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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Nov 23. 2015

선행학습 유감

미리 공부하면 정말 효과가 있을까


수학 시간.

답답한 교실을 나가, 운동장 구석의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수학 시간인데도 마치 노는 시간인 양 흥겨워한다.

그 분위기를 이용해서 나는 내가 내는 스무 개의 덧셈 문제를 다 풀면 놀겠다고 말해준다.

스무 문제 푸는 동안 한 시간이 다 지나가니 그게 그거지만, 아이들은 마치 곧 놀 것처럼 들떠한다. 

요즘 우리 반 아이들은 10보다 작은 수의 덧셈을 공부 중이다.

그 복잡하고도 난해한 계산을 위해 아이들의 열 손가락이 쉴 새 없다.

내가 문제를 만날 때마다 단풍잎같은 손가락들이 오물거린다.


한 아이가 4 더하기 3을 하면서 짜증을 낸다.

2 더하기 3은 한 손의 손가락을 모두 펴고 다른 손으로 짚어가며 세면 되는데

4 더하기 3은 한 손의 손가락 4개와 나머지 다른 손 손가락 3개를 따로 세어야 해서 짚을 손가락이 없기 때문이다.

한 손에 4개의 손가락을, 다른 손의 3개를 이어서 세면서 눈대중으로 세면 될 문제지만,

일일이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세던 아이들이라 그런지 손가락 대신 눈으로 짚어 세는 단계를 어려워 한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암산으로 계산을 한다. 문제를 듣자마자 바로 답을 말한다.

그러자 기껏 손가락을 계산을 하던 아이들이 계산을 멈추고 그 아이의 답을 따라 쓴다.

암산으로 계산이 될 때까지 구체적으로 조작하는 경험을 많이 주려는 나의 수업 의도와 어긋나는 것이다.

그 아이가 좀 참아주면 좋겠는데, 그 아이 또한 자기의 암산 실력을 뽐내고 싶을것이다.

나는 차라리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의 암산 실력을 부러워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 다들 암산을 하려고 애쓸 것이고 나의 수업목표는 앞당겨 질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분위기는 내 생각과 꽤 다르다.

먼저 답을 말 하는 아이를 나머지 아이들이 짜증스러워 하는 것이다.

급기야 한 아이가 말 한다. 야, 너 자꾸 먼저 말하면 어떡해. 그렇게 잘 났으면 2학년에나 가라.

그러자 그 아이도 성을 낸다. 너도 빨리 계산하면 되잖아. 지가 계산 못하면서.

그 말에 다른 아이가 목소리를 높인다. 선생님, 쟤 2학년에 가라 그래요. 쟤 땜에 짜증나요.

암산 하던 아이, 얼굴이 붉어지더니 벌떡 일어나 나무 그늘에 가서 웅크려 앉는다. 


친구 하나가 멀찌감치 떨어져 울고 있는데도 나머지 아이들은 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아이들은 우는 아이 쪽을 쳐다 보지도 않는다. 어떤 아이는 웃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어서 문제를 계속 내라고 재촉까지한다.

그러면서 빨리 풀고 우리끼리만 재미있게 놀자고, 난데 없는 친밀감을 과시한다.


난 곤란한 척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에이, 모두 같이 풀고 같이 놀아야 재미있지.

난 싸움이 해결 될 때까지는 더이상 문제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빨리 풀고 놀려고 했는데 틀어지자 아이들은 화를 낸다. 쟤는 자기만 빨리 맞추고 잘난 척 하니까 우리만 문제 풀면 되잖아요.

울던 아이는 계속 울고, 나머지 아이들은 화가 나 있는 걸 모른 척 두고 나 또한 화난 척, 하며 교실로 들어 와 버린다.


내가 자리를 떠나 버리자 아이들은 잠시 그러고 있더니 몇몇이 우는 아이에게 다가간다.

잠시 후, 우는 아이는 눈물을 닦고 아까 앉았던 야외 책상으로 다시 가 앉는다.

그 사이에 한 아이가 나를 부르러 교실로 온다. 난 못 이기는 척 다시 나가서 문제를 마저 불러준다.

암산을 잘 하는 아이, 이번엔 먼저 답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친구가 틀린 답을 말하려고 하면 눈짓으로 신호를 살짝 보내 준다. 난 일부러 모른 척 한다.

그 아이의 눈짓 신호 덕분에 생각 보다 문제 풀이가 일찍 끝난다.

모든 아이들, 언제 화가 났었느냐는 듯 벚나무 그늘 아래에서 같이 논다.

약간의 기다림이 주어진다면,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해결책을 찾는다.




학교 공부를 못 따라갈까봐 선행학습을 시킨다고, 학부모들은 말한다.

남의 아이보다 실력이 떨어지면 안된다는 강박과 불안이 원인인 것이다.

문제는 선행을 해서 남들보다 잘 알게 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수업시간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상담 중 만난 부모들은 아이의 선행학습을 시키면서 정작 그 아이가 그것 때문에 친구들과 힘들게 지낼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먼저 배웠으니 공부가 쉽게 느껴질 것이고, 그러면 친구들에게도 인정받으며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말한다.

심지어 어떤 부모는 친구와 좀 불화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아이가 그렇게 해서라도 더 공부를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려서 그렇지, 조금 더 자라면 결국 공부 잘 하는 아이가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아질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친구 고르는 안목은 이 부모의 소망보다 위에 있다.


모든 인간은 남들보다 뭔가를 더 먼저 알게 될 경우, 그걸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나머지 아이들은 이런 모습을 좋게 보지 않는다. 잘난 척으로 보는 것이다.

자기들 보다 먼저 배워 와서 옳은 답만을 골라 발표하는 아이를, 나머지 아이들은 공정하게 경쟁하지 않는 비겁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은연중에 그 아이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가진다. 그 결과, 그 아이는 친구들의 인정을 받는 대신 따돌림을 당한다.

그 아이가 어떤 걸 잘하면, 그게 선행의 결과가 아니라 해도 믿지 않고 정정당당하지 못한 결과라며 불신하며 인정하지 않는다.

이쯤되면 그 아이는 학교에서 거의 생활하기 힘들다. 초등학생 수준의 그 어떤 아이도 친구들의 따돌림을 태연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이는 자기가 먼저 배워 아는 걸 말했을 뿐인데, 친구들이 왜 자기를 시기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친구들을 원망하고 대립한다.

그러느라 정작 공부에 쓸 기운을 소진해 가고 공부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진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실력이 비슷해진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친구들 관계도 회복된다.

어쩌면 그 아이는 그걸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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