열며 교실에 누가 있는지 살핀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 바로 잠바를 벗어젖히더니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검은색 도복과 빨간색 띠.

출정을 앞둔 기사처럼 뭔가를 서두르는 모습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늠름하고 민첩해 보인다.

아이는 도복 윗 도리를 익숙하게 입더니 이번엔 바지를 벗으려다 말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합기도 옷 입어도 되느냐고 묻는다.

니 옷이니 너에게 물어봐야지, 그러자 교실 구석으로 가더니 신을 훌렁 벗더니 재빨리 바지를 내린다.

너무 급해서였을까, 그만 바지를 따라 팬티가 무릎까지 따라 내려가고 만다. 순간 아이가 내 쪽을 보며 소리를 빽 지른다. 아이씨, 선생님, 보지 마요!

얼결에 나는 치한으로 몰린다. 아니, 뭐... 선생님이 일부러 볼라 그런 게 아니고... 뭐 니가 빤쓰를 훌렁 내리길래...

내가 우물우물 더듬거리는 사이에 아이는 바지까지 다 갈아입는다. 절대로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요. 알았죠?

도복을 다 입은 아이, 이번엔 빨간 띠를 묶을 차례. 그런데 매듭까지는 아직 혼자 잘 안 되나 보다.

길게 위로 끌어올려도 안 되고 반을 접어서 매도 안 되고. 아이의 표정이 초조해진다.

저 녀석이 나에게 묶어 달라고 하면 교육적으로 묶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갑작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 내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혼자 낑낑댄다.





나는 새 학년이 되면 아이들과 약속을 한다. 자기 책가방을 스스로 챙길 것, 옷을 혼자 꺼내 입을 것.

아이의 독립심을 키워보려는 계략이다. 이름하여 1학년 독립심 기르기 프로젝트. 

학부모에게도 이 점을 특히 부탁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챙기다 보면 빠뜨리기도 하겠지만, 공부에는 큰 상관이 없으니 도와주지 마시고 모르는 척하시라고..

책가방을 잘 못 챙겨 오면 담임이 적당히 야단을 치고 책임감을 추궁할 거라고..

그러면 아이는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챙기는 습관을 갖게 될 거라고..

아이들 스스로 실수를 해 가며 부족한 면을 찾고 고치는 과정이 필요하니 참아주시라고.

나의 당부는 내가 교사라서 하는 당부라기보다는 육아책에 늘 나오는 이야기니 특별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학부모의 반응은 대부분 호의적이다. 낳은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학년이 되도록 자라는 것이 대견하다.

이제 독립심까지 기르면 자존감은 저절로 생길 테고 자연스레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될 테니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어떤 담임은 아이가 제대로 안 챙겨 오면 엄마를 불러 닦달한다는데 이 담임은 먼저 나서서 아이들을 챙겨주지 말라고 하니 새롭다고 느낀다.

아직 난 아무것도 잘 한 게 없는데도 학기 초에 학부모에게 이런 안내장을 하나 보냈다는 이유로 괜찮은 담임이라는 평을 얻는다.

이 평이 1학년 내내 유지되지는 않는 게 문제지만.



한참 동안 시행착오를 하던 아이가 드디어 빨간 띠를 묶는다.

그런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다시 풀어 헤친다. 까닭을 물으니 한 쪽 끈이 너무 길어서 그렇단다.

그걸 다시 맞추기 위해 또 한참을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쉴 새 없이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한다.

다른 아이들이 와서 묶어 주겠다고 해도 필요 없다며 혼자 어떻게든 해 보더니 드디어 마음에 들게 묶어낸다.

기분이 좋은지 앙증맞은 손을 탁탁 털며 저 봐요, 다 했죠? 이러면서 시익 웃더니 밖으로 놀러 나간다.


어떤 아이는 저 아이처럼 학교에 가는 일이 즐거워 본인이 스스로 챙기는 걸 더 좋아한다.

잠자기 전에 내일 가방을 챙기고 입을 옷을 미리 꺼내 머리맡에 둔다.

숙제도 빠짐없이 하고 심지어 내일이 어서 와서 빨리 학교 가 친구들도 만나고 선생님도 보고 싶다고 한다.

아직 학교생활의 고단함을 모르는 나이, 1학년 중엔 이런 아이들이 정말 있다.

이런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부모는 복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모든 부모는 이런 부모이길 꿈꾸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또 다르다.

대부분의 아이는 그동안 익숙했던 엄마의 손길이 끊어지는 걸 참지 못한다.

늘 있어오던 보살핌을 빼앗긴 아이들은 그걸 다시 유지하려고 울며 떼를 쓴다.

