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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Nov 18. 2015

친구들에게 받는 칭찬의 힘

부모, 교삭 아닌 친구들에게 받는 칭찬이 진짜 칭찬이다.


한 아이가 그림일기에 그린 그림.

1학년의 그림이라고 보기 어려울만큼 비례의 구성이나 채색이 잘 되어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그림일기를 아침에 학교에 와서 그린다.

1학년 아이들은 아직 글씨가 익숙하지 않아 글씨를 쓰지 않고 대신 자기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린다.

색을 칠하거나 말거나 딱히 조건도 없고, 그려야 할 것, 그리면 안 되는 걸 정해 놓지도 않았기 때문에 

보통은 몇 분 안에 후다닥 그리고 노는데, 한 아이가 유독 시간이 걸린다.

다른 아이가 빨리 대충 하고 와서 놀자고 하는데도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면서 열심히 그린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아이에게 가 보니 어벤져스를 아주 정성들여 그리고 있다.

나는 와, 진짜 잘 그렸다, 하며 제법 큰 목소리로 놀라는 척을 했다. 그 말에 저 쪽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림을 본 아이들도 실제 그림이랑 똑같다며 저마다 감탄을 했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그렸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으쓱한 표정으로 자기가 사용한 색연필을 꺼내 보여 주었다.





그 일로 친구들은 그 아이를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인정한 듯 했다.

어떤 아이가 그 아이에게 하얀 도화지를 주면서 자기도 그림을 하나 그려 달라고 부탁 했다.

그 아이는 그 부탁이 싫지 않은 지, 선뜻 그려 주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쉬는 시간 내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 좋아하는 놀이시간을 포기한 채였다.

그림을 부탁한 아이가 이정도면 됐으니 그냥 빨리 달라고 해도 아이는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외치며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칠했다.

그림을 받은 아이는 그 그림이 접히지 않게 잘 펴서 책 사이에 끼운 다음, 가방에 넣었다.

평소 책이나 학용품을 대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조심스러움이었다.


어떤 아이는 이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걸 처음부터 지켜보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그 아이처럼 그렸다.

하다가 잘 안 되면 다시 그 아이가 그리는 걸 유심히 살피다가 다시 자기 자리로 가서 그렸다.

똑같이 그리려고 애를 썼는데도 잘 안 되면 다시 가서 어떻게 그리는거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자기가 그리는 방식을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몇 번을 그리다 보면 원래 아이의 그림과 엇비슷하게 닮아 보였다.


그림을 친구가 자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그리는 단계가 될 즈음, 아이는 또 새로운 그림을 그려 보였다.

그러면 나는 또 놀라는 척, 감탄을 했고 다른 아이들이 또다시 몰려들었다.

몰려든 아이 중 어떤 아이는 또 그려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는 따라 그렸다.

아이들이 자기 그림에 관심을 가져 주면 줄수록 아이는 신이 나서 자기가 아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평소보다 더 자상하고 상세한 설명이었다.

난 교무실에서 하얀 인쇄용지를 한 묶음을 가져와 책상 위에 놓아 두었다. 그림이 그리고 싶을 때마다 아이들은 그걸 한 장 씩 가져갔다.






부모나 교사의 칭찬보다 보다 친구들의 칭찬이 아이들은 더 흥분한다.

부모들의 칭찬과는 달리, 친구들의 칭찬은 뭔가 그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 추게 한다고 배운 요즘의 어른들은 예전의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을 자주 칭찬한다.

각종 책에서, 방송에서는 한결같이 칭찬을 하라고 부추긴다.

그래서 어른들은 사소한 성취에도 칭찬을 쏟아 붓는다. 어떤 땐 일부러 만들어서 칭찬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칭찬들이 부쩍 흔하다는 것, 그리고 제법 부풀려져 있는 걸 안다.

그리고 그 판에 박히고 값싼 칭찬 뒤에 도사리고 있는 어른들의 요구사항도 잘 안다.

그런데 친구들의 칭찬은 그렇지 않다. 인색하고 또 인색하다. 그런데 나왔으니 귀한 것이다.

칭찬의 목적은 현재의 성취를 인정함과 동시에 다음의 성취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애쓰게 하는데 있다.

그래서 칭찬은 반드시 격려와 신뢰라는 연결 고리와 함께 다녀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칭찬은 아이 스스로 만족할만한 결과라고 생각했을 때에 맞춰 쏟아져나와 줘야 빛이 난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그런 상황은 그리 많지 않다.

아이들의 삶은 대체로 무미건조하거나 반복의 삶이다.

