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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Feb 05. 2016

1학년을 마치며

마지막 날에 의미를 두지 않는 1학년 아이들의 반전


사진 설명 : 종업식 날. 통지표를 나눠 줄 테니 자리에 앉으라고 했더니 통지표가 뭐냐고 묻는다.

이러이러한 거라고 말하니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그럼 그걸 뭐하러 자리에 앉아서 받아요. 그냥 지금 줘요. 계속 놀게요. 그런다.

통지표를 나눠줬더니 슬쩍 보고는 옆에 놓은 채 계속 논다. 그러고 보니 통지표는 교사와 학부모에게만 중요한 것인가 보다.




사진 설명 : 통지표를 나눠 주고 이제 본격적으로 아이들과 마지막 날의 소감을 나누려고 자리에 앉으라고 했더니

한 아이가, 오늘 마지막 날이잖아요. 그러니깐 자리에 앉지 말고 나가서 놀아요. 공부 많이 했잖아요, 그런다.

그 말에 다른 아이들도 일제히 문 쪽으로 달려가 줄을 선다.

결국 난 아이들과 마지막 말을 나누는 대신 나가서 놀기로 한다.

아이들은 요즘 새롭게 발견한 놀잇감인 자전거 거치대에 몰려가서 매달리고 올라타며 논다.

난 너희들과 마지막 날의 서정을 진지하게 나누고 싶었는데, 으이구, 야속해라.

그러고 보니 내가 아이들에게 하려던 말들이 2학년 되어도 건강해라. 니네들이랑 지내면서 행복했다, 사랑한다 뭐 이런 얘기였으니... 안들어도 뭐.



*


1학년 마지막 날이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보낸 일 년이 다 지나갔다.

난  올해 이 아이들과 꼬박 200여 일을 만났다.

학교에서 만났고 어떤 아이는 그 아이의 집에서, 어떤 아이는 그 아이가 사는 동네 모퉁이에서 만났다.

한두 아이만 보기도 하고 전체 아이를 보기도 했다.

그중 191일은 오로지 공부를 위한 날로 만났다. 생활기록부에 연간 수업 일수라 기록된 날들이다.


아이들과 공부를 한 시간은 833시간이다.

교육부에서 정해 준 1학년 권장 수업시수보다 몇 시간 많다.

1학기는 2학기보다 좀 더 길어서 33시간이 더 많았다.

국어, 수학 같은 공부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자율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같은 창의적 체험활동도 173시간 포함되었다.

다른 학년에 비해 1학년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이 훨씬 많다.

1학년은 공부 못지않게 학교라는 사회에 적응하는 시간이 많아서다.

그 시간에 아이들은 글자를 읽고 쓰고 셈하는 연습 대신 학교라는 사회의 구조와 질서를 익히고 모르던 아이와 친구가 되는 연습을 했다. 

교사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은 가장 쉽다. 공부 외의 것들은 가르치기도, 배우기도 힘들다.

1학년은 공부 외의 것들을 더 많이 배워야 한다. 교재도 없고 비법도 없이, 끝없는 잔소리 만으로. 가르치기도 배우기도 힘들었다.



입학식을 하던 날, 아이들은 굳어 있었다.

함께 한 가족의 즐거운 표정들이 아이들과 대비되었다.

그 무렵, 아이들은 교실을 조심조심 걸었고 등교하자마자 가방을 단정히 걸었다.

복도에서 뛰지 않았고 배가 불러도 급식을 남기지 않으려 애썼다.

공부 시간이 되기도 전에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이름이 단정하게 쓰인 공책을 가지런히 꺼냈다.

아이들은 그렇게 내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조심하고 질서를 지켰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은 나를 어려워하고 경계했다.

거리를 두는 아이들 앞에서 웃는척하는 나 또한 어색한 시기였다.


아이들이 교사를 어려워하며 스스로 조심하는 그 기간을 일 년 내내 그대로 유지하면 아이들 가르치기가 수월하다.

어떤 교사는 그래서 학기초에 아이들을 잘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이들에게 너무 친절하지 않고 적당히 엄격한 표정으로 긴장을 유지하면

그 분위기가 일 년 내내 이어질 것이고, 일 년 내내 이어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아이들의 통제도 쉬워진다고 한다. 

아이들은 교사가 어려우니 더 조심하고 쓸데없는 걸 물어오지도 않을 테니 교사도 편할 테고.


하지만 어떤 교사는 그런 교사를 두고 동물원의 사육사와  비교한다.

