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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Feb 04. 2016

스스로, 스스로, 스스로

한 아이가 아침부터 내게 와서 급히 외친다. 연필깎이 어딨어요. 빨랑 줘요, 빨랑요.

아이 손에 들려 있는 필통이 평소와 달리 빵빵하다.

아이 목소리에 뭔가 화급함이 느껴져 이유도 묻지 못한 채 난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여기저기 교실 서랍을 뒤진다.

하지만 긴 겨울 방학을 보내면서 연필깎이를 어디에 넣었는지 까먹은 나는 바로 못 찾고 헤맨다.

내가 허둥대자 아이는 기분이 상했는지 필통을 내 책상 위에 꽝 내려놓고 나보다 빨리 교실 여기저기를 막 뒤진다.

그걸 본 다른 아이가 뭐라 나무란다. 야, 너 왜 선생님 막 부려 먹어. 선생님이 니 부하냐? 선생님, 연필깎이 좀 주시면 안되까요? 해야지. 자알 헌다. 아주.


그 말이 안 들렸을까, 아이는 여기저기 연필깎이 찾느라 바쁘다.

마음이 급한지 열어젖힌 서랍에 연필깎이가 없으면, 그냥 열어 둔 채 바로 다음 서랍을 연다.

어떤 서랍 하나는 쑥 빠져 내용물이 와르르 쏟아져 여기저기 굴러간다.

아이가 물건을 주워 담지 않고 다른 곳을 열자 그걸 보던 다른 아이가 그 아이를 향해 소리를 빽 지른다.

야, 너 서랍 열었음 다시 닫어야지. 야, 빨랑 닫어. 빨랑.

그제야 친구들의 분위기를 읽었는지 아이가 한 풀 꺾인 채 대꾸한다.

나 연필깎어야 된단 말이야. 그런데 연필깎이가 없으니깐 그렇지.


"그럼 선생님이 찾어 줄 때까지 기달려야지. 니가 교실 주인도 아니면서 왜 막 뒤져?"


나 땜에 아이들이 싸우는 것 같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도 끼어든다.

아이고, 선생님이 방학 전에 어디다 잘 넣어 놓은 거 같은데 생각이 안 나네. 선생님이 2학년 교실에 가서 빌려 올게 쫌만 기다려.

내가 옆 교실로 가려는데 아이가 드디어 어디에선가 연필깎이를 찾아낸다.

그리고 보라는 듯 내 책상에 척 올려놓고 필통을 연다. 꽤 많은 연필을 모두 꺼낸다.

곧이어 연필을 연필깎이의 작은 홈에 끼워 넣고 손잡이를 돌린다.

작지만 야무진 아이 손의 움직임이 신들린 듯 경쾌하다. 드르륵드르륵. 깎이는 소리도 리듬이 느껴진다.

난 그 사이에 아이가 열어 놓은 서랍을 닫으러 교실 여기저기를 다닌다.

그런 나를 보고 몇 아이가 나와 그 아이에게 퉁을 준다. 선생님, 해 주지 말어요. 버릇 자꾸 나뻐질 수도 있으니깐요. 야, 니가 열어 놓은 서랍 니가 빨랑 닫어. 니가 열어 놨으니까는.


아이는 연필깎이를 누른 왼 손에 힘을 더 준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돌리려다 잠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멈춘다.

그리고 내게 와서 선생님, 연필깎이 잠깐만 맡아줘요. 선생님이 깎지 말구요. 알았죠? 하고는 자기가 열어 놓은 서랍을 정리한다.

정리가 끝나자 아이는 아이들을 향해 "야, 니네 봐. 됐지?" 하고 확인을 시키고 "나 인제 연필 깎는다." 하고 다시 연필을 깎는다.

소동은 잦아든다. 아이도, 나머지 아이들도 아까보다 표정이 순해진 듯하다.





난 아이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뒤처리를 하고 와서 그제야 아이에게 이게 웬 연필이냐고 묻는다.

방금 전까지 노여웠던 표정은 어디 갔는지 아이는 제법 흥분까지 한 표정으로 내게 사연을 말해 준다.


"이번 달에는 합기도를 끊는단 말이에요. 설날도 있고 봄방학도 있으니깐 내가 합기도 안 가고 싶다 그랬죠.

 엄마가 합기도 안 가도 된다 그랬으니깐요. 대신에 스스로 공부를 할라 그래요. 스스로. 그러니깐 연필을 많이 깎아야죠."


난 아이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위로하듯 묻는다. 헐. 공부? 그거 힘들잖어. 아이구. 엄청 힘들겠네.