엄마 입장에서는 이런 떼를 감당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예전의 습관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부모는 나에게 멋쩍어한다.. 담임의 의지와 다르게 자기가 일찍 포기했다고 생각해서 미안한 것이다.

대신, 자기 아이가 다른 집 아이들보다 조금 늦된 것 같으니 몇 년 더 지나고 나서 다시 해 보려고 한다고 미리 말한다.

아이가 힘들어하더라도 엄마가 조금만 더 버티면 아이가 더 빨리 독립적인 아이가 될 텐데.

너무 일찍 포기하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나는 이런 부모에게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방식은 부모가 결정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부모를 만나는 건 또 그 아이의 복일 것이다.


그런 부모의 아이들은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엄마의 잔소리에도 스스로 책가방을 챙기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버틴다.

버티다가 엄마에게 혼나는 것만 잘 넘기면 그다음엔 엄마가 챙겨 줄 거라는 걸 안다.

문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안 하다 보면 계속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나중에는 친구관계, 사회관계까지 영향을 준다.

이런 아이들은 자기 물건을 챙기지도 못하는 건 물론이고, 옷을 선택하고 입는 것조차 혼자 결정하지 못하고 뭐 입냐고 물어본다..

학교 가는 일이나 공부를 하는 일 자체를 엄마를 위해 자기가 해 주는 걸로 생각한다.

자기가 엄마를 위해, 엄마가 원하는 방식대로 자라주고 있으니 엄마가 그 정도는 챙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애매한 적응 시기가 학기 초엔 누구에게나 있다.

시간이 지나 갈수록 내가 학부모에게 당부드린 내용은 흐지부지된다.

지금껏 살뜰하게 챙겨주다가 1학년이 되면서 내버려 두어 보니 내 아이가 의외로 빈틈이 많은 아이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엄마 손길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망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엄마는 자기 아이가 망가져 보이는 걸 참지 못한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이 엄마 자신의 성미에 안 맞는 것이다.

그래서 잘 못 챙기고 빠뜨리는 일이 잦은 아이에게 잔소리하다 지쳐 본인이 나선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번에 딱 한 번만 해 주는 거라고 못을 박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들이 어떻게 하면 엄마가 그 뒤로도 계속해 주는지를 잘 안다.

아이들은 떼를 쓰거나 모르는척하거나 그냥 야단 몇 번 맞는 걸로 자기의 편리를 유지하려 한다.

이렇게 한두 번 지나다 보면 담임의 당부는 유야무야된다.

결국 밥그릇을 들고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먹여주거나 심지어 아이의 숙제를 대신해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잘 먹어야 아이가 크고 건강할 텐데 그걸 알면서 어찌 그냥 두냐는 것이다.

또 숙제를 안 하면 당장 선생의 평가를 낮게 받을 텐데 그걸 어찌 두고 보냐는 것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일 보다 키 크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부모가 과거에 비해 많아지는 듯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뭔가를 챙기기 시작하면서 독립심이 생겨나면,

자기가 더 이상 누군가의 힘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혼자의 힘으로 가방을 챙기고 숙제를 하는 일이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 보니 그리 힘들지도 앉을뿐더러 주변의 칭찬과 인정이 많아지니 하길 잘 했다고 느낀다.

자기는 언제까지나 아가인 줄 알았는데 이젠 바쁜 엄마를 돕는 수준까지 되고

내가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뭔가를 하는 일이 어렵지도 않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에 맞춰 이 시기 1학년 교육과정 바른생활 교과는 스스로 자기 역할을 다하는 어린이가 멋진 어린이라고 추켜올린다..

아이는 이렇게 학교에서나 집에서 자기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이야말로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자기 한 사람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도움을 얻는 경험을 하는데 이때 자기효능감과 자존감을 채운다.

자기는 더 이상 엄마의 삶을 지치게 만드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엄마를 도울 수 있는 강한 아이라는 걸 알게 되면,

엄마를 대신해서 동생을 돌보고 집안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기꺼이 함으로써 자기 역할을 찾는다. 이게 성장이다.

자존감을 갖춘 아이는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도 자주적으로 판단하려고 한다.

자연스럽게 자기주장도 생기기 마련인데 어떤 엄마는 그걸 반항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반항을 해 버릇하면 일찍 비뚤어질까 걱정되어 그걸 누르기도 한다.

하지만 한번 만들어진 자존감은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엄마라도 아이의 자존감을 억압할 수는 없다.