사육과 교육은 엄연히 다를 것인데 선생이 사육사가 되면 되겠느냐고 한다.

자식이 부모를 착취하면서 성장해가듯 교사 역시 아이들에게 극복당하는 존재가 되어야지,

 어린아이들에게 군림하면서 성장을 막고 현재의 경직한 모습을 박제한 채 유지하려고만 하면 성장이 되겠느냐고,  죄가 된다는 것이다.


난 겉으로는 그 말에 동의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사육사 같은 선생이 되기를 꿈꾸며 살아왔다.

그러면 선생으로 살아가는 일이 좀 덜 고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난 한 번도 사육사가 되지 못했다.

아이들은 길들기엔 너무 야생에 가까웠고 난 조련법을 몰랐다.

난 항상 아이들을 잡아 보려고 허덕였지만 아이들은 모래처럼 내 손아귀를 미끄러져 나갔다.

어떤 해에는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너무 몰아치다 내가 먼저 나가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해는 될 대로 되라고 뭐든 대충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은 별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언제나 싸울만한 할 일로 싸우고 알고 싶은 만큼만 공부했다.

그러면서도 유쾌함을 유지했다. 나도 그렇게 자랐을까.  오래되어 이해하기 어려운 세대차였다.


아이들 머리 속에는 어떻게 하면 나, 또는 제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도 웃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지를 궁리해내는 연구소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난 서서히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교사의 열정이나 게으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될 대로 되는 존재라는 걸.

교육학 이론은 성장의 인과 법칙에 대해서는 그럴듯하나

커가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개별성은 포괄하지 못한다.

아이들 하나나하에 맞는 교육은 결국 교육 일선의 끝에 있는 교사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학자들의 이론은 너무 긍정적이거나 이상적이다.

그들 중엔 초등학생을 가르쳐 보지 않고 초등교 수법을 쓴 교수도 있고, 

아이를 낳아 길러보지 않고 아동심리학 책을 쓴 사람도 있다.

난 아이들과 교실에서 복닥거려보지 않고 교육에 대해 떠드는 사람의 말과 현실의 교실 사이를 헤맸다.

그들의 이론에 의지하여 내가 직접 만든 배에 우리 반 아이들을 모두 태워 안전하게 세상을 건너 주는 교사가 되려고 애썼다.

이제야 난 그게 자가당착인 걸 안다. 이제 난 교육에 관한 한, 직접 현장에서 가르쳐 보지 않은 사람의 말은 믿지 않는다.

그저  어디쯤에 배가 있으니 그걸 타고 싶으면 타라고, 

싫으면 주변의 나무를 모아 뗏목을 만들어 타거나 그마저도 싫으면 헤엄 쳐 건너라고,

어떻게 강을 건너가든 너희가 선택한 결과를 만날 거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난 내가 아는 걸로 어떻게든 용을 썼나 보다.

그러면서 지쳐갔다.


아이들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혹은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각자 자기만의 배를 찾아 나서곤 했다.

그렇게 한 해동안 강을 건넌 아이들 중 내가 배에 대해, 뗏목에 대해 얘기를 했는지 기억하는 아이는 없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갖고 태어난 유전자에 이미 저마다 강을 건너는 지도가 들어 있었는지 몰랐다.

지금, 나의 제자들은 내가 예전에 가르친 공부보다 내가 어쩌다 써 준 몇 줄의 편지나, 수업을 밀쳐두고  들려준   옛날이야기를 더 오래 추억한다.

정작 그 당시 나는 그 아이들에게 더 많은 시험지를 풀려 성적을 올리기 위해 이야기 같은 건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그동안 나를 선생으로 만나 한 해를 저당 잡혔던 제자들에게 미안하다.


농부가 살기 위해 땅을 갈듯 나 역시 벌어먹기 위해 해마다 아이들을 받았다. 

난 항상 좋은 선생이 되는 일 보다 편히 먹고사는 방편을 먼저 생각했다.

내 교실에 오는 아이들은 말을 잘 듣고 순한 아이들만 오길 바랐다. 학부모도 유난하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그런 소망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리다는 이유로 늘 아우성이었고 학부모들은 모성애를 무기로 내게 능력 이상의 선생이 되기를 요구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야 말로 성직인데 선생이 무슨 노동운동을 하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

우리 부모가 낸 세금으로 선생님 월급 주는 거 아니냐고 대드는 아이도 늘고 있다.

내가 가르치는 일이 단 한 번도 노동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손톱 분필 때가 노동이 아니었던 있었나.

