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아이들이 2학년을 맞이하는 마음 가짐
1학년 종업식을 사흘 앞둔 날.
한 아이가 종합장을 다 썼으니 새로 달라고 한다.
새 종합장을 내어주면서 이름을 써 주려는데 아이가 그런다. 1학년이라고 쓰지 말구 2학년이라고 써요, 알겠죠?
난 아이의 기발함에 놀라는 척하며 그렇게 써 준다. 아, 맞어. 3일만 더 오면 인제 2학년 되니깐 2학년이지.
그걸 보고 있던 짝꿍 아이가 끼어든다. 야, 니가 벌써 2학년이냐. 너 2학년한테 까불라그래. 싸가지 없게.
그러자 그 아이도 지지 않는다. 까불라 그러는 거 아니거든? 나 2학년 때도 이 종합장 계속 쓸 거야.
듣고 보니 아이 말이 맞다고 생각했는지 아이들이 너도나도 종합장이며 학용품을 꺼내더니 내 책상 위 연필꽂이에서 펜을 꺼내다 1학년을 '2'학년으로 고쳐 쓴다.
아이들, 마음을 벌써 2학년에 데려다 놓았다.
묘하게 안심이 되는, 좋은 징조다.
개학날이던 월요일.
메뉴로 나온 단호박 갈비찜을 평소보다 많다 싶게 받은 아이가,
역시나 다 못 먹겠는지 다른 건 다 먹고 단호박 갈비찜만 남긴 채 내 쪽을 향해 목을 쭉 빼고 작게 속삭인다.
선생님 저 호박 먹기 싫어요. 이거 좀 남길게요. 알겠죠?
그러자 그 얘기를 듣던 옆 자리 아이가 퉁을 준다.
으이구, 아주 자알 헌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욕심쟁이처럼 많이 받으래? 윤수가 다 먹고 나가니깐 너도 빨리 나가서 놀라구 뻥치는 거 다 알어. 선생님, 쟤 다 먹고 가라 그래요.
그러자 그 아이, 억울하다는 듯 얼굴이 벌개서 대든다. 넌 상관 쓰지 마. 나 원래 호박 싫어한단 말이야.
그러면서 나를 향해 애원한다. 선생님, 2학년 땐 다 먹을게요. 오늘만 좀 봐줘요.
2학년 땐 다 먹겠다는 말에 난 얼결에, 알았어. 2학년 땐 다 먹을 거니깐. 그러고는 그 아이의 식판에서 호박을 숟가락으로 떠서 내가 먹는다.
옆 아이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퉁을 준다.
선생님이 자꾸 먹어 줘서 쟤 뻥치잖아요. 쟤가 2학년 때도 호박 안 먹으면 어쩔라구 그래요.
받아쓰기를 틀려도, 뺄셈 문제를 못 풀어도 아이들은 내게 와서 2학년 땐 잘 할 테니 한 번만 봐 달라고 한다.
내가 '2학년 땐 잘 하겠다'는 말만 하면 내가 껌벅 넘어가 주는 걸 알고 아이들은 모든 일에 2학년이 되면 잘 하겠다고 능청을 떤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부러 불안한 표정으로 엄살을 떤다. 아이구, 그러다 니네가 2학년 때 잘 안 하면 선생님이 2학년 선생님한테 막 혼나겠네.
그러면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단속이라도 하듯 이렇게 말한다. 야, 니네 2학년 되면 진짜루 잘 해. 안 그러면 우리 선생님이 욕먹으니깐.
그러면 나머지 아이들도 나름 진지(?)한 것 같은 표정으로 2학년 땐 잘 할 거라고 서로 말해준다.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것 같아도 아이들은 이렇게 미래를 마음으로 준비한다.
그 분위기에서 난 아이들이 2학년을 맞이하면서 더 잘 하려고 애쓰는 마음을 읽는다.
심지어 몇 아이는 나를 위로하기까지 한다. 에이, 선생님, 믿어 보세요. 2학년 때는 잘 할 거니깐요.
역시 묘하게 안심이 되는, 좋은 징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