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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Nov 24. 2015

밀려나는 교사들

교사와 학부모 관계

한 아이가 쉬는 시간에 그네에서 놀다가 문득 뭐가 생각났는지 내게 와서 말한다. 선생님,  우리한테 폭력 안 하실 거죠? 만약에  우리한테 폭력 하면요. 우리 아빠가 교육청에 신고한대요. 조심하는 게 좋을걸요.
갑작스러운 그 말에 내가 무서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이구, 무서워라. 그럼 선생님이 조심해야겠네. 니네 아빠가 신고 안 하시게.
내 표정을 본 그 아이가 나를 안심시킨다. 오늘은 걱정 마세요. 우리 아빠 오늘 일 갔으니깐요.

쉬는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오는데 고학년 아이 한 명이 신발장 문을 꽝 닫는다.
좀 떨어진 곳에서 그걸 본 내가 그 아이를 불러 신발장 문 살살 닫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걸 본 그 아이, 내게 또 와서 말한다. 선생님,  형아한테 폭력 하실  뻔했죠? 조심하세요. 교육청에 잡혀 가면 어쩔라구 그래요. 그럼 집에도 못 갈라 그래요?
난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 맞어. 선생님이 큰일 날  뻔했네. 알려줘서 고마워.

점심시간.
급식실로 가기 전에 손을 씻으러 가면서 아이들이 복도를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내가 불러 잔소리를 한다.
그걸 본 아이가 내게 와서 또 말한다. 선생님, 애들한테 폭력 할라 그랬어요? 그러다 진짜 잡혀 갈라 그래요? 진짜 집에도 못 갈라 그래요?
난 아까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한다. 아, 맞어. 선생님 집에 못 갈  뻔했네. 선생님 집에 못 가면 강아지 밥 못 주는데. 안 그럴게.

그 아이의 부모는 얼마 전 어느 학교에서 벌어진 체벌에 관한 뉴스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뉴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아이는 그 말을 듣고 자기의 담임인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때리'거나 '욕'을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표현 말고 아이 입장에서는 추상적일 수 있는 '폭력'이라는 말을 쓰는 걸 보니
부모의 대화가 구체적인 대화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 뉴스가 진행되는 1,2분 사이의 대화가 전부였을 것이다.
그런데 저 아이가 나를 졸졸 따라 다니면서 나에게 사사건건 일깨워고 있다.

저 아이는 내가 교사로서 학생에게 하는 모든 훈육이 폭력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위태로워 보이는 것이다.

나도 뉴스에 나오는 그 교사처럼 잡혀갈 까 봐, 고맙게도 아이는 그렇게 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교육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특히 교사와 아이의 관계가 인구에 회자될 때마다 1학년 교실에서는 이런 비슷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런 뉴스가 남의 동네에서 일어난 남의 일이고, 우리 학교는 괜찮다는 설명을 1학년 아이들에게 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이들을 가르쳐  먹고사는 교사의 삶이  힘들어지는 건 분명하다.
60명이 넘는 아이들을 콩나물 교실에서 가르칠 때보다 그 절반인 30명도 안 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요즘이, 교사들에겐 왜 더 힘든가.
 


어떤 아이가 수업시간에 장난을 치다가 남아서 반성문을 썼다.
아이는 자기만  장난친 게 아닌데 선생님이 다른 아이는 봐 주고 자기만 반성문 쓰게 하셨다고 부모님께 말했다.
다음날, 아이의 부모가 학교에 항의 민원을 넣었다. 자기 아이가 편애를 당하고 있으니 선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학교장은 담임교사를 불러 상황을 물었다.
해명이 끝나자 학부모 민원이 발생하면 학교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니 잘 해결하라고 했다.
 
담임은 학부모에게 편지를 썼다.
아이가 억울하게 생각한 것은 이해가 되나 자신이 미워한 것이 아니며 평소 아이의 수업태도가 걱정스러워 반성문을 쓰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학부모 역시 가정에서 자기 아이를 야단쳤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자기 아이가 담임에게 미움을 받을까 염려가 되어
아이 친구들에게 그날그날 담임이 자기 아이에게 어떻게 대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 묻기 시작했다.
담임 또한 아이의 수업방해 행동이나 친구 관계에 대해 전처럼 적극적으로 훈육하지 않고 소심하게 대처했다.
학부모를 의식한 일이었다.
 
소풍날이었다.
점심을 먹던 그 아이가 장난으로 다른 아이의 도시락을 엎었다.
담임은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고 그 아이의 도시락을 함께 나눠 먹도록 주선했다.
아이는 자기가 일부러 엎은 것도 아니고 친구와 놀다 그랬는데 선생님이 자기 잘못이라며 자기 도시락만 나눠주라고 했다고 부모에게 말했다.
다음날, 아이의 부모가 또 항의 민원을 넣었다.
담임이 자기 아이를 미워해서 작은 실수를 가지고 여럿 앞에서 모욕감을 줘서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니 선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학교장은 다시 담임교사를 불렀다. 그 날 오후, 담임이 아이의 집에 가서  사과했다.
 
이 일은 그 학급의 학부모들에게 금세 소문이 퍼졌다.
아이들도 선생님이 누구네 집에 과일을 사 가지고 가서  사과했다더라고 수군거렸다.
어떤 아이는 아이가 잘못한 일을 왜 선생님이  사과하느냐고 담임의 편을 들었고 또 어떤 아이는 우리 선생님이 앞으로는 안 무서울 거라며 좋아했다.
그 학교 교사들이 모여 회의를 하던 날, 학교장은 학부모 민원이 발생하지 않게 주의하라고 훈시했다.