그러자 그 아이는 내가 뭘 모른다는 듯 말한다.


"합기도 어쩔 때는 가기 싫단 말이에요. 그런데 공부는 괜찮아요. 스스로 하니깐요.

스스로 학습지 잖아요. 스스로 해야죠. 매일요. 스스로. 어떤 날은 그 담 날 것도 하니깐요. 스스로.

엄마가 사 줬어요. 그래서 스스로 할라 그래요. 스스로. 그래서 연필 엄청 깎았잖아요. 자, 봐요. 이걸로 공부할 거니깐요. 스스로."





스스로.


'스스로'라는 말은 이 아이뿐 아니라 1학년 아이들이 잘 사용하는 표현이 아니다.

'남이 시키지 아니하였는데도 자기의 결심에 따라서. 자신의 힘으로.'라는 뜻이 이 표현은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서 행동이나 가치를 훈육할 때 주로 사용하게 되는 말이지,

피교육자 입장에서는 가장 싫어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말끝마다 '스스로'를 연신 인용하고 있다.

대화를 해보니 '스스로'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 거 같은데

동어반복이 지나치다 싶은 저 마음 이면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아이가 요즘 사고 싶어 하는 터닝메카드를 약속받기라도 했나 싶어 물어보았다.


"그냥 스스로 하면 좋으니깐요. 공부 몰르는 거 배우는게 좋으니깐. 잘 몰르다가두 스스로 하면요. 아니깐요. 저 공부 배우는 거 좋아요. 스스로요."


내친김에 난, 그날 아이들이 공부 할 학습지를 보여 주면서 그럼 이것도 줄까? 하고 묻는다.

아이는 이미 스스로 하는 게 있으니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러자 그걸 지켜보던 다른 아이가 재빨리 오더니 그럼 저 주세요. 하며 가져간다.

그걸 보던 또 다른 아이도 달라고 한다.

나는 여러 장으로 된 학습지를 스테이플러로 묶어서 이름을 써 준다.

모든 아이들이 받아 가자 그 아이도 달라고 한다. 받으면서 자랑이라도 하듯 '스스로' 할 거예요, 그런다.

아이는 받자마자 연필을 꺼내더니 풀기 시작한다. 받아 놓기만 하고 딴짓을 하던 다른 아이들도 이내 따라 한다.


학습지를 거의 다 풀었을 무렵, 2학년 아이들이 1학년과 같이 놀기 위해 우리 교실로 온다.

난 아이들에게 2학년 형님들한테 학습지 보여줘 볼까? 하고 묻는다. 아이들은 선뜻 그러라고 한다.

난 2학년 아이들에게, '지금 1학년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자랑하듯 말한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1학년 아이들은 조금 으쓱한 표정을 지으며 형아들을 본다.

2학년 아이 중 하나가 1학년 아이들을 향해 니네 정말이냐? 하고 묻자 1학년 아이들은 조금 크다 싶은 목소리로 '어, 진짜야.'라고 말한다.

2학년 아이들이 한 사람씩 맡아 학습지를 채점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형아 옆에 착 붙어서 자기가 '스스로' 푼 문제가 채점되는 걸 지켜본다.

그 사이에 한 아이가 말한다. 형아, 이거 내가 진짜루 스스로 한 거야. 맞죠, 선생님?

난 그 아이에게 들으란 듯 어, 맞어. 진짜루 니네가 스스로 한 거야. 선생님이 봤어.

그 말에 2학년 아이 하나가 대답을 해 준다. 어, 잘 했네.




어, 잘 했네.


칭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말인데 1학년 아이들은 이 말을 칭찬으로 듣는 듯하다.

채점이 끝난 뒤, 2학년 아이들이 시험지에 점수를 써 준다. 점수를 받은 1학년 아이들은 내게 와서 자랑한다.


*

내가 초등학교 3,4학년쯤이었을까, 동네 친구 중 어깨동무라는 어린이 월간 잡지를 구독하는 애가 있었다.

미용기술을 배우러 도시에 나간 그 친구의 누나가 매월 보내주는 것이었다.

주먹 대장, 독고탁을 비롯한 연재만화와 공상과학 소설, 그리고 우주에 대한 기사들이 정말 숨이 꼴깍 넘어갈 만큼 재미있었다.

우리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진주햄 소시지 광고가 첫 장을 넘기면 바로 나오던 그 잡지.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내 친구는 그 잡지를 그리 재미있어하지 않았다.

대신 당시 잡지 부록으로 딸려오던 장난감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시골마을에서는 도저히 만들거나 구할 수 없는 신기한 장난감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책 주인이 아니어서 그 장난감을 욕심낼 수 없었다.