당연히 아이는 사사건건 엄마와 부딪힌다. 이럴 때 엄마는, 요즘 자기 아이가 말도 안 되는 걸로 고집을 피우고 엄마를 약 올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엄마 생각일 뿐, 드디어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줄 알게 된 아이의 입장에서도 속상한 일이다.

이럴 때 아이의 미숙함을 이해하면서 아이의 주장을 존중해주다 보면

아이는 엄마와의 힘겨루기 논쟁을 겪어가며 점점 세련된 방식으로 자기주장을 펴낼 것이다.

책가방을 스스로 챙기거나 내 방 정리는 잘 못 해도 아이 입장에서 옷 입는 건 그나마 스스로 하기 쉽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어떤 엄마들은 아이가 혼자 옷 입는 걸 막아선다. 엄마 마음에 안 들어서다.

엄마들과 달리 아이들은 보기 좋은 옷보다는 자기가 입고 싶은 걸 아무거나 골라 입는다.

아이들의 그 기준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친구가 입었거나 텔레비전에서 연예인이 입은 걸 봤거나.

그런데 엄마 눈엔 이런 아이들의 취향이 뭔가 이상해 보인다.

그렇게 입고 동네를 다니면 다른 엄마들이 흉볼지 모른다. 그래서 옷을 직접 골라준다.

아이가 가끔 이상한 코디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내야 패션 감각을 익히게 될 텐데

엄마 입장에서 그 과정을 기다리는 게 힘든 것이다.

자기 아이를 또 다른 객체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분신, 또는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아이의 옷차림에 대한 주의의 시선이 자기를 향한다고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아이를 엄마의 인형처럼 꾸미고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걸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아이가 뛰어놀기에 편한 옷보다는 화려하고 예뻐 보이는 옷을 입힌다.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으려 해도 엄마가 못 입게 한다고 내게 이른다.

그런 아이들의 엄마들 역시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자기 아이가 아직은 스스로 독립심을 키울 만큼 자라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 경우, 난 더 말하지 않는다. 난 권하는 사람일 뿐, 시키는 사람이 아니므로.

또한 아이 역시 조금 늦긴 하겠지만 엄마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선택할 날이 머잖아 올 것이므로.

기어 다니던 아이가 두 발로 설 때,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나는 시행착오가 필요하듯

아이가 독립적으로 변하는 일 또한 끝없는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엔 엄마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는 아이 수준이 엄마를 불안하게 하겠지만

그렇게 어색하고 서툰 과정을 지나야 아이는 세련미도 갖추고 자아도 바로 선 아이로 변해 갈 것이다.

이런 과정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 반복되는 실수를 통해 고쳐나가는 일, 이게 지루할 만큼 쌓이고 쌓여야 성장이 된다.

어린이가 성장하면서 겪는 발달의 변화는 이미 많은 학자들이 다양하게 정리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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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


1. 감각운동기(0-2세)

영아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감각과 운동능력을 이용하는 시기 

신체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도식을 발달시키고 물체를 기억에 표상하는 대상영속성의 개념을 획득

목표지향적 행동을 보임

2. 전조작기(2-7세)

달리 상징과 상상을 사용하는 표상능력이 증가함

아직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조작적 사고를 할 수 없음

상징적 사고, 자기중심성, 중심화, 비가역적사고, 물활론적사고, 실재론 등의 특성


3. 구체적조작기(7-11세)

성숙한 인지구조가 형성됨

논리적으로 사고 할 수 있고, 보존개념을 획득하여 서열화와 분류 능력을 가짐

가설적, 추상적, 언어적 문제를 다루는 데는 미숙함


4. 형식적조작기(11,12세 이후~)

구체적 대상 없이도 추상적으로 생각 할 수 있는 능력

연역적 추리의 사고가 가능함. 가역성, 추상적 사고가 발달되어 논리적 추론이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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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몇 살엔 뭐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몇 살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가 뭔가를 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시기를 잘 살펴서 모르고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 시기를 놓치면 그다음엔 그 단계의 발달을 이루는데 시간이 오히려 더 많이 걸린다.
학자들은, 아이가 만 여섯 살이면 개성과 사회성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여섯 살까지 학습으로가 아닌, 일상에서 다양한 성격의 인간 군상과 부대끼며 체득하게 하라는 것,

기초가 잘 되어야 있어야 구체적 조작기(7세-11세)의 인지, 인성발달을 위한 교육과정을 잘 소화할 수 있다는 것,

그래야 학교생활을 자기가 주도적으로 즐기며 성장할 수 있는데 이것이 사회성이라고 말한다.