또 얼마 뒤, 그 교사의 학급에서 아이들 간의 다툼이 있었다.
담임은 아이들에게 종이 한 장 씩을 주고 모든 아이들에게 피해 입은 일을 적어 내라고 했다.
아이들이 낸 종이를 읽은 담임은 바로 그 아이가 사건의 핵심임을 알았다.
이번엔 아이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부모에게 편지를 썼다. 학부모에게 직접 알려서 오해를 줄여보기 위한 의도였다.
며칠 후, 부모가 항의 민원을 넣었다.
담임이 자기 아이를 미워하고 있을 것인데, 그러니 자기 아이가 비뚤어져서 문제를 더 일으킨 것이고,
아이의 친구들 역시 담임이 자기 아이를 미워하는 걸 알고 있으니 자기 아이만 잘못했다고 쓰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학교장은 담임이 교육을 잘 해보려는 열정이 있으니 믿고 맡겨 보시라고 중재를 했으나
학부모는 학교장까지 이렇게 교사를 감싸려 한다면 자기 아이를 전학시킬 것이며, 이 사실을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했다.
학교장은 담임을 불러 다시 학부모를 만나 해명하고 달래 드리라고 했다.
담임은 다시 학부모를 만나 다른 아이들에게 받은 쪽지를 보여주며 해명했다.
학부모는 이 모든 것이 담임이 자기 아이를 미워해서 생긴 일이니 다시는 편애하지 말라고 했다.
만약 또 자기 아이가 잘못을 하면 동영상을 찍어서 보여 달라고, 그러면 교사를 믿겠다고 했다.
 
동영상을 찍어야 자기를 해명할 수 있게 된 담임은 그 방법을 고민했고 동료 교사들의 조언에 따라 스마트폰을 샀다.
스마트폰을 처음 학교에 가져가던 날, 담임은 아이를 불러  이야기했다.
선생님 생각에 네 수업태도는 안 좋아. 그런데 네 엄마께서 믿지 않으시니 앞으로는 네가 장난칠 때 동영상을 찍어야겠다고.
그 말은 들은 아이는 울면서 말했다. 저 그럼 엄마한테 맞아 죽어요.

담임은 동영상을 찍지 않았다. 아이 또한 동영상에 찍힐만한 일을 스스로 줄여갔다.
또 엄마에게 야단맞지 않으려고 자신의 잘못을 담임의 편애로 떠넘기지 않았다.
학부모는 가끔 아이에게 요즘도 담임이 너를 미워하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 아이는 '모른다'고 답했다.
부모는 담임이 얼마나 무섭게 하면 애가 부모에게 속 마음도 말을 못하겠느냐고 다른 학부모들에게 말했다.
다음 해 2월, 아이가 졸업식을 하던 날, 학부모와 담임은 따로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그리고 그 2월 마지막 날, 그 교사도 사직했다. 정년을 아직 몇 년 앞둔 때였다.
 
나는  그분이 동영상 찍는 방법을 묻던 후배 중 한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그분은 자기를 해명하기 위해 동영상 촬영 같은 건 하지 않을 분 같았다.
선생 노릇 하는 일 보다 그 일을 포장해서 자랑하는 일에만 더 능한 나에 비해,  그분은 고지식할 만큼 정석을 지키는 분이셨다.
그는 교직을 떠나는 대가로 스마트폰을 얻었다며 실없이 웃었다. 차마 술 한잔으로 받아내기엔 무거운 웃음이었다.
 
 




지난 2월 말. 아직 새 학년이 시작하기 전. 어느 날 저녁.
난 내가 새롭게 담임할 교실에 오자 마자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 맞을 준비를 하다 보니 어두운 시각이었다.
아이들은 아직 내가 자기들의 담임인 줄 모르고 있었을 저 시기, 내가 또 한 해를 어떻게 배겨 날지 두렵던 저 시기가 벌써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난 아직 동영상을 찍어서 맞설 학부모를 만나지 않았다. 그건 나의 복일 것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어떤 선생이 나온다.
영화의 말미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책상에 올라가는 걸로 선생에 대한 존경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이 장면이 감동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장면이 나올까 봐  곤혹스럽다. 저 장면 뒤에 선생이 쫓겨나기 때문이다.
선생 노릇밖에 모르던 사람이 무엇을 해서  먹고살 것인가.
학부모들은 저런 선생이야 말로 이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선생이라고들 하면서 정작 자기 아이를 가르치는 담임이 되는 건 망설인다.
난 가끔 나도 모르게 내가 저 영화 속 선생처럼 아이들을 대하려 하는 무모함을 발견하곤 놀란다.
책상에 올라간 저 아이들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저런 걸 조장하는 선생은 밥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다. 학부모 또한 힘든 시기일 것이다.

그 담임도 그 일을 당하는 동안 너무 속상해서 학부모를 보여 줄 동영상을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데,
막상 찍으려고 보니  촬영당할 아이의 어린 마음은 어떨까 싶어 차마 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학부모에게 당한 모멸감이 떠올라 화가 나서 마음이 괴롭더라고 했다.
그렇게 선생과 부모가 동영상까지 언급하며 대립하는 동안 정작 아이의 성장엔 별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그분은 요즘처럼 불신과 혐오가 넘치는 교사, 학부모 관계의 각박함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분과 나는 다르지 않다. 나 또한 각박함 위를 외줄에 올라 타 버티는 신세다.
언제 어떤 일로 외줄을 잃고 각박함의 나락으로 떨어져 나쁜 선생으로  비난받아  쫓겨날지 모른다.
그리고, 나 또한  그분처럼 그렇게 사위어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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