아이 스스로 칭찬받을 만한 일은 일상에서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 본인이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한 게 아니어서 기분이 별로 안 좋은데도 남발되는 칭찬을 듣고 나면 어리둥절해한다.

이런 경우엔 칭찬 대신 격려를 해 줘야 하는데(고학년 아이들은 차라리 칭찬을 하지 말아달라고 한다)

어른들은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도 무조건 잘 했다고 부추기니 황당해 한다.

그래서 어떤 아이는 어른들의 칭찬에 짜증을 낸다. 칭찬을 가장한 어른들의 호들갑이 싫은 것이다.



어른이 칭찬을 한다는 게 아이의 성취에 대한 어른의 진심어린 감동과 자랑스러움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 속엔 그 일을 더 잘할 때까지 열심히 하라는 요구가 들어있다는 걸 어린 아이들은 어떻게 알까.

칭찬에 영혼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받아쓰기 열 문제 중 일곱 개를 맞췄다. 엄마 입장에서 70점은 칭찬을 하기에 애매한 점수다.

그러나 대부분의 엄마들은 잘 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묻는다. 다른 친구들은 몇 개 맞았니.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견주어 어느정도 수준인지 알고 싶은 것이다.

이럴 때 선뜻 다른 아이의 점수를 엄마에게 말해주는 아이와 그냥 짜증스럽게 반응하는 아이가 받아들이는 칭찬의 의미는 다르다.

자기 아이가 70점을 받은 것에 대해 왜 더 잘 하지 못했느냐고 야단치지 않고 칭찬을 했으니

엄마는 자기 역할을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꼭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아직 상대방 대화의 깊은 의미 파악이 어려운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칫, 자기는 70점을 맞을 수준인 걸 엄마가 인정한 것처럼 들린다.

스스로 아이와 친구처럼 지낸다고 믿는 엄마, 아이에게 그 어떤 공부 강요도 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말하는 엄마를 둔 아이일수록 의외로 이런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는 학교에 와서 담임인 내게 이렇게 말한다. 난 받아쓰기 백 점 안 맞아도 된다요. 우리 엄마가 괜찮대요.

그러면서 더 나은 점수를 받아 엄마에게 칭찬을 받으려는 의지를 스스로 쉽게 포기한다.

정작 엄마야 말로 70점을 받은 아이에게 속에서 불이 나는 걸 겨우 참으며 야단 대신 칭찬을 한 건데, 뭐가 문제였을까.

결국 엄마는 아이의 기분을 파악하지 않은 것이다. 휴..., 칭찬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


어떤 아이는 70점을 자랑스러워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는 그 점수를 부끄러워한다.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는 70점이 예전엔 쉽게 받지 못한 점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점수를 부끄러워하는 아이는 그 반대일 것이다.

이럴 때는 칭찬을 할 게 아니라 아이가 받아쓰기가 힘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잘 하고 싶어하는지를 파악하는게 먼저일 것이다.

왜 받아쓰기를 어려워했는지를 분석하고 그것에 대처함으로써 다음엔 더 잘 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야하는데 칭찬만 받고 끝나버린 것이다.

아이는 자기가 받아쓰기를 잘 못 하게 된 사정을 엄마가 알아주고 자기가 다시 도전하는 걸 함께 해 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런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자기가 기대한 것 보다 잘 못한 상황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잘 안갖게 된다. 어차피 칭찬을 받게 될 것이므로. 그 칭찬에 영혼이 있든 없든.

엄마의 속이 상하든말든 자기에겐 칭찬만 내어 놓을 것이므로. 그리고 서서히 그 상황에 적응해간다.


아이 입장에서 가장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 친구들이 칭찬이다. 어지간해선 듣기 힘든 칭찬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엄마의 칭찬은 가장 값싸게 받아들인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하면 나는 아이들에게 그 작품을 들려 보내면서 부모님께 보여드리라고 말하고 부모님들께는 보시고 칭찬을 해주십사 문자를 보낸다.

다음 날, 엄마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어떻더냐고 물으면 어떤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상하게 엄마 칭찬은 많이 들어도 기분이 많이 좋진 않고, 한 개도 안 들어도 기분이 많이 안 나쁘다요.

또 어떤 아이는 말한다. 지난 번 내가 색칠을 죽어라 했다요. 근데 그때 엄마는 칭찬을 안 했단 말이에요. 근데 어제는 색칠을 안 했다요? 근데 칭찬을 했단 말이에요. 이상하잖아요.

칭찬을 남발하다 보니 기준이 엉키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런 걸 예민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어느정도까지는 대충해도 엄마가 칭찬을 할 거라는 걸 알 만큼 영악하다.