대신 난 그 잡지가 오자마자 그 친구에게 그걸 빌려 읽곤 했다.


어느 날, 그 친구 엄마가 우리 집에 마실을 왔다가 우리 집에 쌓여 있는 잡지를 발견하셨다.

자기 아들 보라고 보내온 책들이 남의 집에 있었으니 마음이 편치 않으셨을 것이다.

결국 다음 날 친구가 그 잡지를 모두 찾아갔다.

그 뒤로 새로 잡지가 배송돼도 눈치가 보여서 선뜻 빌려달라고 말하지 못 했다.

그래도 하도 보고 싶어서 며칠이 지나면 그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잡지가 왔는지 물었다.

내가 그걸 좋아하는 걸 아는 친구는 엄마 모르게 빨리 보고 내일 달라며 빌려 줬다.

그날 밤, 난 그걸 여러 번 읽었다. 읽는 것도 모자라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을 내 공책에 옮겨 그렸다.

그때 내가 얼마나 그 잡지를 좋아했는지, 지금도 그때 만화 주인공을 외워 그린다.


다음 학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 친구의 누나는 잡지 말고 하나를 더 사서 보냈는데, 동아전과와 수련장이었다.

잡지에 흥미가 없던 친구는 전과 또한 좋아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내 차지가 되었다.

만화나 공상과학 이야기 대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 내용과 참고 내용이 들어 있어서 아이들용 책이라기엔 엄청 두꺼운 전과와

세로로 넘겨 올리면 시험문제들이 빼곡히 들어 있는 수련장.

근데 이상하게 내 눈엔 그것도 재미있었다. 전과에 있는 칼라 화보 때문이었다.

난 그 전과에서 목성의 구름 회오리와 토성의 고리, 대왕 오징어 같은 심해의 물고기,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을 처음 보았다.

어린 내게 그건 문화충격이었다.

밤 하늘에 목성이나 토성 같은 모양의 별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훗날, 아주 두껍고 비싼 책이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사 읽게 된 것도 그 화보 덕분이다.

그런 화보는 왜 교과서에는 없고 전과에만 나오는지 몰랐다. 난 전과에도 빠져들었다.

산수 숙제를 하기 싫으면 답을 보고 베껴갈 수 있는 것도 좋았다.

학교에서는 이렇게 볼 게 많은 전과를 나눠 주지, 왜 재미없는 교과서만 주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는지 몰랐다.


우리 집에 볼 책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전과에 신기한 내용이 많아 난 틈만 나면 그걸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수련장도 보게 되었다. 문제를 풀어보고 뒤편의 답지와 맞춰보는 것도 한가한 시골생활에 비하면 그리 싫지 않았다.

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끔 그걸 들여다보았다.

모르는 걸 새로이 알아가는 게 싫지 않았다. 엄마의 농사를 돕기 위해 고추를 따거나 소 꼴을 베는 건 뻔한 일상이어서 딱히 얘깃거리가 되지 않았지만

전과나 잡지에서 본 걸 학교 오가는 길에 친구들에게 얘기해 주면 재미있어했다. 난 더 자세히 얘기해 주려고 더 신경 써서 읽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들 보여 주려고 우리 마당 가득히 긴 막대기로 잡지의 만화 주인공을 그리던 생각이 난다.

어쩌면 그 시절에 나도 '스스로' 공부를 한 것 같다.



*

사람은 누구나 뭔가를 스스로 하는 때가 온다.

우리 반 아이들이 지금 저렇게 하는 게 그때 나의 그것과 닮았다.

아이들은 그저 학교에서 주어진 시간에 했어야 할 공부를 '스스로'라는 형식으로 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날의 이 공부를 '억지로 하는 지겨운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듯하다. 그렇다고 놀이처럼 가볍게 여기지도 않았다.

마치 어느 절대자에 의해 구국의 사명을 부여받고 학교에 온 구약성경 속 선지자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비록 잠깐 동안이었지만 열심히 학습지를 했다.

지금의 이런 시간들이 모여 앞으로 아이는 좀 더 긴 시간과 큰 목표를 두고 뭔가를 '스스로' 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뭔가를 한다는 건 이렇게 없던 인내를 내부에서 솟아나게 한다.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성취감은 또 다른 '스스로'를 시도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살아가며 만나게 될 첫 데이트의 설렘이 그렇고 노력 끝에 맛보게 될 여러 성공이 그럴 것이다.

오늘, 한 아이의 '스스로' 때문에 전체 아이들이 스스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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