언젠가 그들이 나처럼 선생이 되어 본다면, 그 고단한 밥벌이를 이해하리.

선생 노릇이 힘들 때마다 교실 창가에 서서 운동장 너머 밭을 쳐다보곤 했다.

내가 선생이 되지 않고 말 없는 땅에 농사를 짓는 농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날엔 어김없이 아이들이 밀려 들어왔으니.


오랜 기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오면서, 난 인간에게 천재성이란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지만 학부모들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의 천재성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난 기꺼이 아이의 장점을 말해주었다.

세상 모든 아이는 나은 점을 몇 가지는 항상 갖고 있다.

내가 부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부모 역시 자기 아이의 장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 담임에 의해 확인받고 싶었을 텐데 

내 말을 듣고 난 뒤 부모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자기 아이에게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는 즐거움과 안도.

그리고 그 전에 더 일찍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까지.

또한 그들은 나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자기 아이를 늘 긍정적으로  봐주셨다고 고마워했다.

어떤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선생님 같은 분을 담임으로 만나 감사하고까지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민망했다. 


아이의 부정적인 면을 발견한 교사라면, 

그 단점을 부모에게 알려주고 고치려 하는 교사라면 아이에 대한 애정이 더 있는 것이다. 

난 일부러 단점을 보려고 하지도 않지만, 내 눈에 보인다 해도 부모가 묻기 전에 말하지 않았다. 

아이에게도 마치 내가 자신의 단점을 모르고 있는 듯 대했다.

내가 아이들의 나쁜 점을 지적하지 않는 것이 교사로서의 따뜻한 시선, 애정 그런 것들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난 단지 그런 과정들이 귀찮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복지부동의 전형인 내가 부모의 칭찬을 받는 반면, 

아이의 문제를 일일이 학부모에게 알리고 가정에서 고쳐보라는 안내를 하는 교사를 오히려 공격하는 모순이 이 나라에 아직도 있다. 


난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일 년을 함께 복닥거리다가 헤어진다.

나의 일 년은 늘 비슷한 무늬의 보람과 상처, 그리고 좌절, 분노, 허탈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손님의 거만함을 참아내는 장사꾼처럼, 나 역시 먹고살기 위해 아이와 부모를 상대로 감정 노동을 했다. 

감정 노동의 비율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다.


나의 일 중에는 아이의 본성을 읽어내서 키우는 일과 그걸 부모에게 알리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은 내가 선생이라는 이유로 다르게 본다.

내가 그들의 아이를 가르치는 담임도 아니고, 더욱이 그들의 선생도 아닌데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선생이라 불러준다.

사람들이 내 성 뒤에 '선생'이라는 명사를 붙여 나를 부를 때 민망하다.

그 민망함을 모면해 보려고 내가 선생으로 아이들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역시 민망하다.


내가 처음 선생이 되었을 때, 대체로 선생이라는 선입견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살았다.

사람들의 시비에 끼어들지 않았고 까다로운 소비자로 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력이 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나중에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냐는 내 삶의 질과 깊이 닿아있는 걸 알게 되어서다.

그들이 잘 자라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나 또한 그 사회에서 편안히 늙어갈 수 있을 테니.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돈만 아는 고용주를 만나 육신의 노동을 착취당한다면, 참을 수 없다.

여자로, 또는 남자로 태어남 그 자체가 굴레가 되어 펴고 싶은 꿈을 삼켜야 한다면, 참을 수 없다.

부정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행세하는 나라에 내 제자들을 살게 할 수는 없다.

나는 선생이 되고 나서야 좀 더 시민에 다가갈 수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세상의 어떤 틀에 일찌감치 적응되어 원래의 본성을 누르고 살지 않기를 바랐다.

세상 그 어떤 사회 통념도, 종교도, 관습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속박하지 못하길 바랐다.

그러려면 내가 속한 한국이라는 사회를 바꿔야 할 것이었다. 

그건 선생인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아이들이 스스로 통념을 이기는 어른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억압하지 않고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세워나가면 아이가 속한 사회도 좋은 쪽으로 진보하지 않을까.


나는 점점 성깔 있는 선생이 되었다.

정의에 눈 감고 자기 배를 채우면서도 백성을 돌보지 않은 위정자들은 어김없이 아이들 앞에서 내 욕을 얻어먹었다.

권력을 위해 신의 왜곡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먼 나라의 종교 지도자들도 아이들 앞에서 내게 망신을 당했다.

지금 난 더 이상 선생이라는 호칭을 기대하며 말을 조심하는 사람이 아니다. 교실 안에서만 이지만.