엄마들은 칭찬을 하느라고 했을텐데, 아이들은 엄마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인다.

엄마 입장에서는 춤을 추라고 고래를 칭찬 했는데 고래는 춤을 추는 척만 해도 된다. 결국 칭찬의 힘이 희석되는 것이다.


칭찬의 진지함이나 무게감을 따진다면, 아이들의 칭찬과 엄마의 칭찬 중간 쯤에 담임의 칭찬이 있을 것이다.

담임은 엄마들처럼 칭찬을 남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래 친구들처럼 인색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들은 담임인 나에게 항상 부탁을 해 온다. 자기 아이 칭찬을 많이 좀 해 달라고.

그러면서 자기도 칭찬을 열심히 하는데 왜 자기 아이는 책의 내용처럼 춤추는 고래가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 끼리는 어지간해서는 칭찬을 하지 않는다. 서로 경쟁관계이기 때문이다.

칭찬이라는 게 상대의 장점을 인정 해야 가능한 건데 1학년 아이들에겐 이게 쉽지 않다.

친구의 장점을 인정하려면 자기 자신과 비교했을 때 친구가 비교우위에 있다는 걸 마음 속에서도 솔직히 느껴야 한다.

비교우위를 인정한다는 건 자기가 친구보다 열등하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기 중심적인 아이들은 이걸 매우 힘들어 한다.

지금까지 자기가 제일 똑똑하고 착한 아이인 줄 알고 늘 그런 칭찬을 듣고 자라왔는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친구가 자기보다 더 뛰어나서 칭찬을 받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혼란스럽다.

지금까지 자라온 그대로, 자기만 칭찬 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내게 와서 끝없이 자랑을 한다. 어제 닭갈비 먹었다요. 맛있었겠죠?


아이들은 쉽게 칭찬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열등감도 집요하게 감춘다.

친구의 그네를 뺏어놓고도 끝까지 발뺌을 하고, 자기기 시비를 걸어 싸움이 나도 상대가 먼저 했다고 우긴다.

주변의 친구들이 합세해서 니가 그랬잖어라고 따져도 얼굴이 빨갛도록 엉엉 울 지언정,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샘이 많은 아이들은 더하다. 그래서 끝내 친구를 칭찬하지 않는다. 칭찬하는 것이 배 아픈 것이다.

그래서 말끝마다 자기 자랑을 함과 동시에 친구를 흉보다 못해 일이 생길 때마다 담임에게 와서 친구들을 이른다.

다른 친구가 자기보다 선생님에게 더 칭찬 받는 걸 참지 못하는 것이다. 칭찬을 독으로 할 때, 아이들은 이렇게 된다.


*

나의 어머니는 일찍 아버지 없이 혼자 농사를 지어 나와 형제들을 키우셨다.

어머닌 언제나 밭에 계셨다. 내 생일도 기억하지 못하셨을만큼 정신없이 밭일을 하셨다.

어머니의 칭찬도 별로 들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라도 왜 어머닌 나를 칭찬 안 하실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특별히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이 없어서이기도 했겠지만, 어머닌 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씀을 하시는 분이 아니셨다.

내가 글짓기 상을 받았다고 하면 그게 뭐냐고만 물으셨다. 무슨 글을 짓는데 상을 준다니 그러셨다.

그렇게 말해도 난 기분이 나쁘거나 서운하지 않았다. 어머니 말을 들어보니 그게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아서 학교에서 상 주는 걸 못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렇게 칭찬에 인색한 어머니도 틈만 나면 칭찬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가 나가시던 교회의 전도사님이었다. 어머니에 따르면 그 분은 '한 번 마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는 분'이었다.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에게 전도사님은 매우 인상적이었나보다.

어머닌 틈만 나면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전도사님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 말 대로라면 이 세상 그 어떤 위대한 사람보다 훌륭한 분이었다.

난 어려서 그 전도사님이 도대체 뭘 어떻게 하시길래 그렇게 어머니의 칭찬을 받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가끔 교회 앞을 지나갈 때마다 그 전도사님이 보이나 교회 마당과 사택을 훔쳐보곤 했다. 관심은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어머니가 그토록 칭찬하던 전도사님을 보게 되었다.

지게를 지고 산에서 내려오시는데 그 지게엔 소에게 줄 꼴이 가득 얹혀 있었다.

그 분이 어떤 색깔의 바지를 입으셨는제는 기억하지 않지만 하얀색 셔츠에 안경 낀 모습은 선명히 기억난다.

