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일학년담임 Nov 18. 2015

아버지와 아들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자세는 이런 것

아이가 생일 선물로 친척에게 장난감 드론을 받는다.

학교 가져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지만 엄마가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집 마당에서만 날리기에는,

또 혼자만 갖고 놀기엔 아깝다고 생각한 아이는 몰래 가방에 넣어 학교로 가지고 온다.

아이가 드론을 자기 책상에 꺼내어 놓자마자,

그 드론이 아이의 손끝 조종만으로 가볍게 책상 위를 날아오르자마자,

교실 이 구석, 저 구석을 마법의 양탄자처럼 윙윙 날아다니자마자 아이들이 열광한다.

한 아이가 묻는다. 이거 운동장 소나무 보다 높이 날 수도 있어?

아이는 자신 있게 답한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러 모두 운동장으로 나간다.

아이는 드론을 조종해서 소나무 위로 가볍게 날린다.

까마득히 올라간 드론을 보고 아이들이 감탄을 하고 손뼉을 친다.

아이의 뿌듯함도 잠시, 드론이 소나무 가지 위에 걸리고 만다.

탈출 시도를 해 보지만 프로펠러만 돌아갈 뿐, 그 자리에서 요지부동이다.  

아이가 울면서 내게 온다. 엄마가 학교 가져가면 망가뜨린다고 갖고 가지 말라 그랬는데 어떡해요.

나가 보니 과연 꽤 높은 가지에 얹혀 있다.

긴 막대로도 해 봐도 닿지 않는다.

축구공을 던져 봐도 솔방울과 나뭇가지들만 떨어질 뿐, 드론은 점점 가지 사이에 낀다.

아이는 나뭇가지에 얹힌 드론 생각에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혹시라도 바람이 불어 드론이 떨어지려나, 관심이 운동장에 있다.



오후 퇴근 무렵,  아이가 나에게 달려온다. 아빠가 왔어요. 우리 아빠가 지금 왔어요.

아빠는 어디서 가느다랗고 아주 긴 철근을 구해오셨다.

휘청거리는 철근을 겨우 길게 뻗어 소나무 가지를 후빈다. 그러나 가지 깊이 낀 드론 내리기가 만만치 않다.

아이는 아빠로부터 적당히 떨어져 지켜본다. 무슨 응원이라도 하는지, 눈을 떼지 않는다.

  


햇살이 뜨겁다.

아빠는 철근 막대 무게 때문인지 숨을 몰아쉬며 나뭇 가지를 향해 힘을 쓴다.

어차피 내리기도 힘든 상황, 엄마 말 안 들은 아이를 야단치고 그냥 끝내버려도 될 것 같은데

저 아빠, 벌써 꽤 오랜 시간을 온몸이 땀에 젖으며 애를 쓰고 있다.

자기 자식을 위한 일이니 저렇게 하지, 세상 누가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쓸까 싶다. 귀한 장난감을 잃게 된 건 안 됐지만 저건 안 되겠다 돌아서려데, 드론이 땅으로 툭 떨어진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드론이 내려온다.

아이는 후다닥 달려가 드론부터 집어 든다.

아빠도 그제야 땀을 닦으며 철근을 들었던 어깨를 주무른다.

와, 너네 아빠 최고다. 난 말을 건넨다.

아이는 그제야 아빠를 쳐다보며 웃는다. 아빠도 아이를 보며 웃는다.


아이는 오늘 생각이 꽤 많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엄마가 나뭇가지 걸릴까 봐 갖고 가지 말랬는데, 그 말대로 되었으니 난감했을 것이다.

아이는 그래서 엄마 대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아이의 사정을 전해 들은 아빠는 두 가지 선택을 두고 고민을 했을 것이다.

엄마 말을 안 듣고 잃어버렸으니 엄마에게 야단을 맞게 하고 그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하자는, 냉정하지만 교육적일 수 있는 방법과

아이가 처한 상황을 아빠가 공감해 주고 어떻게든 엄마가 알기 전에 해결을 해 줌으로써

인정에 치우친 듯 보이지만 아이로서는 너무나 고마운 아빠가 될 기회를 위한 선택.

아빠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룬 것 같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부모는 끝없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럴 때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겠느냐고 그들은 끝없이 물어 온다.

난 이럴 때 난감하다. 아이에 따라 어떤 땐 냉정해야겠고 또 어떤 땐 인정으로 다가가야 할 텐데

길어야 고작 1년만 가르치는 담임일 뿐인 내가, 지금껏 아이를 길러 온 부모보다 어떻게 더 아이 교육에 대해 잘 알 수 있나.

많은 부모들은 이런 경우 교육적 선택을 한다.

아이가 곤경에 빠져 있을 때, 한두 번 도와주다 보면 습관이 되고 끝내 개선이 되지 않을 거라는 염려에서다.


저 아이는 오전 내내 드론 걱정을 하는 것으로 이미 야단을 맞은 셈이다.

공부도 점심 급식도 제대로 즐길 여유도 없이, 엄마에게 따로 혼나지 않아도 스스로 깨친 바 클 것이다.

어쩌면 아빠는 그 시간을 일부러 계산해 적당히 늦게 왔는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이번 기회에 저 아이는 아빠와의 연대감을 가득 채웠다는 것이다.

아이와 아빠는 엄마를 상대로 둘만의 비밀을 하나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걸 시작으로 둘만의 연대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평생 아빠와 아들이 드론 이야기를 나누며 정답게 지낼지도 모른다.

그렇게만 된다면 엄마로서도 손해 볼 일은 아니다.

내가 알기로 아이 아빠의 직장은 쉽게 조퇴할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짬을 내서 학교에 왔다. 그리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아이를 위해 헌신했다.

아이는 그걸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아빠의 고군분투를 보면서, 아이는 새삼 아빠의 따뜻한 정과 든든함을 느꼈을 것이다.

자기 때문에 아빠가 힘들어하는 것이 미안했을 것이다.

더불어 그동안 자기가 아빠를 힘들게 했던 것들이 미안했을 것이다.

그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갚아 보려고 아빠를 쳐다보았는지도 모른다.

이 순간을 좀 더 오래 기억하게 해 주고 싶어 아이와 아빠 사진을 찍어주었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유난히 소원한 우리나라의 가정 분위기의 원인은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야단맞은 기억(특히 체벌을 받은)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을 감시하고 야단칠 준비를 하고 있는 가공의 대상인 것이다.

아버지가 친구 같아야 살면서 살갑게 다가갈 수 있는데

절대자로 군림하면서 아이 잘못을 속속들이 알고 심판하는 역할로 매겨지니

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아들로선 불편한 것이다.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은 대상일 뿐.

아버지도 늙고 이가 빠지고 허리가 굽는다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걸 경험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이렇게 경직되는 이면엔 이 사회의 과도한 개입이 있다.

아빠들을 가정으로 일찍 돌려보내지 않는 사회에 무슨 미래가 있을까.

아빠들로 하여금 아이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 이상의 역할을 주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가여운 아빠들의 나라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부럽게도 저렇게 애쓰는 아빠가 있어서, 저 아이 또한 좋은 아빠가 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친구들에게 받는 칭찬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