나를 싫어하는 학부모를 만나기도 했다.

왜 우리 반 아이들은 받아쓰기 보다 시를 더 자주 쓰느냐는 항의도 있었고

담임이 사람은 착한 거 같은데 애들을 잡아야 할 때 못 잡아서 애들이 선생을 우습게 알고 부모에게까지 대든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시를 잘 가르치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공부를 잘 시키지도 못하는 주제에 아이들에게 끌려다니는 게 부끄러웠다.

사람들은 내가 선생이기 때문에 순한 토끼가 그려진 가면을 쓰고 살길 바라는 것 같다.


나를 싫어하기는 아이들도 만났다.

글씨를 하도 써서 손가락이 아픈데 자꾸 더 쓰라고 해서, 먹기 싫은 오이를 자꾸 먹으라고 해서, 

친구가 잘못해서 싸운 건데 자기를 더 야단쳐서 싫어했다.




아이들 사진 중 가장 먼저 찍은 사진은 입학식 때 온 부모님과 함께 선 모습을 교장 선생님께서 찍어 주신은 사진이다.

그동안 찍은 사진을 슬라이드로 엮어서 한 장씩 넘기며 아이들과 봤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입학한 아이들이 다시 그때의 옷차림이 되어 사진을 본다.

어떤 아이는 그새 몸이 자라 작은 점퍼를 버리고 새 점퍼를 입었다.

입학할 때만 해도 광대뼈를 덮어 통통하던 젖살이 어느덧 빠져 얼굴선이 선명해졌다.

젖살이 가시는 속도만큼 칭얼거림도 줄었다.

서서히 드러나는 아이들의 얼굴 선이 마치 아이의 원형질 같다.

녀석들, 저런 걸 드러내느라 그동안 그렇게 울고 떼를 부렸나 싶다.


12월 말에 겨울 방학을 하고 2월 초에 개학을 해서 며칠 더 나오면 드디어 1학년이 완전히 끝난다.

앞으로 우리가 이 교실에서 얼굴을 보는 날이 며칠 남았는지 아이들과 달력을 보고 세 보았다.

중간에 방학이 있어서 실제 얼굴을 보는 날이 얼마 안 된다는 걸 안 아이들이 놀란다.

난 칠판 구석에 앞으로 남은 날 수를 써 놓았다.

사진이 너무 많아서일까, 사진을 보다 말고 떠드는 아이가 있길래 내가 토라 진척 말한다. 

그래, 니네는 2학년 되는 거 되게 좋지? 선생님도 금세 까먹고 새 학년 새 교실 가서 재미있게 잘 놀아라, 흥.

통하지도 않을 심술을 장난 삼아 부려봤는데 녀석들이 미안해한다. 

아이들은 그런 모습으로 만나고 헤어짐의 정리를 안다.

누가 아이들의 삶을 '한낱'  어린아이들의 삶이라 치부하는가.

아이들은 완성을 향해 자라는 존재라는 건 어른들의 시각일 뿐, 각각의 삶은 현재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삶이다. 단지 진행형일 뿐이다.


3월, 첫 만남 때의 어색한 얼굴 사진부터 같이 교실 뒷면에 그림을 붙이던 모습, 정글짐에 매달리는 모습, 장마 때 물 웅덩이에 옷을 적시던 모습, 흙장난하던 모습, 교실 앞 소나무에 올라갔던 모습, 실내화 신고 운동장 나갔다 벌로 복도를 닦던 모습, 친구와 싸우고 나란히 울던 모습, 운동회 때 달리던 모습, 친구 앞니 빼던 모습, 눈 사람 만들던 사진, 사진, 사진들...

한 해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사이에 키도 자라고 몸무게도 늘고, 말도 늘고, 꾀도 늘었다.


“와, 그러고 보니 일 년 동안 일이 참 많았다. 그치?”

“...”


친구가 전학을 가고 전학 간 친구를 그리워하며 보낸 동안 다치거나 아픈 아이가 하나도 없었던 것도 기적이다.

아이들에게 닥치는 일상의 분주함과 긴박함에 비한다면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저 아이들이 든든히 자라는 동안 나만 그대로 있었구나. 그것도 복이다.

화면을 보면서 아이들이 각자 지내 온 한 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동안 난 교실 뒤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본다.

어눌하던 표정이 학년 말로 가면서 펴진 아이도 있었지만 또 여전히 어색한 아이도 있고,

한 해가 너무 빨리 지나 서운하다는 아이가 있는 반면 어서 다음 학년으로 가고 싶어 하는 아이도 있다.