잠시 얼이 빠져 그 분을 쳐다보고 멍 하니 서 있는 내 곁을 터벅터벅 지나가시면서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깊고 단단한 목소리였다. 난 그 순간, 어머니가 그 분을 왜 칭찬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어린 내가 보기에 전도사님은 동네 아저씨들과는 달라 보였다. 안경, 하얀 셔츠, 뭔가 우아하고 매끄러운 목소리. 점잖음에서 나오는 품격.


그 뒤로, 어머니가 전도사님을 칭찬할 때마다 난 그 분의 안경과 하얀 셔츠를 떠올렸다.

그리고 꼴을 베러 가면 나도 그 분처럼 지게 소쿠리를 가득 채워 오곤 했다.

그 전엔 꼴을 벨 때, 집 주변에서 대충 베어 지게를 절반도 안 채워가곤 했지만 전도사님을 본 뒤로는 달라졌다.

산에까지 올라가서 이왕이면 더 좋은 풀을 베려고 일부러 애썼다.

그리고 목소리도 전도사님처럼 일부러 부드럽게 해 보려고 애 썼다.

동네 어른들의 거친 말에 비해 어딘가 모르게 우아한 말을 해 보려고 전도사님 목소리에 특히 귀를 기울여 들었다.

그 덕분에 그 무렵, 나는 교회 여름성경학교의 성경퀴즈에서 상을 받게 되었다.

어머닌 나를 무척 칭찬해 주셨다. 그게 처음으로 들은 칭찬이지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난 어머니에게 칭찬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뒤로 어머닌 몇 번 더 전도사님의 말을 빌어 나를 칭찬하곤 하셨다.

전도사님이 어머니에게 내 이야기를 하신 모양이었다.

난 전도사님께 더 잘 보이려고 인사도 잘 하고 설교도 잘 듣곤 했다.


어쩌면 난 그 무렵 전도사님에게 춤추는 고래였는지 모른다.

그 기억 때문일까, 난 아이들에게 칭찬할 일이 생기면 그걸 아이들에게 바로 하기보다 부모님께 알린다.

- ㅇㅇ이가 오늘 점심을 잘 먹었어요. ㅇㅇ이는 평소 오이를 싫어했는데 오늘은 코를 안 막고 먹었답니다. 칭찬해 주시라고 알려드립니다.

- 오늘 국어 시간에 제법 어려운 책을 읽어 줬는데 ㅇㅇ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이해가 빠르더군요.

집에서는 철 없고 어린 것 같은데 학교에서 이런 칭찬을 보내오면 부모님들은 뿌듯해한다. 그리고 나의 입을 대신 해서 아이를 칭찬해 준다.

자기는 뭘 잘 했는지 잘 모르거나 이미 까먹었는데 선생님이 자기를 칭찬해주라 그러시더라는 말을 들은 아이는 다음 날, 내게 와서 묻는다.

어제 제가 오이 먹은거 보고 선생님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우리 엄마한테 칭찬해 주라고 문자 보냈어요?


*

그 아이는 지금까지 여러 친구들에게 다양한 그림을 그려 주고 있다.

어벤져스에서 시작한 그림이 스폰지밥을 거쳐 어린이용 만화 주인공들을 망라하고 있다.

냉정하고 치열한 1학년 교실에서 귀한 칭찬을 친구들로부터 들었으니 뭐든 못 해 줄까.

단 한 번 들은 칭찬이 아이로 하여금 평생을 들뜨게 할 수도 있을만큼 약효가 강하다.

자기가 열심히 뭔가를 해 내면, 그걸 친구들이 좋아해준다는 걸, 

자기가 앞서서 한 일이 금세 친구들에게 유행이 되고 따라하고 싶은 일이 된다는 경험을 한 아이는

앞으로 어떤 걸 어떻게 해야 또다시 친구들의 인기를 이어갈 수 있는지 안다.

지금은 그림으로 또래집단을 선도해 나가지만 어른이 되면 회사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걸 넘어 이 나라를 먹여살릴 지도 모른다.

지금 저 아이의 그림 실력은 친구들이 키워주고 있는 셈이다.

인색하지만 자발적인 인정이 백마디의 칭찬보다 나은 것이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했다고 치자. 칭찬을 받기 위해 계속 같은 춤만 추는 고래가 무슨 소용인가.

춤을 춰서 칭찬을 받은 고래는 춤 이상의 그 무언가를 해서 타인의 칭찬 이전에 스스로의 자부심에 이끌려 그 자체를 즐기는 마음을 가지게 해야 한다.

아이에게 칭찬을 할 때에는 요령 있게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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