개성은 허용적인 분위기에서 꽃피워진다. 아이가 자신의 속마음을 맘껏 들여다볼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문제없이 구체적 조작기로 진입할 수 있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이 기준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중간에 포기하는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아직 너무 어려서 걱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있어보면, 그래서 학년이 올라가면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들은 자기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저절로 독립적인 아이로 변할 거라는 환상을 지니고 있지만

아이는, 사람의 변화는 그렇게 단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아이를 성장시키는 건 적당한 스트레스와 그것을 소화해 낼 시간뿐.

자기 아이가 남의 아이들 보다 야무진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면서도

지금 당장 담임의 당부대로 시행하자니 엄두가 안 난다고 말하는 두려움이 결국 자기 아이의 성장을 늦출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관성처럼 챙겨 줘 온 걸 당장 멈추기에는 아직 아이가 어린데

아이 또한 스스로 가방 챙기는 걸 힘들어하니 마음이 약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차피 어른이 되면 고생하며 철들 텐데 차라리 지금은 엄마가 더 살뜰히 챙겨주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는 동안 자기 아이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 또한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이 문제다.

자존감을 일찍 체득한 아이는 그렇지 못한 아이보다 마음의 성장 속도가 빠르고

처음엔 아이가 하기 싫어하겠지만 하다 보면 익숙해질 테니 포기하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때 역시, 난 더 말하지 않는다.

나로 인해 부모와 아이가 모두 혼란스러워하는 일은, 결국 아이의 성장에 좋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아이에게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다음엔 네 엄마의 마음에 더 잘 들게 해 보자고.

그러려면 엄마가 안 보셔도 너 스스로 평소에 연습해야 한다고.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거라고.


이런저런 사정을 이유로 책가방과 옷 스스로 챙기기를 이어가는 아이들의 숫자는 줄어들지만

그래도 스스로 옷을 챙겨 입고 오는 아이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1학년 아이들이 입는 옷은 엄마 손이 안 가면 금세 티가 나게 마련이다.

어려서 일까, 아이들은 대부분 색깔의 어울림에 무관심하다.

또 자기가 좋아하는 한 가지 옷을 계속 입으려고 한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는 비 오는 날에도 운동복에 축구화를 신고 오기도 한다.

그 아이는 축구에 대한 열정을 그렇게 드러내며 자기 자신에게 각인시킨다.

땀이 나서 축구화가 더러워지거나 냄새가 나는 건, 아이에겐 대수롭지 않다.

그렇게 축구는 그 아이의 삶의 일부가 된다. 엄마가 아이의 냄새나는 축구화를 감수하고 참아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땀내 나는 축구화를 신겨 보내면 담임이 엄마를 흉보지 않을까, 다른 엄마들이 비웃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참아줬기 때문이다.

또, 저렇게 평상복에 목걸이 가방을 걸고 태권도 띠까지 묶고 학교에 오는 아이도 있다. 

아이의 엄마로서는 많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입장은 다르다.

엄마의 견제와 잔소리를 묵묵히 받아 가면서도 아이는 그렇게 좋아하는 태권도 띠를 묶고 싶어 한다.

그렇게 아이는 자신이 일단 경험해 보고 싶은 건 해 본 다음, 마음에 들면 계속할지를 결정해간다.

어떤 땐 한 가지를 너무 오래 계속하기도 하고 어떤 땐 바로 싫증을 내기도 한다.

초등학교 과정은 이 지루한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이다. 그래가며 아이는 자신의 색깔을 조금씩 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자신의 모습에 어울리는 야무진 표정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성장한 것이다.

이 아이를 이렇게 야무진 아이로 만드는 비결이, 엄마가 태권도 띠를 허용해 주는 일 한 가지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포기한 엄마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집 아이는 원래 똑똑하게 태어났으니 그렇겠죠.

하지만 내 눈엔, 아이가 태권도 띠를 묶고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는 말을 가로막지 않고, 그래? 진짜 멋있겠는걸!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좋겠구나라고 호들갑까지 떨며 격려해주는 일로 아이와 신뢰를 이어갈 줄 아는 엄마의 철학이 먼저 보인다.


아이의 독립심을 위한 계략이 진행되면서 엄마들 역시 자기 아이가 지금까지 자기가 알던 그런 아이가 아닌 것에 놀란다.

자기 아이를 아동복 광고 모델처럼 모범생 패션으로 입혀 키워도 말이 없길래 원래 그런 걸 좋아하는 아이인가 보다 했는데,

네가 알아서 골라 입으라고 했더니 저렇게 이해 안 가는 패션을 하고 다닐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이로서는 비로소 엄마의 선택에서 벗어나 자기의 색깔을 찾은 것뿐인데 어떤 엄마들은 이 점을 불편하게 여긴다.