저 아이들의 성장에 내가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자 했던 건 나의 욕심일 뿐, 아이들은 주어진 삶을 담담히 저마다의 속도로 살아왔다.

아이의 최종 삶을 결정하는 건 앞으로 아이가 살면서 만나게 수많은 선택일 테니 그 선택에서 보다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고 보면 내가 자라 온 시기도 갈림길이 참 많았는데 어떻게 운이 좋아 선생이 되어 지금껏 살아온 게 다행이다 생각하는 동안 사진 슬라이드가 끝난다.


아직 사진 속 분위기에 젖어 있는 아이들에게 내가 말을 건다. 선생님을 만나서 1학년이 재밌었던 친구도 있겠지만 반대로 힘들었던 친구들도 있을 거야. 다른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1학년이 더 재미있었을 텐데. 그 친구들에게 미안해. 또 있어. 선생님이 너희들을 좀 더 엄격하게 공부시키길 바라셨던 엄마들도 계셔. 그 엄마들께도 미안해. 선생님은 엄마들 생각이 옳은 걸 알면서도 너희들에게 그렇게 하지 못했어. 앞으로 너희들이 공부를 못하면 그건 반은 너네 책임이고 반은 내 책임이야.

그러자 한 아이가 대답한다. 괜찮아요. 2학년 돼도 선생님이 우리 교실에 놀러 오면 되죠. 선생님은 어느 학교로 갈 건데요?

으잉? 난 어느 학교로 간다는 말도 안 했는데 이 놈들 나를 쫓아 보내기로 작정한 거야?

그러자 한 아이가 잽싸게 내 눈치를 보며 그 아이를 나무란다. 야, 너 선생님한테 싸가지 없게 말하지 마. 선생님 어느 학교로 가실 건가요 그래야지.

난 머리를 긁적인다. 아니, 난... 뭐 다른 학교로 갈 생각은 아직...


그러자 한 아이가 알았다는 듯 내 말을 자른다 아, 그럼 급식실 같은데서 밥 먹을 때 만나면 되죠. 야, 니네 2학년 때 6학년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이면 좋겠는 사람 손들어.

아이들 몇 명이 손을 들어 그 아이 말에 호응하면서 분위기가 돌연 밝아진다. 야, 6학년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만 되면 만날 점심시간에 축구도 하니깐 좋겠다.

그러자 4학년에 언니가 있는 아이가 말한다. 야, 4학년 선생님도 좋아. 우리 언니가 그러는데 4학년 선생님 되게 좋대.


사진을 보고 나서 아이들을 내 차에 모두 태우고 아이들이 사는 마을을 한바퀴 돌았다.

꼬불꼬불 농로를 따라 아이들 집을 하나하나 지나면서 한 해를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가 학교 오던 일들을 말해 주었다.

걸어오다가 논에서 너구리를 본 일, 차에 치어 죽은 고양이를 본 일, 중간에 비를 만나 홀랑 젖은 일.

아이들 말을 들으면서, 난 아이들이 등굣길 사연이 아주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침마다 아이들이 내게 말해 준 것들보다 훨씬 많은 얘기를 학년을 마감하는 차 안에서야 들었다. 미안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새 학년, 새 출발이라는 축하를 받으며 2학년이 되겠고 난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그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아이들은 그런 과정을 거듭하며 어른이 될 테고 나 또한 별 탈이 없다면 그렇게  먹고살겠지.







'겨울'이라는 교과서의 끝부분에 1학년을 마무리하는 단원이 나온다.

그 중 2학년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발표하는 부분이 있다.

한 해동안 친구들과 부대낌이 제법 있었던 아이는 착해지겠다고 썼다.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까칠함을 잃지 않던 이 아이를 착해지겠다고 만든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조금 늦게 글씨를 깨우친, 그래서 나에게 야단도 많이 맞은 아이는 이제부터 공부를 많이 하고 싶다고 썼다.

공부가 힘들어 집에 가겠다고 가방도 여러 번 쌌던 아이는 왜 공부가 하고 싶어졌을까.

이 아이들을 성장시킨 건 어쩌면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 인사 말씀

 - 한 해 동안 일 학년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1학년 아이들에게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사회화되기 이전의 뚜렷한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 보여 주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도 다시 유년으로 돌아가 제 결핍 많았던 제 어린 시절을 다시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블로그에 올리다 보니 책으로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 블로그를 좋게 읽어 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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