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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Oct 23. 2015

아이들이 글씨를 읽을 줄 안다는 것의 의미

한글만 떼 주면 책은 저절로 읽을거라는 환상에 대하여



1학년 아이들이 한글을 거의 다 알아가고 있다. 이제 못 읽는 글씨는 별로 없다.

ㄺ, ㄵ같은 겹받침이 있는 글자는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하지만, 대충 비슷하게 읽어낸다.

한글을 거의 모르고 입한 했던 아이도 이제 친구들을 거의 따라왔다.

읽을 수 있게 되면 쓰는 것도 곧 따라간다. 굳이 어린 나이에 한글을 무리해서 일찍 뗄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아이들은 일부러 시키지 않아도 글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시기가 있다.

자기 장난감이나 유치원 학용품에 적힌 글자(자기 이름)를 궁금해 하고 간판이나 텔레비젼에 나오는 글씨가 뭔지 물어온다.

그때가 한글을 가르치기에 적당한 시기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리다가 아이가 끝내 글자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될까봐 걱정이 돼서 한글 교육을 서두르는 부모들도 있다.

이런 걱정은 아이들의 특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어느 정도의 지능만 되면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 한글을 깨친다. 한글이 그만큼 쉬운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내게 묻는다. 언제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치면 되겠느냐고.

아이의 주변에는 늘 글자가 있게 마련이니 글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시기가 곧 올거라고,

그때를 기다렸다 가르치면 아이도 마침 궁금하던 차에 배우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학습 스트레스가 적을거라고 답을해 준다.

그러나 내 말을 믿는 부모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자기가 낳은 아이가 태어나 몇 해 커보지도 못하고 바로 공부를 시작해야한다는 걸 아는 엄마들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많은 엄마들이 아이가 어릴 때부터 뭔가를 학습시키기 시작한다.

이렇게 서두르는 부모들이 호소하는 불안을 대부분 한 가지다. 다른 집 아이들은 벌써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이마다 키가 다르고 식성이 다르듯 글자를 배우고 싶어 하는 시기도 다르다는 건 육아책에도 나오지만,

유난히 글씨만큼은 빨리 배워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부모가 많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면엔 조기 교육 바람과 이걸 등에 업어야 돈을 버는 교육시장이 있다.

그들은 아기가 걸음을 떼기도 전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면 영원히 뒤쳐진다는 공포를 조장한다.

부모들을 불안에 가두고 당장 뭐라도 시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상품을 구입하면 창의성, 논리력은 물론 자존감, 독립심 같은 모든 걸 깨우칠 수 있다고 선전한다.

부모들은 이런 교육심리학 용어에 약하다. 


그렇게 일찍 한글공부를 시작하기 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엄마와 정서적 교류를 더 하는게 좋다고 들으면서도

대부분의 부모들이 한글공부에 매달린 건 효과가 금방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글자를 읽기 시작하면 부모들은 환호한다. 한글이 그만큼 쉬운 글자라고 생가가하기보다 자기 아이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는 너무 일찍 시작하면 아이가 글자에 대한 거부감, 나아가 뭔가를 배운다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아이가 글자를 읽게 하는 것의 본질은 글자를 통해 더 많은 지식과 세상을 스스로 흡수하게 하려는데 있는데

어떤 아이는 너무 일찍 한글 공부를 하다보니 글자가 자기가 소화하기에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피하려한다.

자기가 책을 잘 읽으면 더 읽으라고 할까봐 일부러 글자를 모르는 척 하기도 한다.

아이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인 것이다.



어느덧 10월. 이 시기의 1학년은 글자를 일찍 배운 아이와 늦게 배운 아이의 실력 차이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들 실력의 변수는 글을 얼마나 일찍 뗐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책과 가까이 지내는 환경이냐다.

글씨를 몰라도 평소 주변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은 아이라면, 그 아이는 글씨를 알게 되자마자 책의 세계에 급격히 빠져든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르고 강력하기 때문에 글씨는 알아도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아이들을 금세 따라잡는다.


아이들은 글씨를 알아가면서 자기가 글씨를 안다는 걸 드러내고 싶어한다.

그래서 내게 끝없이 와서 글씨를 아는 척 한다.

내 책상에 있는 물건에 쓰여진 글씨를 읽기도 하고 동영상에 나오는 자막을 서로 먼저 읽으려고 소리를 빽빽 지르기도 한다.

또래들 보다 글씨를 좀 더 먼저 익힌 아이는 이럴 때 단연 주목받는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글씨를 읽을 새도 없이 먼저 읽어버린다.

다른 아이들도 그 아이를 이겨 보려고 열심히 핏대를 올린다.

아기 새가 먹이를 하나라도 더 받아 먹으려고 온 몸으로 어미새를 향해 짹짹거리듯 1학년 아이들 또한 그렇게 자란다.


1학년 아이들은 책을 읽을 때 주로 소리를 내어 읽는다.

소리내지 않는 묵독을 하고 싶지만, 아직 글씨를 읽는게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여러 글자로 이루어진 낱말은 소리를 내서 읽기는 읽어도 당장 의미를 알지는 못한다.

이럴 땐 그 낱말을 여러 번 소리내어 읽다가 끝내는 나에게 그 뜻을 물어 본다.

나에게 뜻을 듣고 나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 그 말 원래 자기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자기가 알고 있는 의미와 활자로 표현된 낱말 사이의 간극이 글자를 익히는 초기 단계에서는 제법 크다.

그렇다보니 먼저 소리를 내어 읽고나서 자기가 읽은 소리를 의미로 다시 해석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읽다가 멈추고, 또 읽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그걸 옆에서 보면 더듬더듬 읽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가 책을 읽으면 읽어 갈수록 더듬거림은 줄어든다.

자기가 한 번 소리로 읽은 낱 말은 그 다음부터는 자동으로 의미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글자에 대한 의미 해석이 능숙해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책을 접한 아이는 책을 읽는 속도가 빠르다.

글자의 의미 해석이 빨라지면 더이상 소리로 읽을 필요가 없어진다. 비로소 묵독의 단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묵독은 소리를 내는 단계에 비해 속도가 빠르다.

아이가 입으로 읽는 속도는 평소 말하는 속도와 비슷한데 묵독은 눈으로 훑고 지나가면 바로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1학년 아이들 사이에서 묵독을 하는 아이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자기도 묵독을 하려고 애쓴다. 어떤 아이는 일부러 묵독을 할 수 있는 척을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아이는 일부러 글씨가 적은 책을 고른다. 그래야 묵독을 하는 아이보다 책을 더 빨리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의 타고난 승부욕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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