아이가 스스로 옷을 고르다 보면 외모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공부와 멀어지고 결국 부모 말을 거역하는 아이가 될지도 몰라 불안하다고 한다.

자기 아이도 그렇게 되지는 않을까, 아이들을 기르면서 엄마는 기대와 불안 사이에서 홀로 끝없이 방황한다.

모성애에는 그런 것들을 진저리 치지 않고 견뎌 나가게 하는 힘이 있나 보다.

아이가 자신의 흥미를 스스로 빨리 파악해 내면 미래의 진로도 그쪽으로 일찍 맞추게 되면서

사춘기의 불필요한 방황을 겪어내지 않고도 다른 아이들 보다 먼저 자기 삶에 집중할 가능성이 더 높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엄마가 알아서 책과 옷을 골라주고 공부 방법까지 골라주다 보니 아이의 흥미를 파악할 시간을 놓친다. 
아이들은 자기에게 시키는 대로 해야 엄마가 기뻐하니 자기 생각을 위장하고 싫어도 따른다.

그게 반복되면서 엄마는 아이의 성향에 대해 스스로 착각하는 일이 생기는데 그 차이가 결국 아이에게는 상처로 쌓여간다.

이걸 아이와 부모가 모두 깨닫게 되는 성년기까지, 부모와 자식은 각자 상대를 속이며 죄책감의 가면을 쓴 채 연극을 하며 산다.

선생 노릇으로 먹고사는 나에게, 그 연극은 언제나 셰익스피어의 그것보다 더한 비극이다.

내가 깐깐한 담임이 되는 건 학부모에게도 불편한 일이다. 

학년초에 호기롭게 시작한 독립심 프로젝트는 대부분 이렇게 사위어 간다. 그만큼 자식 기르는 일이 힘들다.

하지만 그중에도 잘 자라는 아이들을 봐 오는 나는 엄마들과 아이들을 상대로 끝없이 설득을 한다.

어떤 엄마는 늦게라도 아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 미안해한다.

아이들 또한 자신의 변화를 야단치지 않고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봐 준 엄마가 고마워서 더 빨리 철이 들려고 애쓴다.

이런 아이들은 스스로 뭔가를 챙기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그걸 즐길 줄도 알게 된다.

스스로 입고 싶은 걸 입다 보니 저절로 어울리는 디자인에 대한 감각도 늘어 좋다고 말한다.

나는 모르는 척 와, 멋진 패션이네. 한 마디 해 준다.



이 영화에는 엄마에게 버림받은 어린 자매가 나온다.

그들은 엄마와 분리된 환경에서 당황하고 외로워하지만 끝내 나름대로 성장의 길을 찾는다.

자신에게 호의적이던 환경(엄마가 있는)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밀려났는데도,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유지하게 하는 힘은 영화에 나오는 어른인 엄마도, 고모도, 할머니도 아니다.

아이 스스로 주변의 타인들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어서다.

어른들은 그런 재주를 눈치라고 쉽게 부르지만, 아이에게 눈치는 자존심의 다른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눈치껏 살아갈 수 있으려면, 징징대는 아이여선 안될 것이다.

그게 아이가 독립심을 갖춰야 하는 까닭이다.

나는 아이들과 이 영화를 보고, 사람이 점점 어른으로 성장해 나간다는 건 무엇일지 얘기해 보았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1학년 아이들도 각자 저마다의 불안과 자신감으로 자신의 성장을 얘기했다.

그중 어떤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는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생각한다.

엄마가 항상 자기 옆에 있을 거고 뭐든 필요한 건 해줄 테니 어른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무진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가 생일파티나 소풍처럼 즐거울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서 맞이하고 싶다고 말한다.

어서 어른이 되어 선생님이나 축구 선수, 간호사 언니, 태권도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제야 나는 아, 저 아이의 엄마는 저럴 걸 미리 아시고 저렇게 키우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아이의 좋은 변화에 감동한 소수의 엄마들은 책가방 챙기기, 스스로 옷 입기 말고 다른 것도 알려달라고 했다.

난 그분들에게 자기 실내화 빨기, 방 정리하기, 자기 밥그릇, 수저 설거지하기,

읽을 책 스스로 고르기, 생활계획표 만들어 지키기 같은 부수적인 기준을 안내해 드린다. 이 역시 육아 책에 나오는 것들이다.

그분들 또한 스스로 자기 아이들의 성장을 도와 갈 것이다. 그것도 복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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